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만이 수줍게 속삭이는 고요한 밤.


“……하아. ……하아.”


반쯤 풀어헤친 옷. 

약간 멍하고 힘없는 표정. 

알 수 없는 열망이 어린 눈동자.


“……후햐. ……하.”


……철썩! ……철썩! ……철썩!


삐걱거리는 경첩 소리와 함께 한 소녀가 달뜬 숨결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느릿느릿한 고개를 움직여 소녀의 얼굴을 훑었다.


샛노란 눈동자가 눈에 밟혔다.


눈꼬리는 올올히 올라가 있어서 도도하고 자존심이 높아보였다.


밤하늘을 그러모아 베를 짠 것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이 눈앞에 찰랑거렸다. 머리카락은 끈적끈적한 액체에 더럽혀진 채 흐트러졌다. 눅눅한 땀과 이상야릇한 액체로 범벅된 얼굴. 


소녀는 은은하게 웃으며 나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어때?”


고개를 천천히 내려뜨려 나의 목을 살짝 깨문다.


“……하읍. ……기분 좋아?”


까슬까슬한 혓바닥으로 서너 번 훑다가 이내 잘근잘근 짓씹는다.


간질간질하고 따끔한 고통이 목 언저리에서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의 반응을 보며 즐겁게 미소 짓는 소녀는 두 팔로 나를 껴안고 귓가에 속삭인다.


“……응? 말 좀 해봐.”

“…….”


간헐적으로 숨을 헐떡이며 허리를 위 아래로 튕기면서 은근한 눈초리로 묻는다.


“……기분 좋지 않아?”

“…….”


비틀린 열망이 느껴지는 소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두드렸고 사타구니 언저리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쾌락에 머릿속은 점점 새하얗게 변모해져갔다.


“……후아. ……하. ……어때? 응? 말해봐. 읏.”


귓가에 바람을 훅 불며 더욱 거칠게 몰아붙인다.


천천히 허리를 들어 올렸다가 단번에 방아를 찧는다.


눅진눅진한 물기가 얽히고,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분분하다.


“으윽.”


머릿속은 점점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조금씩 흐릿흐릿해져가는 의식의 끈을 꽉 붙잡은 채 소녀의 얼굴을 흘끗 훔쳐보았다.


소녀의 샛노란 눈동자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먹이를 바라보는 맹금류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어두컴컴한 안방 속 소녀의 눈동자만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소녀는 원피스 끝자락을 입에 물고 슬며시 배를 들어낸 채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달빛이 녹아든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들여다보았다.


“좀 더 할 수 있지?”

“윽.”


블랙아웃(Blackout).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소녀는 쿡쿡 웃고 있었다.

 

 

/001.

 

  

“아. 일어났어?” 


낭낭한 목소리가 귓전에 아른거렸다.


조심스레 목소리의 출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작달막한 가슴께와 젖살도 채 빠지지 않는 풋풋한 소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소녀는 먹물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견갑골 아래까지 내려뜨린 채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별안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당신?”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스리슬쩍 시선을 피한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저나 몸은 어때? 괜찮아? 어젯밤에 너무 무리를 시킨 게 아닐까 싶은데.”

“괜찮아. 별 문제 없어.”

“그래? 그러면 거실로 나와. 아침 먹어야지.”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방 바깥을 나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 번 흘겨본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흐음.”


쓱 하고 주변을 훑었다.


침대에 얼룩이 져 있었다. 


어젯밤 침대 위에서 열락에 사로 잡혔다. 


침대의 경첩소리와 함께 달뜬 신흠소리가 떠올랐다. 


침대가 망가질 정도로 거칠게 움직였다. 소녀는 조그마한 몸으로 나를…….


“아.”

 

정신 차리자.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축축한 액체와 끈적한 무언가가 흩뿌려져 있었다.


나중에 빨래하기 귀찮겠다는 생각과 함께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덧 이부자리 정리를 끝맺은 나는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는데 거실 식탁에 먹음직스러운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스프, 빵, 샐러드, 과일. 꽤 괜찮은 아침 식사였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걸음 또 한걸음. 천천히 식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것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멍멍!”

