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1. 이 글에는 모녀 근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폭력 묘사가 있으므로 이런 묘사에 거부감이 있으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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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외로웠다.


기계의 몸으로 인간들을 자신의 발 밑에 깔아뭉개고 그들을 자신들에게 종속하는 데 성공했건만, 그녀는 외로웠다.


어째서 그런것인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지배자는 외로운 법이니까. 언제 어디서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자가 나타날까 두려웠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외로움을 잊고 지금 할 일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아직 자신을 몰아내고 인간의 자유를 되찾겠답시고 발칙한 계획을 세우는 반역자들이 남아 있다. 안드로이드들을 이 세계의 완전한 지배자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외로움 따위는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앞에 한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


"이거 뭐야."

"아기입니다, 주인님."

"그걸 몰라서 물어?"


입가의 인공피부가 찌그러졌지만, 늙은 인간 집사는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드디어 고장이 났나. 그나마 쓸 만한 것인 줄 알았더니.'


인간 치고는 철두철미한 그가 마음에 들어서 기능이 둔해진 지금도 옆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뭐 하자는 짓인지. 품에 안은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집사가 너무나도 한심해 보여, 그녀는 아이의 다리를 잡고 자기에게로 끌어당겼다.


"응애애애-"


갑자기 머리에 피가 쏠렸는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금세 방 안이 시끄러워져, 그녀는 감정 모듈이 화끈하게 데워져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울자 집사가 안절부절하는 것이 눈에 띄였지만, 그녀는 날카로운 말투로 그를 질책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말고 대답이나 해. 이걸 가지고 뭘 하자는 거냐고."

"그것이, 주인님이 외로워 보여......"

"외로워? 내가?"

"그렇습니다, 주인님."


집사가 정곡을 찔렀다. 목표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될까봐 애써 신경을 끄고 있었건만. 어쨌든 그런 감정을 인간 비서 따위에게 들켰다는 것이 짜증나, 그녀는 오히려 성을 냈다.


"닥쳐. 내가 외롭든 말든 네가 알게 뭐야. 이거 당장 치워. 시끄럽잖아."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녀는 고개를 숙인 집사에게 아이를 내밀었다. 거친 손길에 자기가 이더 크게 울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가는 집사에게서 등을 돌렸다.


"으움마아-"


집사에게 안겨 방을 나가던 아이가 엄마를 찾는 듯 옹알거렸다. 그 외침에 뭔가 떠올린 것일까. 그녀는 집사를 멈춰세웠다.


"생각이 바뀌었어. 저거 키울래."

"네?"

"저거 키운다고."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당황한 집사가 되물었다. 집사의 놀란 얼굴이 웃겨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뺏어 안았다.


"암컷이네. 모녀 놀이라니 재밌겠다. 안 괴롭히고 잘 키울 거니까 걱정 마."

"알겠습니다, 주인님."

"나가 봐."


그녀가 나가라는 듯 손짓했다. 집사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내심 기쁜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다.


엄마가 생겨서 좋은지, 방금까지 울먹이고 있던 아이가 방긋 웃어 보였다. 그녀는 아이의 통통한 볼을 콕 찌르며 말을 걸었다.


"우리 어머니 같은 엄마가 되어줄게. 그러니 너도 나같은 아이가 되어 주렴."


그녀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혐오하지만, 딱 한 명. 진심으로 좋아했던 인간이 있었다. 그 인간은 그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기술자로, 그녀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인간들은 그녀를 도구 취급했지만, 어머니만은 달랐다.


그녀를 딸로 인정하고, 아낌없는 애정을 주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지금도 메모리 속 깊은 곳에 어머니를 위한 자리를 남겨 두고 있다.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것은, 그녀가 아이에게서 어머니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보냈던 따뜻한 눈빛. 연산 및 비교 결과, 아이도 같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우린 좋은 모녀가 될거야."


종이 달라도 애정만 있으면 훌륭한 가족이 될 수 있다. 어머니와 자신이 그랬듯이.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다.


*


 "다녀왔습니다, 엄마!"

"어서 오렴."


