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LRL이 통조림으로 가득한 창고를 발견한 것을 시작되었다. 어째서 LRL이 그렇게 참치캔에 열심이었던 것일까. 그녀가 등대지기 시절에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참치캔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입맛이 맞춰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조참치밖에 먹지 못했던 그녀는 동원참치에 대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혹은 삼안의 영업소에 입고된 LRL의 깨끗한 옷 때문은 아니었을까. 얼마되지 않는 가격이었지만 사령관은 여전히 LRL에게 그 옷을 사주지 않고 있었다. LRL은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원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 옷은 수백년의 역사가 담긴 진조의 유물이노라.’

그렇게 말하며 애써 자기위안을 하던 LRL의 속에서는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좀 더 어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령관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꺾지 못한 그녀였다. 덕분에 LRL은 여전히 오래된 헤진 옷을 입고 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참치캔을 찾아다니는 것은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참치캔 15개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LRL은 엄청난 양의 통조림이 보관중이던 창고를 발견했다. 그녀는 기쁜 마음에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사령관! 참치가 엄청 많아!’

얼마나 흥분했는지 자신의 컨셉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 LRL의 보고에 사령관은 내심 걱정을 했다. LRL은 유능했지만 항상 뭔가 잘못된 일이 항상 따라오던 아이였다.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썩은 통조림일 수도 있었고 혹은 철충의 함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LRL의 불운은 사령관이 함부로 예측할 수 있는 범위는 아니었다. LRL은 확실히 통조림이 가득한 창고를 발견하긴 했다. 문제는 그 통조림이 참치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붉은색 통조림에는 선명한 글씨로 해물비빔소스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오르카호의 비극은 시작된다.


“브! 오늘 저녁 뭐야?”

오르카호 체력단련실은 100m의 타원형 트랙이 있을 정도로 넓었다. 그 트랙을 수많은 브라우니들이 달리고 있었다. 체력단련실은 언제나 스틸라인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만했다. 바이오로이드는 운동을 한다고 체력이 늘어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체력은 그 상태로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스틸라인의 대원들이 운동을 하는 것은 그들의 지휘관인 마리의 명령 때문이었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이라 주장하는 그녀 덕분에 오르카호의 모든 바이오로이드중에 유일하게 스틸라인의 대원들만이 매일같이 체력단련에 시달려야 했다.

예외는 이프리트였다. 각종 핑계를 대거나 몰래 체력단련실 구석에 숨어 삶의 여유를 누리고 있던 그녀였다. 그녀의 짬은 숨을 때는 혼자 숨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위해 같이 데려온 것은 브라우니 KM532F2였다. 긴 일련번호 만큼이나 제조일자가 길지 않은 브라우니는 사실상 막내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프리트는 그 막내를 잘 부려먹고 있었다. 그녀가 브라우니 KM532F2를 데리고 온 것은 같이 쉬기 위함이 아니었다. 막내로 망을 보게 하고 자신은 편이 쉬려는 속셈이었다.

“이병 브라우니 KM532F2! 오늘 점심은 해소빔임다!”

“아니, 또야? 내일 아침은?”

“내일 아침도 해빔소임다!”

이프리트는 브라우니의 말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파묻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꿍쳐둔 비상식중 하나를 뜯어야 할 것 같았다.

어째 며칠째 해물비빔소스가 반찬으로 나오고 있었다. 해물비빔소스을 확보한 대원들의 말에 의하면 오르카호 전원이 10년간 먹을 수 있을 양이라고 했다. 아무리 양이 많아도 그렇지 매일같이 해물비빔소스가 나오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어졌다.

“브, 너 오늘 저녁에 식당 가지 말고 나 따라와라. 막내인데 맛난 것도 먹어야지.”

“진짬까?”

브라우니 KM532F2는 흥분하며 말했다. 맛난 것에 민감하던 시기였다.

“진짜지 말입니다?”

어디선가 들려온 말에 이프리트의 닭살이 돋았다. 그 목소리는 브라우니의 것도, 이프리트의 것도 아니었다.

“이프리트, 브라우니, 누가 여기서 농땡이 치라고 했지?”

확성기에서 나온 큰 소리는 이프리트의 고막을 찢을 듯했다. 이프리트는 기어서 몰래 도망가려 했지만 이프리트가 숨은 곳으로 들어온 레드후드는 이프리트의 후드를 붙잡았다.

“싫어! 체력단련은 죽어도 싫어!”

