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 재단에서 작년 10월에 쓴 글인데 SCP 재단 및 아카 재단챈 홍보차 가져왔습니다

한 번에 업로드하기에는 용량이 커서 여러개로 나눠 순차적으로 올릴 생각입니다

읽고 질문, 감상, 비평 무엇이든 댓글로 남겨주시면 최대한 답변하겠습니다

SCP 재단 채널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현재 챈에서 제8차 오컬트 대전 경연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원본 링크: http://scpko.wikidot.com/on-the-border-of-the-purple-court

SCP 재단 한국어 위키: http://scpko.wikidot.com/

SCP 재단 채널: https://arca.live/b/scp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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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부터 나는 여왕의 궁전에 작은 방을 얻어 그곳에 거처할 수 있게 되었다. 여왕의 신부들은 그분께서 신부가 아닌 이를 궁전에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지만, 그렇다고 나의 존재를 껄끄러워 하는 일 없이 마치 가장 나이 어린 신부를 대하듯 나를 친구이자 자매로서 대접했다.

한편 그들은 여왕님의 명령에 따라 내게 자줏빛 궁정의 가장 심원한 지혜를 전수했다. 신부들은 나를 가르치는 데에 최선을 다했지만, 여왕님과 그 신부들이 공유하는 황금빛 언어를 나는 알지 못했던 탓에 그들이 아는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가 배우고 익힌 것들 만으로도 자줏빛 궁정의 웬만한 백성들을 모든 면에서 능가하기에는 충분했다. 신부들은 내게 흰빛 언어의 원리를 가르쳐 주었고, 나로 하여금 언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의 이치를 비틀어 기적을 일으키는 법을 익힐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궁전의 한복판에 있는 신부들의 교실에서 생명을 살리는 법...... 그리고 빼앗는 법을 훈련받았다. 전장에서 수도 없이 검을 휘둘러 왔지만, 이제는 그와 동일한 마음가짐으로 상처를 봉합하고 소독하는 법 또한 익혀야 했다.

힘든 훈련들이었지만, 내게 주어진 임무들에 비하면 오히려 부드럽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줏빛 궁정은 사방에 적이 있었고,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탐색하는 데에만 해도 많은 자원이 소모되었다. 여왕을 향한 강력한 충성이 아니었더라면 그 누구도 견딜 수 없었을 고난을 여왕의 신부들은 매일같이 견뎌내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것을 감내해야 했다. 한 가지 문제라면 나는 신부가 아니었고, 그들이 황금빛 언어를 통해 여왕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과 달리 나와 여왕님 사이의 관계는 피상적인 군주와 신하 간의 관계에 불과했다. 물론 그것이 나의 서약이었다. 여왕을 가까이서 섬기되 신부의 자리에는 오를 수 없는 그 애매한 위치만 해도 내게는 황홀했기에,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겸허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신부들에게는 여왕님과의 신성한 결합이 있었다면, 내게는 은혜를 입은 신하로서의 충성이 있었다. 그들이 황금빛 언어의 권능을 무기로 삼았다면, 나는 한때 함께 싸웠던 자매들의 의지를 내 갑옷으로 삼았다.

그렇게 자줏빛 궁정의 비밀을 수호하기 위해 싸운지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여왕님께서 오랜만에 나를 호출하셨다. 이번에는 그분의 왕좌가 있는 방이 아니라 한때 내가 치유의 은을 입었던 그 정원에서였다. 여왕께서 그분만이 아시는 언어로 가꾸었고 지금도 돌보고 계시는 정원의 심장부에, 나는 옛 추억이 담긴 해졌지만 깨끗하게 관리된 근위대원의 망토로 몸을 감싼 채 여왕님을 찾아 조용히 들어왔다.

여왕께서는 하늘거리는 물빛 옷차림으로 고요한 언덕 위 정자 위에 앉아 계셨다. 여왕님께서 벗어놓으신 흰색 구두가 눈에 띄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여왕님은 나를 보시더니 그분의 옆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셨다. 나는 다가가 정자에 걸터앉았다. 언덕 위에서는 생명의 정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지만, 언덕 주변에 절묘하게 심긴 나무들 덕분에 아래에서는 위가 보이지 않을 듯 했다.