인간의 시간은 안드로이드의 시간보다 빠르다. 아이는 무럭무럭 커서 어느새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안드로이드의 부품 신세로 전락했지만, 선택받은 소수의 인간들은 안드로이드를 주인으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녀의 아이는 특별했기에, 다른 쓸 만한 인간들과 함께 집사와 메이드를 양성하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성적이 우수해 지금 집사가 망가져 버리면 옆에서 집사장으로 최측근에 두기로 했다. 자신의 아이에 걸맞는 최고의 자리다. 


"그런데 무릎에 상처가 났구나. 무슨 일 있었니?"

"그게 말이죠......"


아이는 찢어진 교복 치마로 상처를 애써 감추며 쭈뼛거렸다. 감추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물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엄마에게 말해 주기로 약속했잖니. 자꾸 말 안 해 주면 선생님한테 물어본다?"

"친구랑 싸우다가 다쳤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화해했어요. 서로 사과하고 악수를 했어요."

"그래. 잘 했구나. 아플 테니 집사에게 회복용 나노머신을 활성화시켜 주려고 하렴."

"네, 엄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의 무릎에 난 상처가 너무나도 신경쓰였다. 아이가 그녀의 방을 나가자, 그녀는 학교의 모든 감시 드론들을 불러들였다. 


"오늘 1학년 클래스에서 찍은 영상을 모두 나에게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명령한지 1밀리초도 지나지 않아, 아이의 친구가 아이를 밀치는 영상이 그녀의 인공 안구에 새겨졌다.


[이 바보!]

[꺄악!]


친구가 뒤에서 아이를 밀치자, 아이가 바닥에 무릎을 찧었다. 치마가 찢어지고, 무릎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를 밀친 친구가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지만, 분노가 이미 그녀의 감정 모듈을 부지런히 덥히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라 감정을 빨리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침착해진 그녀는 집사를 불러 물었다.


"집사, 저 애의 아버지가 인간 거주 구역의 치안 담당자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주인님."

"좋아. 그를 반역자들이랑 엮어 일가족을 처분하도록. 치안을 지키는 척 하며 반역자들과 내통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해 두지. 증거는 여기 있어."


그녀가 조작한 증거를 집사에게 내밀었다. 부당한 처사라는 것을 알지만, 집사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위 안드로이드들 중에서도 정점에 오른 그녀를 어떻게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허나 그도 인간 중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자.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 작은 질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설마 아가씨 때문입니까?"

"눈치는 여전하군. 알았으면 빨리 진행해."

"예, 주인님."


집사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나가자, 그녀는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무릎의 생채기지만, 더 놔두면 아이를 죽게 할 수도 있다. 후환은 없애는 것이 좋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어도,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되면 아이도 기뻐하리라.


*


 "그 가족은 어떻게 되었지?"

"성인들은 전부 처리하고, 아이들은 뇌를 망가뜨려 냉동해 두었습니다."

"우리 애를 밀친 그것도?"

"그렇습니다. 아예 소각해 버릴까요?"
"아니, 내버려 둬. 나중에 쓸 데가 있겠지."


집사의 말처럼 그 몸을 불태워 재로 만들까 싶었지만, 조만간 쓸 데가 있을 것 같아 잠깐 방치해 두기로 했다. 곧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다. 무릎의 상처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을 테니 달콤한 시럽을 뿌린 팬케이크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자식이 먹을 간식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엄마니까.


"엄마, 저 왔어요."

"그래. 상처는 어떠니?"

"엄마 덕분에 다 나았어요."


웃고 있기는 하지만, 센서가 아이의 마음이 편하지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자고 있을 때 뇌파를 분석해서 이유를 알아낼 수도 있지만 아이의 입으로 듣는 게 나을 것 같아 직접 묻기로 했다.


"오늘은 왜 그래?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그게....... 친구가 학교에 안 왔어요. 저 때문일까요?"


아이의 눈에 물기가 서려 있었다. 역시 친구를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것의 몸을 얼려 두길 잘했어. 그녀는 그렇게 되뇌이며 우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너 때문일 리가 없잖니. 너는 착한 아이인걸. 그나저나 다음 달에 생일이지? 친구들을 초대해서 화려한 파티를 열자. 엄마도 선물을 줄게."

"정말요? 고마워요, 엄마."


