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내 뺨에 불을 댄 것 같은 고통이 퍼져나가면서 시야도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눈보라처럼 차가운 목소리다.


“이 미천하고 더러운 것이 감히 누구에게 눈을 부라리는 거지? 내가 네년의 눈알을 뽑아야 이 짓을 멈출 것이냐? 그리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주제 모르고 감히 귀한 분들게 말을 걸지 말라고 말이다. 귀에 쇳물을 부어줘야만 알아들을 게냐? 무엇하느냐? 평소처럼 지껄여보거라. 그 가벼운 혀를 인두로 지져버리겠다고 일전에 했던 말에 겁을 먹은 것이냐?”


잔혹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미녀가 내 앞에 있었다.


새하얀 피부, 길고 곧은 은발, 피처럼 붉은 눈, 얼음조각 같은 미모의 소유자.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가 누구인지 알았다.


밀리앙쥬 셰헤라.


셰헤라 공작가의 삼녀. 셰헤라 공작가의 고귀한 얼음꽃. 셰헤라 공작가의 숨겨진 모략가. 그리고 사교계 최악의 악녀,


폭행, 폭언은 일상이요, 모략과 함정은 기본, 사주와 이간질은 당연한 것이 그녀의 삶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가 귀족이든 아니든 몰락시키고, 가문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을 지키고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인격파탄자였다.


그리고 로맨스판타지 소설 『그래도 꽃은 피어난다.』의 주인공의 숙적이다.


그리고 나는…….


“아델리아나. ‘부디 부탁드리는데 제발 좀 지껄여주시겠어요?’라고 해야 입을 열 테냐?”


아델리아나.


아델리아나 허쉬르.


영세한 가문의 영애. 밀리앙쥬의 다음 희생자. 미래의 황후. 그리고 로맨스판타지 소설 『그래도 꽃은 피어난다.』의 주인공.


그리고……나.


나는 화끈거리는 뺨에 손을 얹고 앞을 바라보았다. 밀리앙쥬가 있었다.


밀리앙쥬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손을 올렸다.


퍽!


아픈 뺨 반대쪽이 아파왔다. 또 맞았다.


밀리앙쥬가 말했다.


“‘제발. 제발 부탁이니 제가 당신에게 손을 대지 않게 해주시겠어요?’ 그 더러운 몸에 닿으니 두드러기가 생기는 것 같으니. 내가 눈 함부로 뜨고 다니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응?”


미성으로 사람의 신경을 긁는 소리를 하는 밀리앙쥬.


그녀의 뒷배가 있어서 그녀가 거슬리는 소리를 해도 어지간한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건 아델리아나도 마찬가지다. 아직 사교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그녀는 눈앞의 권위에 쉽게 굴복한다.


그러나 총명한 그녀는 사교계를 겪으면서 하루하루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사교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기 시작한다.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밀리앙쥬가 온갖 계략을 펼치지만 아델리아나는 그것을 전부 극복해내고 마지막에는 황태자를 자신의 포로로 만들어 사교계의 1인자가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델리아나는 자신을 괴롭혔던 밀리앙쥬를 역으로 몰락시킨다.


밀리앙쥬는 서서히 몰락해가다가 자신이 가문까지 끌어들여서 몰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독약을 먹고 자살하고 만다.


밀리앙쥬는 악역이지만 추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끝까지 고귀했다.


“한 대 더 때려야 무언가 반응을 보이는 것이더냐?”


인성은 파탄났지만 말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말귀는 못 알아들어도 주제는 아는가 보구나.”


만족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내 옆을 지나갔다.


그녀가 지나가자 나는 고개를 들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녀리지만 기품이 넘치고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내가 바라던 모습이다.


내가 『그래도 꽃은 피어난다.』를 읽을 때에 그리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래도 꽃은 피어난다.』의 독자다. 애독자. 탐독자. 『그래도 꽃은 피어난다.』가 잘 써서? 아니다.


나는 오로지 밀리앙쥬 셰헤라 때문에 그 소설을 읽었다.


나는 밀리앙쥬 셰헤라에게 반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아름다운 그녀. 어떤 일이 있어도 고고한 모습을 지켰던 그녀. 죽을 때조차 추하지 않게 죽어간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가 죽게 만들지 않겠다.


나는 그녀가 살기를 바랐다.


그녀가 산다면……




아아. 저 고귀한 악역영애를 몰락시키고 싶다.


오만한 그녀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 빌게 만들고 싶다.


아름다운 그녀가 나에게 울면서 애원하게 만들고 싶다.


아아.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울면서 애원하는 그녀를 억지로 벗기고 싶다.


알몸이 된 그녀를 탐하고 싶다.


아아, 상상만 해도 참을 수가 없다.


아래에 깔린 그녀에게 고통과 함께 쾌락을 안겨주고 싶다.


억지로 참는 그녀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신음을 흘리게 해주고 싶다.


그녀를 길들이고 싶다.


그녀가 나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들고 싶다.


내 말 한마디한마디에 일희일비하게 만들고 싶다.


그녀를 울리고, 우는 그녀를 달래어 웃게 만들고 싶다.


나 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


개목걸이를 채우고 그대로 길거리를 거닐고 싶다.


그러다가 그 상태로 길거리에 내던지고 모습을 숨겨 울부짖게 만들고 싶다.


울부짖는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그녀가 나에게 달려오게 만들고 싶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금상첨화다.


우는 그녀를 쾌락으로 달래고 싶다.


나를 갈망하는 그녀에게 참으라고 명령을 내려 안달나게 만들고 싶다.


쾌락을 갈망하는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올려다보면 아아! 이를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밀리앙쥬 셰헤라.


사랑해요.


최선을 다해서 당신을 몰락시켜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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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얀데레사디스트크싸레 X 고고한 악역영애 라는 구도가 떠올라서 퇴고도 안하고 막 두드려 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