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 재단에서 작년 10월에 쓴 글인데 SCP 재단 및 아카 재단챈 홍보차 가져왔습니다

한 번에 업로드하기에는 용량이 커서 여러개로 나눠 순차적으로 올릴 생각입니다

읽고 질문, 감상, 비평 무엇이든 댓글로 남겨주시면 최대한 답변하겠습니다

SCP 재단 채널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현재 챈에서 제8차 오컬트 대전 경연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원본 링크: http://scpko.wikidot.com/on-the-border-of-the-purple-court

SCP 재단 한국어 위키: http://scpko.wikidot.com/

SCP 재단 채널: https://arca.live/b/scp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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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코로의 불쾌한 환대를 뒤로 하고, 나는 배를 동쪽으로 몰아 필멸자들의 세계로 들어섰다. 황금빛 언어의 마법으로 축성된 배는 이 세계의 파도를 당당히 맞서며 지체없이 나아갔지만, 배를 모는 나의 마음 속에는 니카가 불어넣은 의심과 불안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그런 하찮은 마녀가 퍼뜨린 거짓말 따위는 뒤로 하고, 서둘러 여왕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외치며 나를 재촉했다.

그리고, 내 마음의 깊숙한 한 구석에서는, 차라리 내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실패해서 마법사, 니카,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점차 먹구름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여왕님을 배신하는 것도, 여왕님의 손에 목숨을 잃는 것도 견딜 수 없었던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망상이었다.

그렇게 한 심장으로 두 마음을 품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색은, 실망스럽게도 생각을 정리하거나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니카는 마법사의 위치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마법사는 필멸자들이 사는 세계의 중심, 고대의 존재가 지키고 서 있는 동산 옆 강가의 작은 동굴 속에서 거처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동굴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사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나를 슬쩍 바라보고는 동굴 안에 편의를 위해 놓아둔 낡은 쿠션 위에 천천히 앉았을 뿐이었다.

나는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는 분명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이들과는 굉장히 달랐다. 그의 피부는 탄력을 잃기 시작했고, 이마에 난 주름과 머리에 난 새치는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표백시키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마치 여왕님의 눈처럼 무시무시한 빛을 발하는 맑은 눈동자 두 개가 그곳에 있었다.

동굴 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자, 마법사의 낡은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여왕의 사절이군." 그는 조용히 말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사절이여?"

"여왕께서 당신의 죽음을 명하셨다." 나는 싸늘히 말하며 검을 뽑았다. "나는 그 분의 신부로서 명령에 따라야 해."

"마치 네 스스로에게 되뇌이듯이 내게 말하는구나." 그는 검의 차가운 빛에도 눈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네 스스로도 의심이 있다는 뜻이지. 그건 어째서냐?"

"묻지 마. 대답할 생각 없어." 나는 씹어 뱉듯이 말하고는 검을 들어올렸다. 비록 늙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닌 마법사였다. 그가 무언가 행동을 시도하기만 하면 즉시 그의 심장을 꿰뚫을 작정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비를 구걸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법사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서로를 노려보며 그대로 멈춰 있었다.

결국 항복한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힘없이 검을 늘어뜨리고 그에게 말했다.

"왜 저항하지 않지?"

"왜 저항해야 하나?"

"당신은 자줏빛 언어를 손에 넣었어. 그리고 그 언어를 가지고 자줏빛 궁정이 쌓아올린 영광을 모두 무너뜨렸지. 여왕님은, 아니, 우리는 당신이 가장 위험하고 사악한 배신자라고 생각했어. 당신이 빼돌린 자줏빛 언어를 다른 자들에게 넘기거나, 아니면 세력을 모아 궁정을 침공하거나, 아니면 어쨌든 무언가를 저지를 거라고 생각했다고."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네."

"그러면, 무엇을 바라고 그런 짓을 저질렀던 거야?"

"혹시 괜찮다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을 용서해 주겠나." 마법사는 말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여왕이 내 목숨을 가지러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네. 그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날 일이든 아니면 먼 나중의 일이든 말이야. 그런데 내가 자줏빛 궁정의 경계를 떠나간 그 날 이후로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군. 왜 이제야 왔나?"

"......우린 당신이 며칠 전 경계 바깥에 있는 것을 보았어. 그래서 당신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뭔가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 때문에 당신을 죽이러 온 거야."

