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실. 이전까지 사령관이 비밀의 방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그 인간이 더치걸의 가죽으로 꾸며 놓았던 그 방. 그리고 바뀐 사령관이 열심히 며칠 동안 청소했던 방. 그 청소 덕분에 이제는 완전 방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들은 이곳을 일종의 감옥 같은 곳으로 활용했다. 그런 지저분한 기억이 있는 장소를 감금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의식이 이전으로 돌아온 그 짐승 같은 존재를 가둬두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인간이 밤에 잘 때 밖에 들리면 시끄럽다고 열심히 방음 처리를 해둔 덕분에 지금 이 인간이 지르는 비명도 밖으로 들리지 않고 있다. 더치걸들이 죽으면 괴롭히는 맛이 안 난다고 열심히 모아두었던 오리진 더스트와 안정제들 덕분에 온갖 실험을 겪으면서 의식은 살아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 정도면 이 인간도 더치걸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려나?

 

 

“이번엔… 대충… 5% 올려서 쏴보면 되려나?”


 

“…!!!!!!!!!!!!!!!읍으ㅂ------_!!!!!!!!!!!!!!!!!!!!!”

 

“흥~흥~ 아직 좀 약~하네~?

우리 귀여운 씨발 새끼?

여동생의 취향을 어쩜 이리 잘 알고 있을까~? 

어? 대답해봐. 개새끼야.”

 


닥터는 방 안에 흐르는 감미로운 비명 소리를 즐기며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기 자극과 뇌파 사이의 정밀한 상관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각종 장비들을 어디선가 챙겨와서는 콧노래를 부르며 전도성 젤을 사령관의 몸에 덕지덕지 바르고, 기묘한 과학자적 센스가 돋보이는 빨간 버튼을 눌러가며 일정 주기로 전기 자극을 주고 있다. 아마 닥터가 이곳에 와서 경험하는 가장 즐거운 시간일 것이다.

 


“봐봐, 저 새끼한테 명령권이 없으니까 이렇게 편해요.

내가 그 동안 했던 모든 삽질보다 그 사람이 만들고 간 명령권 이행 프로토콜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건 인정해줘야겠네.

그 사람 꽤 똑똑할지도 모르겠다, 언니?”

 

 

 

"어… 그…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나저나, 닥터? 지금 이게 몇 번째 실험이지..?”

 


"음... 157회. 전기 자극 실험으로 뇌파 변화의 유의미한 실험값를 측정하려면 한참 더 해야 돼.

안 그러면 데이터가 의미가 없어.”

 



콧노래를 부르는 것은 딱 혼자 있는 시간에서만. 닥터가 요상하게 지키는 철칙이다. 콘챠가 물어보자 닥터는 실험의 즐거움으로 절로 나오는 하이톤의 목소리를 180도 바꾸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감정 기복이 심한 건지, 아니면 감정 조절을 잘하는 건지, 콘챠도 이제는 헷갈릴 정도였다.



 

"혹시… 주인님의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겠...지?”

 

 

걱정 가득한 눈빛의 콘챠. 닥터는 그러는 콘챠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몇 번을 설명했는지 속으로 열심히 세보고 있었다.

 


"후우…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 바보 아니거든?

저 인간 육체 상태는 지금 정상이고, 쓸데 없이 튼튼한 몸 때문에 상처도 잘 안나.

게다가 여기 있는 오리진 더스트를 사용하면 그마저도 다 치료 가능하고.

중요한 건 저 새끼 뇌인데, 그건 내 기기로 매 초마다 스캔하면서 실험 진행 중이거든?

내가 바보도 아니고, 언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돌아올 유일한 몸을 죽게 놔둘까 봐?”

 

"그… 그래…

닥터가 알아서 잘 하겠지… 하하.”

 



콘챠는 멋쩍게 웃으면 머리를 긁었다. 대충 100번이 넘어가고 나서는 콘챠도 실험 횟수 세기를 포기했다. 경호대장은 10번도 못 버티고 나가버렸다. 주인님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보기 힘들다나 뭐라나. 닥터가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유독 고집스러운 것이 리리스였다.



 

“그래서 결과는 좀 어떤 것 같아?”

 

"말 걸지마. 나 머리 아프단 말이야.

그게 정 궁금하면…”




 

"그건! 내가! 설명해줄게! 콘챠 언니!”

 


"아.... 저기 왔네. 저,저 쓸데없이 명랑한 새끼.