"더 편한 차림으로 왔어도 좋았을 텐데." 여왕님께서 근위대원 시절의 투박한 군화와 망토 차림으로 걸터앉은 내 모습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차림이 더 익숙해서 좋습니다." 나는 겸손히 대답했다.

"여전히 자매들과 한 서약을 잊지 않고 있는가 보구나. 내 인정 많은 신부들이 네게 선물했던 다른 옷들을 마다하고 늘 근위대의 옷차림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말이지."

"그렇습니다. 여왕이시여."

여왕의 어조에는 일말의 유쾌함이 서려 있었지만, 동시에 정자와 그 주변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거기에 압도되어 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정원은 여왕님의 언어에 의해 생겨난 장소이므로, 그 심장부는 여왕님의 감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느끼는 이 무거운 공기는 분명 여왕님의 감정이 정원에 영향을 미친 결과물이 분명했다. 여왕께서는 무언가 걱정하고 계셨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신부들에게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왕님께서 조용히 입을 여셨다. "네가 임무에 보이는 열의나 의지는 칭찬할 만하지만,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으면 한다는구나. 내 신부들이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꽤나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너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그 외에 여왕님께 제 충성을 증명할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여왕님의 축복받은 신부들처럼 총애받는 이도 아니고, 그저 당신께 제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의한 한 사람의 종일 뿐입니다. 그러니 제 모든 것을 바쳐 마땅합니다. 아니면-"

"그 '모든 것'에 너의 목숨도 포함되어 있다. 그건 알겠지." 여왕께서 엄격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하지만 넌 내 신부들이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고 있다. 알았다면 너의 생명을 나에 대한 충성을 핑계로 함부로 위험한 곳에 놔두었을 리 없다. 그들은 그 때문에 근심하고 있다. 그리고 내 신부들이 근심하고 있다면, 나도 근심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용서하십시오, 여왕님. 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말아라." 여왕의 말은 산처럼 준엄했고, 나는 내 자신이 주제넘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갑자기 땅을 바라보고 있던 내 시야에 무언가 희고 아름다운 것이 나타났다. 나는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내 옆에 앉아 계신 여왕님의 팔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크게 놀랐다. 그 팔은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급기야는 내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내 몸이 긴장과 놀라움으로 마비되어 움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으로 돌아보거라."

내 오른쪽 귀에 느껴지는 미약한 온기 때문에, 내 눈은 여전히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분이 내 옆에 가까이 붙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분의 손이 내 어깨에 닿은 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어깨에도 그분의 손길이 느껴졌다.

"망토를 벗어라."

그분의 말대로 하는 것 외에 달리 무언가 할 수 없었던 나는, 천천히 망토를 고정하고 있던 내 목 부분의 브로치를 풀었다. 내가 브로치를 옆에 내려놓자, 여왕님의 손이 느릿하게, 하지만 주저없이 움직여 내 망토를 잡고 천천히 양쪽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근위대에 소속되어 있었을 때는 갑옷 안에 입었던, 얇은 천옷만으로 내 상반신을 가린 채 그분의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네가 처음 내 옆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을 때, 네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백성들이 다들 그러하듯이, 잠깐 동안의 기쁨과 자부심이 오랜 시간의 고행과 괴로움에 씻겨 나가, 결국에는 스스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지. 그래서 너를 일부러 매정하게 대하고 더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았다."

여왕님의 말이 그분의 따뜻한 숨결과 함께 내 귀에 전달되는 동안에도, 그분의 손은 계속 움직여 내 옷에 달린 단추를 맨 위에서부터 천천히 풀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의 간청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 지금 별들 가운데 있을 네 자매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것으로 너와 관련하여 내가 저지른 오판은 두 번째가 되었구나." 여왕님의 손은 무자비하게 움직여 기어코 내 옷의 단추를 모두 풀고야 말았다. "지금은 더 잘 안다."

