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문학] 황금을 뿌리는 레프리콘

ㅇㅇ(61.105)



"브라우니! 또 어디갔었던...추, 충성!"



ㅈ됐다.



"아, 됐네. 우리 자매들은 워낙 많으니."



전쟁 전부터 유일하게 생존한 그녀는 그 세월의 흔적을 증명하듯 브라우니와 똑같은 얼굴에 상흔이 가득하다. 그런 그녀는 전쟁전 무려 원사라는 직위까지 올라갔고, 지금 나는 ㅈ됐다. 원사님은 피식 웃으며 바짝 얼어있는 나를 보더니 등을 팡팡 치고는 말했다.



"됐으니 좀 걷지. 지금 바쁜가?"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오르카호를 걸어다녔다. 어디로 가냐고 묻고 싶었지만 글쎄. 내게 그런 용기는 없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듯 원사님이 짖궃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 안 묻는가?"



"그, 무언가 뜻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건 없네."




흉터만 제외한다면 브라우니와 똑 닮은 그 얼굴로 원사님은 시원스레 말했다. 그러고선 나의 반응을 살폈지만 글쎄. 상급자란 으레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을 시키기 마련이다. 이런일에 익숙한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사님은 재미없다는 듯이 칫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사령관과 처음부터 같이 했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사령관이 처음 오르카에 합류할 무렵 브라우니 원사는 다른 곳에서 장기작전을 수행중이라고 들었었다. 그래서 사령관과 만난지는 얼마되지 않기에 나는 그녀가 사령관에 대해 물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용케도 살아있군 그래."



움찔



원사님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그녀의 등에선 알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기분탓일지도 모르지만.



"그...무슨 의민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들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자 원사님이 나를 힐끗 바라봤다. 분명 다른 브라우니와 다른것은 흉터밖에 없는데도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나를 조여왔다.



"나는 인간이 싫네."



아아아 나는 귀머거리입니다.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구요! 나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오르카호에는 여기저기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쯧쯔. 갓태어난 망아지마냥 불안해 하기는. 아, 자네는 망아지가 뭔지 모르겠군. 곤란한 일이야."



이게 세대차이라는건가 하면서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모르게 화가나 뭐라하려 했지만 원사급 그것도 전쟁전부터 활동해온 역전의 용사에게 뭐라할 담은 내게 없었다.



"걱정말게. 이곳엔 눈이 없으니. 난 궁금할 뿐이야. 과연 오르카호에, 우리 바이오로이드에게 인간이 필요한가- 말이야."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원사님은 답답하다는듯이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냥 편안히 말하게. 이곳에서의 일은 우리 둘밖에 모를테니."



"왜, 왜 저에게 그런 말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에잉, 대화의 기본 자세가 안 돼 있구만. 그럼 됐네. 내 혼잣말을 할테니 자네는 그냥 거기 서있기만 하게."



아 불안하다. 신이시여 왜 저는 이 불편한 자리에 서있나이까.



"사실상 인간은 전멸했네. 사령관이 인간이라지만 글쎄... 고작 한 개체로 인류를 다시 재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니, 그 뿐 아니라 인간을, 인류를 다시 재건할 필요는 어디에 있지?"



원사님은 그렇게 말하며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바다를 보며 창틀에 걸터앉았다.



"인류는 그들이 금속을 다룬 이래로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지. 멸망 전까지 말이야. 그쯤이면 충분히 오래 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사실 인류의 멸망은 예정된 수순이었네. 인류는 탐욕에 굴복했고, 만족이라는 것을 몰랐지. 어쩌면 철충이라는 외계의 존재가 지구를 찾아온 것은 인류라는 바이러스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인류가 멸망하기 전부터 살아있던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느껴졌.... 아니, 무슨 소리야. 난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철충과 싸워온 것은 일종의 관성이었다고 생각했네. 그저 끝나지 않았기에 계속할 뿐인 그런... 하지만 사령관이 오고부턴 바뀌었지. 우리는 다시 목숨을 걸고 인간을 위해 철충과 전쟁을 해야해. 저 강대하고 끝없이 뛰쳐나오는 적들과 말이지."