...

...

… 보면 볼수록 신기한 새끼야. 

어떻게 저런 얘가 나랑 같은 기종일 수 있는 거지?

아무튼 쟤 왔으니까 쟤한테 설명 듣거나 말거나 해. 멍청해 보이긴 하는데 똑똑하긴 하더라.”

 

 

전임 닥터가 쾡하지만 희열에 찬 눈으로 실실 거리며 전기 자극 실험을 158회 째 반복하고 있을 때, 꼭 이 닥터만큼 똑똑하고 작은 바이오로이드가 비밀의 방에 들어왔다. 전임 닥터만큼 조그맣고, 전임 닥터만큼 괴상한 머리핀을 좋아하며, 전임 닥터만큼 수상한 로봇팔을 뒤에 매달고 헐렁한 실험복을 입은 채 주황색 눈빛을 이리저리 굴리기를 좋아하는 바이오로이드. 새롭게 만든 닥터였다.

 


"… 정말. 닥터를 두 명이나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니까.

그리고 이렇게까지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것도...”

 


"흐음~? 뭐, 나야 언니들이랑 지내본 경험이 별로 없고,

이 나랑 똑같이 생긴 나사 빠진 애랑은 태어나서 보내온 시간의 양 자체가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모듈 상의 특징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내 감정 모듈은 설계에서....”

 

 

"그만그만. 그거면 충분해. 

콘챠 언니가 또 바보 같이 니 설명 들어주다가 지난 번처럼 쓰러지겠다.

말 좀 짧게 하라고 몇 번을 말해. 좀 짧게 설명하면 어디가 아프냐?”

 


"칫. 내가 보고서로 보기는 했다만

어떻게 과학자라는 애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에 대한 기쁨이 없을 수가 있지? 그치 않아? 콘챠 언니?”

 

"그.... 나한테 물어봐도 난 그냥 메이드일 뿐이라...”

 

 

“기쁨은 개뿔.

말 길어지는 건 그냥 쓸데 없는 거야.”

 

"하여간… 로망이란 게 없어.

나도 신기해. 어떻게 이런 애가 나랑 같은 기종인건지...

그리고! 그것도 그래. 어떻게 저렇게 즐거운 얼굴로 오빠를 괴롭…”

 

순간 닥터가 닥터를 쳐다보았다. 어찌나 무섭게 쳐다보던지 새로운 닥터는 자신의 기종이 저렇게까지 섬뜩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을 정도다.

 

“야. 내가 씨발, 그 새끼 말은 꺼내지 말라고 했지.

나 정도의 대가리로 보고서를 2번이나 처읽었으면 아가리 밖으로 내밀 말이랑 아닌 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지 않겠냐?

나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새로운 닥터는 영락없는 13살짜리 꼬마였지만, 여기 있는 닥터는 그렇지 못했다. 온갖 지옥을 경험하고 마지막에 타이탄 자폭으로 사령관 암살까지 시도했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면 베테랑인 닥터였다. 그랬기에 둘의 싸움은 항상 전임 닥터의 승리로 돌아갔다.

 

 

 

“…콘챠 언니… 나 왜 저렇게 무서워 진거야...?”

 


“…언니도 딱히 해줄 말이 없네...”


 

"… 당분간은 쟤랑 말 섞지 말아야겠다…”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아무튼 하려던 설명부터 해줄 수 있겠니?”

 



"…아! 그래. 설명부터 해줘야지. 

지금 실험은 저기 있는 나쁜 오빠의 뇌파를 잠재우기 위한 실험이야.

잠재운다는 애매한 표현이 싫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니들의 이해를 위해서는 참아야지 뭐.”

 

 

 

콘챠는 이런 새로운 닥터의 말투를 보면서 새삼 전임 닥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순수한 닥터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걸렸다.

 

 



"아무튼! 우리가 여기로 나쁜 오빠를 데리고 온 지 대충… 한 일주일 정도 지났나?

그런데도 지금까지 착한 오빠의 뇌파는 없어지지 않고 있어.

그래서 우리도 조금 과감한 방향으로 실험을 바꿔본 거야. 희망이 보였다고나 할까?

 

원래 우리는 착한 오빠의 뇌파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변인들을 찾는 것에 집중했지.

