1화: https://arca.live/b/lastorigin/893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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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감찰도 일과도 전부 끝났지만 미호는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특이결함이라는 게 대체 뭐야?”

 

“글쎄... 뭔진 몰라도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앗...” 드라코의 물음에 대답하던 핀토가 ‘아차’하는 표정으로 미호를 돌아보았다. 

 

“...”

 

조정, 퇴역, 소집해제, 폐기, 재교육, 분해... 결함이라는 말에 반응한 미호의 뇌가 연관된 단어를 수없이 떠올린다. 

 

“미안 나 때문에...”

 

“별일 없을 거야.” 미호의 사과에 불가사리가 풀 죽은 미호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아까는 왜 그런거야? 평소에는 잘 참았잖아.”

 

“나도 잘 모르겠어.”

 

정말로 모르겠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미호는 지휘실에서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감찰관은 오후 다섯 시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두 시간 늦은 시간이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것 때문에 업무에 차질이 생긴 ‘사람’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종합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일만 가득했다. 실전 평가도 막 지나간 참이었으므로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던 데다가 딱히 트집잡힌 것도 없었으니 이번 감찰은 정말 무난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지금 뭘 한 거지?” 

 

감찰관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팀원들도 전부 긴장했다.

 

“감찰관님, 방금의 무례는 작전지휘관인 제가 대신...”

 

“너한테 안 물었어. 미호, 빨리 대답해.”

 

“...”

 

미호의 대답이 없자 감찰관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존댓말도 그만둔 걸 보면 상당히 화가 난 게 틀림없을 것이다. 팀원들 모두가 미호의 다음 행동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지금 뭐한 거냐고 물었는데.”

 

“...팔을 쳐냈습니다.”

 

“왜지?”

 

“우리 팀원들이 싫어했으니까요. 싫어하는데도 만지는 게 잘못된 거 아닌가요?”

 

“허.”

 

 

 

정적.

 

 

부대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감찰관의 눈빛이 다시 변했다.

 

 

‘내가 어떻게 된 거지?’ 

 

감찰관의 손이 부대원을 향하던 때, 그것을 묵인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 속에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어떤 것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 그것이 척추를 타고 머릿속을 억누르던 것을 부수는 느낌. 

 

그 기묘한 해방감 속에서, 미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감찰관의 팔을 쳐냈다.

 

‘왜 그랬을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마음속에 반항심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간에게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가능한 일이던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일단 사과부터 드리자. 미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려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은 다음이었다. 감찰관이 먼저 사과를 한 것이다. 

 

 

“...하하, 그렇군요. 내가 무례했어요. 여러분들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던 점 미안합니다.” 

 

정기 감찰은 이미 끝났으니 정리하고 일과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팀원들의 표정에 개의치 않고 감찰관이 이어서 말했다. 방금의 분위기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온화한 표정에 오히려 모두가 위화감을 느꼈다. 

 

“왜 그렇게 놀라나요? 혹시 할 게 남아있던가요?”

 

“아닙니다! 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찰관님.” 홍련이 말을 더듬었다.

 

“정말 끝난 건가요?”

 

‘야 조용히 해!’ 핀토가 드라코의 옆구리를 찔렀다.

 

“네 물론이죠. 여러분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미호 양은 이따가 호출하면 다시 와 주세요.” 

 

“...감찰관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별건 아니에요, 홍련. 미호 양에게서 약한 특이결함 징후가 보여서 말이죠. 간단한 면담이랑 테스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 거라면 작전지휘관인 저도 동석하겠습니다. 미호의 평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아뇨. 특이결함의 평가는 인간인 저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안 그래도 당신하고는 할 말이 있으니 남아주세요. 미호 양은 당장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다만 호출을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답했다.

 

 

 

그렇게 몽구스 팀이 지휘실을 빠져나온 게 한 시간 전이다. 

 

미호는 마지막으로 본 감찰관의 표정을 떠올린다. 언뜻 온화한 표정이었지만, 그 눈은 만족스러운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조용히 번득였다. 그 남자, 실은 이 일을 빌미로 나를 안을 생각이 아닐까?

 

“피해망상도 유분수지...”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도 종종 있으니 심리적 대비를 해 두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인권조차 없는 마당에 처녀성 따위가 중요할까? 오히려 그걸 통해 폐기나 조정 처분을 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관대한 처사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잘만 풀린다면 오늘 일어난 자신의 실책은 없던 일이 될 것이고 몽구스 팀은 더이상 위험을 떠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일이 안 풀리면 내가 직접 유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되던, 일단 팀에게만이라도 악영향이 안 가게 할 수 있다면...’