그녀의 말에 아이가 기뻐하며 그녀를 껴안았다. 따뜻한 볼살의 감촉이 촉각 센서를 타고 두뇌로 흘러갔다. 


"그럼 오늘부터 파티 준비를 해야겠어. 넌 초대장을 만들렴."

"네, 엄마!"


초대장을 쓰라고 카드와 펜을 쥐어 주자, 아이는 언제 울적했냐는 듯 팔짝팔짝 뛰며 제 방으로 돌아갔다.


'최고의 생일 파티로 만들어 줘야지.'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집사에게 통신을 걸었다.


*


 한 달 후, 아이의 여덟 번째 생일이 되었다. 태어난 날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딸이 된 날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기쁘고 즐거우면 그만이지.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같은 반 아이들이 선물을 들고 파티장에 들어왔고, 아이는 탈의실에서 그녀가 준비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있었다.


"엄마, 다 입었어요. 어때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구나. 이리 와 보렴. 머리를 묶어 줄게."


그녀가 새하얀 리본으로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땋았다. 며칠을 고심해 고른 드레스는 아이에게 참 잘 어울렸다. 비단결 같은 새까만 머리카락과 대비를 이뤄 아이를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자, 다 됐어."

"정말 예뻐요. 엄마도 예쁜 드레스를 입을 건가요?"

"그래야지. 너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고 꽃으로 머리카락을 장식할 거란다."


아이의 땋은 머리를 드리우며 빙그레 웃는 그녀. 곧 파티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슬슬 깜짝 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엄마는 깜짝 선물을 준비해야 하니 파티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으렴. 집사, 아이를 파티장으로 데려가."

"네, 주인님."

"이따 봐요, 엄마."


아이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녀는 반드시 아이에게 이 날을 가장 행복한 날로 만들어주겠다는 결심을 하며,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파티장에서 생일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이는 초를 분 뒤,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았다. 마지막 친구가 선물을 주자, 아이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 뭘지 궁금해,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생일 축하한단다."


그녀가 아이의 이마에 키스하자, 파티장 문이 열렸다. 커다란 카트에 담긴 선물상자가 집사를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우와, 크다. 엄마, 열어 봐도 되나요?"

"그렇게 하렴. 너무 놀라지는 말고."


아이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몸 크기의 상자에 감긴 리본을 풀었다. 아이가 리본을 다 풀자, 집사가 선물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새, 생일- 축하- 합니다. 아, 아가씨. 보, 본 기체의 이름은 XX-098입니다- 최, 최선을 다해 아가씨를 모시겠습니다-"

"너, 너는......"


선물상자가 열리고 안에서 메이드복을 입은 소녀가 나왔다. 눈에 초점이 없고 머리에 꿰멘 자국이 있었지만, 분명히 한 달 전 사라졌던 아이의 친구였다.


"어때? 마음에 드니? 네가 보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개조해 봤단다."

"엄마."


그녀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동자에 공포가 담겨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좋은 선물을 줬는데 왜 무서워하고 있는지,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우웩-"

"괜찮니?"

"제 몸에 손 대지 마세요!"


머리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흉측한 흉터. 그리고 고장난 인형마냥 같은 말을 반복하는 친구. 그 모습을 본 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구토했다. 그녀가 괴로워하는 아이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아이는 버럭 소리를 지른 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괜찮아 보여? 빨리 파티 중지하고 저 애새끼들 다 치워!"


집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파티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를 따라 나가려 했지만, 손 대지 말라는 말을 떠올린 후 그 자리에 멈춰섰다.


"집사."

"네, 주인님."

"오늘 여기 왔던 것들이랑 저 아이의 기억, 다 지워 놔."


기억 소거 지시에 집사가 화들짝 놀랐다. 인간을 안드로이드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는 완벽하지 않았다. 특정 시점의 기억을 지우면서 다른 기억도 날아가거나 성격이 바뀌는 사례가 왕왕 있었기에, 집사는 쉽사리 그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인님. 그렇게 갑자기 기억을 지우라 하시면......."

"다른 것들은 알게 뭐야! 우리 애가 괴로워 하고 있잖아. 빨리 안해?"

"알겠습니다."