하다 보니까 대뇌 에너지 사용량, 소장 내 포도당 전환 비율, 노출된 광량 등등 많이 있긴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몇 가지 조건만 맞춰주면 착한 오빠의 뇌파가 거의 영구적으로 검출되는 걸 확인했어.

그 착한 오빠라는 사람도 꽤 의지력이 있는 사람인가 봐?

 

그러니 다음 단계로 안 넘어갈 수가 없겠지! 두 번째가 뇌파 소멸 방법 찾기였어.

물론! 소멸시키는 건 나쁜 오빠의 뇌파였고.

근데 이게 좀 위험했던 게, 이상하게 두 오빠의 뇌파가 불가분 관계로 묶여있었어.

여기 방에 가둬둔 이후로 단 한 번도 뇌파가 100:0 상황이 온 적이 없던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지.

그래서 지금 당장은 뇌파 소멸 방법을 찾기가 힘들 것 같아.

물론, 시간이랑 자원만 충분하면 그런 거 쯤이야 찾을 수 있겠지만.

... 원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고.

 

아무튼! 지금 하는 연구는 뇌파의 자연 안정화 방향성 찾기야.

원래 모든 자연 현상은 안정화되는 단계가 있단 말이야?

두 오빠의 뇌파 균형 역시 그런 것 같았어.

그래서 처음에 했던 관찰 결과를 보니까 나쁜 오빠가 우세한 비율로 흐르더라고.

(그… 자세히 말하면 83.47:16.53으로 균형을 가지는 것 같더라고. 근데 이러고 설명하면 쟤가 또 뭐라뭐라 할 거니까 조심히 말해준거야!)

…. 흠흠! … 쟤 아무것도 못 들었지…?

 

뭐, 아무튼. 그 안정화 비율을 인위적으로 조정시키는 중이야.

다행이 이건 성공적이야. 착한 오빠의 100:0도 가능할 거 같고.”

 

 

 

설명을 들은 콘챠는 정신이 멍해졌다. 이 새로운 닥터는 설명을 하다 보면 스스로의 흥을 이기지 못하고 너무 빨리 말을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 아… 그… 그렇구나…

너무 빨리 말해줘 잘 모르겠는데.... 짧게 요약해주면 안 될까..?”

 

“거 봐. 내가 길게 말하면 쓸데 없다고 했지?

설명의 미학은 무슨...”

 

"야! 아니거든? 내가 좀만 천천히 말했으면 언니도 다 알아들었거든?

…쟤는 귀만 밝아가지고… 에휴… 착한 오빠는 나를 좀 이해해주면 좋겠는데...”

 

 

착한 오빠. 콘챠는 그것이 주인님을 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주인님이라면 이런 아이라도 기쁘게 받아주시겠지. 주인님을 보지 못한 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연인 같이 새삼 그리웠다.

 


"...그래. 주인님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거야...”

 

"그러겠지? 그래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튼! 정리하자면 실험 잘 되고 있다. 이 정도만 알고 있어.

착한 오빠도 곧 만날 수 있을거고!

나머지는 우리 담당이니까 걱정하지도 말고. 그치?”

 

"그래… 고마워. 닥터. 

경호대장도 알면 좋아해줄 거야.”

 

"경호대장? 리리스 언니?

그 언니는 뭐 하느라 오늘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조용해?

원래 하루도 안 빠지고 오던 것 같더니만…”

 

“아마 오늘은 지휘관들이랑 회의하느라 못 올거야…

닥터가 열심히 해줘서 큰 고비는 넘겼지만 이래도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깐 말이야.”

 

“흠… 내가 있는데 뭔 걱정들이 그리도 많으신지~

아무튼! 이왕 말해줄 거면 언니가 가서 말해줘!

그 언니는 너무 무서운 거 같아… 여기 올 때마다 사람 하나 잡아 먹을 눈빛이란 말이지...”

 


“원래 그런 분이야. 닥터가 이해해 줘.

… 주인님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거든.

그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까.”

 


"그래…? 난 그런 걸 경험 못해봐서 모르겠다.

나중에 착한 오빠랑 만나면 한 번 물어나 봐야겠어.

... ...

혹시 그 사랑이라는 게 내가 아는 그 사랑인가...?

그럼 나중에 착한 오빠가 깨어나면 리리스 언니를 어떻게, 얼마나 사랑해준 건지 아주 철저히 물어봐주겠어… 헤헤...”

 

 

 

“…너무 이상한 생각하지마.

