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얀순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자자고 해서 침대위에 껴안고 있으면서 그냥 누워있는데, 정말 뜬금없이 튀어나온 한마디.

거기다 '귀찮아.'로 끝나던가 뒤에 '헤어지자'같은 말을 붙이면 딱일 것 같은데 하필 붙인 한마디는 '어쩌지?'.

그 한마디가 앞문장의 악감정을 싹 날려버려서 그녀는 화내지도 못하고 땡그란 눈으로 입만 오물거리고 있었다.


얀붕이는 자기가 말을 꺼내고 긴장하고 있었다.

보통 그가 이런말을 꺼내면 주먹질을 맞고 침대로 끌려가고, 그날의 일정은 그대로 끝!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얀순이가 온몸에 약을 발라둔 다음 회사로 가는 것이다.


물론 그와 그녀의 신장차이가 20cm 가까이 나는 만큼 주먹질은 미약했지만, 온몸에 새겨진 키스마크, 손톱자국과 잇자국을 감추지 못하면 그대로 회사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는게 문제였다.

얀붕이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얀순이를 사랑했다.

그가 이런 말을 꺼내는건 격렬한 밤을 보내고 싶을 때 아니면 진짜로 고민이 될 때였다.


사실 지금은 전자였다.

그래서 얀순이가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긴장하며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얀붕이는 얀순이의 고개를 자신의 품에 파묻은 다음,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 왜그래?"


얀순이가 몰아쉬던 숨을 새근새근하게 가라앉히고, 조금 쉬다가 말했다.


"으응.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서. 네가 그런 말을 꺼내니까... 나도 생각이 많아지네."


그녀는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얀붕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들어줄게. 뭐가 고민이야?"


얀붕이가 고개를 피하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음... 내가 일하는데 문자 보내줘야하는거. 그래, 내가 어느정도 올라오니까 있지. 그... 회의할 때, 폰 못 만질때 내가 바쁘다고 답당 안보내주면. 그렇지, 중요한 연락이 올까봐 진동이라도 켜놔야하는데, 그러다가, 진동이 너무 많이 와서 또 진동을 꺼놓으면, 꺼놨다가 중요한걸 놓친다던가..."


사실 더듬거리는 이유가 얀순이라 이렇게 나올줄 몰라서 변명을 짜내느라 그런 것이다.

하지만 얀순이는 그걸 이야기를 힘겹게 꺼내느라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얀붕이의 이야기가 "요즘은 다들 이해해주는데 회식과 미팅에..."로 이어질 무렵, 얀순이가 말을 끊었다.


"괜찮아. 말 더 안해도 돼."


"그래?"


얀순이가 꼬물꼬물 기어올라와 얀붕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얀붕아. 내가 너보고 일 그만두고 나랑 집에서 계속 지내자고 하면 그럴거야?"


"아니, 그러고 싶지만 안그러지. 아니, 그러면 안되지.

이거 예전에도 얘기했었지?"


"응. 그랬지. 나도 그에해.

있지, 그때 네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해?"


" '지금은 내가 일하느라 나랑 헤어져있는게 괴롭겠지만, 그게 싫다고 일을 그만둬버리면 나중에 더 괴로워진다'고 했지."


"맞아. 나도 네가 없는 집에 남아있는게 힘들고, 당장이라도 너 만나고 싶어서 괴로워.

하지만... 지금 못만나는 만큼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다고 생각해. 나중에 같이 있을 시간을 늘리기 위한 투자. 나도 그렇게 버티고 있거든.

물론 가끔은..."


"가끔?"


"... 자주. 아 진짜, 말 끊지마. 진지한 얘기하는데.

아무튼, 자주 그걸 버티기 힘들어서 너한테 매달리고, 심술을 부리고 하는데... 다 받아줘서 고마워."


"그렇게 외로우면 애완동물이나 키울까?"


"싫어. 너 말고 다른거한테 사랑주기 싫어. 그래서 애완동물도 안키우고 아끼던 인형도 다 버렸잖아."