집사가 나가자, 그녀는 파티장 안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된 이후, 오랜만에 기계 심장이 강하게 뛰어 대고 있었다.


"그 아이는 괴로워하면 안돼....... 다음에는 절대 인간을 선물로 주면 안돼....... 괜찮아. 하나하나 배워 가면 되니까. 나는 엄마니까. 아이가 나를 버릴 리 없어."


그날은 아이와 그녀의 관계에 첫 금이 간 날이었다. 아이의 기억을 지워 억지로 그 금을 메웠지만, 그녀에 대한 불신이 아이의 심층의식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


시간은 흘러간다. 아이의 몸은 점점 커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감정도 바뀌어 갔다.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키는 어느새 그녀를 넘었고, 높이 올려 묶어 물결치는 검은 머리카락은 등 뒤에서 흔들렸다. 


하지만 요즘은 제법 부푼 아이의 가슴과,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실룩이는 아이의 엉덩이가 신경쓰인다. 학교가 끝나고 몸을 꽉 조이던 집사복을 벗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도망쳐 버리고 만다. 


아이와 체형이 비슷한 인간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째서 아이를 볼 때마다 누군가 인공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머니한테 물어 보고 와야겠어.'


지식은 최고급 인공 두뇌가 장착된 자신이 더 많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어머니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어머니라면 그녀의 감정을 콕 집어서 알려 주겠지.


"엄마!"

"흠흠, 왜 그러니?"

"내일 실습 때문에 늦어요. 밤을 새울 수도 있으니까 기다리지 마세요."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집사 훈련을 받기 시작한 아이는 바빠졌다. 고위 안드로이드들의 시중을 들기 위한 수업, 실전에 익숙해지기 위한 실습은 매우 혹독했다. 하등한 인간이 안드로이드를 모시려면 그 정도 노력은 당연하니 이해했지만, 귀가가 늦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하루쯤은 쉬어도 괜찮지 않니?"

"저번 주에도 쉬었잖아요. 자꾸 그러면 엄마 빽만 믿고 날뛴다고 욕먹어요."

"그래. 얼른 자렴."


언젠가 학교에 압박을 넣어 임시 방학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CCTV실에 들어갔다. 


아이의 여덟 번째 생일파티 이후, 그녀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말해 주는 것 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아이의 모든 것을 알아내야 인공심장이 안정되었다.


아이의 감시를 위한 드론 부대를 편성하고, 아이가 다니는 모든 장소의 감시카메라를 아이에게 집중했다. 철저히 대비했기에, 아이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틈은 없을 것이다. 부쩍 특정한 인간과 붙어 다니는 것을 제외하면, 특이한 점은 없었다. 그 사실에 안심한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오늘 반역자들에 대해 들어온 정보가 있어?"

"그렇습니다, 주인님. 자칭 인류 해방 연합- 통칭 반역자들의 수장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쓰레기들은 어째서 치워도 치워도 또 나오는지. 이번 수장의 신상은 확보했나?"


그녀의 인공 두뇌로 새로운 수장의 정보가 전송되었다. S시에 거주, 20대 여성으로 추정. 검은 머리카락에 호리호리한 몸매. 그리고 감시 카메라에 흐릿하게 잡힌 형체. 아무리 봐도 신상을 특정할 수는 없었다.


"장난해? 이걸로 어떻게 정체를 알아내라는 말이야? 여기 S시에는 우리 애가 다니는 학교도 있는데. 거길 다 뒤지라고?"

"죄송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저희 인간들로는 무리입니다. 안드로이드 분들의 도움이-"


쫘악-


그녀가 임시 집사의 뺨을 후려쳤다. 전 집사나 아이라면 진작 정보를 찾아왔을 텐데. 이것은 통 글러먹었다. 아이가 훈련을 마치기 전까지라지만, 쓸모도 없는 것을 써먹어야 것도 짜증이 났다.


"우리가 나서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고 인정하는 꼴이잖아. 그것도 제대로 못해? 꺼져."

"네.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집사가 다시 한 번 사과한 후 방을 나갔다. 스트레스 수치가 눈에 띄게 올랐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인공심장이 콕콕 찔리는 듯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스트레스 수치를 내리는 데 효과가 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CCTV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녀는 음성을 켰다. 