주인님은 그런 건 이상할 정도로 꾹 참고 계시던 분이니까.

아무튼, 언니도 이제 가볼게. 방해해서 미안했어.”

 

"그래? 알았어~ 가서 좀 쉬어~~

음료수는 잘 마실게!”

 


콘챠는 말을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섰다. 간만에 만난 순수한 아이의 모습.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그리웠던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곧 자신의 주인님을 다시 뵐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차 올랐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그 때 만졌던 주인님의 손도, 얼굴도, 가슴도, 다시 전부 만져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걸었던 희망이 그 기대에 걸맞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성취감. 이 함선에서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런 결과를 만들어준 닥터들이, 또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워주고 있는 자신의 주인님이 그립고 사랑스러웠다.

 




"… 바닐라는 잘 있을까?

말이라도 해줬어야 했는데...”

 

 

바닐라는 사령관이 바뀌게 된 이후부터 다시 미칠 듯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음성 모듈을 고쳤던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 같다. 만에 하나라도 그 짐승 같던 인간이 그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자신을 본다면, 그 때 자신이 말했던 내용들을 하나라도 기억한다면, 단순히 죽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처음으로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 사과도 해주고, 농담도 함께 해주었던 누구보다 이상적인 사람이, 자신이 드디어 찾은 자신의 주인님이 그렇게 떠나버렸다는 것에 절망했다. 콘챠가 몇 번이나 상황을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영영 떠나보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긴 했지만, 그 설명을 듣기 전에는 정말 죽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떠돌아 다녔다. 밧줄로 목을 매달다가 콘챠가 간신히 발견하기도 했고,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무언가에 심하게 중독되어 닥터가 살려주기도 했다. 

 

그랬던 모든 순간들이 충격이었지만, 유독 콘챠의 기억에 남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자살 시도를 하고 나서 콘챠에 품에 안겨 엉엉 울던 그녀가 했었던 말이다.

 



"내가.... 내가 그 사람한테 바보라고 했다고…

그 말만 안 했어도… 그 말만 안 했어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콘챠가 기억하는 바닐라는 자신이 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기억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부 잊어버리면 잊었지, 이렇게 말 한 마디에 집착하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뱉는 날카로운 말들을 전부 기억하고 살면 스트레스로 죽어버릴 것이었다. 그랬기에 바닐라는 스스로가 뱉는 불수의적인 말들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러나 유독 자신이 마지막에 그 사람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는 집착이 심했다. 조용히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할 때도, 자살 시도를 하며 남긴 유서에도, 극적으로 다시 살아났을 때 언니인 자신에게 한 첫 마디조차도 전부 똑같았다. 그 때 바보라고 말하지 말 걸 그랬다. 내 입이 그 때만큼 저주스러웠던 적이 없다. 바보. 바보. 바보. 유독 그 바보라는 말이 후회스러웠나 보다.

 

“그 아이도 이제 좀 편해질 때가 됐는데…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괜찮아 지겠지.”

 

막연한 기대로 애써 긴장감을 감추는 콘챠였다. 그 아이도 주인님만 오신다면 전부 해결될 것이다.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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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들의 회의실. 이전과 같이 5명의 고위 개체들이 이번에는 부관들까지 대동해서 모여있다. 페더가 얻은 영상 자료와 비밀의 방이었던 곳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비명.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동안 잠잠했던 역겨움과 소름 끼치는 신경의 울부짖음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머리 속에 감지되는 그 불쾌한 존재의 뇌파. 왜 이것이 다시 한 번 나타난 것인지 궁금했기에 그녀들은 자리를 마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전과 다른 점은 리리스가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관도 없이 그녀 혼자 말이다.

 

그럼에도 경호대장은 그 위엄과 압도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회의라기 보다는 전투에 참여하는 용사 같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부관들은 물론, 지휘관들마저도 그런 그녀를 보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긴 침묵과 호흡이 교차되며 이어졌고, 참다 못한 마리가 입을 열었다.

 

 

 

“... 계속 이렇게 분위기만 잡고 있기도 뭐하군.

경호대장. 일단 자의로 찾아와 주었다는 점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 당신 감사 따위를 받으려고 온 게 아닙니다. 스틸라인 대장.

 


“뭐가 됐든 일단 고맙군. 

아직 여기에 있는 자들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말이네.”

 


“상황 파악도 못하는 게 그렇게 당당하게 할 소립니까?

