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라오 문학) 그럼에도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가며

Hinkel 



그럼에도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가며






“나는 가끔 사령관이 기억 상실에 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왜?”


“그야, 기억이 없으면 나쁜 기억도 없다는 거 아냐?”


“반대로 말하자면 좋은 기억도 없는 거지. 미호야, 너도 내 입장이 되면 다르게


생각할 거야.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꽤 불편한 일이거든.”


“흐음, 그렇구나...그러면 있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기억이 뭔지 알아?”


제일 싫어하는 기억이라,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 말이야, 여자 아이를 죽인 적 있어.”


“...”


“물론 고의로 그런 건 아니야. 오해하진 말아줘, 멸망 전쟁 직전에...테러가 자주


일어난 건 알고 있지? 그 날도 그랬어. 여느 때처럼 테러 진압에 투입됐었거든.”


“그래서?”


“한참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있는데, 웬 놈이 여자 아이를 인질로 잡고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어. 폭탄 조끼를 입고 있어서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모두 죽는


상황이었지. 그래서 내가...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해?”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괴로운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평온하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테러범을 쐈고..쾅...우리는 살았지만 그 아이는 죽었어.”


“네 잘못은...”


“알아, 어쩔 수 없었다는 거.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내가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미 지난 일이야.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


그 때, 미호가 식판을 들고 지나가던 블랙 리리스를 가리켰다.


“리리스한테도 비밀이 있어. 아마 사령관한테는 말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뭔데?”


“리리스는 원래 암살용으로 만들어졌어. 경호용과는 조금 다른 모델이야, 아주 약간.”


“그러면...”


“본인이 인정했어. 멸망 전에 자기가 죽인 사람만 수백 명이 될 거라고...그리고 그걸


후회한 적은 없대. 도구한테는 선택권이 없으니까.”


“그랬었나...그런 일이...”


“하지만 악몽은 꾼다고 했어.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손이 자신을 덮는 꿈을.


지금까지, 거의 몇 백 년이 지났지만 나도, 저 아이도 잊지 못한 거야.”


“...”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어렴풋이 그녀들에게 괴로운 기억이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직접 귀로 듣는 것은 완전히...다른 것이었다.


“나나 리리스 말고도 괴로운 기억을 가진 애들은 많아. 발키리는 동료들을 버리고


탈출해야했고, 마리는 자기가 알던 모든 이들이 죽는 걸 봐야만 했어.”


“그러면 나는...”


내겐 어떤 기억이 있었을까?


그 기억은 끔찍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행복하고 기쁜 것이었을까?


“...아니야, 됐어. 밥 맛있게 먹어.”


“응. 아참, 사령관?”


미호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린 괜찮아. 그래도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가니까.”


“아무것도 잊지 않겠지.”


“응. 아무것도...”


짧은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자리를 떠나며 생각했다.


제 아무리 괴로운 기억이더라도, 결국 우리는 잊지 못하고 그걸 껴안을 수 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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