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손이 얼어가는 감각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저 얀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얀진이는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날 보며 손을 살짝 흔들었다.


얀덕선배가 손을 흔드는 얀진이를 보고 뒤를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얀덕선배가 활짝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에 대답하듯 짧게 손을 흔들고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난 얀덕선배와 얀진이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걸어갔다.


"후배님.. 추웠죠?"


얀덕선배는 빨개진 내 손을 잡아주었다.


"조금 춥긴했는데 괜찮아요."


난 자연스럽게 얀덕선배 옆에 앉았다.


이젠 무의식적으로 얀덕선배의 곁이 편하다고 느끼는거 같다.


무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던 얀진이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얀덕선배는 얀진이에게 보란듯이 미소를 지었다.


뭘까.. 이 묘한 신경전은.


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얀진이지..? 나 얀붕이인데 기억나?"


"모습이 많이 변했네 얀붕아."


"응. 너도 뭔가 많이 변한것같네."


얀진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가 바뀐건 겉 모습 뿐이다.


난 아직도 철없는 중학생시절 그대로다.


아무리 외견이 어른이 되었다한들 아직 미숙하다.


내 자신은 그걸 자각하고 있음에도 정작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늘 동창회 안나오던데.. 무슨 일 있었어?"


"바빴을 뿐이야. 딱히 별일은 없었어."


"아직 동창회 안끝났는데 지금이라도 가는건 어때?"


"사양하도록 할게."


"아.. 그래."


얀진이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저기.. 얀덕선배랑은 아는 사이야?"


"아니."


"어? 그럼 둘이 왜 같이 앉아있는거야?"


"같은 얀중 출신이니까 인사드릴 겸 합석을 요청했어" 


"아 응. 이해했어."


얀진이는 다시 컵을 들고 커피를 마셨다.


얀진이의 말투가 많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말투보다 더 달라진건 얀진이의 분위기였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귀티가 난다.


지금의 얀진이를 표현하자면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부잣집 아가씨겠지.


이런애가.. 중학교 때 그런 편지를 써준건가?


사람은 바뀌니까 얀진이도 그동안 많이 변한거겠지.


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얀덕선배를 힐끗 쳐다봤다.


얀덕선배는 행복한 얼굴로 도넛을 야금야금 먹고있었다.


뭔가 작은동물이 연상되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쾅!


"윽.."


누군가 다리를 찼다.


난 아픈 다리를 붙잡고 얀진이를 쳐다봤다. 


얀진이는 아랑곳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얀덕선배가 조금 놀란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방금 무슨소리죠? 깜짝 놀랐네요."


"아..아니예요."


"아! 그보다 후배님, 같이 도넛을 고르러 가죠."


"네?"


"제가 사주기로 했잖아요. 도넛!"


그러고보니 아까 통화할 때 그런말을 했었지.


"제가 추천하는 도넛들은 장난이 아니라구요? 후후.."


"믿어요. 선배니까"


"고백멘트 인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달려와 내 팔을 붙잡고 팔짱을 꼈다.


이젠 일일히 태클거는 것도 지쳤다.


얀덕선배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어떠냐!" 하는 뉘앙스로 미소를 지었다.


얀진이는 그런 얀덕선배를 보고...


커피를 뿜었다.


선배님 그만.. 더 이상 얀진이를 괴롭히지 말아줘요..


*


도넛을 가지고 자리에 돌아오자 얀진이는 어느새 다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얀붕아."


얀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네..?"


"전학갈 때 얘기는 해주지 그랬어."


"아.. 미안. 그 땐 나도 사정이 있어서.."


역시 신경쓰고 있었구나 내가 전학간 거. 


그 때 일을 아직 기억해 주고 있었구나.


나도 그 날 이후로 얀진이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었다.


계속 하고싶었던 말.


중학교 때의 날 변하게 해준 얀진이에게 해야하는 말.


"얀진아."


"응."


난 얀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너한테 하고싶은 말이 있어."


"응..?"


"중학교 때 부터 줄곧 너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야."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얀진이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조금 놀란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중학교 때, 내가 힘들 때.. 날 도와줘서 고마워. 너 덕분에 난 변할 수 있었어. 너의 응원이 날 성장시켰어."


"얀진아. 고마워. 난 너에게 큰 빚을 졌어."


얀진이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얀진이는 손을 뻗어 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장하네. 우리 얀붕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얼굴이 조금 뜨거워진걸 느낄 수 있었다.


얀진이의 미소는 중학교 때 보여준 그 때의 미소와 같았다.


난 얀진이를 멍하니 쳐다봤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이 감각이 좋다..


