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미안]


[조금 늦을 거 같아]


[먼저 먹어]


짧은 연락.


그의 카톡을 보니, 내가 그를 속이던 시절, 그에게 보냈던 카톡이 생각나면서 다시금 괴로운 망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그이가 예리씨와 함께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은 진득하게 머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역겹게도, 내가 저질렀던 일을 남편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마치, 그의 문자가 내가 보냈던 그 문자와 같다는 것처럼. 그런 문자를 보내고, 예전에 헤어진 여자와 다시 만나 애정을 불태우고 있을 게 분명하다는 것처럼.



"...여자로 생각 안한다는 거야?"


"그렇지, 뭐."



그때 남편의 목소리가 흔들렸던 건, 내 착각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식어가는 냄비에 씌운 랩 위에 눈물이 몇방울 떨어졌다.


그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 상처를... 낫게 해주고 싶다, 아니, 적어도... 상처를 곪게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를 잃고 싶지도 않다.


억지로 눈물을 거칠게 닦아가며, 나는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냄비를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빨리 와]


[기다릴게 오빠]



+



갑작스런 연락은 예리로부터 왔다.


결혼하고 나서 비교적 최근까지 술자리는 절대로 피해왔었다. 가정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내가 술을 꺼려했던 것은 한번 음주를 시작한다면 그걸 자제할 자신이 없어져서였다. 그녀의 불륜을 깨달은 이후, 자제심을 유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상태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면, 결국엔 알콜 중독자 신세가 될 것이 뻔했다.


"세훈아!"


"먼저 와 있었네."


"얼마 안 됐어, 아... 피부 까칠해진 것 좀 봐... 진짜..."


"바쁘다 보니."


내 얼굴을 쓰다듬는 예리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예전만큼이나 작은 손이었다. 여전히 손은 가늘고 곧았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 거야? 맨날 배달시켜 먹는 건 아니고?"


"내 식습관 잘 알잖아. 만들어서라도 먹는 거."


"그렇다면 다행인데... "


예리는 여전히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그런 상냥함에 나는 그녀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졌었다. 


"그래도 다시 한국와서 너 보니까 좋네."


예전처럼 밝은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니 학생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의 미소를 아직도 간직한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리저리 바쁜 삶을 살며 그때의 추억과 감성에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의 감성과 열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게, 이게 얼마만이지, 한 4~5년만인가?"


"5년. 그리고 3개월."


마지막으로 본 게 너 졸업하기 전년 여름 방학 시작할 때였으니까, 그녀는 덧붙였다. 


"기억력도 좋아요."


"그때 누구씨가 잘 다녀오라고 공항까지 마중 나와줘서 더 기억이 잘나는 거 같은데?"


그녀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말했다.


"솔직히 그때 안 가주면 누구씨가 공항에서 내 이름 목 놓아 부르면서 대성통곡할 거라고 해서 갔는데, 괜히 갔나 싶네."


"야! 내가 언제 그랬어!"


얼굴이 빨개진 채 주먹으로 테이블을 통통치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진심으로 웃어본 게 몇개월 만인지도 잊은 채로.



+



[빨리 와]


[기다릴게 오빠]



아내의 카톡을 읽은 건 자리가 파하고도 10분이 지나서였다.



[지금 들어가고 있어]



어째선지, 몇년만인지 그녀가 나를 다시 '오빠'라고 불렀다는 걸 깨달은 건, 현관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치고 있을 때였다.



+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거실에서 나왔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늘은 회식하고 온 거야?"


술 냄새를 맡은 건지,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불안감이 보였다. 결혼하고나서는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돌아왔으니,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예리랑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 때 친구랑 만나서 잠깐."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그녀의 어깨는 조금 떨고 있었다. 일부러 그녀의 머리를 헝클이며 나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남겼다. 그녀의 떨림이 진정되는 걸 확인하고 나는 헝클어뜨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어주며 들어갔다.


"빨리 씻고 들어갈게, 먼저 자고 있어."


"오빠..."


옷걸이에 재킷을 걸기 무섭게 그녀는 나를 침대로 끌고 갔다. 예전부터 여린 체구에 맞지 않게 그녀는 힘이 셌다. 


"갑자기?"


"오늘은... "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허리 위로 올라타며 거칠게 입을 맞추며 입고있던 커다란 티셔츠를 벗었다. 어느 순간 그녀에게 빼앗겼던 티셔츠였지만 수개월간 버려졌던 이 티셔츠를 그녀가 다시 입은 건 최근의 일이었다. 


"오늘은... 자기 싫어."


그녀의 울먹이는 빨간 얼굴에 나는 저항하지 못했다.



+



남편의 목에 손을 얹고 그를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희미하게 나던 다른 사람의 향수 냄새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에게 조르고, 달라붙어서, 몸으로 그의 무게를 한참 동안 느끼고, 녹초가 될만큼 허덕이고 나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줘,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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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쫌 많이 짧다... 재활치료 과정이라고 생각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