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마리 도M에 쇼타콘


사령관이 마리를 부른지 고작 십 분. 마리는 빠른 걸음으로 찾아왔다. 꽤나 표정이 좋은 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평소 하는 일 없던 좆냥이 부관 페로가 차를 내왔다. 지가 뜨거운 거 못 마신다고 미적지근하게 타온 점에서 냥성수준이 드러났다.



마리는 식은 차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최근 스틸 라인에 대한 사령관의 평가표가 매우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실키는 중장형 바이오로이드에게 반필수적인 존재라고 극찬이고, 피닉스 또한 화력 하나만큼은 인상적이라는 평이다. 어디 고급 유닛들만 그런가? 노움도 제작자의 상상을 초월한 방호력이라며 호평이다. 레프리콘이나 다른 유닛들의 평가 또한 양호했다.



스틸 라인의 대장인만큼, 마리의 기쁨은 누구보다 컷다. 인류 최대, 최후의 방어선 스틸 라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충족되었음은 물론이요, 자기 부하들의 고평가에 큰 기쁨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다면, 그녀 자신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걱정하지는 않았다. 왜, 그런 평가를 하고 얼마 안 있어 부른 이유가 뭐겠는가?



마리는 그게 포상이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물자를 조금이라도 더 배정받는다면 최선일 것이다. 그게 무리라면 좀 쉴 시간을 받는다던지… 평소 하지도 못 할 전역을 입에 달고사는 부대원들에게 휴가증이라도 팍팍 뿌려줘야하지 않겠는가.



뭐, 마리는 그런 부분이야 사령관이 알아서 신경써주리라 생각했다. 우선 좀 더 개인적인 만족감부터 풀어도 문제는 없을 테지. 사령관과의 인사치례가 끝나고 마리는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사령관 각하. 저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어쩐지 누락되어 있던데요.”


“아, 그건 직접 얘기할 생각이어서 굳이 적지 않았어.”


“역시 그러셨군요.”



마리는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몸. 새로운 몸을 만들었을 때, 사령관은 마리의 의견을 들어주었다. 자신을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마리는 소년 사령관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사령관이 자신을 만족시켜주리라 기대하면서.



사령관은 그 기대를 남김없이 부수기로 하였다.



“너는 다시 교육을 받아야겠어.”


“…예?”


"대장이라는 체면을 생각해서 우리끼리만 말하는 거야.."



마리는 듣지 못 할 것을 들었단 표정을 지었지만, 사령관은 마리의 떨리는 눈에 쐐기를 박았다.



"네 지휘는 너무 감정적이야. 후퇴를 할 줄 몰라, 그러다 위기에 몰리면 희생양을 자처하지.”



이 참에 확실히 말해두자, 사령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혹하겠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멸망한 문명의 유산으로 연명하는 처지에, 그녀의 실수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연합전쟁 때는 그게 통했다던데, 그 후론 아니었더군?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철충과의 싸움은 달라. 우리는 완전한 열세에 놓여있고, 자원은 부족하지.”


“전장에서 지나치게 앞장서는 경향이 종종 문제를 부르기도 했었죠….”


“다른 대장들, 그러니까 레오나였다면 유연하게 대처했을 거야. 칸이었다면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했겠지. 아, 이런.”


“….”



실언이었다. 무심코 비교해버린 사령관은 선을 넘었다 싶어 눈치를 보았다. 자존감 강한 마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름대로 수긍하고 있지 않은가? 에라 모르겠다, 사령관은 아예 직설적이 되기로 했다.



“애초에 엘랑 비탈이라니. 1차대전 때나 통하던 구닥다리 방식이잖아. 프랑스는 2차대전 때 7주만에 항복했다지? 그리고 마리 너도 한참은 약해졌어. 위상포 말이야, 이제 4개 밖에 안 남았다며. 자기 힘을 믿고 싸우는 것도 이제는 무리야.”


“그렇…겠죠.”



마리는 시선을 깔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듯했다. 평소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완전히 기가 죽은 게, 조금 안쓰러웠다.



“독한 말이겠지만, 네가 죽는데도 ‘불굴의 마리’는 재생산되지 않을 거야. 대장직은 레오나가 가져가겠지. 네 생각을 해서라도 좀 바뀌는 게 좋을 거야.”



사령관은 그 이유를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마리는 멍청하지 않으니까. 무슨 논리와 근거로 내린 판단인지 충분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기가 제일 잘 알 것이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 믿은 지휘는 부정되었다. 개인무력도 이제 예전같지 않다. 유지비용은 크다. 무엇보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기용될 동안, 마리는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다.



그런 자괴감이 마리를 짓눌렀다.


“참 험한 시대야.”



앞으로 마리 얼굴 보기도 힘들겠군, 사령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이오로이드라는 게 인간 같기도 하고 기계 같기도 한 것이 참으로 어정쩡한 존재였다.