"여왕님, 저......" 나는 애써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분은 다정하면서도 강력한 힘이 서린 목소리로 나를 침묵시켰다. "너는 지금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부들의 권능은 얻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똑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지. 다른 백성들이었다면 명령에 따르는 위험이 내 은혜에 따르는 의무감을 넘어섰을 테지만, 너는 내가 내려준 은혜를 보답하길 원하는 것과 동시에 네 자매들에 대한 의무를 완수하길 원했기에 그 가공할 위험도 너를 물러서게 하지 못하는구나. 그렇게 네가 물러서지 않게 된 결과, 그것이 네게 흔적을 남겼다."

그 말과 동시에, 여왕님의 두 흰 손이 내 얇은 옷을 찰나의 순간에 벗겨 버렸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내 고난의 흔적이 나타났다. 근위대원으로서 자줏빛 궁정의 적들과 맞서 싸우면서 입었던 상처들, 도모코로의 가시 돋친 채찍에 의해 새겨진 흉터들이 내가 여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은혜를 입은 이후로 얻은 무수한 상처들에 가려져 있었다.

이제 그분의 손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내 몸의 상처들을 하나하나 그 부드러우면서 굳센 손길로 따라갔다. 나는 부끄러움, 혼란,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흥분감 속에 미세하게 떨었고, 내 몸은 어째서인지 그 손길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필멸자들이었다면 이 정도 상처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네가 생명의 정원에서 태어난 축복받은 육신을 가졌기에 너의 그 만용을 죽음으로 처벌받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분의 손이 상처에서 멀어졌다. 대신 차갑게 식은 내 왼손을 들어 천천히, 마치 검사하는 듯이 들어올렸다.

"오늘 내가 너를, 한낱 여종에 불과한 너를 어째서, 하필이면 내 권능의 정수가 담긴 이곳으로 불렀는지 정녕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이냐? 아니면 너의 그 의무감과 충성심이 네게서 궁금해하려는 마음마저도 빼앗아간 것이냐? 이제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 너는 이제 네 자매들이나 다름없어진 신부들이 너를 진정으로 아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 왼손에 뭔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흰 손이 내 손을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손이 무언가 자그마한 것을 내 손가락에 끼우는 중이었다. 그대로 멈춰 전혀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순간이 지나가자, 여왕님의 두 손이 떠나간 내 왼손 약지에 끼워진 무늬 없는 금빛 반지가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 미약하지만 날카로운 반사광이 가지는 의미를 마침내 깨달은 순간, 여왕님께서 몸을 기울여 나를 감싸안으셨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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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님께서는 그 날 내 옷을 가져가셔서는 돌려주지 않으셨다. 내가 벗은 몸으로 언덕에서 내려와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그분의 가장 오래 된 신부들이 나타나 내 몸을 포근한 담요로 감싸고 나를 궁전의 작은 방으로 데려왔다. 그 방에서 나는 오래 전부터 신부들이 준비해 준 흰색 예복을 선물받았다. 그들은 내게 애정이 담긴 입맞춤을 하고, 마침내 내가 그들의 자매가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여왕님이 아무도, 심지어 나조차도 모르게 오랜 시간 전부터 결혼식을 준비해오신 듯 했다.

다음날 정오, 하늘은 맑게 개었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으며 흰 비단과 자줏빛 천으로 장식된 예식장은 기대와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신부의 탄생을 보기 위해 모여든 자줏빛 궁정의 백성들의 눈 앞에, 불멸의 여신다운 신성한 모습으로 자줏빛 궁정의 여왕이 나타났다. 금빛 장신구로 치장한 보라색 예복을 입은 여왕의 옆에서는 그분의 은혜를 받은 내가 흰 드레스와 면사포 차림을 하고 천천히, 그러나 편안한 발걸음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여왕님을 처음 만난 그 순간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지만, 이 모든 것이 앞으로 내가 누릴 행복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 황홀함으로 가득한 예식의 마지막 순서로, 나는 만인의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여왕님께 안겼고, 여왕님께서는 그분의 아름다우면서도 힘이 담긴 두 팔로 나를 안으며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나는 내 자신을 여왕의 가장 어린 신부로서 기쁜 마음으로 내어 드렸고, 여왕님은 나의 배우자이자 자줏빛 궁정의 영광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이어질 고귀한 연인이 되어 주셨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나는 행복에 겨워 말했다.