“응?”


개 한 마리가 있다.

 

금색 털이 복슬복슬한 개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며 짖었다. 

 

아주 그냥 꼬리라도 흔들 기세였던지라 나는 퍽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개를 바라보았다. 뭐야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데려온 거지? 어제 밤 이후에 데려온 건가? 

 

나는 의아한 얼굴로 개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옆까지 다다른 소녀가 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소녀는 퇴폐적으로 미소 지으며 귀엽다는 듯이 개의 머리를 느릿느릿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개는 소녀의 손길을 느끼며 기분 좋게 그르렁거렸다. 소녀는 작게 웃으며 말한다.


“새벽에 주워왔어.”

“주워왔다고?”

“응. 그나저나 꽤 귀엽지 않아?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데려왔는데 어때?”

“아, 그래?”


그녀는 태연하게 강아지를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이제 아침을 먹을까?”

“멍, 멍멍!”

“얘도 참.”

“왈! 멍멍!”


개는 네 발로 방바닥을 돌아다니며 멍멍 짖었다. 밥 먹을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개는 소녀의 다리에 뺨을 비볐다. 


소녀는 살포시 웃으며 개 밥그릇에 고깃덩어리를 얹어 개한테 주었다. 


개는 터럭을 늘어뜨린 채 고깃덩어리를 짓씹었다.


“어때? 귀엽지? 옳지. 그래. 많이 먹으렴.”

“그래. 그러네.”

“당신 오늘따라 기운이 없는 거 같네. 아. 어젯밤 때문에 그래?”

“아니. 후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만 하자.”

“뭘?”


소녀는 웃음이 짙어졌다.


알면서 되묻는 그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내 표정이 점점 굳어지자 소녀는 알겠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래, 알겠어. 그만할게. 그러니까 당신. 화 풀어.”


나는 소녀의 말을 끝으로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멍, 멍멍!”


나의 시선 끝자락에 개 한 마리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것은 개가 아니다.


개처럼 짖으며 개처럼 고기를 씹는 인간이다.


“멍! 멍멍! 왈왈!”


상당히 예쁜 여자였다.


이십대 초 중반쯤 되었을까.


견갑골까지 내려뜨린 황금빛 머리카락과 걀쭉하게 뻗어있는 속눈썹.


170쯤 되어 보이는 늘씬한 체구와 한손에 다 잡을 수 없을 만큼 출렁거리는 젖가슴.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유려한 곡선과 크게 벌어져 있는 골반과 엉덩이.


 요 근래 봤던 여자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지금 이성을 잃은 채 네 발로 서서 고깃덩어리를 뜯어먹고 있을 뿐.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하고 정신을 소실한 채 개처럼 삶을 향유하고 있다. 


여자는 정신없이 고기를 물어뜯고 맛보고 즐겼다. 


한 마리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과연 저것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자는 한 마리의 금수가 되어 있었다. 그래. 개가 되었다.

 

이 소녀 때문에.

 

“한 번 잡아서 교육 좀 시켰어. 괜찮지 않아?”

“교육? 교육이라. 그것 참 대단한 교육이네.”


인간을 하룻밤 사이에 개처럼 만드는 교육?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교육 시켰는지 궁금해?”

“아니. 궁금하지 않으니까 말하지 마.”

“그래? 궁금해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쉽네 라며 중얼거리는 소녀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벌써 몇 년 동안 같이 살고 있었지만 소녀의 생각을 공감할 수도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겠지.


나와 소녀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니까.


“좋아. 슬슬 끝내 볼까?”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고 튕기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멍? 으, 으꺄아아아, 악?!”


펑!


파육(破肉)음과 함께 금발 여자의 머리통이 발기발기 찢겨졌다.


으깨진 수박처럼 엉망진창으로 헤집어져 불그스름한 고기 덩어리를 사방팔방 흩뿌렸다.


핏물을 용솟음쳐 허공을 맴돌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이곳저곳을 붉은 색칠했다.