그 순간 얀덕선배가 갑자기 얀진이의 손을 쳐냈다.


"이...이게 뭐하는 거예요!"


"안되나요..?"


얀진이가 얀덕선배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안되고 자시고 갑자기 다른 사람의 머리를 그렇게 쓰다듬으면.."


"쓰다듬으면?"


"아니 안되는 거라구요!"







*

"그보다 얀진이후배! 우리 후배님이랑 무슨 사이인가요!"


솔직히.. 나도 궁금하다.


얀진이가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


"중학교 동창입니다."


난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얀덕선배는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 그제서야 안심한듯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어..? 뭐라고요..?"


얀덕선배의 표정이 다시 겁에 질린 소동물처럼 변했다.


"농담입니다."


이거 즐기고 있어.


얀덕선배의 반응을 보면서 즐기고 있는거야 이거.


"그런 농담은.. 심장에 안좋아요."


"..어째서죠?"


"..네? 아니 그.."


"얀붕이에게 호감이라도 갖고있나요..?"


얀진이는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으..응. 네.. 좋아합니다..♥"


얀진이가 들고있던 커피컵이 찌그러졌다. 


"아니.. 그 이제와서 왜 부끄러워 하는거예요."


"그야.. 다른 사람앞에서 이런 말.. 저라도 부끄러워요.."


"당사자 앞에서는 안부끄럽고요?!"





*


나와 얀덕선배는 남은 도넛을 모두 먹어치웠다.


우리 셋은 서로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얀진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막상 본인을 만나니까 하고싶었던 말들이 모두 입김처럼 날아갔다.


'그래도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던 말은 전했으니 된건가..'

.

.

.

.

.

.

.


시간이 늦어져 헤어질 시간이 되자 우린 문을 열고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나온 우리의 눈에 비친건 리무진같이 생긴 차와 그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남자였다.


딱봐도 비싸보이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우릴 보자마자 자동차 문을 열었다.


"날이 춥습니다. 아가씨. 빨리 타주시길."


아가씨?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얀진이가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 다가가 무언가 속삭였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얀붕아 괜찮다면 타지 않을래?"


"어..?"


"데려다줄게."


"나..? 얀덕선배는?"


"칫.."


얀진이는 노골적으로 혀를 찼다.


"...얀덕선배도 같이."


"으아! 짜증나! 후배님 방금 봤어요? 혀찼어요 재!"


얀덕선배가 나의 코트 끝자락을 잡고 소리쳤다.


"필요없어요 얀진후배!"


"그럼 얀붕이는?"


얀덕선배가 나를 쳐다봤다.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 빤히 쳐다본다.


난 얀덕선배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권유해줘서 고마운데 나도 괜찮아. 사양할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얀진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추울텐데?"


"춥긴하지만 걸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날이 어두워서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히 걸어가면 될거같은데.."


얀진이가 어딘가 불편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는길에 강도가 나타날지 누가 알아"


"그정도로 치안이 안좋아보이지는 않는데.."


"이런 밤에는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조심히 가면 괜찮을텐데.."


얀진이가 갑자기 내 팔을 붙잡았다.


"..그냥 같이 가주면 안돼..?"


얀진이는 여태 유지해오던 무표정은 어디갔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 그으마안!"


얀덕선배가 얀진이의 팔을 나에게서 떼어놨다. 


얀덕선배는 볼을 부풀리며 나의 팔을 꽉잡았다.


"걱정은 고맙지만 정말 괜찮아 얀진아."


얀진이의 눈에서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얀진이가 히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난 적잖이 당황했다.


아까까지 차가운 부잣집 아가씨 분위기를 풍기던 얀진이가 갑자기 이렇게 변해버린것이 당황스러웠다.


"아! 그래 얀진아 우리 전화번호 교환하자"


"..전화번호...?"


얀진이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졌다.


히끅거리던 얀진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얀진이는 핸드백에서 황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내 번호 xxx-xxxx-xxxx니까 저장해 줄래?"


"응..!"


얀진이가 엄청나게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눈부셔...


저 외모로 저런 밝은 미소라니 저건 치트키다. 


얀진이는 내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이걸로 다음에도 연락할 수 있으니까.. 그만 울어 얀진아."


"다행이다.."


얀덕이는 기쁜듯 헤실거리다 나를 의식하고 서둘러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이내 얀진이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아니 이미 늦지않았을까..


"..오늘은 즐거웠습니다 얀덕선배."


"또 보자 얀붕아."


얀진이는 차량에 탑승하고 문을 닫았다.