"그런 거였군." 마법사는 쓰게 웃었다. "몇 달 전에 별들이 자줏빛 궁정에서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고 내게 알려 주었네. 그 손님과 만나는 날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 짐작하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여왕이 거처하는 그 땅을 멀리서나마 보려고 찾아갔던 건데, 그것이 내 죽음의 원인이 된단 말이로군. 선지자에게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 뭐, 여왕이 내 죽음을 원한다면, 나는 거기에 저항할 생각이 없네. 이미 그녀가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싶진 않아. 헌데......"

마법사는 눈을 반짝였다.

"기껏 나를 찾아온 내 사신의 눈동자에서, 주저함과 혼란을 느낄 것이라고는 확실히 예상치 못했다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자네는 무엇을 바라고 이 누추한 처소에 찾아온 것인지 내가 물어도 되겠나?"

"난...... 여왕님이 내게 내려준 임무를 완수하고 싶어.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의심하는 마음이 생겨 버렸지. 어쩌면 나도 당신이랑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신에게,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나는 혼란에 빠진 채 중얼거리다가 결국은 동굴 바닥에 힘없이 주저 앉았다.

"모르겠어. 애초에 당신이 빼앗아 간 것이 뭐야? 자줏빛 언어는 대체 뭐고? 오래 전 당신이 여왕님을 배신했을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서로 간의 의견 차이라고 해 두지." 마법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세 가지 언어를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했지. 나는 언어의 힘을 바탕으로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려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왔지. 자줏빛 궁정이 세워졌을 때 그녀는 그곳을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기념물로 보았고, 나는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피할 수 있는 도피성으로 보았지만, 이 나라가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생각이 같았다네."

동굴 뒤에서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검을 옆에 놓아두고 내가 지금쯤 이미 목숨을 가져갔어야 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문제는 자줏빛 언어일세. 황금빛 언어는 그저 세계의 근원 주위를 맴돌 뿐이지만, 자줏빛 언어는 그 근원 자체이기 때문에 자줏빛 언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우주의 실을 자기 마음대로 끊어내어 자신의 태피스트리에 집어넣을 수 있네. 그렇게 휘두르는 힘은 우주의 총 질량에 비하면 세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의 영혼을 충격과 경외심으로 몰아넣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지."

"그런데? 그게 어째서 문제가 되지?"

"자줏빛 언어는 본질적으로 언어니까." 그는 알다가도 모를 말을 하고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부연하기 시작했다. "언어는 누구나 배울 수 있어. 그 난이도에 따라서 소모되는 시간과 역량은 달라지겠지만, 결국 시간과 에너지만 있다면 지성을 갖춘 영혼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깨우칠 수 있지. 그리고 그 점에서는 자줏빛 언어도 예외가 아니야."

"그렇다면 누구나 자줏빛 언어를 배우고, 그 힘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어. 여왕님께서 내게 알려주시기 전에는 심지어 그분을 가까이서 모시는 신부들도 자줏빛 언어를 익히지 못했다고. 아니, 애초에 그 존재도 알지 못했지."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자줏빛 언어의 존재 자체를 숨기려 백방으로 노력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네 말을 들어보니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군.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사실 이미 늦었지. 그녀 말고도 자줏빛 언어를 아는 사람이 처음부터 한 명 더 있었으니."

"그러면 그 모든 배신과 파괴가 자줏빛 언어 그 자체 때문이었던 거야? 여왕님께 그 언어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그녀도 은폐하려는 시도가 부질없다는 것은 알았어." 마법사는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줏빛 언어를 숨기려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지. 자줏빛 궁정의 보물 창고는 온 우주에서 모아온 재화로 가득 찼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곳곳에 새로운 보관소를 지어댔네. 유감스럽게도 그런 보관소들 중 대부분은 내가 설계한 것들이었고."

시뻘건 색으로 물든 하늘은 이제 점차 빛을 잃고 어두워져 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자줏빛 궁정이 고사하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너무 늦은 다음이었네. 결국 우주 전체를 긁어모으고 난 뒤 더 이상 수탈할 것이 없어진 약탈자는 스스로 서는 법을 알지 못해 무너질 테고, 내가 사랑하던 그녀의 모든 것은 그녀를 질투하고 증오하는 다른 권능들에 의해 찢겨 나갔을 거야. 멀리 갈 것도 없이 도모코로는 지금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말라가고 있지. 나는 자줏빛 궁정이, 내가 사랑하는 여왕이 그런 운명을 겪도록 놓아두고 싶지 않았네."