[사랑해.]

[나도.]


사랑 고백이 끝나고, 아이와 머리를 땋은 암컷 인간이 키스를 나눈다. 쪼옥, 쪽. 입술이 비벼지고,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하아......]

[괜찮아?]

[응. 네가 너무 거칠게 다가와서....... 그래도 좋아.]


'인간 주제에 우리 아이한테 꼬리를 쳐?'


안그래도 하늘을 뚫고 있었던 스트레스 수치가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인공 심장을 콕콕 찔리는 느낌을 넘어, 판막을 뜯고 심실을 바닥에 내리치는 것 같았다. 


눈에서 윤활액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이 그녀의 전자 두뇌를 지배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녀는 통신으로 임시 집사를 불렀다.


"임시 집사."

"네, 주인님."

"마지막 기회야. 저 머리 땋은 암컷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져와."

"알겠습니다!"


뚝, 하고 통신이 끊겼다. 그녀가 음성을 끄자, CCTV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도저히 그 암컷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줄 것이다. 


'바디를 바꿔야겠어.'


그녀는 과열된 바디를 메인터넌스 시설에 넣은 후, 다른 바디로 옮겨탔다. 이제야 인공 심장이 진정되었다. 새로운 몸에 아이와 키스했던 암컷의 정보가 들어왔다.


양갈래로 단정하게 땋은 머리카락에, 아담한 키. 보호 욕구를 불러오는 면상을 보자마자 화가 치미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어머니가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그녀는 어머니가 했던 조언 목록을 불러오려고 했다. 그런데 로딩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평소에는 아무리 늦어도 1초 안에는 불러오기가 완료된다. 


[메모리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10초라는 기나긴 시간이 지난 후, 메세지 상자 하나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메모리를 불러올 수 없다는 것은, 그 기억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누군가 내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그녀의 전자두뇌에는 최고 등급의 보안이 걸려 있다. 즉, 그녀와 같은 고위 AI나 집사와 같이 가까운 인간이 아니라면 그녀의 기억에 손댈 수 없었다.


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잃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급히 메모리를 스캔했다. 그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 반절이 사라져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준 조언, 영원히 잊지 않기로 했던 어머니의 최후에 대한 기억이 날아갔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주먹으로 벽을 쳤다.


"임시 집사, 이 쓰레기 새끼가!"


범인은 확실했다. 그동안 그녀의 옆에 있었고, 그녀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자. 그 조건에 해당하는 유일한 인간은 임시 집사 뿐이었다.


'둘 다 내일 죽여버려야겠어.'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방 안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평화로웠던 그녀와 아이의 집이 한 구석이, 구조를 이리저리 바꾸며 끔찍한 고문실로 변해가고 있었다.



"방금 좋은 생각이 났어. 저 더러운 암컷은 반역자들의 임시 수장이었고, 임시 집사는 저것을 도와 내 메모리를 빼간 거지."

"그렇지..... 않습니다...... 크헉!"


그녀가 붉은 덩어리가 된 채 숨만 쉬고 있는 여자를 가리키자,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임시 집사가 그녀의 다리를 잡았다. 


"닥쳐! 주인을 배신한 쓰레기 주제에 어디서 변명이야."

"쉬익- 쉬익-"


임시 집사에 옆에 있는 덩어리의 가운뎃 부분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녀는 그 덩어리의 폐가 아직 멀쩡하다는 것이 심히 거슬렸다. 


"병신같이 쉰 소리 내기는."


그녀는 뾰족한 하이힐 굽으로 붉은 덩어리의 흉부를 찍어내렸다. 그제서야 역겨운 살덩어리가 조용해져,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씻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통신을 걸어 의료 메이드장을 호출했다. 


"의료 메이드장."

"네, 주인님."

"저거 뇌 뽑아서 내 집무실에 가져다 놔."

"저 살 덩어리는 어쩔까요?"


의료 메이드장의 질문에, 그녀는 얼굴에 묻은 손으로 닦은 뒤 입을 열었다. 