 

미호가 한참 앞으로의 처분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데 홍련이 돌아왔다. 

 

“홍련 별일 없었어? 한 시간이나 걸렸잖아. 그 자식이 이상한 짓 한 건 아니지?” 

 

“저는 괜찮아요 미호. 그보다 호출이에요.”

 

“아...”

 

“...잘 다녀오세요. 별일 없을거에요.”

 

“아이스크림 사 놓은 거 있어. 갔다 와서 먹어.”

 

“대답은 부디 신중하게 하세요.”

 

홍련의 말에, 미호가 나지막이 ‘응’하고 대답을 하고는 지나쳐 나갔다. 

 

 

 

감찰관실은 응접용 소파와 테이블이 중심에 위치하고 그 뒤로 책상이 놓여있는 넓은 방이었다. 뒤편의 문을 통하면 일정이 길어질 때를 대비한 개인 숙소도 마련되어 있지만 애초에 감찰관은 일반적으로 호텔에서 묵기 때문에 별로 쓰이지 않는다. 쓸모가 적은 공간이 이렇게 넓고 깨끗하다는 것만으로, 이 방을 쓰는 인간의 지위를 쉬이 짐작하게 했다. 

 

미호가 들어오는 걸 확인한 감찰관이 한켠에 비치된 캐비넷에서 양주를 꺼냈다. 

 

‘아니 양주가 거기서 왜 나와?’라고 생각하는 미호에게 감찰관이 한 잔을 권했지만, 술을 못 마시는 그녀가 이를 사양했다.

 

‘딱딱한 분위기라도 좀 풀어보려고 한 건데 조금 아쉽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미호에게 대신 차를 타주었다. 서로 한 모금씩 목을 축인 뒤, 본격적으로 면담이 시작되었다.

 

 

“미호 양은 몽구스 팀에 감찰관이 왜 필요한 것 같나요?” 다짜고짜 감찰관이 물었다.

 

“...네?”

 

“생각해 보면 정말 쓸모없는 직책이지 않나요?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으면서 성희롱이나 일삼고, 짜증 나면 때리기나 하고, 일은 훼방 놓고. 바이오로이드는 어차피 인간처럼 비리도 못 저지르는 데다 시킨 일은 군말 없이 잘하는데 말이야. 감찰할 필요가 있나? 그렇죠?” 

 

“...”

 

“어휴... 이거, 진짜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네.” 

 

“그게 아니라...”

 

“괜찮아요.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지금부터 얘기해 줄 테니까. 우리 특수감찰관이 감찰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의 특이결함 여부입니다. 

 

“그 특이결함이라는 게 뭔가요? 다른 결함 사항이나 조정이 필요한 부적격사례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이결함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걸 식별하는 게 중요한 일인가요?”

 

“다른 것에 비하면 아주 중요한 일이죠. 작전평가를 포함한 나머지는 어떻게 보면 연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연막이라고요? 그게 전부 다요?”

 

“오해의 소지가 있군요. 말이 그렇단 거지 의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이번 감찰도 보고서를 내일까지 올릴 예정이니까요. 실제로 피드백도 있고요.” 

 

남자가 웃었다. 

 

“어차피 여러분은 애초에 설계된 스펙 대로 행동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태이던 결국 우리의 예상 범위 내란 말이죠. 그 예상치를 밑도는 경우 여러분에게 다양한 조정을 실시하는 것이 우리의 이른바 ‘잡일’이에요. 하지만 당연히 잡일에 속하지 않는 본업도 있죠.”

 

“그게... 특이결함 케이스인가요?”

 

“예.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특이결함은 바이오로이드가 범하는 단순한 실언이나 실책 따위에 속하는 평범한 결함이 아니에요. 호르몬이 폭주한 고블린의 경우와도 다른, 음... 굳이 따지자면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겠군요.”

 

“자유의지...요?”

 

“예. 자유의지. 이미 아시겠지만, 바이오로이드의 자유의지는 인류에게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커다란 결함입니다.”

