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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바닷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득 소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이었다.

 

 최후의 인류, 바이오로이드 저항군의 최고 통수권자, 오르카 호의 사령관. 작달막한 몸에 맞지 않는 거추장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수식들이었지만, 소년은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다. 범인이었다면 매몰되거나 꺾였을 그 상황에서 오히려 유례없는 전공을 세우며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고 기적을 일구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기적과도 같은 승전보들은 어디까지나 ‘그것들’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은 그저 거듭된 행운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언뜻 견실하게 기반을 다지며 정도를 달리고 있는 저항군의 행보는, 사실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작은 변덕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흩어질 수 있다는 것을.

 

 소년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재 지구 인프라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규소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벌레들 따위가 아니었다.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자 우리의 적들조차도 두려워하는 자.

 

 저항군은 그들을 철충과 같은 오르카 호의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별의 아이’라고 명명했다.

 

 소년은 자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한마디가 곧 그것들을 규정하게 되면서 오르카 호의 대적자로 세워지는 광경을 그저 비웃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적이라는 것은 본래 서로에게 적의를 가져야 성립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그것들 앞에서 소년이 일말의 적의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그들에게 이 작은 살덩이들은 티끌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당장 그들의 미미한 넘실거림조차도 인류는 견디지 못하고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았고, 소년 역시 호수에 떨어진 나비마냥 그 파문에 잠기지 않게 도망다닐 뿐이었다.

 

 소년은 이 함에서 누구보다도 그 존재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망적인 전황에서도 자신만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을 그녀들을 좌절시키지 않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소년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소년은 이 함에서 누구보다도 그 존재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무지하다. 소년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네스트와의 결전에서 모습을 드러낸 작디작은 편린에 대한 것과, 그들이 이상한 파장을 내뿜는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소년은 느끼고 있다. 자신의 머릿속 깊은 곳에 똬리 틀고 있는 방대한 지식을. 정신의 끈이 조금만 느슨해진다면 그 지식들은 저주로 변모하여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터뜨릴 기세로 흘러나와 공포의 무저갱 속으로 끌고들어갈 것이다. 악몽 속에서 언뜻 엿본 것만으로도 소년은 이미 한번 비싼 대가를 치렀다. 하루를 꼬박 깨어나지 못하고 나서야, 소년은 별의 아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이성은 그 지식을 깨닫기를 거부하고 있었고, 생물체로서의 본능도 흉물스러운 것에 뚜껑을 덮듯 그것들을 들추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둡고 깊은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소년은 생각하게 된다.

 

 저 바닷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

 

 

 “각하, 각하!”

 

 마리는 눈을 뒤집으며 악문 이빨 사이로 거품을 뿜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사령관의 몸을 다급하게 흔들었다. 팔걸이를 움켜쥔 얇은 손가락은 어찌나 힘을 주고 있는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치뜬 눈알의 검은자위는 점점 위쪽으로 밀려올라가고 있었다. 

 

 “꺼르륵, 꺼륵.”

 

 목구멍에서 소름끼치는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렸고, 마리는 덩달아 나가려는 정신을 다잡고 재빨리 의무실에 데려가기 위해 사령관의 작은 몸을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파지지지직!

 

 마리의 눈에 푸른 전광이 일며 몸이 두둥실 떠올랐고, 작은 함장실을 후폭풍으로 뒤집어놓으며 순식간에 문 앞으로 이동했다. 문을 걷어차 부수려던 찰나, 무언가가 마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각…… 하?”

 

 사령관은 다행히도 의식이 돌아왔는지, 푸르죽죽한 안색으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마리를 만류하고 있었다. 마리는 바들바들 떨며 자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오는 사령관을 안아주며 천천히 내려앉았다. 

 

 한동안 겁먹은 아기새마냥 품 안에서 오들오들 떠는 사령관의 뒷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고있자, 이빨 사이로 새는 불규칙한 신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이윽고 사령관은 한결 나은 안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잠긴 채였다.

 

 “나, 나 괜찮으니까…… 의무실 안 가도 돼.”

 “안 됩니다. 각하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단호하게 문을 열고 나가려던 마리의 목 뒤에, 얇은 팔이 휘감겨졌다.

 

 “마리…… 그냥 침실로 가줘…….”

 

 마리의 몸이 우뚝, 하고 멈췄다.

 

 마리는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작은 소년의 눈동자 속에서 위태위태하게 도사리는 무언가를 보았다. 검고 깊으면서 끝을 모를 그 질척질척함. 대멸종을 겪은 레프리콘 모델에게서도, 연결체를 마주하고 난도질당하기 직전의 브라우니들에게도 엿보이는 그것.

 

 그 감정은 공포였다.

 

 마리는 그토록 늠름하고 흔들림 없던 각하께서 지금까지 모든 부담을 홀로 숨기고 견뎌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부터 쌓여왔을지 모르는 이 어둠 앞에서 끝끝내 소년은 오늘 무너지고 말았다. 아마 시간문제였겠지. 하지만, 각하께서 이 지경이 되실 때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맹렬한 자기혐오가 밀려오며 마리의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부탁이니까…… 제발…….”

 

 자신의 목아래에 얼굴을 부벼오며 칭얼대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소년을 보며 마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자신을 다잡았다. 지금 당장 각하의 바람을 실현해 드리면 각하께서는 잠시간의 위안을 얻으시겠지만, 각하를 의무실로 모셔드리면 의료진들이 각하의 마음 속의 고통을 찾아내어 편하게 해드릴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군인이자 부하라면 당연히 망설이지 않고 당장 문을 나서서 각하를 의무실로 모셔가야 했다.

 

 ‘하지만…….’

 

 마리는 자신의 발이 한사코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쇄골에 와 닿는 보드라운 입술의 감촉, 목을 간지럽히며 흔들릴 때마다 매혹적인 향기를 뿜어내는 머리칼, 자신의 옷깃을 꼬옥 쥐고 있는 작달막한 손, 가슴께에 새근새근 내뿜고 있는 달콤한 숨결…….

 

 ‘고작 내 추잡한 육욕을 채우겠다고 각하를…….’

 

 하지만 마리의 발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리의 은밀한 욕망이 들러붙듯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고작이라고? 이번 한 번으로 각하를 평생 나만 바라보도록 할 수 있다.’

 ‘아니, 그런 관계가 제대로 된 관계일 리가 없어. 약해진 각하를 이용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각하의 마음을 쟁취할 것이다.’

 ‘당장 손을 뻗으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네가 항상 꿈꿔오던 것이 아니었나? 조그마한 새를 내 감정으로 물들이고 내 취향으로 키워가는 것…….’

 ‘그만!’

 

 그리고 그 모든 고민들은, 소년의 간단한 한마디 말로 어그러졌다.

 

 “마리, 명령이야……. 날 원하는 대로 해도 좋아.”

 

 마리를 부드럽게 배려해주면서도 모든 갈등을 무색하게 한 그 말을 듣고 마리가 처음 느낀 것은, 혐오스럽게도 안도감이었다. 욕구를 채울 수 있다는 상스러운 기쁨인지, 그런 것을 기뻐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환멸인지, 마리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이 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미주가 있었다. 마리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각하……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