"놀라움은 남겨 두렴. 앞으로는 네게 일어날 모든 일이 네 상상을 넘어설 테니까."

떠들썩한 예식이 끝난 그날 밤, 다른 신부들이 나를 정화의 샘으로 데려가 내 몸을 씻겼다. 여왕의 정원에서 자라난 생명수의 진액을 허리까지 내려오는 내 금발 머리카락에 바르고 정성스럽게 빗었다. 부드러운 기름으로 내 몸에 난 상처를 덮은 뒤 황금빛 언어의 권능이 담긴 혼합물을 몸 구석구석에 바르자 그저 여왕님의 뜻을 따르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내 몸이 하늘 높이 뜬 달빛을 반사하듯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울에 비쳤고, 내가 늘 궁전에서 부러워했던 신부들의 매혹적이고 달콤한 향기를 발산했다.

미세하게 속이 비치는 연보랏빛 가운 말고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나는 신부들의 조용하지만 일말의 부러움과 기쁨이 담긴 배웅을 받으며 한때 내가 투박한 망토를 입고 찾아갔던 정원의 심장부를 향해 걸었다. 여왕께서는 이미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예식을 위해 묶고 계셨던 긴 자줏빛 머리카락을 풀어내린 채, 단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왕님 본인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흰 옷차림으로 정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도, 새의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고요한 언덕 위에서, 나는 처음 느껴보는 흥분에 비틀거렸고, 지금 당장이라도 여왕님의 그 하얀 품에 안겨 몇번이고 영원을 서약하고 충실한 신부가 될 것을 맹세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왕님께서 일어나 내게 다가오셨고, 나는 늘 그랬듯이 여왕님의 자태에 매혹되어 그저 다소곳이 서 있었다.

"아름답구나." 그분께서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어느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드시나요?" 나는 갑자기 장난기가 들어 말했다.

여왕께서는 잔잔히 미소를 지으시며 손을 내 얼굴에서 머리카락으로 옮겨, 달빛을 받아 빛나는 내 금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 머리카락, 생명이 담겨있는 이 밝은 금발이 좋구나. 하지만 다른 것들도 마음에 든다. 너의 얼굴과 너의 푸른 눈동자, 너무 희지도 않지만 동시에 너무 어둡지도 않은 연주황빛 피부가 좋아. 나보다 약간 작은 네 키도, 봉긋 솟은 가슴도, 엄숙한 지혜가 담겨 있지만 명랑한 목소리도, 모두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단다. 너는 완벽해. 내 신부들은 모두 그래야 하지."

나는 내 마음이 따뜻한 행복감과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며, 여왕께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목에 내 팔을 둘렀다.

"키스해주세요."

내 주제넘은 요청에도, 여왕님은 그 어떤 말 한마디 없이 머리를 기울여 내 입술에 애정어린 입맞춤을 해주셨다. 나는 예상치 못한 적극성에 놀라고, 내 이성은 이 다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나는 현명하게도 이 순간 내 달아오르는 본능에 모든 것을 맡겼고, 본능은 마치 또다른 흰빛 언어처럼 내가 해야 할 모든 것들의 고삐를 쥐고 나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감정을 해방하게 만들었다. 나와 여왕님이 서로를 감싸고 진하게 키스를 나누는 동안, 달은 잠시 하늘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고 잔잔히 불어오던 밤바람은 그대로 멈춰 이 정원에 진하게 풍기는 사랑의 향기를 씻어가지 않겠다는 듯이 고집스럽게 남아 있었다.

마침내 영원히 계속되는 것만 같았던 순간이 끝나자, 여왕님께서는 부드럽게 한 발 물러나 말씀하셨다.

"지금은 기분이 어떻니?"

"헤,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아요." 나는 흥분에 헐떡거리며 말했다.

"어떤 것을?"

"이 감정, 이 감각, 이 모든 것을 오늘 가장 끝자락까지 경험해보고 싶어요."