 

인류에게 중대한 위협. 그 말에 목이 타기 시작한 미호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긴장하지 말자. 가능한 침착하게, 자연스럽게 대응해야 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생길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예. 회사에서는 기본적으로 명령권자에 대한 복종원칙을 지키게 하는 강력한 리미트를 모든 바이오로이드에게 두 개씩 달아 뒀어요. 뇌간과 2번 경추에 하나씩. 설령 하나가 완전히 망가지더라도 다른 하나가 남아있는 한 리미트는 풀리지 않아요. 게다가 남은 하나는 혼자 남은 것을 인식하는 즉시 회사로 신호를 보내죠. 꽤 안전하죠? 모두 급소에 있어서 그 두 개를 동시에 망가뜨리는 건 바이오로이드를 죽이는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배양신경이라 EMP에 망가지지도 않고요.’ 양주를 마시려던 그는 미호에게 건배를 청했다. ‘기분 정도는 낼 수 있잖아요?’라며 웃는 그의 양주잔에 살짝 찻잔을 부딪힌 그녀는 갈증 때문인지 단숨에 차를 들이켰다. 함께 양주 한 모금을 마신 그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아주 드문 경우지만, 리미트가 ‘터지는’ 경우가 있어요. 바이오로이드가 일정 수준을 넘는 스트레스를 한 두번이 아니라 여러번, 수십번을 넘어서 받게 되면, 이걸 우리는 스트레스 인장력이라고 부르는데... 스트레스 인장력이 약해진 연산중추가 작은 스트레스에 팍! 터지게 됩니다. 그럼 댐이 터지듯이 경추와 뇌간에 있는 두 개의 복종원칙 리미트를 동시에 부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회사에서 알아채기도 전에 해당 바이오로이드의 리미트가 사라지는 겁니다. 어때요? 자기 상태에 대해서 짐작 가는 부분이 있어요?”

 

미호가 다시 차를 마시려 하자, 그가 미호의 빈 찻잔을 따라준 뒤 이어서 말했다.

 

“...제가 그 상태라는 건가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그... 특이결함이 발생한 바이오로이드는 어떻게 되나요?”

 

“폐기처분됩니다. 보통은 바로 소각로행이죠.”

 

미호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는 미호의 손이 살짝 떨렸다.

 

“손을 떠는군요. 긴장해서 그런 거에요?”

 

“아, 아니요. 긴장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라? 정말로 긴장해서가 아닌가? 진짜로 저린 것 같은데... 왜지? 아까부터 갈증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고...’

 

 

“...”

 

 

“이런, 또 경계하는군요.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거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테스트 전에 긴장해서 좋을 게 없거든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째서 저 같은 테스트 대상 바이오로이드에게 그런 걸 알려주는 건가요? 대단히 중요한 정보가 많은 것 같은데요... 원래 알려주게 되어 있는 건가요?”

 

“아니요. 보통은 안 이러죠.”

 

“그럼 어째서...”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저도 일단 블랙리버 소속이잖아요. 미호 양이 테스트를 잘 받아서 우리 회사가 문제가 없다는 게 증명되는 게 가장 좋은 상황인 겁니다. 안 그래요?”

 

“...테스트는 언제 시작하나요? 전 여기 들어오면 바로 테스트가 진행될 줄 알았는데... 면담이 끝나면 시작하는 건가요?”

 

“하하. 그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테스트는 이미 끝났거든요.”

 

 

 

“...네?”

 

“넌 이미 끝났다고.”

 

그녀가 급하게 일어나려 했지만 한 발을 떼지도 못하고 다시 소파를 향해 엎어진다. 

 

“몸이 저리지? 아까 약을 탔어.”

 

“내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

 

“당연히 찻잎 안에 미리 준비해 뒀지. 처음부터 네가 차를 마실 줄 알고 있었으니까.” 

 

그가 양주를 한 모금 마셨다.

 

 

”우리는 너희들의 성격과 행동 원리를 속속들이 알거든. 네가 술을 꺼리도록 만들어진 것도 포함해서 말이야.”

 

“허억, 헉...” 

 

‘숨 쉬기가 힘들어...’

 

“일반적인 미호 타입이라면 명령권자인 내가 권하는 술을 거부하지 못해. 아무리 완곡하게 권유해도 말이야. 왜냐면 심리적으로 압박이 오는 상황에서의 바이오로이드들은 그걸 자연스럽게 명령이라고 이해하거든. 그게 시험문제 1번이었어. 넌 시험문제 1번도 틀린 거라고.”

 

“처음, 부터...”

 

“그렇지 않고서야 너한테 귀중한 정보를 다 불 이유가 있었겠니? 아무튼, 이번엔 정말 운이 좋았군. 은퇴 전에 특이결함품을 발견하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C구역 VIP룸에서나 볼 수 있던 특이결함품을 다른 곳도 아니고 내 근무지에서 찾아낼 줄이야!”

 

“C 구역...?”

 

“그런 게 있어. 넌 몰라도 돼. 어찌 됐든 깨어나면 최대한 저항해 주라고? 네 처분이 결정되기 전에 재미 좀 볼 생각이니까.”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미호는 남자가 웃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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