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라는 것은 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전선에서 굴러보다 보니 자연스레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예언자에 천사에 대마왕 같은게 돌아다니는 오르카 내에서 운이 뭐 대수인가 싶긴 하지만,

행운이라는 것은 있다. 그것도 아주 영악한 면모를 가진 채.


"아, 저도 얼마 전 그런 경험 있었지 말입니다. 어제 뜯었던 전투식량 팩 안에 파운드케이크가 하나 더 있었지 말입니다."

"그런거 말고요. 아니, 뭐 그것도 맞긴 맞지만."


돌부리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자 칙 스나이퍼가 내 뒤에 있던 레프리콘의 머리를 터뜨린다던지. 다리가 분질러진 상황에서 닥치는 대로 총을 갈겼더니 우연찮게 급소를 맞춘다던지. 그런 행운을 전장에서 상당히 겪다 보니 행운을 믿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초에 이 세상에 인간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도 엄청난 행운인거고, 그 인간의 지휘를 받는 것도 행운 아니겠어요?"

"그건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마리 대장님이 사령관님한테 잘 보이려고 훈련을 더 자주 하시는 것 같지 말입니다."

"그건 그렇네요. 대장님 취향도 참 독특하단 말이죠. 설계 자체가 어린 남자애를 좋아한다는 건 누구 아이디언지 원..."


 최소한 동성애자는 아니니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지 말입니다. 그럴 일이 있을까 싶지만, 마리 대장이랑 같은 침대에서 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면 평생 동안의 행운을 다 써버린거겠죠. 아니면 반대로 평생의 불행을 다 몰아서 받은거거나."


평범한 일병이나 상병이 자기 부대 대장이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하다니, 만우절 장난이라도 극구 사양이다.


"평생의 행운을 다 쓴다라. 평생 남은 행운의 양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글쎄요. 어쩌면 사령관님이 부탁하면 닥터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요?"

"솔직히 전에 커지는 약도 그렇고, 이런저런 장치를 뚝딱 만드는 걸 보면 닥터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거 같지 말입니다."

"근데 만든다고 쳐도 저희가 쓸 일은 없을거 같다는 감이 오네요."

"헤헤, 사실 저도 얼추 알겠지 말입니다. 아까 그걸로 죄다 쓴거 같지 말입니다."

"글쎄요. 아직 저희 둘 다 말할 정도로는 살아있으니 아직은 살짝 남지 않았을까요?"


실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워보았다. 물론 분위기만 바뀐다고 상황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분위기만 좋으면 상관없다. 

어차피 잠시 후면 그런걸 생각할 겨를도 없을 테니.


"브라우니, 탄약 얼마나 남았죠?"

"제껀 한 탄창 반 정도 남았고 레프리콘 상병님껀 이제 없지 말입니다."

"소총 한 탄창 반에 어찌어찌 형태는 남아있는 무전기 하나라. 부장품으로는 충분할 거 같네요."


몇 분 전부터 소리가 나지 않는 무전기를 켠다. 신호가 들리는지는 알 수 없다. 최소한 몇 분 전에는 동굴에서도 터졌으니 숲에서도 잘 터지지 않을까 싶다.


"여기는 날치 8. 범고래 응답바람."


침묵.


"현재 저희 분대는 대규모 철충 부대에 의해 포위되었습니다. 아군 피해는 레프리콘 1기와 브라우니 1기가 중상, 나머지 전원 사망. 현재 작전 진행 불가능으로 판단되며, 퇴각 역시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


침묵.


숨을 고른다. 마음만 같아서는 옆에서 별 걱정 없이 히죽거리는 브라우니에게 시키고 싶기는 하지만, 일단은 내가 분대장이고, 

애초에 남에게 떠넘긴다 해도 별 차이는 없다.


"현재 위치에 폭격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좌표는 55P CR 04011 62745. 반복합니다. 55P CR 04011 62745 지점에 폭격을 요청합니다. 이상."


무전기를 떨어뜨린다. 그냥 내려놓은 건지, 더 이상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놓친 건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에 무전기에서 잡음이 들린 것도 같지만, 이미 무전기는 충격으로 부숴졌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됩니까?"

"글쎄요. 노래라도 부를까요?"

"그럼 제가 부르겠슴다!"

"보나마나 또 그 노래겠네요. 양파 운운하는. 같이 부르죠. 가사는 다 외웠으니."



행운이라는 것은 있다.


"기름에 튀긴 양파가 좋다네. 맛있으니까 양파가 좋다네."


예언자라던가 천사라던가 대마왕이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운이 뭔 대수인가 싶지만, 행운이라는 것은 있다.


"기름에 튀긴 양파가 좋다네. 양파가 좋다네, 양파가 좋다네."


그리고 행운의 가장 영악한 면모는


"가세, 동지여. 가세, 동지여. 가세, 가세, 가세."


그 행운이 언제 전부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철충이 움직이는 소리가 땅을 울린다.

어디선가 미사일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같다.

아무래도 살짝의 행운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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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후기


1. 첫 작품

2. 설정 잘 몰라서 오류 있을 수 있음

3. 쓸때는 좋아 보였는데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