"그래서 배신했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 결국 나도 그녀처럼 자줏빛 언어를 알고 있었고, 대부분의 보관소들은 내가 고안하고 제작했으니 그 보안을 해제하고 지금까지 끌어모은 모든 영화를 다시 뱉어내게 하는 것쯤은 쉽게 할 수 있었지. 그녀는 내가 배신한 사실을 알자마자 나를 경계 밖으로 쫓아냈네. 그러나 이미 내 계획이 돌이킬 수 없는 시점까지 진행된 이후였기 때문에, 그녀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지."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 위에 보름달이 유유히 떠다녔다. 나는 충격에 빠져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한 가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럼 여왕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길 원하고 있네. 나는 그녀를 알아. 강력한 권능을 가진 신들은 쉽게 그 야망을 저버리지 않는 법이지. 아마도 세상의 여명기였던 그 때보다는 더 어려울 테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포기할까? 자네 옆에 놓인 그 검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되겠군."

숨이 막혔다. 주변의 소리가 귀에서 울리는 이명에 가려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결국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겠지." 그는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쟁이 일어날 거야. 지금까지 자줏빛 궁정이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전쟁이 일어날 테고, 다른 모든 전쟁과 달리 이번에는 자줏빛 궁정이 주변의 증오를 받고 무너지겠지."

"그런...... 그럴 수는 없어. 막아야만 해!" 나는 그렇게 외치며 일어났다.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지? 시간이 없어, 뭐라도 말해 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네." 마법사는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체념한 태도로 말했다. "그녀는 이제 과거보다도 더 굳게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야. 여러번 노력했지만 자줏빛 궁정의 경계를 뚫을 수가 없었어. 게다가 설령 경계를 돌파해 그녀 앞에 설 수 있더라도, 그녀는 자줏빛 언어를 언제까지고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거야."

"하지만 당신도 자줏빛 언어를 알고 있잖아. 그런데도 당신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나는 내 스스로 언어를 깨우친 게 아니야. 자네도 알듯이, 여왕의 지식을 빼돌려서 배운 거지." 마법사가 대꾸했다. "결국 방법은 하나야. 누군가 여왕과 가까우면서 평소에 자줏빛 언어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자줏빛 언어를 터득하는 모습을 그녀 앞에서 보여주는 걸세. 그게 실제로 가능하긴 한지는 잘 모르겠네만."

"가능해야만 해. 만약 그 일을 해낼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때는 내가 하겠어!"

"좋을 대로 하게. 그런데......" 마법사가 그렇게 말하며 동굴 바깥을 바라보았다. "......서두르지 않으면 모든 일을 그르치겠군."

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그가 바라보고 있는 동굴 바깥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밤하늘 위에 뜬 보름달을 배경으로, 작은 형체들이 떠올라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누구일지, 누구의 명령을 받아 오고 있는 것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왕의 신부들이 오고 있네." 마법사가 말했다. "그들을 피할 수 있겠나?"

"모르겠어."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면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일세." 마법사가 비탄에 찬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잘 가게, 사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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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왕을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나는 황금 사슬에 매인 몸이었다.

그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게 된 밤에, 여왕을 가장 오랫동안 섬긴 신부들이 동굴에 들이닥쳐 두 배반자들을 찾았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른 채,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마법사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동굴 속 그만이 아는 통로로 도망치도록 만들었다. 정작 나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사실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그들은 나를 붙잡아 어둠을 틈타 자줏빛 궁정으로 돌아왔다. 누구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고, 누구도 여왕의 가장 어린 신부가 궁전의 지하실에서 불운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고요한 공기,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만이 이 비극의 순간을 관람하러 내가 묶인 방을 찾아왔다.

두려움과 안타까움보다도 한때 내 자매들이었던 신부들의 침묵과 외면이 더 견디기 어려웠던 영겁의 시간이 지난 채, 내가 가둬진 검은 방에 갑자기 밝은 빛이 터지듯 쏟아지며 문이 열렸다. 나는 갑자기 눈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천천히, 돌 바닥과 구두가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며, 빛이 쏟아지는 문 사이로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여왕님......" 나는 바싹 마른 입을 애써 움직이며 말했다.

여왕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내 앞으로 조금씩, 공포스러운 발소리와 함께, 다가왔을 뿐이다. 갑자기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나는 내 손발을 붙들고 있는 사슬을 있는 힘껏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여왕님, 제발! 제가 잘못했어요!"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극도의 공포에 몸의 제어권을 빼앗긴 상태로 마구 외쳤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마법사를 바로 죽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제발, 제발 제게 화내지 마세요! 용서해 주세요!"