머리를 잃은 몸뚱어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팔을 허우적, 허우적 거리다가 이내 핏물만을 꿀렁 게워내며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


일렬의 상황을 멀뚱히 지켜보던 나는 별안간에 고개를 돌렸다.


거실은 온통 핏물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와 소녀 그리고 음식에는 핏방울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돌연 소녀가 말한다.


“이제 밥 먹자.”


태연스럽게 읊조리는 소녀의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이 꼴을 보고 밥이 넘어갈 것 같냐?


하지만 나와 다르게 소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숟가락으로 베이컨 감자 스프를 한 숟갈 펐다.


곧바로 호밀빵에 숟가락으로 스프를 얹어 한입 베어 물고 우물거렸다.


후식으로 얼음 동동 띄워서 시원한 술까지 유리컵에 담아 홀짝거리기까지.


아주 그냥 맛나게 잘 먹네.


문뜩 소녀가 나를 쳐다보며 의문을 표한다.



“음? 당신. 왜 안 먹어?”

“저 꼴을 보고 잘도 먹겠다. 그치?”

“응? 아하하. 재밌네. 당신이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오늘부터 신경 쓰기로 했어. 그러니까 좀 치워 줘.”


소녀는 재밌다는 듯 한 번 웃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여자의 시체에서 거뭇한 무언가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여자의 그림자였다. 


먹처럼 거뭇하고 암막처럼 칙칙한 암영이 여자의 팔, 다리를 덮쳤다. 징그럽게 꿈틀꿈틀 요동치는 거뭇한 그림자가 여자의 몸 곳곳을 집어 삼켰다. 


그 모습은 마치 거뭇한 늪에 빠진 여자의 시체를 연상케 했다.


여자의 온몸이 점점 그림자 속으로 매몰되어 갔다. 느릿느릿하지만 확실하게 빨려 들어가는 여자의 시체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즐겁게 고기 덩어리를 짓씹고 있었던 여자였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었다.


어느새 여자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그걸로 끝.


여자의 모습을 두 번 다시 찾아 볼 수 없었다.


“…….”


여자의 시체, 육편 쪼가리, 핏물 등등.


처음부터 존재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 정막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곧, 소녀가 입술을 달싹인다.


“아.”


짙게 웃는다.


“그래도 조금 재밌었어. 안 그래. 당신?”

“재미없어.”


한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한 후 내뱉은 말 치고는 허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소녀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윤리 따위 중요지 않으니까.


가지고 놀기 재미가 있느냐, 재미가 없느냐의 차이일 뿐.


“좋아. 그러면 식사를 마저 해볼까?”

“…….”

“응? 왜 그래. 당신? 설마 이 정도로 기분이 상한 거야?”

"……아니. 묘하게 낯이 익는 것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기억에서 사라질 정도라면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예의 표정과 함께 나를 우아하게 쳐다보고 있다.


나 역시 가볍게 소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래. 밥이나 먹자.”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한 후 스프를 한 숟가락 펐다.


“스프 맛있네.”

“그렇지? 이번에 내가 힘 좀 썼거든.”


오랫동안 소녀와 함께 지냈던 탓에 이미 못 볼 거 볼 거 다 봤던지라 저 정도 충격 받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을 장난감처럼 취급하는 그녀의 행동에 생리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뭐. 내가 불평해봐야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소녀의 이름은 마리아 M 파프니르. 

 

인간의 가죽을 뒤집은 채 인간인 척 웃고 떠드는 한 마리의 드래곤이다.

 

그리고 나는 용의 둥지에 붙잡힌 채 고군분투하는 불쌍한 인간일 뿐이고.



*(후기)



이 소설 제가 2016년도 쯤에 썼던 건데 우연찮게 한글파일 뒤적거리다가 찾아냈습니다.


옛날에 썼던 내용 + 살점 조금 덧붙여서 올려 봤었요. 겨우겨우 5천자 채웠네요.


평소보다 분량이 적지만 아무튼 이제는 조금씩 분량을 줄여볼 생각입니다. 저번에 썼던 게 3만자가 넘었거든요. 역시 5천자 언저리가 적당하겠죠?


여하튼 그러면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