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시리즈물로 연재 할 생각은 없었고 단편으로 끝내려 했습니다만 여러 설정을 구상하다 보니 어느정도 내용이 늘어나서.. 다음편도 나올거 같습니다. 실망하셨으면 죄송해요.


3편은 내용을 이미 구상해서 바로 쓸 수 있을거 같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전에 봤던 어떤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동창회에 가는 인간은 딱 두 종류다.


하나는 돈 자랑하려고 나오는 놈


다른 하나는 돈 꿀 데가 없어서 나오는 놈"


난 어느쪽도 아니다.


그저 보고싶은 사람이 있을뿐이다.


*


막상 참가하겠다고 메일을 보내니 뭔가 실수한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내가 벌인짓은 지금의 내가 봐도 이해가 안간다.


얀순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고백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귄게 하필이면 여자관계가 쓰레기같다고 소문 난 일진이었을 뿐이다.


내가 얀순이의 연애사에 관해 참견할 이유도, 일진을 미친듯이 팰 이유도.. 무엇하나 없었다.


그저 질투였다.


"내가 가면 분위기가 싸해지려나.."


이상하게 추웠던 겨울 날, 난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난 현관 밖에서 신발에 묻은 눈을 대충 털어내고 집안에 들어갔다.


옷을 대충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캔맥주 두캔을 꺼냈다.


식탁을 꺼내서 어제 사다놓은 오징어다리와 쥐포를 세팅해놓고 TV를 틀었다.


캔맥주를 조금 흔들고 뚜껑을 땄다.


입구에서 부터 조금씩 넘치는 거품을 입으로 막고 그대로 들이켰다.


그렇게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할 때 휴대폰에서 익숙한 음이 들렸다.


난 맥주를 내려놓고 식탁옆에 있던 휴대폰에 손을 뻗었다.


"누구냐.. 나의 해피타임을 방해하는건"


얀덕선배였다.


히키코모리 시절 날 오타쿠로 만든 주범이자 중학교 시절 유일한 친구.



*


사실 내가 중학생일 때 좋은 성적때문에 반 애들이 나에게 꽤 접근했었지만, 얀순이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애들은 나를 조금씩 피하기 시작했고 난 자연스레 아싸의 길로 접어들었다.


난 오히려 혼자가 편했다.


나에게는 얀순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얀순이는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고 나는 점점 고독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같았다.


나에게 다가와주는 사람들을 왜 피했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중2병이었을까.


점점 외로워졌던 나는 반에 있는게 불편해서 점심시간마다 종종 체육관 창고로 갔다.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관을 자주 들락날락 거리다 보니 잠겨있는 체육관에 몰래 들어가는 꼼수도 발견했다.


꼼수를 알고있다면 사용하지 않는게 아깝지.


그렇게 언제나처럼 창고에 들어가서 자려고 문을 연 그 순간, 창고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끔씩 나 처럼 이런 명당을 알고 오는 사람이 있다.


보통은 먼저온 사람을 위해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 날, 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온 사람이 누군지 알고싶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난 거기서 얀덕선배를 처음 만났다.


체육매트에 대자로 뻗어 자고있던 얀덕선배를 보고 난 폭소했다.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이돌 뺨치게 귀여운 여자애가 매트위에서 배를 까놓고 대자로 뻗어 코골이까지 했었다.


이걸 어떻게 참아.


나의 웃음소리에 깬 얀덕선배는 웃고있던 나를 보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다음날은 자고있던 나를 보며 얀덕선배가 깔깔거렸다.







우리 둘은 그렇게 체육관 창고안에서 조금씩 친해져갔다.  








친해지면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갔다.


제일 놀랐던건 얀덕선배가 나보다 2살 연상이였던 사실.


키는 151도 안되보였고 지나치게 귀여운 얼굴상에 난 틀림없이 나와 동갑인 줄 알았다.



*

얀덕선배도 나도 주변에 친구 한 명 없었던 아싸라 서로 친해지는 건 의외로 쉬웠다.


어느 날 난 분위기를 타 얀덕선배에게 물었다.


"이렇게 귀엽게 생겼는데 왜 아싸처럼 지내요"


"어..? 내가 귀..귀여워?"


솔직히 제일 궁금했던 거였다.