이프리트는 발악했지만 레드후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죽어도 싫어도 죽을 만큼 운동해!”

붙잡힌 이프리트는 얄짤없이 100m 코스를 수십번을 달려야 했다. 제대로 망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브라우니 KM532F2가 갈굼을 받게 되는 일은 저녁시간에 일어나게 된다.


악순환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해물비빔소스를 한번 맛본 오르카호의 대원들은 해물비빔소스를 되도록 먹지 않으려 했다. 억지로라도 먹은 대원도 있었지만 통조림을 뜯지도 않고 다시 버린 대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버리다보면 좀 더 빠르게 해물비빔소스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소완과 포티아등 식당에서 일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버려진 통조림을 재활용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뜯지도 않은 통조림만큼 위생적인 음식도 없었다.

자신들이 먹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대원들이 깨달은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의 반항정신과 저항정신은 사라지고 대부분의 대원들은 해물비빔소스밖에 없는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 들으셨슴까?”

그러던 와중 한 브라우니가 말했다.

“간부식당에는 해빔소가 아닌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온다는 소문임다.”

스틸라인만이 이용하고 있는 오르카호 제2 병사식당에는 해물비빔소스만 반찬으로 나온지 3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스틸라인 대원들은 묵묵히 먹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맛없는 통조림을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보려 갖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어떤 첨가물을 넣더라도 해물비빔소스의 강한 향에 묻히곤 했다.

그간 맛없는 군대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왔던 수십년짬의 브라우니마저 포기할 정도니 말을 다한 것이었다. 슬슬 식사가 부실해져서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준이었지만 여전히 지휘관들에게서는 문제시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간부식당에만 다른 음식이 나오고 있다는 말이 들리자 브라우니들은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쿠데타임다! 이 불평등한 사회를 격파해야 함다!”

한 브라우니가 들고 일어섰다. 한손에 해물비빔소스를 든 브라우니는 통조림을 바닥에 던지며 외쳤다.

“우리는 해물비빔소스를 거부함다!”

그 말에 다른 브라우니들도 동참했다.

“노 모어 해빔소임다!”

“해빔소가 없는 세상을 위해!”

브라우니들은 발을 굴리며 외쳤다. 그 진동은 오르카호 전체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뒤늦게 출동한 켈베로스들이 브라우니들의 시위를 간신히 저지했지만 그 사건은 단순히 일부 브라우니의 반항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의 쿠데타가 실패한 건지 암까?”

오르카호의 숨겨진 방중 하나, 몇 명의 스틸라인 대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각자 몸 어딘가에 붕대를 만 그들은 실패한 쿠데타의 반성회를 하고 있었다.

“무기임다. 우리에게는 무기가 부족했슴다.”

브라우니 AWE432은 주먹으로 땅을 치며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게는 준비가 필요함다. 지난번처럼 충동적으로 저지른다면 다시 저 고위간부들의 개들에게 제압당할 검다. 쿠데타는 계획적이어야 함다.”

“만일 함교를 우리가 점령한다면? 그러면 간부들도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검다.”

브라우니 FOS2354의 말에 브라우니 23I248은 좋은 제안을 했다.

“말도 안되는 소림다. 우리의 힘으로는 지휘관급 간부들이 많은 함교를 확보할 수 없슴다.”

브라우니 E238AQ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간부들은 밤에는 함교에 최소인원을 두고 다 잠자러 가지 않슴까. 그리고 그 최소인원들 정하는 것은 행정브라우니들의 일임다. 만일 함교에 쿠데타에 찬동하는 인원들로 배치한다면 함교를 점령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겠슴까?”

브라우니 FOS2354의 말에 다른 브라우니들은 환호했다. 이제 해물비빔소스가 없는 날이 머지 않았다.


“주인님, 지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령관을 콘스탄챠가 깨운 것은 한밤중의 일이었다. 펜리르와 밤을 보내고 잠에 든지 얼마 되지 않았던 사령관은 아쉬움을 안고 눈을 떴다.

“무슨 일인데. 철충이 공격한 거야?”

“아니요. 그보다 심각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사령관은 몸을 일으켰다. 옷을 입지 않은 사령관의 옆에는 역시 마찬가지로 옷을 입지 않은 펜리르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아니, 원래 저런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펜리르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일단 저를 따라오시죠. 가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간단히 옷을 걸친 사령관은 콘스탄챠를 따라갔다.