그렇게 나와 얀덕선배는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검은색의 긴차가 우리의 시야에서 안보일때까지 멀뚱멀뚱 서 있었다.


"...후배님"


"..네 선배님"


"원래 저런 아이인가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


나와 얀덕선배는 가장 가까운 기차역까지 걸어갔다.


나와 선배의 집은 정반대 방향이다.


내 집까지는 택시를 타는게 더 빠르지만 선배를 역까지 데려다주고 싶었다.


얀진이 말마따나 밤길은 위험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선배 춥지않아요?"


얀덕선배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에게 안겨들었다


"충분히 따뜻한데요..헤헤"


얀진이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똑같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둘이있으니까 중학교 때가 생각나네요. 후배님."


"..그러게요"


"후배님 그 땐 정말 귀여웠다구요? 매트에서 대자로 뻗어서 자고."


"얀덕선배는 코까지 골면서 자던데요?"


"후배님.. 화내요?"


우린 걸어가면서 중학교때의 추억얘기에 빠져 한참을 떠들었다.


서로 웃고 떠들고 화내고.


즐겁다. 


지금 이 순간이.


하늘엔 보름달이 떠있었다.


분명 12월에 뜨는 보름달은 서양에선 '콜드문'이라 불렸던걸로 기억한다.


한국에선 "님 그리워 뜨는 달" 이라 불렸지.


...이렇게 얀덕선배랑 길을 걸으면서도 난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걸까?


자꾸만 보름달만 쳐다보게 된다.





*


우린 이 추운 겨울길을 걸어 역앞까지 도착했다.


"선배, 집에 돌아가면 오랜만에 같이 몬헌이라도 하실래요?"


"몬헌.. 좋죠. 후배님은 해머랑 랜스 좀 버리고 쉬운무기 좀 다뤄요."


"선배님같은 활쟁이가 랜스의 매력을 아실리가 없죠."


"꼬우면 활 쓰세요 후배님."


"...아무튼 돌아가면 연락할게요 선배."


난 선배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선배님의 뒷모습이 조금씩 멀어질 때 쯤 난 발길을 돌려 택시정거장으로 향했다.


탓 탓 탓 탓


왜 이렇게 마음이 쓸쓸할까.


선배랑 있는게 좋았던 걸까.


나 의외로 얀덕선배 엄청 좋아하는거 아닌가.


탓 탓 탓 탓


얀진이를 만났을 때 감정은 사랑보다는.. 동경일까.


모르겠다.


"사춘기도 아니고 마음이 이렇게 혼란하냐."


탓 탓 탓 탓


"으앗!"


등뒤로 누군가가 안겨왔다.


"..얀덕선배??"


"기차타신거 아니었어요?"


"...아직 집에 돌아가고 싶지않아요. 후배님이랑 더 있고 싶어요."


보름달이 어두운 하늘에서 보란듯이 우릴 비추고 있었다.


...그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 12월에 뜬 보름달, 귀여운 선배님.


난 내 입에서 나올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한마디를 내뱉었다.





"... 2차라도 가실래요?"






*


강하다.. 이 사람 강하다.


소주를 몇병을 비우는거야..


식탁위에는 빼곡히 쌓인 소주와 불판위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갈비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겠다.


참이슬 1병.


겨우 그거 먹고 뻗었다.


창피하지만, 술에 약한건 우리집안 내력이다.


어머니는 맥주 한캔이 한계, 아버지는 소주 반병.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집에서 내가 제일 잘마시잖아... 


"후배님..? 겨우 이거 마시고 뻗어요?"


"으으.. 선배님이 이상할 정도로 쎈거예요.. 소주 4병이 뭡니까.."


"아직 더 마실 수 있는데."


"와우.."


"더 적셔봐요!"

.

.

.

.

.

.

.

.

.

.

.

"허윽.."


이젠 그냥 알코올이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밖에 안난다.


머리가 좀 어지럽다.


"후배님~ 정신차려요~"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줬네 선배한테.


선배 앞에선 이상하게 가오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괜찮습니다..."


"혀도 풀려가지고.. 이러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네요..?"


"네에..?"


"아무것도 아니예요! 이제 슬슬 계산하고 나갈까요?"


난 전력을 다해서 몸의 균형을 잡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해서 69500원 입니다."


"잠시만요오.."


얀덕선배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고있다.


난 황급히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점원분에게 드렸다.


"아까 도넛 사주셨잖아요... 이걸로 쌤쌤이네요"


"..폼 잡지 않아도 된다고요? 후배님은 후배니까 선배가 사주는 밥을 얻어먹어야죠."


