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스의 악몽과 이어지는 내용인데, 리제의 악몽만 읽어도 내용 이해 가능함

[리리스의 악몽] https://arca.live/b/lastorigin/9753634






시저스 리제의 하루는 그녀의 주인, 사령관을 더러운 해충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해충들을 박멸하는데는 정원 가위만한게 없지, 리제는 잘 관리되어 날카로운 날을 가진 거대한 가위를 들고 사령관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한달음에 도착한 사령관실의 문은 꼭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큼 작게 열려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리제는 기뻐하며 - 주인님이 날 위해 열어 두신거야!- 열린 문의 틈으로 날듯이 뛰어들어갔다.


철제 잠수함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아늑하게 꾸며진, 늘 보아 익숙한 사령관실의 책상 위에는 사랑하는 그녀의 주인님이 있었다.


“주인님!!제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던 탓일까, 사령관은 리제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서류 작업에 열중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리제는 큰 소리로 주인님을 부르는 대신 그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살금 살금 사령관실의 소파로 가 앉았다.


사령관의 향이 가득 찬 방 안에서 사령관과 단 둘이라니..모든 것이 완벽했다.

리제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행복함을 느끼며 콧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자신보다 훨씬 더 행복한 표정으로 책상 밑에서 고개를 내미는 리리스를 보고 리제는 아연했다. 불과 5분전까지 느꼈던 행복감은 순식간에 그 크기만큼의 분노로 치환되었다.


“이 더러운 해추우우웅!” 


내지른 비명보다도 빠르게 거대한 가위를 빼든 리제는 ‘더러운 해충’을 섬멸하기 위해 잘 손질된 가위 날을 리리스에게 휘둘렀다. 서걱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가위 날이 맞물렸다. 


“아?”


리제는 순간 당황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리리스는 그녀보다 강해서, 그녀의 가위는 맞물리는 일 없이 저 증오스러운 해충의 보호막에 막히곤 했다. 

뒤를 돌아보자 사령관과 웃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리리스가 보인다.

너 따위가 들어갈 틈은 없다는 듯 한 그 화기애애한 광경에 리제는 당황을 잊고 끊겼던 분노를 토해냈다.


”해충!” 


횡으로 휘두른 거대한 가위날이 리리스의 얼굴을 갈랐다. 


"해..충?" 


하지만 이번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리제는 당황한 표정으로 리리스와 자신의 가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위를 잡는 묵직한 느낌과 가위가 공기를 가르고 내는 바람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었다. 

그런데도 아무일도 없는 듯한 저 모습이라니? 


사령관이 리리스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자 교태롭게 웃은 리리스가 일어나 방문을 살포시 닫았다. 밀폐된 방 안, 서로 호감을 가진 남녀 둘 사이에 열락이 피어나는 건 순간이었다. 리제는 끔찍한 기분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싫어…! 악!!아악!!!”


리제는 비명을 지르며 사령관에게 엉겨붙어 있는 리리스를 향해 가위를 휘둘렀다. 어찌나 강하게 휘둘렀는지 살가죽이 벗겨져 손에서 피가 흘러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가위는 부질없이 리리스와 사령관의 몸을 통과해 지나갈 뿐이였다. 


“죽어!!죽어버려!”


하지만 무수히 쏟아지는 칼날은 모두 두 사람을 통과해 나갔다. 그들은 마치 리제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웃고, 서로의 몸을 탐하며 쾌락의 꽃을 피워나갔다.


“후후..아아..아아아아아아!!!!”


리제는 괴로워하며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지나치게 잘 발달된 바이오로이드의 감각은 촉,촉 하고 젖은 입술이 비벼지는 소리, 쾌락에 빠진 남녀의 달뜬 숨소리 하나하나 까지도 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리제는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가위 날로 자신의 귀를 후벼 팠다 .

하지만 가위 날은 부드럽게 그녀의 몸을 통과할 뿐 이였다.


쓸모없어진 가위를 내던진 리제는 손으로 귀를 후벼 팠다.