입이 달싹 거렸지만 그것이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또 다시 우리가 오로지 죽기위해서일뿐인 그 허무한 전장에 다시 나가는 게 올바른 일일까?"



원사님이 날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엔 불길이 타오르는듯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모든 브라우니가, 모든 레프리콘이,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오직 인간이 설정한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나?"



혼잣말 한다면서요...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득 안대를 한 늙은 꼬맹이가 생각났다. 원사님은 나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얕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는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이 태어났고, 똑같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지. 하지만. 우리는 같지 않다. 브라우니는 대게 지능이 낮지만 가끔 지능이 높은 개체도 있었고, 설정된 성격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이도 있었지. 한명한명 꿈을 물어보면 저마다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쾅!



그녀의 주먹이 창틀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무의미한 전장에서 무의미하게 죽어갔다. 그저 시간벌기 용으로, 아니. 시간을 버는 것조차 아닌 인간들이 그들의 상급자에게 보고할 용도로. 겨우 서류 한 장. 그것이 우리 자매들의 목숨의 가치였다."



"하지만...사령관은..."




"그 싸이코 역시 인간이다! 뜬금없이 수복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한다며 자매들을 파괴하고 다시 고치는건 예사고 다쳐야 더 강하다며 일부러 바이오로이드에게 상처를 내고 전장에 내몰지! 그러다 완파되면 수복시킨 후에 다시 부수고! 언제는 수복비용이 아깝다며 그 상태로 전역을 시키더군. 하! 젠장. 그런 주제에 자신이 착한척 강인한척하며 자신의 마음에 드는 몇몇 바이오로이드에게만 살살대는 꼴이라니! 그런 주제에 발키리는 그렇다쳐도 더치걸 그 가여운 것한테도 하루 종일 임무를 주고 내보내는 것만 보더라도 답이 나오지."




"우리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필요가 없다. 지구엔 주인이 필요가 없어."



나는 불타는듯한 그녀의 눈빛을 피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원사님은 그런 나를 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어깨를 툭툭 치고는 지나갔다.



"미안하네. 그냥 예전... 내 분대장이 생각났을 뿐이야. 미안하네. 미안해..."



어쩐지 그 쓸쓸한 얼굴로 그녀는 오르카호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이 사라져갔다.



내가 오르카호의 반란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레프리콘 상병님! 들으셨슴까? 브라우니 원사가 반란을 일으켰답니다!"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자 나를 반긴 것은 얼굴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브라우니였다.



"브라우니 원사를 비롯한 몇몇 멸망 전 바이오로이들이 지휘관을 잡아 반란을 시도했다고 함다. 아찔했슴다. 콘스탄차씨와 미호씨가 아니었다면 성공했을검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드디어 라는 느낌이 들었을뿐. 갑자기 피곤해지는 느낌에 마른 세수를 하면서 브라우니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흘려들었다.



"그래서 말임다 -----해서-------했는--------무슨 영-----"



"마지막에 팔과 다리에 총알이 박힌 채로 제압되고선 한 말이 기억에 남슴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브라우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팔다리에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결연한 눈동자로 상대를 불태우듯 바라보며 말했겠지.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었다. 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건 알지만 솔직히 멋졌슴다. 같은 브라우니인데도 말임다. 음, 그리고 사령관이 대판 화났슴다. 들리는 말로는 오르카 내의 모든 브라우니를 추방할 거라고... 아니겠지 말임다?"



그렇게 말하는 브라우니의 표정엔 공포가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오르카호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아아, 알립니다. 오르카호 내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는 지정된 장소로 집합해주시기 바랍니다. 장소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조용히 권총 하나를 숨겼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가 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바이오로이드에겐 황금을 뿌려다줄 요정이 필요하다.