"기꺼이."

여왕님께서는 나를, 처음 만난 그 순간에 그러하셨듯, 사랑이 담긴 동작으로 안아드셨다. 나는 소녀처럼 애교 섞인 웃음을 지으며 그분의 매혹적인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여왕님의 품에 안긴 나는 그대로 그 비밀에 싸인 정자보다도 비밀스럽고 깊은 곳에 놓인, 비단 커튼과 장미 꽃잎으로 장식된 실크 침대로 옮겨졌다. 그 침대 위에서 우리 둘은 마주앉아 각자의 손길로 서로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나는 8할의 흥분과 1할의 욕망, 1할의 조급함이 담긴 떨리는 손으로 여왕님의 흰 옷을 벗기기 시작했고, 여왕님께서는 똑같은 욕망과 흥분이 담겨 있으면서도 정확한 손길로 나를 더더욱 흥분시키면서 내가 걸친 연보랏빛 가운의 끈을 풀고 내 어깨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내 옷을 벗겼다.

마침내 우리 둘 다 가장 근원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여왕님께서는 침대에 누우시며 나로 하여금 그분의 위에 올라타게 하셨다.

"여왕님, 어째서......?"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여왕님의 몸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오늘은 너의 날이니까. 이것을 내가 내 가장 어린 신부에게 내리게 될 많은 축복들 중에 하나로 생각하거라. 네가 가진 감정, 네 본능, 그 모든 것을 주저하지 말고 내게 보여 주렴." 여왕님께서 내게 팔을 벌리며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최선을 다해 나를 만족시켜 보거라, 내 신부야."

여왕님의 말씀이 끝나시자마자, 나는 나도 예상치 못할 만큼 빠르고 난폭하게 달려들어 여왕님을 덮쳤다. 그분은 내가 그분의 두 팔을 왼손으로 붙잡고 몸으로 여왕님을 내리 누르는 동안 두 다리로 나를 감싸며 킬킬거렸다.

"너무 급해, 신부여! 하지만 나쁘지 않아, 정말 나쁘지 않아."

내 이성이 분홍빛 털실 뭉치를 가지고 놀다가 털실에 칭칭 감겨버린 고양이 비슷한 것이 되어 헛되이 몸부림치는 동안, 내 본능은 또 하나의 고양이가 되어 여왕님을 핥고, 쓰다듬고, 간지럽히고, 꼬집었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손길로 인해 떨고 움찔거리는 모습이 나를 더더욱 흥분시키고, 더더욱 난폭한 정복감에 취하게 만들었다.

내 손길이 더더욱 난폭해지는 것과는 반대로, 내 몸에서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여왕님은 마치 나에게 함락당하기 직전인 것처럼 움찔거리는 몸짓과 희미한 교성으로 나를 함정에 빠뜨리고는 그분의 긴 두 다리로 나를 꼭 붙들고 내 맹공을 견뎌내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진이 빠져 여왕님의 품으로 무너지듯 쓰러지자 여왕님께서는 내 애처롭게 끝난 귀여운 공격을 비웃으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일으키시며 내 몸을 반대쪽을 향하게 돌려놓으셨고 나는 뭔가 할 틈도 없이 하체는 여왕님의 다리에 의해, 상체는 여왕님의 팔에 의해 완전히 붙들린 꼴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쁘지 않았어, 신부여." 여왕님께서는 욕망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내 귀에 강제로 집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 "하지만 만용을 부리다니, 그래서는 안 되지. 자, 이제 내가 돌려줄 차례로구나. 정신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거라."

그리고 여왕님은 지금껏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힘으로 나를 강습하기 시작했다. 내 무기는 야만적인 힘과 욕망 하나 뿐이었지만, 여왕님은 마치 자줏빛 궁정의 무기고처럼 그 다양함에서 비할 바 없고 숙련도와 파괴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많은 무기들을 휘두르며 맹공을 퍼부었다.

숨결은 불화살처럼 내 피부에 꽃혔고, 정욕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기름처럼 끼얹어지자 내 온몸에 불이 붙었다.

