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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녀왔습니…”

 

현관에 들어온 얀붕이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현관 앞에 얀붕이를 맞이하는 한 소녀가 있었다. 눈웃음 지으면 애교살이 돋보이는 소녀. 잔잔한 바람에도 찰랑거리는 검은 스트레이트 롱의 소녀. 핏 좋은 교복을 입으니 은근 위력이 발군인 소녀. 매력적으로 웃고 있는 듯 하나 어딘가 이상해보였다.

 

주춤거리며 서있는 그녀는 자기 몸 하나 주체하지 못하는 듯 덜덜 떨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과도를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문이 덜컹거리며 닫히고 자동으로 문이 잠겼다. 잠깐의 침묵. 소녀는 울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얀붕아…”

 

“김하나. 우리 집은 어떻게 열고 들어왔어?”

 

“…오늘은 좀 늦었네?”

 

“내가 평소에 집 오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

 

“우리가 얼마나 오래 같이 알았는데. 근데 있잖아. 점심시간에… 같이 얘기한 그 여자 누구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

 

“나한테는!”

 

하나는 비명 섞인 고함과 함께 과도를 얀붕이에게 들이밀었다. 주춤한 얀붕이는 한발자국 뒷걸음질했다.

 

“나한테는 너 하나밖에 없는데… 나만 비참하게 혼자 내버려두고 다른 여자랑 놀아나는 거야?”

 

“김하나. 그런 거 아냐. 그 여자는…”

 

“변명하지 마!”

 

“하나야…”

 

“오늘 그 여자한테 편지를 받는 걸 봤어!”

 

하나는 울컥했는지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잠시 훌쩍이며 눈물을 닦은 그녀는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얀붕아. 우리 유치원 때부터 계속 함께였잖아. 지금까진 내가 너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네 행복을 위해서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네가 지금까지 그 여자랑 잘 되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축복했어. 아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잘 안되더라? 그 여자에게만 미소 짓는 네 얼굴을 생각하면 온 몸의 살점이 찢겨나가는 것 같아!”

 

하나는 얀붕이에게 한걸음씩 내딛었다. 그와 반대로 얀붕이는 한걸음씩 뒤로 밀려났다. 얼마 못가 얀붕이의 등이 문 뒤에 닿았다. 얀붕이는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돌렸지만, 사슬로 묶여 문고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문고리는 나도 못 열게 막아놨어. 헤헤. 그래도 이제 끝이니까 딱히 상관없잖아 그치?”

 

하나는 얀붕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그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과도의 날을 서서히 얀붕이의 목으로 가져갔다. 얀붕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 얀붕아. 아픔은 한순간이어도, 우리 죽어서는 영원히 행복할 테니까♡.”

 

마침내 칼날이 얀붕이의 목에 닿고, 하나는 얀붕이의 귓가에 그의 최후를 속삭였다.

 

“얀붕아, 사랑해♡”

 

하나는 칼을 얀붕이의 동맥 깊숙이 꽂아….

 

 

 

 

 

 

 

….넣지 못했다.

 

“지랄은 다 끝났냐?”

 

“….에? 하지만…. 어떻게?”

 

“잘 봐라 이년아.”

 

얀붕이는 하나의 칼을 뺏어 칼날 끝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그러자 칼날은 손잡이 안으로 허무할 만큼 쉽게 들어갔다. 하나는 믿기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가짜 칼이었다는 말이야?”

 

“어제 네 년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서 미리 바꿔놨다. 여기까진 생각 못했겠지?”

 

얀붕이는 칼날을 몇 번 누르고는 옆으로 던졌다. 하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ㄷ….됐어. 그 칼이 아니어도….”

 

“됐고 이거나 읽어 봐.”

 

얀붕이는 가방을 열고 하나에게 봉투를 던졌다. 갑작스럽게 품으로 날아온 봉투에 하나는 팔을 허우적대었다.

 

“얀붕아 이건….”

 

“네가 말한 편지니까 한 번 읽어보라고.”

 

하나는 떨리는 손으로 겨우 봉투의 가장자리를 뜯고 안의 종이를 펼쳤다. 그것을 본 하나의 안색은 새파래졌다.

 

“저번주에 본 중간고사 성적표다 인마. 성적이 아무리 개판이더라도 성적표는 갖고 가야할 것 아냐. 점수 평균이 18점인 년아.

 

하나는 귀까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엣, 하지만, 어떻게”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뭘 어쨌기에 너희 반 반장이 나한테까지 와서 성적표 건네주라고 하냐? 반장 얼굴도 기억 못하는 붕어니까 그럴 만 한가?”

 

얀붕이는 한숨을 푹 쉬고 가방 안에서 온갖 참고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 네 두뇌증진을 위해서 내가 서점까지 가서 책 사왔으니까, 나 옷만 갈아입고 같이 공부하자.”

 

공부소리가 나오자마자 하나는 어색하게 웃고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 앗. 얀붕아. 나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된 것 같아. 안녕.”

 

그리고는 얀붕이를 지나쳐 현관을 열려고 문고리를 돌렸다. 덜컹이는 사슬 소리. 하나는 옆에서 비릿하게 웃는 얀붕이를 애써 무시하며 몇 번 더 문고리를 돌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얀붕이는 입이 귀에 걸리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하나야. 아무래도 수리기사가 오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리고는 하나의 손의 휴대폰을 빼앗아 높이 쳐들었다. 하나는 휴대폰을 잡으려 얀붕이의 품 안에서 깡충깡충 뛰었다. 그러나 몇 번을 뛰어도 얀붕이의 팔꿈치에 겨우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우린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 하나야.”

 

얀붕이의 말에 하나는 어버버거리며 굳어버렸다.

마침내 참고서가 그녀의 손에 쥐어지고, 얀붕이는 하나의 귓가에 그녀의 최후를 속삭였다.

 

“하나야.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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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얀붕이들도 공부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