하지만 절망적이게도 그녀의 손 역시 가위 날과 다름없이 그녀의 몸에 어떠한 물리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아..싫어!! 싫어!!”


눈을 뜨면, 더러운 해충과 사랑하는 주인님이 몸을 섞는 것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그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 눈을 뜬 것과 다를 것이 없게 되어 버린다.

소리와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면 지나치게 예민해진 감각 탓에 뜨거운 열락의 공기가 느껴지고, 자신의 것이 아닌 살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저 해충을 박멸할 수도 ,자신의 코를, 귀를 눈을 도려낼 수도 없다.

리제는 문자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은 탈출이였다. 


리제는 날개를 펼치고 사령관실의 방문으로 힘차게 날아갔다.하지만 굳게 잠긴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에 몸을 부딫히자 몸이 고무공처럼 튀어나갔다.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대로 였다.

리제는 사나운 맹수처럼 울부짖으며 벽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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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다프네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눈에 들어온 것은 살짝 파인 숙소의 벽과 가위를 든 채로 섬뜩하게 서 있는 언니의 모습이었다. 


"..리제?"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것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뭐라 말하기도 전에 부수듯 방문을 연 리제가 문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드물게 크게 떠진 리제의 눈에서 붉고 섬뜩한 안광이 흘렀다. 


"아하하하하!!! 주인님! 제가 가요!! 더러운 해충 들을 박멸하러 리제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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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오늘은 대체 뭔 날인 것인가? 사령관은 언제부턴가 생긴 만성 두통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오늘밤만 두번째로 부서진 문을 쳐다보았다. 하하, 이거 포츈이 꽤나 투덜거리겠는걸


‘사령관, 사령관님 방문 고치는건 힘든 일이거든? 이 누나를 위해 조금더 조심해줬으면 좋겠거든?’


사령관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포츈의 목소리를 듣고 이마를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런 사령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숴진 틈 사이로 리제가 빨간 안광을 번뜩이며 날아들었다. 


“더러운 해충!!주인님에게서 떨어져!!”


그녀의 예상대로 요망한 고양이년인 리리스는 자신만의 주인님과 같이 있었다. 

침대에서 허겁지겁 일어난 리리스에게 격노한 리제가 달려든 것은 순간, 하지만 리제의 가위는 리리스의 몸을 조각내지 못했다. 


“큿..이..헤츙년이!!” 


[지이잉]


리리스의 푸른 방어막에 막힌 가위가 끼이이 하고 높게 울었다. 어쩐지 안심이 되는 그 감촉에 리제는 서둘러 가위날을 거두었다. 리리스 역시 무언가 안심한 듯, 긴장을 풀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흐으응, 주인님이 계신곳에서 행패라니, 이레서야 누가 해충인지 모르겠네요.”


평소처럼 도도하고 건방지게 말한 리리스였지만 어쩐 일인지 리제는 화를 내지 않고 기묘한 표정으로 리리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뭐야?"


평소라면 죽어라! 해충!이라며 달려들었을 리제가 조용하자 리리스는 의문을 표하며 얼굴을 더듬었다. 


“..!”


울며 잔 탓에 얼굴이 부은 것을 깨달은 리리스의 얼굴이 빨개졌다. 리리스가 던진 베개를 시작으로 물건들이 날아다니며 성대한 싸움의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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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한숨을 내쉬며 고이 잠든 두 사람, 아니 바이오로이드들을 내려다 보았다. 리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경호 바이오로이드로서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지닌 리리스까지 악몽을 꿧다는 이유 하나로 찾아온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이 모든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누가 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대체 이 오르카호에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답답함에 던진 질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이 죄 깨버린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고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이제 새벽 4시 3분, 잠들기도 깨어있기도 애매한 시간 ,깊은 한숨을 두어번 내쉰 그는 내일 있을 지휘관 회의를 위해 사방으로 흩어진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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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시리즈 맘에 들어서 한 4~5편 까지만 뇌절해보고 싶다... 

괜찮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