다리는 공성추가 되어 내 성문을 강타하고, 정확한 손길이 성벽을 넘은 병사들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유린했다.

혀는 냉혹한 암살자처럼 지휘부에 침입해 이미 얼마 남아있지 않던 내 이성의 조각들을 모두 살해해 버렸다.

결국 나의 성은 공성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기를 들어버리고, 영광스러운 승자의 자격으로 활짝 열린 성문을 통해 들어오신 여왕님은 방어자의 낮은 역량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무조건적인 복종을 표시하는 그분의 포로를 마음껏 약탈하고 그 위에 깃발을 꽂았다. 그 모든 순간 동안 나는 모든 의지와 반항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한 채, 여왕님의 손길을 따라 높은 교성과 낮은 신음을 오가며 그분의 또다른 승전가를 연주하는 악기가 되어 버렸다.

"여왕님, 자비를 베푸세요."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헐떡이며 말했다.

"고려해 보지." 여왕님께서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 네 위에 있는 것이 누구니?"

"잔혹하신 여왕님, 냉혹하신 여왕님, 포로에게 무자비하신 여왕님. 오, 제발......"

"흠,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야. 아무래도 계속 해야겠는데."

"잠, 잠깐만, 잠깐만요! 시간을, 시간을 주세요."

"시간을 끌겠다? 뭔가 다른 마음이 있다고 봐도 되는 걸까?"

"위대한 여왕님, 고귀하신 여왕님, 무적의 여왕님, 언제나 승리하시는 여왕님."

"계속하렴."

"황금 궁전을 집으로 쓰시고, 정화의 샘에서 몸을 씻으시며, 생명의 정원에서 딴 과실로 식사를 하시는 자줏빛 궁정의 여주인이신 여왕님. 나의 여왕님."

"너는 네 여왕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지."

"모든 것을 바치겠어요. 내 육신도, 내 정신도, 내 영혼도 모두 여왕님께 드리겠어요. 여왕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살겠어요."

"그렇다면 나는 너의 주인이 되겠구나?"

"맞아요, 나의 여왕님, 나의 주인님. 당신의 가련한 여종에게 자비를 베푸세요."

"좋아."

마침내 그분의 집요한 손길에서 풀려났을 때, 나는 온 몸에 힘이 없는 채로 비척거리며 엎어졌다. 쾌락에 무너져버린 내 몸은 여전히 저릿저릿했다. 완전한 패배를 겪은 충격과 무력감에 조금 전만 해도 넘쳐흐르던 투지와 야만성은 사라져 버리고, 이렇게 한때 여왕의 위를 넘보던 오만한 여전사는 그 적수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 또 하나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한 차원 위의 위대한 존재에 대한 완전한 복종에서 오는 이상한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끼며 내 주인이자 배우자가 되는 사람의 품에 지친 몸을 던졌다. 여왕님께서는 땀으로 젖은 내 몸을 천천히, 다정하게 애무하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제 너는 내 거야. 다른 신부들이 그렇듯이 너는 이제부터 내게 모든 것을 내어 주어야 하고, 그 대가로 나는 네게 황금빛 언어를 가르쳐 주고,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것의 총합을 능가하는 권능과 영광으로 너를 가득 채워줄 거야."

"네, 여왕님."

"너는 겸손하구나. 그런 신부일수록 더더욱 사랑받는 법이지." 여왕님이 자줏빛 궁정의 문양이 수놓인 이불을 끌어당겨 우리 두 사람의 몸을 덮었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여왕님을 떠나지 않을게요."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의 감촉을 느낀 몸은 갑자기 지금이 한밤중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서서히 몰려드는 졸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는 사랑스러운 신부야. 예쁘고, 마음이 곧고, 충성스럽지. 마법사와는 달라."

"마법사요? 그게 누구인가요? 말씀해 주세요." 나는 이 황홀한 순간을 최대한 오래 음미하려고 졸음에 맞서려 애쓰며 물었다.

"나중에. 지금은 잘 시간이란다." 여왕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내 눈을 감겼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정화의 샘에 몸을 씻으러 내려가자꾸나. 그것이 예식의 마지막 순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