이정도 외모면 반에서 가만히 안냅둘텐데.


"그.. 설명하면 긴데.. 2학년 때 나 씹덕인거 들켜서.."


"그 후에.. 애들이 놀렸는데.. 원래부터 소심해서 그.."


"그만! 더 말안해도 되요.. 내가 미안해요."










*

그렇게 얀덕선배와 계속해서 체육창고에서 취미를 공유하면서 연을 쌓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베프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사실 그런 얀덕선배와도 사이가 틀어질뻔한 사건이 있었다.


선배가 졸업식을 하는 날 이었다.


선배는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내 교실에 달려와 나의 손을 붙잡고 날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 때 애들의 반응이 가관이었지.


나도 애들의 반응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물론 이유는 달랐다.


난 얀덕선배가 얼마나 소심한 사람인지 알고있었고 그 만큼 남의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란걸 알고 있었으니까.


다른반으로 달려와 이성의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라는건 얀덕선배에 한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 이렇게 손을 잡고 달리고 있으니 마치 여동생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가는 오빠의 모습처럼 보이겠지.










얀덕선배는 그렇게 내 손을 붙잡고 한참을 달리다가 체육관 뒷편에서 멈췄다.


"하아..하아.."


"그.. 얀덕선배 오늘 졸업식 아니었나요?"


"하아.. 이미.. 하아.. 끝났어요.. 후배님."


얀덕선배는 그렇게 한참동안 숨을 헐떡이다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날 쳐다봤다.


귀엽다. 고양이같아.


"저기 후배님."


"네. 선배님."


"제가 여기 왜 불러냈는지.. 맞춰볼래요..?"


"짐작이 가는게 없어요 선배님."


선배님의 얼굴이 빨개졌다.


"후배님.. 나요..... 나...."


얀덕선배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 무언가 결심한듯 다시 고개를 들고 고사리같은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았다.


"후배님.. 나 후배님이.. 너무 좋아요."


"어떡하죠.. 저 지금 이상하죠..? 나요.. 후배님과 보냈던 시간들이 너무 즐겁고 편해서.."


"졸업해서 여길 떠나도.. 후배님이랑 계속해서 이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후배님 얼굴을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려요."


"후배님은 이런 저는.. 싫은가요..?"


여기서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 믿는다.








*

선배님은 친구라도 괜찮으니 평소처럼 지내자며 울음을 꾹 참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이후엔 디스코드를 하거나 카톡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물론  그 이후로 오프라인에서 만난적은 없다. 어색하기만 했을테니.


내가 그 사건을 일으키고 히키코모리가 됐을때도 선배님에게 그 일을 말하지는 않았다.


선배님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그랬다.


그러고보니 그 때 선배님이 우울할 때는 애니를 보라며 몇개 추천해줬었다, 미연시와 함께.


분명 미래일기랑..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이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뉴비한테 엄청 하드한 걸 추천 해줬었잖아 선배님.


*


"여보세요?"


"흐앗..! 저.. 언제 후배님의 여보가 된건가요..?"


"재미없어요."


"그런가요..?"


"그나저나 선배님 목소리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저랑 사귀면 더 자주 들을 수 있다구요..?"


"요즘엔 그런식으로 절 자주 놀리시네요. 제가 알던 얀덕선배가 맞나 싶네요."


"Yes, I am! 후배님이 좋아하는 얀덕선배랍니다."


"죠죠드립이라니.. 선배님.."


"좋잖아요? 후배님이 고백할때까지 죠죠드립을 멈추지 않을거예요."


"그만."


"네."


*


"후배님 이번에 중학교 동창회 초대.. 받았나요?"


"받긴했는데... 이거 설마 학년불문하고 다 부른건가?"


"그런 듯 하네요."


"선배님은 가실건가요?"


"설마요. 그런데 안가는 거 알면서"


"역시 그렇겠죠. 선배님 답네요."


"후배님은 가실건가요? 물론 저도 알면서 한 질문이랍니다~"


"갑니다."


뭔가 부딫힌 소리가 난다.


"선배님? 여보세요?"


"아.. 핸드폰을 떨어트려서.."


"그렇게 놀랄 일 인가요!"


"놀란다구요! 평생 아싸로 지내자던 약속은 언제 잊어버린거죠!"