"미안하다." 여왕님께서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에 대한 사랑이 내 눈을 멀게 만들었어. 너 혼자서 마법사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다른 신부들에게 너를 따라가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구나."

"여왕님, 제발......"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여왕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너는 마법사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에게 거짓말을 듣고 나를 배반할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그는 배신자가 아니에요!" 나는 울부짖듯 외쳤다. "마법사는, 마법사는!"

"마법사는 나를 배신했다!" 여왕님은 혐오와 분노가 담긴 천둥 같은 소리로 외쳤다. "그는 내 것이어야 할 자줏빛 언어를 빼돌리고 내 보물을 훔쳤어! 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 필멸자는 내가 가져온 것들을 허공에 날려 버렸단 말이다! 어떻게 그런 자가 배신자가 아니란 말이냐? 아니면 네놈이 저지른 배신에 비하면 그의 배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냐? 그런 뜻이야?"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여왕님, 저는...... 저는 그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여왕님은 조금 더 누그러진 듯 하지만, 여전히 원한 서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것이 너 아니었느냐. 자줏빛 궁정이 자리를 잡은 이후로 나와 황금빛 언어로 이어진 그 어떤 신부도 날 배신하지 않았다."

내가 애처롭게 훌쩍이는 동안 여왕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어쩌면 너는 배신할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 아직도 나에 대한 충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너는 도모코로에서 그 고문자들의 여왕과 대화를 나누지 말았어야 했어. 너는 마법사를 찾은 바로 그 순간 그의 심장을 찔러야 했어.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래서 너는 의심을 품었다. 자줏빛 궁정에 대해서. 감히 내 권위와 지위에 대해서."

눈이 차츰 빛에 적응되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와중에도 여왕의 손에 긴 금속성의 물체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마법사를 향해 겨누었던 검이라는 것을 깨닫자, 이 비극적인 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운명에 대한 분노가 온 몸을 돌며 들끓기 시작했다. 나는 이 절망적인 순간에 어떻게든 저항하려 머릿속의 기억을 헤집었다.

자줏빛 언어를 배워야 했다. 여왕님께 그분만의 언어로 말을 걸어야 했다.

'자줏빛 언어는 곧 세계의 근원에 닿은 언어이므로, 근원에 닿으면 그 언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근원을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어떻게 해야 온 몸이 묶여 있는 이 상황에서 근원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지? 생각을 해, 생각을!'

"자줏빛 언어는 내 것이다. 그 누구도 가질 수 없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한다. 너도 내게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이제......" 여왕님이 검을 들어올리셨다. "이제 자줏빛 궁정이 모두를 지배할 것이다. 도모코로나 다른 하찮은 약탈자들처럼이 아니라, 태양처럼 밝게 타오르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그리할 것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으로 그리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신하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배신한 자들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여왕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어떤 운명의 장난인지 마침내 밝아진 내 눈이, 지금껏 내가 바라보고 있던 여왕님의 어두운 얼굴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왕님은 눈물을 흘리시고 계셨다.

그 모습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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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흰빛 언어를 배운 것은 서약의 정원에서였다.
나와 내 자매들은 서로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여왕님의 명령에 따라 황금 깃발을 끝까지 수호하겠다고 서약했다.

내가 황금빛 언어를 배운 것은 여왕의 궁전에서였다.
나와 다른 신부들은 황금빛 언어를 통해 이 축복받은 땅을 가꾸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왕님의 곁에서 더더욱 아름답고 빛나는 삶을 살았다.


내가 자줏빛 언어를 배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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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나를 내리쳤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어떤 영감이 떠올라 내 뇌수와 영혼을 동시에 찌르고 지나가는 것을 포착했다. 여왕님의 검이 내 생명과 정신을 끊어버리기 직전의 순간에 내 영혼은 물리법칙과 정신의 법칙을 둘 다 무시하는 실체만이 낼 수 있는 속도로 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왕님을 모시면서 경험했던 그 모든 기쁨과 쾌락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여왕님 앞에서 그분을 곁에 모시게 해달라고 요청하던 그 떨리는 순간이 조금 더 느린, 하지만 마찬가지로 재빨리 지나갔다.

내가 여왕님을 처음 만난 계기가 되었던 도모코로와의 처참한 전투가 느릿느릿하게 내 시야를 지나갔다. 방진 한가운데에서 나는 내 자매들을 독려하며, 앞으로 내 운명이 어떻게 뒤틀릴 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눈앞의 적을 죽이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소녀였던 시절 자매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 보육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났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그리고 생명의 정원에 안치된 침상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던 내 최초의 시간이 내 앞을 지났다.