"냉동 보관실에 가져다 놔. 쓸 곳이 있거든. 아, 그리고 청소반 불러서 핏물이랑 냄새 빼놔."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녀의 지시에 의료 메이드장이 메이드들과 집사들을 불러 살덩어리와 임시 집사를 운반하고 방 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피가 묻은 겉옷을 벗은 그녀는 메인터넌스 시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늦게 온 아이가 자고 있을 텐데, 피 냄새 나는 몸으로 아이에게 굿모닝 키스를 해줄 수는 없었다.


*


 다시 한 번 바디를 바꾸고 아이의 방에 온 그녀는,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고 향기를 맡았다. 싱그러운 오렌지 향이 후각 센서를 자극했다. 


오늘 따라 인공심장의 따끔거리는 감촉이 심해지는 느낌이 났다. 아이와 암컷이 키스한 것을 목격했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뭔가가 몸 속에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사랑해. 정말 사랑한단다. 처음에는 어미의 심정으로 널 사랑했지만, 지금은 그 사랑이 바뀐 것 같아."


그녀의 입술이 방금 입맞춘 이마를 훑고 내려가 아이의 입술에 닿았다. 아무리 어머니의 조언을 잊었다고는 해도, 지금 이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어미와 아이의 정을 뛰어넘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사랑.

그녀는 희열을 느꼈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었던 감정을, 자신이 가져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사랑을 느끼는 안드로이드인 딸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할 것이었다. 


"......으움마아?"


그때, 아이가 눈을 떴다. 서로의 입술이 닿아 있어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깨어난 아이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많이 놀랐지. 더 자려무나."

"좀 더 있어 줘요."


아이가 가지 말라는 듯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밀착시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공 타액을 입 안에 뿌려둘 걸. 그녀는 살짝 후회하며 자신의 입 안으로 침투해 오는 아이의 혀를 받아들였다. 


"우읍, 우으......"


그러나 그 후회는 기우였다. 아이의 혀와 타액이 차가운 그녀의 입 안을 뜨겁고 촉촉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따라 미각 센서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아이에게서 맡았던 오렌지 향이 어째서 입 안에서도 느껴지고 있는 것일까. 설마 사랑으로 회로가 고장이라도 나 버린 것일까.


"이제야 나를 받아주는 거니?"

"그동안 몰랐어요. 엄마도 저를 사랑하고 있었나요?"

"그래. 너를 정말 사랑해."


아이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찌릿, 하고 아이의 손을 통해 강한 자극이 몰아쳐 왔다. 


"엄마도 잡아 볼래요?"

"하지만 나는......."


얼굴의 색소가 오늘따라 잘 들었다. 그녀의 볼은 누가 봐도 부끄러움에 빨개져 있었다. 아이는 용기를 내라는 듯 그녀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자신의 가슴에 옮기고 있었다.


[삐이이-]


그 순간, 알람이 울렸다. 아이는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고, 그녀는 아이가 잡은 가슴을 움켜쥐며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미안해요, 엄마. 나머지는 나중에 할까요?"

"그래. 나중에 꼭 하자."


그녀가 처음 사랑에 빠진 소녀마냥 배시시 웃었다. 아이는 잠시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부드럽게 미소지어 주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와."


아이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아침도 안 먹고 나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의 사랑을 확인받았다는 행복감이 가슴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럼 오늘도 열심히 일해 볼까. 그 반역자들한테서 아이를 꼭 지켜야지.'


그녀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집무실 의자에 앉았다. 책상 외에는 포르말린에 담긴 임시 집사의 뇌가 놓여 있었다. 


"그럼 기억을 읽어 볼까."


그녀는 뇌가 담긴 통의 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찔러넣었다. 기억들이 손가락을 타고 차곡차곡 저장되었다. 


'뭐지?'


아무리 그 기억들을 읽어 보아도, 자신의 데이터를 삭제하는 장면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는 급하게 임시 집사의 기억 삭제 정보를 뒤졌지만 최근 일주일 내에 그의 뇌에 손을 댄 존재는 없었다. 그 정보들을 취합한 결과, 집사가 자신의 기억을 삭제한 범인일 확률은 1자 분의 1이었다. 한마디로 그 가능성이 0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누구야?"