고장 난 전자제품을 A/S 보내는 것마냥 바로 쳐내다가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사령관은 어색해진 공기에 괜히 피지도 않는 담배 생각을 했다. 그런 중에 페로가 귓속말을 하더랬다.



“주인님. 저는 이만 탐색 다녀온 자매들을 마중하고 오겠습니다.”



그 소리에 사령관이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그럴 시간이 안 되었다. 페로가 이 상황을 불편해 자리를 피하는 것 같았다. 페로는 사령관의 허락을 받더니 다시 한 마디를 하고 떠났다.



“고양이는 육감도 좋답니다. 마리 씨가 감정이 격해졌어요. 잘 달래주시길.”


‘무슨 육감까지야….’



척 보기에도 마리는 심상치 않아보였다. 페로가 나가니 더더욱. 조금씩 떨고 있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린 양손이 어느새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했다. 같은 바이오로이드끼리는 상급자가 라비아타뿐인 마리다. 그러니 명백한 상급자인 인간과 단 둘이 있을 때가 가장 무게감이 없을 터이다.



사령관은 기다렸다. 마리에게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니까. 무엇보다 이런 분위기에서 먼저 말을 걸기에는 마리의 처지가 너무 안 좋았다.



마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단정히 앉은 채 고개를 내리깐 자세를 유지할 뿐이었다. 가끔 힐끗힐끗 눈치를 보는 게 다였다. 그나마도 제복 모자를 눌러써, 표정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기를 한참, 드디어 결심한 듯 마리가 초조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저는 버려졌다고 생각해도 되는 겁니까?”


“뭐?”



사령관이 아연실색하며 대답했다.



“난 깨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그런 놈이 사령관 완장 찼다고 백수십년을 전쟁에 바친 장군한테 뭐라고 하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인데. 버린다니? 아예 사퇴한다고 난동을 부려도 뼛속까지 부려먹을 테니 그런 걱정 말아. 잠시 배우고 오란 소리니까.”


“제가 실언을 했군요.”


“그거야 내가 먼저 했지. 서로 좀 흥분했어. 미안하네.”



사령관은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야 웃기는 일 아닌가? 정작 본인은 참고 있는데 자기가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야 드러난 마리의 얼굴은 완전히 붉었다. 왜 자꾸 시선을 피했는지 알법했다. 입술까지 잘근잘근 씹는 게,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사령관은 스틸 라인의 대장, 그 ‘불굴의 마리’가 저런 반응을 한다는 게, 또 그렇게 만든 게 자신이라는 점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닙니다, 각하. 괜찮았습니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라면… 제 단점부터 확실히 알아둬야겠죠. 그러니 어떠한 말과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벌이라니…, 무슨 소리를….”


“부담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는 편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올게 왔다. 사령관은 저 부담스런 말이 마리의 화풀이라고 생각했다. 곤란에 빠트리려는…. 도대체 무슨 반응으로 받아칠지 두려웠다. 그래도 이 정도는 당해주는 게 예의인지라, 그리 하기로 했다.



바이오로이드는 간악하니까. 인간을 기반으로 했으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니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겠지. 그러는 편이 낫겠다고 사령관은 판단한 것이다.



“넌 인간을 직접 봤었던 1세대였잖아. 왜 내 상태를 바로 얘기해주지 않은….”


“에이다나 포츈이 무슨 말이라도 하면 바로바로 휘둘리더 군. 너무 막무가내야. 더 생각할 필요가….”


“그래, 그 때도….”



마리는 무언가를 느끼는지 잠깐 찡그러거나,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냥 듣고만 있는 것이었다. 사령관은 이 상황이 어색했다. 왜 저러는 걸까.



‘그래, 다 나름 이유가 있는 욕이라 이거지…. 마리 성격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할거야. 너무 강직한 것도 문제군.’


생각해보면 마리는 자기 평생을 부정당한 셈이었다. 저런 상태로 보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남 욕도 하고 그래야 살기 편한데 말이야.’



어떻게든 의욕이란 걸 심어줘야 한다. 사령관은 가치를 재어봤다. 자기가 욕 좀 먹고 마는 것과 그냥 내보내는 것, 뭐가 나을까? 사령관은 전자를 택했다.



“왜 듣고만 있어? 변태도 아니고, 뭐라고 말 좀 해보란 말이야. 설마 스틸 라인의 그 마리가 이런 취향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서, 설마요.”


“그렇지? 그래, 대원들이 자네 모습 보면 뭐라고 하겠나? 안 그래도 요즘 부실한데, 그렇게 기강 잡던 마리가 이래서야.”


“…예.”


“…음.”


“마, 말씀 하십시오.”