"그런 약속 안했잖아요. 아무튼 전 갑니다."


"저기.. 왜 동창회에 가는건지 물어도 될까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혹시 당신이 좋아했던 그 여자애인가요..?"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선배님의 귀여운 목소리에서 뭔지 모를 공포가 느껴졌다.


난 온몸에 돋는 소름을 견디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제 개한테는 마음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예요."


"그런가요! 안심했어요!"


평소의 선배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가끔보면 얀덕선배.. 꽤 무서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리 귀여운 후배님을 지켜야겠는걸요.."


"네?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도 이번 동창회는 참석해야겠네요."


"아까는 안간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마음이 변했어요. 후배님의 에스코트.. 기대해도 될까요..?"


*


동창회 당일, 난 공원 가로등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눈이 좀 많이 내리는데.. 꼭 오늘이어야 했을까.


그렇게 입으로 입김을 내쉬며 시간을 때우던 중 어디선가 눈을 뽀득하고 밟는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귀여운 초등학생이 캔커피를 들고 날 쳐다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아. 선배다.'


난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선배.. 키가 조금도 자라지 않았어.


내가 지금 182니까... 눈대중으로 재보면 151정도 되려나.


근데 외모는 미쳤다.


너무 귀엽다.


존나 귀엽다.


가슴도 언제 저렇게..


아니 그보다 키는 그대로인데 외모는 왜 발전한겁니까..


난 선배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조금 심술궂은 마음으로 선배를 놀렸다.


난 살짝 허리를 숙여 선배와 눈을 마주쳤다.


"부모님은 어디계시니?"


선배가 내 얼굴에 뜨거운 캔 커피를 들이댔다.


"아 뜨거!"


"선배를 놀리면 안되죠."


선배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난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선배. 선배가 너무 귀여워서 그랬어요."


"나참..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말아요. 그나저나 언제 이렇게 훈남이 되버렸나요?"


"선배야말로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말아요. 기쁘지만"


난 그렇게 선배와 동창회가 열린 가게까지 걷기 시작했다.


"후배님 이렇게나 듬직해져선.. 히히.."


선배가 내 팔을 붙잡고 팔짱을 꼈다.


"선배님?"


"싫어요?"


싫을리가 없다. 


내심 좋아하고있다.


"잡을거면 꽉 잡아주세요. 넘어지니까요."


선배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선배님?"


"후배님 그.. 앞에보고 걸어요.."


얼굴 빨개졌네..









*

"대충 이쯤인데.. 아 여기 같은데요?"


우린 꽤 큰 고깃집 앞에 섰다.


"꽤 크네요."


"회비로 낸 돈이 얼마인데요.. 하하"


난 쓴웃음을 지었다.


"선배님은 2층이라고 하셨죠?"


"음..그게.. 딱히 상관없지 않나요? 중학교 때 친구도 없었고. 분명 가봤자 혼자일 거예요. 그럴거면 후배님을 따라가는게 더 맘편할거 같은데.."


얀덕선배가 초롱거리는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난 확신할 수 있다.


이정도 외모의 여자가 당신을 이런식으로 올려본다면.. 당신도 열이면 열 뭐든 들어줄거다.


"저도 친구 없으니까 선배님이 계속 있어주면 든든할거 같아요."


"고백인가요?"


"고백입니다"


"으아앗?! 아니.. 저 그.. 아직 마음의 준비가.."


"농담이예요."


"...복수인가요?"


"복수입니다."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린 엘레베이터를 탔다.


솔직히 긴장된다.


나도 마음속으로는 알고있다. 


아무도 날 환영하지 않을거라는 걸.


긴장된다.


엘레베이터로 한층 한층 올라갈 때마다 욱신대는 심장이 날 괴롭게 한다.


... 사과부터다. 다른 애들에게 사과부터하자.


아니야. 괜히 사과했다 분위기가 나빠지면 어쩌지.


어짜피 내가 등장하면 분위기가 가라앉을텐데.. 굳이..


어쩌지.. 어쩌면 좋을까.











그 때 선배님이 손을 꼭 잡아줬다.


"긴장하지마요 후배님. 내가 옆에 있어요."












선배님의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다.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 괜찮아. 내 옆엔 선배님이 있다.


엘레베이터가 4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3편부턴 수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