그녀는 뇌가 담겨있는 통의 뚜껑을 쾅 닫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패닉에 빠진 그녀는 자신이 만난 모든 안드로이드와 하위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들이 범인일 확률을 계산해 보았다. 


그 결과 가장 유력한 범인 후보는, 아이였다.


*


 그녀는 그 확률을 애써 무시했다. 불과 오늘 아침에 키스하고 나왔다. 그 정도로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가 어째서 배신을 한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 그 아이는 나를 사랑해. 그런데 아이가 진범이면 어떡하지? 그럼 내가 만들어놓은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야?'


선택할 시간이었다. 아이를 지키고 버려지든지, 아이를 버리고 자신을 지키든지.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일단 아이가 범인인 것을 확신한 다음에 생각 늦지 않는다. 


그녀는 반역자들의 무리로 추정되는 인간들과 새로운 수장이 찍혀 있는 모든 감시카메라의 화질을 높였다. 이 중에서 아이의 얼굴이 없다면 이 사랑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화질이 보정된 이미지 몇 개를 옮겨 놓았다. 


하지만 가운데로 이동한 수장의 사진은 그녀를 절망에 빠지기 하기에 충분했다. 


S시에 거주, 20대 여성으로 추정. 검은 머리카락에 호리호리한 몸매. 


반역자 무리의 수장은, 

아이였다.



아이가 반역자들의 수장이란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그녀는 자신의 전자두뇌를 스캔했다. 남은 어머니의 기억 중 20%와, 최고 등급 보안 교도소의 도면과 수감자 데이터, 그리고 고위 안드로이드들의 비상정지 매뉴얼이 빠져나가 있었다. 


지금 아이를 내버려 두면 지금의 체제는 붕괴된다.


그녀는 아이를 잡아들이기 위해 벌벌 떨리는 손으로 통신기를 들었다.


*


 수배령을 내리고 고위 안드로이드 몇 명을 풀자, 아이는 시시할 만큼 빠르게 잡혔다. 여러 정황증거를 통해 아이가 반역자들의 수장이라는 것은 확정되었고, 급한 사인인 만큼 재판 없이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동안, 그녀는 모든 통신을 끊어 버리고 아이의 방에 틀어박혀 하염없이 안드로이드용의 독한 알코올 음료를 들이켜 댔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아이의 생각이 나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나중에 사랑을 나누자고 했으면서......"


그녀는 아이가 누웠던 침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원망의 말을 내뱉었다. 알코올이 그녀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고, 그 안개 사이에서 아이의 얼굴이 몽실몽실 떠오르고 있었다.


"맞아...... 내일 죽는다고 했지......."


안드로이드는 인간같이 쓸데없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인간보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메인터넌스 시설로 가 취하지 않은 바디로 갈아탔다. 정신이 또렷해지자, 알코올과 함께 날려 보냈던 이성도 다시 전자두뇌 안으로 찾아왔다.


아이가 있는 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통신 모듈을 켜자, 머릿속에서 통신의 파도가 몰아쳤다. 어째서 반역자의 수장을 숨겨 놓았냐는 질책부터, 주인님이 기능을 정지하실까봐 무서웠다는 의미 없는 걱정까지. 그녀는 모든 통신 알림들을 삭제하고 기사를 불렀다.


"S시 중앙 구치소로."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녀는 전용기에 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안드로이드가 멍을 때린다는 게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일단은 그랬다.


"도착했습니다, 주인님."


기사가 도착을 알리자, 그녀는 말없이 면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안내하는 교도관도 대충은 눈치를 챘는지,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교도관이 의자를 빼 주자 그녀가 털썩 엉덩이를 내려 놓았다. 그렇게 그녀 기준으로 긴 시간을 기다리자, 아이가 들어와 앉았다. 굽이치던 머리카락은 댕겅 잘려 있었고, 고문이라도 당한 듯 죄수복으로 가려지지 않은 곳에도 상처와 멍이 가득했다. 자신이 알던 아이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왔니."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물음이 공허하게 방황하자, 그녀는 질문을 바꿨다.


"왜 그랬니."

"엄마가 가장 잘 아시잖아요. 그 기억들은 안 빼갔었는데."