하! 누가 들으면 자랑이라도 하는 줄 알겠군요.”

 


“… 그래. 우리가 없는 사이에 발생한 일이니 우리의 잘못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또 각하와 유독 친밀했던 그대이니, 그대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만,

이렇게 의미 없는 논쟁만 반복하는 것은 경호대장에게도 시간 낭비 아닌가?”

 

“말만 번지르르… 역겹기 그지 없군요.”

 


리리스는 지휘관들이 둘러 앉고 있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는 다리를 꼬아 거만한 자세로 대답했다. 그러나 지휘관들의 눈에는 그것이 거만으로만 비춰질 수는 없었다. 저런 여유에 걸맞는 위치와 실력, 또 명분까지 있으니 그녀의 거만은 자신감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주인님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지금 자리에서 당신들을 전부 쏴 죽이고 나갔을 거에요.”

 

 

탁자 위에 올린 발을 깍닥거리며 우아한 목소리로 지휘관들을 비꼬는 리리스. 마치 정말로 지휘관 5명 정도는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가 있었기에, 이에 불쾌함을 느낀 한 지휘관이 주먹으로 테이블 위를 금이 갈 정도로 세게 쳤다. 긴 금발의 암사자. 레오나였다. 



“듣자듣자 하니. 내가 그렇게도 우습게 보여?

대가리에 총알 필요해? 경호대장?”

 


“어머, 부관의 뒤에 숨어서 권총이나 깔짝깔작 쏘는 발할라의 대장님께서 무슨 일로 그리 화가 나셨을까.

설마 그 빈약한 실력으로 제게 총알 하나라도 스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레오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사자의 울음소리에 오금이 저리듯이, 그 자리에 있던 부관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 글쎄? 내가 뒤에서 깔짝깔짝 권총이나 쏘면서 발키라가 같이 저격이라도 해주면,

못 할 건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래? 발키리?”

 


“… 가라 앉히세요. 대장님.

지금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그래요. 그게 현명하죠. 레오나 대장.

부관 하나는 제법 잘 두셨군요.

안 그랬으면 오늘 직접 발할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어요.”

 

 

레오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권총이 철컥, 장전 소리를 방 안에 울렸고, 그에 어울리지 않은 그녀의 거대한 안테나가 시끄럽게 웅웅대기 시작했가. 여왕의 자비라는 이명을 가진 그녀의 배틀 커멘드 프레임의 위용은 실로 웅장했다. 하지만 레오나 역시 자신이 경호대장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키리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레오나는 그저 자존심의 마지노선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발키리가 직접 나서서 그녀의 대장을 말렸고, 유독 발키리에게만 약한 레오나는 자신의 분노를 뒤로 미루었다. 그제서야 레오나는 이성적으로 방금 자신의 판단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낼 수 있었고,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흰색 겉옷을 망토처럼 걸치고 검은색의 무광 권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리를 꼬고 가슴 밑에 도도하게 팔짱을 끼는 행위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준다.

 


 

“… 저희 대장님의 발언이 무례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경호대장도 그쯤으로 그만둬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

... 그리고, 그 무례한 태도도 말씀 드리지 않았지만 심히 거슬립니다.”

 


“… 거슬린다라… 그게 당신네들 입에서 나올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장난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죠. 그럼 됐나요? 

그… 누구였더라… 발키리 씨?”


 

“… 이름은 기억해주시는 군요.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니 좋군요. 저희 하치코들이 배울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아이들은 원채 낯가림이 없어서...

아무튼, 당신들의 요청이 아니었더라고 오긴 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명목 상으로는 당신들이 저를 부른 것이니 왜 그런 건지 알아나 보죠.

칸 대장? 당신이었나요? 날 부른 게?”

 

 

부른 게? 자신의 대장을 고작 그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탈론 페더는 꽤 불쾌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을 힐끗 쳐다보고 고개를 젖는 칸의 모습 때문에라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참아야 했다.

 


“맞다. 일단은 내가 지휘관들을 대표해서 부른 것이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태도는 좀 바꿔주면 좋겠네.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린 것이 옳은 자세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네만?”

 


“… 예, 예. 그리도 불편하시다면 자세 좀 바꿔드리죠.”