“브라우니 몇이 함교를 점령했습니다.”

“그래봐야 휴가를 요구하거나 그런 거겠지. 들어줘. 대신에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따끔하게 이야기해주고.”

“그게…”

콘스탄챠가 얼버무리려는 사이, 함내 방송이 울렸다.

-오르카호의 식단의 자유를 보장하지 말임다 모임의 브라우니 FOS2354임다! 오르카호 함내의 모든 지휘관을 듣지 말임다! 현시간부로 우리들 브라우니는 더 이상 해물비빔소스를 먹지 않을 것을 결의함다! 그리고 사령관님은 우리에게 해물비빔소스를 주지 않을 것을 보장하지 말임다!

“이번에는 또 뭐야…”

사령관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함교로 향했다.

“각하, 오셨습니까.”

함교의 바깥은 대치상태였다. 함교를 점령하지 않은 브라우니들은 마리의 지휘에 따라 무장을 하고 함교를 조준하고 있었다.

“잠깐, 마리. 정말로 제압할 생각은 없는 거지?”

브라우니의 무장에는 전부 실탄이 장전되어있었다.

“이런 비상사태에 철충이라도 공격한다면 우리는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없애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아니아니, 이런 건 대화로 해야 하는 거야. 브라우니 전원, 무장을 해제해. 일단 브라우니들의 말을 듣자고. 확성기 줘봐.”

사령관은 브라우니들을 지휘하던 레드후드에게 확성기를 받았다.

“아아, 브라우니들 들리는가?”

-잘 안들림다!

함내 방송이 울렸다. 사령관은 확성기를 조작했지만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위이잉 하는 사이렌 소리만 울렸다.

-뭐임까? 비상임까?

함내 방송에서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령관의 확성기를 받아가 사이렌을 끈 레드후드는 수화기를 사령관에게 넘겨주었다.

“함교와 연결되는 인터폰입니다. 이것을 쓰십시오.”

“아아, 사령관이다. 브라우니 들려?”

-들림다!

어째 대답은 인터폰이 아닌 함내 방송으로 전해졌지만 사령관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원하는 것이 해물비빔소스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만 해물비빔소스는 오르카호 전원이 10년은 먹을 양이야. 많긴 하지만 이걸로 밥을 먹는다면 10년동안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인원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삼안 영업소가 이걸 화폐로 받지 않는다는 게 유감이지만.”

-사령관님은 매일같이 해물비빔소스를 먹어야 하는 우리들의 심정을 모름다! 사령관님도 해물비빔소스를 먹어봐야 이걸 먹어야 할 지 아니면 바다의 방사능폐기물 드럼위에 버려야 할 지 알 검다!

“하지만 나도 매일같이 해물 비빔 소스에 밥을 비벼먹고 있어. 너희들 심정을 모르는 게 아냐.”

-정말임까?

사령관의 말에 브라우니는 조금 안정되는 것 같이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사령관도 자신들과 함께 해물비빔소스를 먹으며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투정을 부리는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니까.

“그래. 매일같이 소완이 만들어준 해물 비빔 소스를 먹고 있다고.”

사령관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령관은 뭐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경을 보는 마리는 한숨을 쉬었다.

-사령관님. 혹시 해빔소에 어떤 해물이 들어감까?

“그야 전복이랑 복어, 가리비, 한치? 이런 것들?”

-현시간부로 함교는 외부와의 대화를 차단함다! 사령관님이든 지휘관님이든 우리가 원하는 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일절 대화를 하지 않을 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함내 방송이 끊겼다.

“주인님, 브라우니들이 먹는 해물비빔소스는 통조림의 것을 말하는 거에요. 주인님이 드시는 생물로 만든 해물 비빔 소스와는 다른 거에요. 보시면 알겠지만 띄어쓰기의 위치가 달라요.”

“정말이네.”

사령관은 스크롤을 올려보고는 말했다.

“하지만 그 많은 양의 통조림을 버릴 수도 없고 말야. 그정도로 우리가 여유로운 것은 아니잖아. 결국은 먹어야 한다고.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맛없는 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거다!”

어느새 일어난 펜리르는 사령관의 뒤에 앉아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펜리르는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있었다. 먼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착한 왕이 입고 다닐 옷이었다. 호구인지 현명한 왕인지 매번 평이 갈리는 그 왕 말이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해물비빔소스를 맛있게 먹을 방법을 만들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야!”

사령관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마리는 불만이라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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