나는 마침내 내가 생각해낸 해결책을 이해하고 몸을 떨었다. 저 멀리 별들 사이에서, 내 자매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손을 나팔처럼 만들어 별들까지 들리도록 맑고 큰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별빛처럼 빠르게 긍정을 표시하는 대답이 들리자, 나는 몸을 굽혀 정원의 부드러운 흙 속으로 낙하했다.

정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줏빛 궁정의 정수가 보였다. 나는 더더욱 속도를 높여 빠르게 그 거대하지만 무질서한 유체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어떤 인력도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유체 안에서 내 영혼은 의지와 감각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힘없이 부유하기 시작했다.

오직 자매들의 가호 덕분에 나는 곧바로 내 혼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간 개념이 이상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던 그 순간에, 내 눈앞에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다가왔다. 그것은 처음에는 흰빛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마지막으로는 자줏빛으로 달아올랐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 알수없는 물체를 만졌다.

갑자기 모든것이 거꾸로 돌아가면서 나는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지금까지의 여정을 반대 방향으로 겪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감, 엄청난 공포, 그리고 엄청난 쾌락이 느껴지자 내 정신은 비명을 질렀다.

정신의 비명은 내 육신에 전달되어, 나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외침으로서 물질 세계에 터져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벽에 금이 가고 지면이 요동쳤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며 파편이 여기저기에 날아가 박혔다.

나는 갑자기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는 것을 느끼며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져 부딪혔다.

정신을 가누려고 애쓰며 몸을 일으키자, 내 앞에 선 어떤 사람이 보였다.

여왕님이었다. 그분의 얼굴은 경악으로 하얘져 있었다.

"어떻게?" 여왕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그것이었다. "어떻게 한 거냐?"

나는 그제서야 내 손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공포스러운 강제력으로 내 온몸을 옭아매었던 황금 사슬이 산산이 조각나 바닥과 벽에 떨어져 나가 있었다. 금속이 열에 녹으면서 발생한 열기와 증기가 주변에 가득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 주위를 둘러보는 나를 대신해서 여왕님이 상황을 설명하셨다.

"내 족쇄를 끊었구나.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데?" 여왕님은 그분답지 않은 혼란스러운 어투로 말씀하셨다. "이 사슬은 황금빛 언어로도 끊을 수 없어...... 너, 설마 지금......?"

정신이 명료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순간에 자줏빛 궁정의 정수를 보았어요." 나는 말했다. 갑자기 온몸에 한 번도 내가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힘이 순환하는 것이 느껴지고, 정신은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속에서 무언가 빛나는 것을 손을 뻗어 잡았던 것 같아요. 이건...... 자줏빛 언어의 권능이네요."

"말도 안돼." 여왕님은 충격받으신 듯 뒷걸음질치며 말씀하셨다. "자줏빛 언어는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마법사는 내가 배운 것을 빼돌려야 했고, 나는 영겁의 세월을 투자해 간신히 배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자줏빛 언어란 말이다."

"여왕님 말이 맞아요. 어떤 영혼이 자줏빛 언어를 스스로 깨우치려면 영겁의 세월이 필요하죠. 하지만 여왕님이, 아니 우리 모두가 간과했던 사실이 있어요."

나는 여왕님이 그토록 떨고 계시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분은 혼란스러워 하고 계셨다. 아니, 두려워하고 계셨다.

"자줏빛 궁정은 여왕님의 언어를 통해 세워진 왕국, 그 정수에는 여왕님의 명령이 담겨 있죠. 자줏빛 언어로 내리신 그 명령이요. 그 정수가 정화의 샘을 마르지 않게 해 주고, 자줏빛 궁정을 힘과 활력으로 채워 주고...... 생명의 정원에서 여왕님의 백성을 태어나게 해 줘요. 여왕님의 백성인 우리는 처음부터 자줏빛 언어를 우리 영혼 속에 간직한 채로 태어났던 거에요."

여왕님은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러니, 자줏빛 궁정의 모두는 그 언어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어요. 아마 사람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다를 테고, 아무리 재능있는 사람들이라도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자줏빛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겠죠." 나는 마법사가 동굴에서 한 말을 내가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유쾌한 감각을 느꼈다.