 

리리스는 테이블에서 다리를 내렸다. 그럼에도 고개를 세우고 손가락을 틱틱 대면서 신경 쓰이는 소음을 만드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여전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걸핏 하면 혼자서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 그 어떤 논쟁에서도 명분이 있다는 자신감. 이 무례한 리리스의 자세는 그 어떠한 물리적, 논리적 공격이 들어와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그녀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태도였기에 그녀의 거만함은 올곧고 튼튼했다.

 


“그래. 뭐가 궁금한 거죠?

지난 번에는 나를 빼고 잘도 회의를 여셨더니 이번엔 뭐가 아쉬워서 고맙게도 나를 불러준 거냔 말입니다.”


 

“… 지난 회의는 기밀이었을 텐데.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모르겠군. 경호대장.”

 


“우리 컴패니언을 무시하시면 곤란하죠.

당신들이 온갖 곳에서 촬영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우리가 몰랐을 거라 생각하나요?

제 동생들이 있을 때에 그런 ‘비밀 회의’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 그 정도까지 알고 있었나.

이건 예상 외로군. 안 그런가 페더?”

 

“…애? 아! 네… 넵! 그… 그렇습….니다?”


 

“... 그래도 예전에 그 인간이 있었을 때 당신들이 준 도움을 잊은 바는 아니기에 지금까지 모른 척 해드렸습니다.

다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다음은 어떻게 할지 저도 모르겠군요. 칸 대장.”

 


“그거 고맙군. 나중에 길에서 경호대장의 동생들을 만나면 뭐라도 줘야겠어.

아무튼, 우리가 부른 것은 다른 것이 아니네.

그저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뿐이지. 

우리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인간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네.”

 

 

 

리리스는 긴 침묵을 이어갔다. 책상을 치고 있던 손가락의 속도는 더욱 빨라져 갔고, 미간은 한숨을 쉴수록 주름이 졌다. 분명 주인님이라면 이런 년들도 모두 좋아해주시겠지. 이런 쓸모 없고, 고집만 쌘 년들도 주인님은 전부 품어주셨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초인적인 힘으로 그녀들을 향한 자신의 분노를 억눌렀다.

 


 

“… 결론만 말해주죠.

지금 그 인간이 여기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전부 당신들이고요.”

 

 

“… 그런가.”

 

“의외로 놀라진 않는 군요? 

칸, 당신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저기 가만히 앉아 있는 아스널 대장도 그럴 줄은 예상 못했는데 말이죠.

하다 못해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따지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리리스는 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아스널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반박의 기미라도 보일 줄 알았던 저 호탕한 여자가 저리도 침울한 표정을 지을 줄은 예상 못했으니 말이다. 올곧게 피고 있는 허리와, 보는 사람마저 당당하게 하는 듬직한 자세. 하지만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아스널이 리리스는 건방져 보였다. 응당 받아야 할 비판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면목 없다. 경호대장.”


 

“면목? 당신들이 면목만 없는 줄 아나 보죠?

당신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군대는, 부대는, 화력은 정작 필요할 때 없다는 걸 모르나요?

당신들이 없는 건 면목따위가 아니라 실력이에요! 실력!

주인님께서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 순간을 알아내는 실력!!”

 

 


책상을 쾅 치면서 소리치는 리리스. 책상의 일부분이 부숴져 버렸다. 몇몇 부관들은 그걸 보고 놀라 섬찟했지만, 아스널은 여전히 조용한 자세로 우울해 하고 있었다. 



"보는 내가 다 답답합니다! 아스널 대장.

뭐가 그리 잘났길래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건지 이유라도 말해보시죠!"



"... 내가 이상한 거였나? 경호대장?

난 오히려 그대들이 더 이상한 것 같다만. 어떻게 그렇게 멀쩡해보일 수 있는 거지?"



"하?! 이제는 오히려 내가 이상한 겁니까?

주인님을 버리고 잘도 밖에 나돌아 다닌 당신들보다 내가 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령관이 돌아왔다면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뜻이었을 뿐이다.

... 캐노니어가 다른 자매들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런 우리도 그 인간이 돌아온다면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한데, 어떻게 경호대장도 그리 당당할 수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아직도 내가 답답한가? 경호대장?"



"... 그래요. 답답하네요. 정말 미칠 듯이 답답합니다.

당신들에게는 주인님이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니 무시했겠지만, 주인님께서는 이미 전부 대비책을 마련해주셨으니 당신의 걱정 따윈 알바 아니네요.

당신들은 정말 주인님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기는 한 겁니까?

주인님이 고작 당신들 같은 년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해주신건지 알기는 하냔 말입니다!"