"그런 이유였구나... 어쩐지."


"그러고보니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생각해보면 너도... 보통은 아니네?"


"그렇지. 나 아니면 누가 널 받아주겠어.

스토커에다 남의 집 몰래 들어와놓고는 당당하게 저녁 먹으라고 말해주는..."


"아! 그만해! 부끄럽게..."


"그러다가 우리집 거실에 네가 쓰러져있는걸 봤을땐 얼마나 놀랬는데."


"그랬다구? 내가?"


"응. 그래서 내가 바로 병원에 데려다줬는데."


"뭐? 그때 정신차렸더니 병원에 있었는데 데려다준게 너라고?"


"병원비도 내줬고."


"... 으윽, 나도 모르는 흑역사가..."


"근데 그때 네가 비몽사몽간에 뭐라고 했는지 알아?"


얀순이가 뭔가 떠오르는게 있는지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내려 그의 품에 파묻었다.


"얀붕씨 밥 해줘야 하는데, 오늘 힘들었을텐데, 이러쿵저러쿵..."


"우으으..."


"그 뒤로 네가 너무 사랑스럽더라.

저 쪼그만 친구가 왜 날 쫓아다니나... 싶다가도 뾸뾸뾸 돌아다니면서 밥 해주고 빨래 해주고 이불 깔아주고 하는걸 떠올리면 금새 웃음이 나오고..."


"후으으..."


"담장이나 전봇대 뒤에 숨는걸 안보이는 척 해주고..."


얀붕이는 이렇게 말하며 이불을 걷고 얀순이 위로 누웠다.


"어?"


"자는 척 하고 누워있으면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내 품에 고개를 비비고, 내 손을 가져가서 자기 머리를 쓰다듬을땐... 얼마나 귀여웠는데."


그리고 품 속에 모으고 있던 얀순이의 양손을 붙잡고 침대에 밀어붙였다.

양 손목을 구속한 채로 고정하니 얀붕이가 얀순이를 덮치는 모양새가 나왔다.


"다... 다 알고... 있었어?"


"응."


얀붕이의 부풀어오른 사랑이 얀순이의 배꼽 아래에 닿았다.


"앗... 오늘은 안하기로 했..."


얀붕이가 얀순이의 입술을 틀어막아 말을 끊었다.

시계를 살폈다. 오후 10시경. 이정도면 시간이면 내일 걱정은 없겠지.


얀붕이는 입술을 뗀 후, 몸을 얀순이에게 점점 붙이면서 그녀의 귓가로 고개를 옮기며 속삭였다.


"가끔은 나도... 이러고 싶거든.

네 잘못이야. 너무 사랑스러운 잘못."


"앗...♡"


얀순이는 두시간동안 계속된 공세에 정신을 잃었고, 얀붕이는 그녀를 들어 씻기고 말린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요 근래 가장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다음날, 얀붕이가 잠에서 깼을 땐 옆자리에 얀순이가 엎어져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보통은 얀순이가 얀붕이보다 일찍 일어나서 식사와 출근준비를 해주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얀붕이는 얀순이가 어디 아픈가 싶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댔다.

그제야 얀순이가 얀붕이가 깬걸 눈치채고 가늘고 떨리면서 공기가 새는 목소리로 말했다.


"얀붕아하... 조은 아치임..."


"괜찮아? 어디 아파?"


"나... 몬움직이게써... 허리가..."


얀붕이가 떨리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얀순이를 다시 찬찬히 둘러봤다.

그 모습이 마치 헬스 PT 처음 받은 다음날 같았다.

얀붕이는 피식하고 웃으며 얀순이를 쓰다듬어주고 일어났다.


"나 혼자 할테니 괜찮아. 누워있어."


"미아내..."


얀붕이가 출근하기 전 방에 들러 말했다.


"나 갈게."


침대 위 이불더미에서 팔이 튀어나와 손을 흔들었다.


이후 상당량의 사랑을 주입받은 얀순이는 일주일 간 얌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