갑자기 절그렁거리는 소리가 나며, 여왕님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갑자기 난 소리에 놀란 내 앞에서, 여왕님은 몸의 힘이 풀려버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영원한 여왕이 될 수 없었던 건가?" 여왕님은 모든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울먹이며 말했다. "그 모든 야망, 그 모든 권위는 처음부터 무너질 운명이었나? 말해 다오, 내가 그런 것들 때문에 마법사를 추방하고, 세상을 재앙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내 신부를 죽이려 했던 것이냐?"

나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울고 계시는 여왕님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침내 여왕님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겠다는 내 염원이 성취되었지만, 나는 성취감과 승리감 대신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여왕님을 바라보았다. 잠시후 나는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의 손을 마주잡았다.

"여왕님은 여전히 우리의 여왕님이세요. 단순히 힘과 지혜 때문에 우리가 당신의 백성이 되길 택한 것은 아니었어요."

나는 그분의 손을 내 목으로 가져갔다.

"저는 여왕님의 신부입니다. 여왕님과는 황금빛 언어로 이어져 있고, 흰빛 언어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우리 사이에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또다른 연결이 흐르고 있죠." 나는 내 목을 붙잡고 있는 그 힘없는 두 손의 감촉을 느꼈다. "저는 여왕님을 사랑해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포기할 수 있어요. 다른 신부들도 그럴 테고, 자줏빛 궁정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에요."

나는 그분의 손에 힘을 주었다. 자신의 손이 내 목을 서서히 조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왕님은 고개를 홱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너...... 무슨 짓을?"

"저는 반역자에요, 여왕님." 나는 내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는 것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제가 못난 탓에 도모코로의 거짓말을 들어 버렸어요. 마법사의 말을 듣고 이 지경에 처해 여왕님을 울게 만들었어요. 여왕님이 고통스러워 하실 때마다 제 마음이 찢겨 나갈 것만 같아요. 아까 하시려던 것처럼, 저를 그 두 손으로 처벌해 주세요."

그리고 나는 내 팔에 힘을 주어, 여왕님의 손을 빌려 내 목을 있는 힘껏 졸랐다. 생각했던 것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비록 여왕님께 자줏빛 언어의 진실을 알려드릴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내 잘못으로 여왕님께 고통을 주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고, 그 죄책감을 평생 달고 사느니 그분의 손에 자매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 나았다.

다만, 그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다. 아니, 오래 걸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 내 목을 붙잡고 있었던 그분의 손이 빠져나간 탓이었다.

그분의 팔이 내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여왕님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너는 여전히 멍청하구나." 예전의 위엄찬 어조를 회복하신 여왕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여왕님......"

"너는 어째서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 나는 내 신부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죽음으로 처벌을 대신하는 짓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네 혐의가 희박해진 순간에 내게 처형인의 역할을 하라는 것은 대체 무슨 소리냐?"

"여왕님, 여왕님!"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하구나, 신부여." 여왕님은 엉엉 우는 나를 다정하게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못난 탓에 너를 고생시켰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마."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했던 그 검은 방에서, 나와 여왕님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안도감과 환희에 젖어 함께 울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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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궁정의 경계에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왕님이 오래 전에 세우신 자줏빛 궁정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내 발걸음을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여왕님이 내게 마지막으로 내리신 명령은 단순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사랑하는 신부여, 너는 자줏빛 궁정의 경계 너머로 떠나거라. 언젠가 자줏빛 궁정은 그 여왕의 힘에 준하는, 아니, 그 여왕을 능가하는 권능을 가진 자의 도전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때가 오면, 자줏빛 궁정은 힘든 시대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견뎌낼 것이다. 우리의 힘은 단순히 자줏빛 언어에 깃든 권능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를 더욱 강하게 연결하고 있는 사랑에서도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갈 때 동맹자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깥 세계를 탐험하고 주유하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찾아 함께 싸울 것을 자줏빛 궁정의 주인을 대신하여 제안하거라. 이 임무를 내가 제일 총애하는 신부이자 자줏빛 언어에 가장 근접한 네게 일임하겠다."

나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할 자줏빛 궁정의 마지막 풍경을 뒤로 하고 신부들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통로를 지나 그 바깥으로 향했다.

저 멀리에서 높은 곳에 올라 그 낡은 옷자락을 펄럭거리고 있는 마법사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의 눈이 기쁨과 희망으로 빛나는 것을 이 먼 거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쉬움과 황홀한 추억을 뒤로 하고, 오직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여왕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로 자줏빛 궁정의 경계에서 멀리 떠나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