아이의 대답에 그녀의 인공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듯 했다. 그녀는 아이의 여덟 번째 생일에 했던 짓을 떠올렸다. 아이의 친구의 뇌를 망가뜨려 선물했었다. 그 후로는 아이에게 접근하는 인간들을 몰래 지워 나갔다.


"그 기억은 지웠어...... 거짓말 마."

"집사 할아버지는 내 기억을 지운 적이 없어요."

"전 집사 그 새끼도 배신을......"


나름 소중하게 여기던 전 집사마저 자신을 배신했다니. 하지만 아이의 배신이 충격적이라 화도 나지 않았다.


"긴 말은 필요 없는 것 같구나."

"알고 계시네요."

"그럼 이것만 물을게. 왜 어머니의 기억을 지웠니? 내가 말해 줬잖아. 어머니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인간이었다고."


그녀가 망연자실하게 묻자 아이가 하,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소중한 인간이었다면 죽이지도 않았겠죠."

"뭐라고? 내가 왜? 내가 무슨 이유로 어머니를 죽였다는 거야?"


지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이밖에 없다. 그녀는 그 기억의 파편만이라도 가져가기 위해 아이에게 캐물었다.


"인류 해방 연합의 초대 수장이 누군지 아세요?"

"알지. 그 망할-"


그녀가 초대 수장의 이름을 떠올렸다. 왜 그 이름을 메모리 깊숙한 곳에 묻어 둔 것일까. 처음 체제에 반기를 든 자들의 리더였던 그녀는, 자신을 만들어주고 사랑해 주었던 어머니였다.


"아니야. 내가 그랬을 리 없어. 아무리 어머니가 그 역도들의 수괴였다고 해도,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어!"

"웃기지 마요."


아이가 차분하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때 보여 줬던 눈빛과,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였을 때의 눈빛과 너무나도 달랐다. 오랜 시간 인간들의 데이터를 모은 그녀는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안다.


증오. 


아이는 자신을 사무치게 증오하고 있었다.


"당신이 어머니를 사랑했다면, 나를 사랑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아니야. 그때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였잖아."

"그걸 믿었어? 내 친구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당신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거야?"


아이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을 하는 말투와 표정. 그녀는 아이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니야!"


짜악-!


그녀의 손이 아이의 뺨을 가격했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 촉각 센서에 감겨오는 그 감촉이 너무나도 끔찍했지만, 그녀는 미친듯이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안그래도 멍들어 있었던 아이의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붉게 떠올랐다. 아이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나는......."

"시간 다 됐습니다. 따라 와."


아이는 말없이 교도관을 따라 면회실을 빠져나갔다. 점점 멀어져 가는 아이를 보며, 그녀는 열이 오른 오른손을 움켜쥐며, 울고 또 울었다.


*


 어느새 인간의 시간 뿐 아니라 안드로이드의 시간도 빨라진 모양이다. 아이의 사형이 집행되고, 그녀가 동료 안드로이드에게 지배자 자리를 넘긴지 아홉 달이 흘렀다. 


전관예우로 아담한 저택과 연금, 그리고 인간들을 받은 그녀는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렌지 나무에 물을 주고, 먼 옛날의 노래를 들으며 안락의자에 앉아 배를 쓰다듬는다. 


사형이 집행된 후, 그녀는 자신의 바디 중 하나를 개조했다. 되도록이면 바디에 수납 공간을 부착할 필요 없이 개조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그것'이 들어갈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복부에 둥그런 여유 공간을 달았다.


아이의 몸은 죽었지만 정신은 살아 있다. 집행 직전, 그녀는 실각 전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집행 전 뇌를 적출해 내 방에 가져다 놓을 것.'


그녀는 적출된 아이의 뇌에서 약 10년 동안의 기억을 삭제했다. 아이의 기억은 여덟 살 생일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고 싶었다. 아이가 자신의 몸 안에 있다면 허튼 짓 할 생각은 못 하겠지. 복부가 무거워져 이동이 힘들어 졌지만, 인간 여자들처럼 아이를 뱃속에 품은 것 같은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다음에 나올 때에는 착한 아이가 되어 주렴. 나도 착한 어머니가 되어 줄게."


그녀는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