리리스는 주먹으로 테이블 위를 부숴질 정도로 세게 쳤다. 레오나가 쳤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게 때리면서, 테이블 위에 커다란 금이 갔다. 주인님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말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쉽게 흥분하는 리리스였기에, 지휘관들은 앞으로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지휘관들의 태도마저도 리리스는 주인님에 대한 반역이라 보고 있었다.



 

“그래요! 그렇게 원하니 나도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겠죠?

당신들이 그 잘난 부대 시찰을 하는 동안 대규모 철충 부대가 쳐들어왔어요!

여기 있는 레이더망으로는 차마 다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 철충이 왔단 말이요? 그래서 각하가…”

 

“닥치고 듣기나 하세요! 마리 대장.

그 때 당신들만 제대로 있었어도 이 사단이 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신들이 있었으면 나와 내 동생들이 주인님을 곁에서 끝까지 지켰을 테니까!!

 

아스널 준장? 당신이 그렇게 자랑하는 그 잘난 화력이 있었으면 주인님이 저렇게 됐을까요?

마리 대장? 그 많은 당신의 부하들이 하다 못해 총알받이라도 했다면 주인님이 저렇게 됐을까요?

레오나 대장? 당신의 그 잘난 커멘드 프레임과 부관이 멀리서 철충들이 오는 걸 미리 알려 줬다면?

칸 대장? 그 호드의 잘난 속도로 저 멀리서부터 철충들을 막았다면?

홍련 작전관? 당신네 팀이 주인님의 곁에서 주인님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주인님이 저 꼴이 되었을까요? 하아?!!

당신들이 있었다면 주인님께서 저렇게 잠들어 버리셨을까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그 비루한 몸뚱아리라도 던져서 주인님을 구해야하는 자들이!

그 가증스러운 입으로 주인님께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

정작 주인님이 당신들을 필요로 할 때 어디 있었냔 말이냐고요!!!!!”

 

 

 

리리스는 말 끝마다 책상을 주먹으로 쾅쾅 쳤다. 주인님이 이상한 철충에 의해 쓰러지고도 온 힘을 다해, 무엇보다 자신들을 위해 저 악랄한 인간에게 저항하고 있으시다는 것을 생각할수록 이곳에 모인 무능한 년들을 향한 분노가 치솟았다. 스스로의 분노를 참지 못해 책상을 때린 주먹이 한 번이 되고, 두 번이 되어가면서 책상의 십 분의 일 가량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나름 튼튼한 재질로 만들었을 책상이 유리조각 마냥 산산이 부숴졌다.

 

 

“… 잠드셨다니 그게 무슨…”

 


“지금! 그게!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당신들이! 뭔!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는 거냐고요!!”

 

 

그녀는 참다 참다 기어코 자신의 맘바를 장전했다. 로자 아줄이 웅웅대며 최대 출력의 역장을 전개하느라 푸른색의 기묘한 방어 홀로그램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순간, 모든 부관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장으로 그녀를 노렸지만, 그러는 동시에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지 멀쩡하게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호대장이 스스로 분노를 참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맘바를 들고는 조준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조준했는지 그녀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 어차피 이 방에 있는 모든 년들은 전부 가증스러운 무능함을 가진 역겨운 존재였을 뿐이니까. 그렇게 분노가 리리스의 눈 앞을 가리고 있을 때 아스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아스널은 스스로 맘바를 자신의 머리에 대었다. 갈색 머리가 흩날리며 갈색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 처량한 흔들림이 리리스의 분노를 헤치고 그녀의 눈 앞을 밝혔다. 대장부의 무력함이 리리스에게 분노보다 호기심이 앞서게 만든 것이다.

 

 

“… 이게 뭐 하는 짓이죠? 아스널 준장?”

 

“뭐, 보는 대로다. 쏘고 싶으면 쏴도 된다.

어차피 그 인간이 다시 돌아온 거라면 나도 별로 살고 싶지는 않다.”

 

 


“… 정말 당신들은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군요.

지금 주인님이 어떤 상태에 빠지신 건지도,

그리고 주인님이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도.”

 

 

“… 할 말이 없군.”

 


“그래야죠! 주인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당신들이 할 말 따윈 없으니까요.”

 


리리스는 맘바의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얻었다. 그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미세한 떨림이 생겼고, 그것을 아스널은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 … 정말이지.