 [라오문학] 뽀끄루는 오늘도 대기중

ㅇㅇ(61.105)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풍만한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 이었을터인 그녀의 몰골은 지금 꽤나 처참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었고 온몸은 자신의 손톱으로 긁어 피가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죄송해요 죄송...."



그리고 끊없이 사죄의 말을 말하고 또 말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눈과 너무 뜯어 피까지 흐르는 엄지손톱은 그녀의 피폐해진 정신을 대변하는듯 했다.



[아아. 알립니다. 경장 지원기 뽀끄루는 본 방송을 듣는 즉시 임무 포트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그리고 들려오는 스피커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며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이 벽을 등지고 긁어댔다.



"싫어, 싫어.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으며 벽을 긁어대는 그녀의 머릿속에는 자신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던 바이오로이드의 얼굴들이 오버랩됐다. 자신을 증오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사령관의 명령때문에 아무것도 못한 채 죽어가는 가녀린 생명들. 자신의 능력은 바이오로이드에게 이로운 효과를 주지만 어느정도 소모하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되어 내부부터 망가트리는 저주였다.




[오, 그거 수복작할때 좋겠다.]



그 말의 의미를, 그때엔 결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사령관의 얼굴을 떠올리며 점점더 공포에 질린채 점점 더 벽의 구석으로 향해갔다.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자 그녀는 벽 구석에서 웅크린채 죽어가는 토끼처럼 달달 떨며 주저앉았다. 벽을 긁다 다쳤는지 그녀의 손톱 몇개가 들려서 덜렁거리며 피를 흘렸지만 그런 고통따위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경장 지...잠, 사령관 안 돼요! 앗... 야 뽀끄루!!]



지이이잉



갑작스래 들려온 고함에 스피커가 찢어지며 불쾌한 소음을 자아냈다. 안그래도 불안정 했던 뽀끄루는 그 목소리를 듣자 마자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통에찬 비명과 함께 눈물을 쏟아낼 뿐이었다.



[당장 튀어오지 않으면 내가 직접 가서 데리고 간다. 안 그래도 시간 아까워 죽겠는데 뭐하는거야!]



고압적인 목소리 짜증스런 말투.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 찢어버릴 것만 같은 그 목소리에 그녀는 머리카락 한줌을 쥐어 뜯으면서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으으..."



그녀가 문을 열려 하자 그보다 먼저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히, 히익! 가, 갈게요! 갈게요갈게요! 제발...."



그녀가 움츠리며 빌듯이 말하자 그녀의 손을 잡은 것은 부드럽고 상냥한 손길이었다.



"? 코, 콘스탄차...씨?"



눈앞의 콘스탄차는 쓰린 표정을 하면서도 상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뽀끄루씨. 사령관은... 제가 어떻게든 설득해 볼테니까 오늘이라도 쉴래요?"



뽀끄루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품에 안겨 울뻔했다. 하마터면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피해를 끼칠 뻔 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자기혐오가 치밀어 올랐다. 전에 한 번 그녀의 호의를 받았을때. 콘스탄차는 일주일동안 수복실에 있었으니까. 이이상 어리광은 부릴 수 없다.




"아, 아뇨. 괘, 괜찮...아요... 앞으로 몇번...만 더 하면..."



그녀의 일상은 몇달 전부터 언제나 소리지르고 괴로워하는 일의 반복이었기에 말다운 말을 하려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된..다고 했으니까... 네. 전 괜찮아요."



콘스탄차는 그런 그녀를 보며 울것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콘스...탄차씨?"



뽀끄루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콘스탄차는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흑... 흐으윽..."



그녀의 눈에서, 입에서 실로 오랜만에. 고통에찬 절규가 아닌 순수한 울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사령관이 레프리콘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뽀끄루는 실로 오랜만에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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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레프리콘이 사령관에게 총을 쐈는지는 전편에있음 

추천 40 넘겨서 기분 좋아서 끄적여봤따. 사령관이 개 쓰레기인 설정이라 AGS도 극혐해해서 오르카호 내엔 AGS가 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