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신학교를 졸업한 얀붕이는 수습 사제로서 첫 파견지를 배정받았다.

 

수도에서 가장 멀고도 외진, 땅끝에 가까운 산골 마을.

 

마차로 사흘, 배를 타고 하루, 그리고 다시 마차를 갈아탄 뒤 산 아래 작은 마을에 닿는다.

 

거기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검은 사제복을 휘날리며 마을 어귀에 당도한 얀붕이는, 낡은 목조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곳에는 단 한 사람, 마치 신의 시간 속에서 조각된 듯한 수녀가 있었다.

 

그녀는 오래도록 누군가를 헤아리고 있었던 것처럼, 정결한 미소로 그를 맞았다.

 

 

“환영합니다, 사제님. 이 날만을 기약 없이 지새웠습니다.”

 

 

얀순이라는 이름의 수녀는 30가구 남짓한 마을의 유일한 지식인이자 실질적인 중심이었다.

 

얀붕이는 그녀와 함께 새벽엔 기도를 올리고, 오후엔 미사를 집전했다.

 

남는 시간엔 낡은 성당을 손봤고, 주민들의 고민을 듣기도 했다.

 

기울어진 종탑을 고치고, 땅속 깊은 곳에 묻힌 배수관을 파내고, 썩은 기둥을 교체했다.

 

그렇게 마을은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갔다.

 

얀순 수녀와도 가까워졌다.

 

낮에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렸고, 밤이면 그녀와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그녀는 책을 좋아했다.

 

고전 시집과 성서, 수도원에서 써 내려간 편지들.

 

얀붕이는 그녀의 취향을 채워주기 위해 먼 길을 돌아 책을 구해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얀순이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페이지 넘기는 손가락에 유난히 힘이 들어가는 게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서로의 삶을, 꿈을, 어린 시절을 나누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놓칠까 봐 숨을 참으며 귀를 기울였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한 마디라도 묻히진 않을지 두려워하며.

 

같은 성가를 부르고, 같은 꽃에 물을 주고, 같은 별을 바라보고...

 

처음에는 차디찬 유리인형 같았던 그녀가, 어느새 따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얀순 자매님, 저는 비록 수도에서 왔지만, 가끔은 이 마을 사람처럼 느껴져요. 처음부터 이곳에 있어야 했던 것처럼.”

 

 

“그럼 계속 여기 계시면 되겠네요. 제 옆에요...”

 

 

그렇게 세 해가 흘렀다.

 

아이들은 글을 읽게 되었고, 성당 옆에는 커다란 창고가 지어졌으며, 봄마다 축복의 종이 울려 퍼졌다.

 

그 곁에는 언제나 사제와 수녀가 함께 서 있었다.

 

이제 그가 떠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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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아침이었다.

 

그는 평소보다 이르게 성당 본당을 청소하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얀순 자매님... 오늘 밤이 지나면, 저는 수도로 돌아갑니다.”

 

 

빗자루를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얀순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돌아가신다고요?”

 

 

“네, 사실 수습 사제는 임지에서 3년을 보내고 수도로 복귀해야 해요.”

 

 

“그동안 그런 말씀, 한 번도 안 하셨잖아요.”

 

 

“죄송합니다. 너무 바빠서 말할 순서를 놓치고 말았네요.”

 

 

“처음부터 떠날 생각이었군요.”

 

 

“서운한 말씀 마세요. 저는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정식 사제가 되어서요.”

 

 

“그러면서 저와 그 많은 걸 나누셨나요?”



“저희가 지금까지 일군 마을을 보세요. 제가 조금 더 공부하고 돌아오면 이곳은 더욱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요?”

 

 

순식간에 변질된 눈빛.

 

방금 전까지 투명했던 그 눈은, 이제 타락한 성배가 되어 검은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얀붕 사제님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등을 돌려 성당을 빠져나갔다.

 

그날 하루, 얀붕이는 얀순 수녀를 다시 볼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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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되었다.

 

짐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성경책을 가방에 넣으려던 무렵이었다.

 

쿵.

 

쿵.

 

쿵.

 

기숙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대신 문이 저절로 열였다.

 

어둠 속에서 손이 뻗어 나오더니,

 

질끈-

 

거칠고 축축한 천이 입을 틀어막았다.

 

코끝에 스치는 묘한 향기.

 

그의 의식은 거기서 꺼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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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얀붕이는 본당의 제단에 눕혀져 있었다.

 

마리아 상의 부서진 눈에서 흘러내린 이끼 자국이 피눈물처럼 그의 얼굴을 향해 떨어졌다.

 

등 뒤로 묶인 팔과 움직일 수 없는 발목.

 

그리고 수녀복 차림의 얀순이가 그의 위에 올라앉아 있다.

 

 

“얀순 자매님... 이게 무슨...”

 

 

“조용히 하세요, 사제님. 아직 기도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녀의 손끝이 뺨을 더듬었다.

 

치아 사이로 보이는 혀가 뱀처럼 움직이는 순간이 있었다.

 

 

“수도에는 못 가요.”

 

 

“이건... 이건 안 됩니다. 풀어줘요...!”

 

 

얀붕이는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끔찍한 상상이 뇌리를 할퀴자, 온몸에 공포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신께서 보고 계십니다...! 우리 둘 다 천벌을 받는다고요...!”

 

 

그러자 얀순이는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기도하는 자의 경건함으로, 연인의 열정으로, 신을 섬기는 이의 충절로.

 

 

“이제 저의 신은 당신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얀순이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달콤한 전율로 부르르 떨었다.

 

 

“당신이 저를 버리신다면, 저는 그걸 시험이라 믿을 거예요. 끝까지, 끝까지...”

 

 

벽면에 드리운 촛불의 그림자가 불안하게 들썩인다.

 

진홍의 조각들 사이로, 흐느낌과 신음이 맞닿아 비극의 합창을 이루었다.

 

.

.

.

 

산골의 오래된 성당에는 이상한 소문 하나가 떠돈다.

 

밤이 깊어질 때면, 성당의 닫힌 문 너머에서 남자의 탄식과 여자의 기도 소리가 메아리친다고.

 

달이 기울 때까지, 실오라기 같이 단 한 순간도 끊이지 않는다고.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진상을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그건 신의 뜻이라기보단, 신조차 넘지 말라 경계한 일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