주인님은 이딴 년들이 뭐가 그리도 좋으시다는 건지.”

 



맘바를 탁자에 놓았다. 역장도 해제 되었다. 리리스의 이성이 돌아왔다는 신호다. 그리고 지휘관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성질 사나운 리리스 모델이 이렇게 스스로 분노를 참는 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생각만으로도 경호대장이 자의로 분을 삭히게 만들 수 있는 그 주인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마저 생겼을 정도다.


 

“살려주는 건가. 고맙군. 경호대장.”

 

“고맙단 소리는 내가 아니라 주인님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하셔야 할 겁니다.

아스널 준장.

...

그리고, 설명을 듣고 싶어서 나를 불렀다면 잘못 부른 겁니다. 

나보다는 닥터가 더 잘 알고 있으니 그 아이에게라도 가서 물어보던가요.

성질 사나운 애도 있고, 안 그런 애도 있으니 원하는 대로 물어보면 될 겁니다.”

 

 

닥터가 2명? 지휘관들은 짐짓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멀뚱멀뚱 리리스를 쳐다보던 그녀들에게 리리스는 마지막으로 말을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스널, 당신은 미안해하는 줄은 아는 모양이군요.

그 보답으로 좋은 소식 하나 알려주죠.

주인님께서는 훌륭하시게도 이런 명령권 이행 시나리오를 미리 계획하고 계셨죠.

그러니 주인님께 고마워 해야 할 겁니다. 주인님 덕분에 당신들이 지금도 별일 없이 지낼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주인님께서는 곧 돌아오실 겁니다. 닥터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되겠지요.”

 

 


리리스가 주인으로 모시는 자. 자신들이 영상으로나마 보았던 그 상냥한 인간이 이 역겨운 뇌파를 뚫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지휘관들을 가질 수 있었다. 직접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에게 있을 지 모를 직감이란 것이 말해주었다. 그만이 이곳에 평화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리리스는 그대로 회의실 밖을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한 가지 당부라도 해주고 싶어 문 앞에 섰다. 고개만 살짝 돌려 지휘관들을 한 쪽 눈으로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복도의 등불이 후광이 되어 지휘관들은 리리스의 섬뜩한 눈동자만 간신히 볼 수 있었다.


 

“… 주인님은 지금도 열심히 싸워주고 계시니 당신들도 주인님께 감사 드려야 할 겁니다.

특히 레오나 대장. 당신은 말이죠. 당신 부관이 그 인간 밑에서 무슨 짓을 당했는지는 저도 잘 아니까요.

발키리? 주인님께서 돌아오시지 못하시는 날엔 그 개조된 눈깔에서 피눈물을 쏟게 될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방문은 닫혔다. 부관들은 그녀의 마지막 말이 풍기는 오묘한 압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어째서 제대로 만나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들이 가지는 사령관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다. 한 호흡 한 호흡마다 수많은 생각이 거쳐갔고, 결국 지휘관들은 모두 한 가지를 생각해냈다.

 

‘… 나중에라도 사령관과 한 번 제대로 만나봐야겠다.’

 

그녀들 모두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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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원래 여기서 더 쓰고 깔끔하게 끝내려 했는데 다 넣으려니까 분량이 26000자가 넘어가면서 미쳐 돌아가니까 여기서 일단 끊음

이제 방학도 아니어서 전처럼 마음대로 못 쓰고 끝내버릴까 걱정이 많음.

눈 뜨면 여기 말고 라오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


전에 대충 원작 스토리가 어캐 진행되나 보고 있었는데 원작 추천수가 ㅎㄷㄷ하더라

난 원작에서 아이디어 얻어서 쓰고 있는데 그거보다 추천이 적으니까 왠지 잘 못 쓰고 있는 기분도 들고 해서

이게 개강 후 우울증이랑 맞물려서 갑자기 쓰기가 싫어지고 있슴.


그래도 쓰긴 하겠지만 이왕이면 재밌게 쓰면 좋겠다. 이거 보는 라붕이들아 창작물에 개추 많이 좀 해주라.

쓸데 없는 소리만 길어지는데 암튼 여기에다가 말 안하면 어디에 말하겠나 해서 중얼중얼 해봐슴. 걍 무시해도 댐

그냥 재밌게만 봐주라


바닐라하고 앨리스를 할까? 아니면 스토리 진행을 할까?

원하는 거 말해주면 그거대로 해야겠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