“아니, 그… 진짜 왜 그래?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그런데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 발끈한다던가, 뭐라도 말하는 걸 예상했는데, 마리는 또 듣기만 했다. 그리고 ‘말씀 하십시오.’는 또 뭔가. 마치 기다린다는 것 같았다.



눈빛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화가 났거나, 그게 아니라면 슬프다던지 억울한 게 정상 아닌가? 마리의 눈빛은 어떻게 봐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사령관에게 최근 익숙해진 눈빛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사령관은 잘 알았다.



“그래, 네 말따마나 젊어진 게 좋긴 하다만. 자꾸 그렇게 보지 마. 이런 상황에서도 그래야 겠나? 긴장한 내가 잘못이지. 완전히 애 취급 받는 것 같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놈의 훈련 핑계는 다 대놓고 말이야. 순전히 본인 취향에 맞춰서 소년 몸이 좋다고 한 건 아니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자꾸 험한 말만 하는데, 화낼줄 몰라? 뭐라도 좀 자기 생각을 말해보라고.”



사령관이 보기에 방금 자신은 완전히 ‘꼰대’ 같았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갈구기 위해서 갈구는 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마리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참는 게 아니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사령관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점점 더 이상해졌다. 사령관은 뭔지 모를 기분에 매료되어 한마디를 더했다.


“평생 방어, 방어, 방어만 하고 살더니, 공격받는 걸 즐기게 되기라도 한 거야? 진짜 왜 그래?”



마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사령관은 문득 떠오로는 생각에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번뜩 페로가 한 말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육감도 좋답니다. 마리 씨가 감정이 격해졌어요. 잘 달래주시길.'



이제 와서 떠올려보니 참 묘하게 들렸다. 어쩐지 탐색 나간 녀석들 올 때까진 좀 멀었는데 일찍 나갔더랬다. 페로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걸까? 자기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다가, 같은 생각을 페로가 했다고 알게 되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사령관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추측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 미친. 그래, 레오나는 허구한 날 총 쏘겠다 겁박하는 미친년이고 메이도 폭격만 하면 처웃는 또라이인데 마리라고 못 그럴 거 없지.’



사령관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마리 너 … 무리하더라도 후퇴않고 계속 남아 싸우던 것도…, 혼자 남아 희생양을 자처했던 것도… 그래서였나?”



마리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사령관에게는 충분한 답이 되었다. 그녀의 얼굴이 명백히 더 붉어진 까닭이다.



이제서야 퍼즐이 풀리는듯 했다. 방금까지의 입술을 씹는다던지, 움찔거린다던지 하는 반응들은…. 사령관은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 소년 취향인 것도 진짜겠네? 하… 그래. 이건 그렇다 쳐도 작전을 그렇게 했단 말이지? 왜 후퇴 안 하나 했더니. 참 실망이야.”



블랙 리버가 처음부터 저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용 바이오로이드에 그렇게 했을리가. 원래는 단순한 용맹이었을 것이다.



다만 백수십년은 너무 길었을 뿐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을 베이스니, 망가지기에 너무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블랙 리버도, 남은 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고치지도 못 하는 노릇. 사령관이 맡아야 했다.



“이 일이 알려지면 다들 충격 좀 먹겠어. 설마 그 마리가…. 정말로 처벌이 필요할 줄은 몰랐는데. 아까 어떤 벌이던 달게 받겠다는 말, 아직도 유효하나?”


“…네.”



마리는 평소와 같은 눈으로 사령관을 보았다. 소년 사령관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사령관이 자신을 만족시켜주리라 기대하면서.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진짜 그런 때였다. 사령관은 드디어 그 시선에 담긴 뜻을 이해했다. 백수십년 동안 쌓인 시선을.



“좋아, 불굴의 마리. 내가 좀 특별한 처벌을 알고 있지. 받겠나? 싫데도 괜찮아. 그냥 없던 일이 될 뿐이지.”


“…네.”



마리는 새빨간 얼굴로 대답했다. 완전한 긍정의 뜻이었다. 마리는 이 상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불굴의 마리. 그 이름답게 긴 세월동안 인류를 지킨 수호자. 강직함과 근성의 대명사. 그런 마리가 지금, 어쩔 줄 몰라하며 사령관의 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강철같던 표정은 완전히 사라졌고, 당당했던 자세도 소심하기 그지없게 되었다. 스틸 라인 대장 마리는 이제 이 자리에 없었다. 오랜 세월 경험 없이 쌓아오기만 한 변태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건 사령관이고, 벌을 줄 사람도 사령관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사령관은 이유모를 배덕감과 정복감까지 느껴졌다. 아래가 뻐근해졌다.



“좋아, 가까이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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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도M이라고 하니까, 여긴 내게 맡기고 도망가라고 한 부분이 신경쓰였음...


혼자 남아 수많은 철충들을 상대하는 마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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