"그거 알아요..? 다음에 또 밥을 같이 먹고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보다 먼저.. 계산하면.."


"다음에 다시 밥먹자고 부를 때 구실로.. 쓸 수 있잖아요?"


"..선배 우리 또 밥먹어요."


"으아.. 하으.. 그.. 부끄럽네요.. 뭔가.."


"저기..후배님.. 고마워요."


우린 계산을 끝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난 최대한 정신을 붙잡고 길을 걸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선배."


"풀린 다리로 그런 말 해도 안 멋져요. 후후.."


얀덕선배와 걷는 이 길의 풍경이 반짝인다.


평소에도 미인이던 선배의 외모가 평소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후배님 그렇게 힘들면 우리 그.. 뭐시냐....호텔이라도 가서.. 쉴래요?"


.. 평소라면 농담하지 말라며 거부하듯 장난치는 타이밍.


술기운 때문일까, 난 내 마음을 묶고있던 사슬이 풀린 듯 대답했다.


"네. 가고싶어요 호텔."


"후후..장난........."


"어..?"


"뭐..뭐라고요.. 후배님?"


"가자고요. 호텔."


"에이~ 절 놀리는 거죠? 장난은 그만..."


"가고싶어요. 선배님이랑."


"후..배님..?"


"같이 가죠 호텔."







*


침대에 누워있다 보니 술기운이 조금씩 깨기 시작했다.


나.. 뭐라고 한거지 방금.


선배랑 같이 호텔에 가고싶다고 했었지.


누군가가 나에게 술기운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냐고 한다면


... 아니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한거다.


진심이었다.


선배가 평소보다 더 아름다워 보여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지금까지 나에게 계속 좋아한다 말해주던 선배가 사랑스러워서 그랬다.


...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난 사랑하기를 두려워 한거다.


그 때 처럼 나 혼자 착각하고, 오만해져서 다시 그런 잘못을 저지르기 싫었다.


그렇기에 내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사랑을 하기 두려워 하는 내 자신이 있었다.


술은 그저 그런 나의 마음을 점화한거다.


마음의 사슬을 끊을 수 있도록. 


내가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날 4년동안이나 사랑해 준 사랑스러운 여자에게 사랑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정신이 좀 들어요?"


얀덕선배가 욕실에서 나왔다.


호텔에서 주는 가운같은 걸 걸친 얀덕선배는 나에게 조금씩 다가왔다.


.. 평소보다 그 몸매가 부각되서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


"후배님.. 술기운 때문에 왔다는 말은 상처니까요."


"..진심이었어요."


"..후후..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을 해주는군요!"


"진심이예요."


"..네. 알아요"


"아직 몰라요 얀덕선배는"


"네?"


"저.. 얀덕선배가 좋아요."


"네...네??"


"저 같은 놈을 4년동안 계속 좋아해줬던 당신이 사랑스러워요."


난 얀덕선배를 안았다.


그대로 공주님 안기 자세로 선배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하..하으...갑자기.. 왜 그래요.."


"저요.. 중학교 때 첫사랑 때문에 얀덕선배를 거부했어요."


"네.. 기억해요."


"지금은.. 그게 후회되요"


"절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줄곧 날.. 사랑해 줬는데.."


"... 후배님.."


얀덕선배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내 목을 양팔로 끌어안고 입맞춤했다.


입술이 포개졌다.


얀덕선배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얀덕선배의 뜨거운 숨결이 몸전체에 와닿았다.


머리가 하얘지는 듯한.. 행복함이 느껴졌다.


숨이 조금씩 멎을때 쯤 얀덕선배는 입술을 뗐다.


"후배님.. 들어주실래요?"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요.. 중학교 때 후배님을 처음만나서 행복했어요."


"즐겁고 기쁘고.. 무엇보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채워져서.."


"당신이 좋았어요. 처음 만났던 날 부터 당신만을 쭈욱.."


"좋아 좋아 좋아 당신이 너무 좋아요."


"살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 너무나 기뻤어요."


"당신이 느끼게 해줬던 온갖 감정들이 너무 좋아요."


"후배님의 좋은 점.. 나쁜 점.. 말하라고 하면 100개도 넘게 말할 수 있어요"


"그 모든 좋은점도 나쁜점도.. 당신을 이루는 그 모든게 좋아요."


"당신의 달콤한 목소리 당신의 향기 당신의 곁에서 그 모든걸 느끼고 싶어요.. 후배님을.. 저 혼자 독점하고 싶어요"


"... 저 같은 욕심많은 여자가 당신의 곁에 평생 함께해도 될까요..?"


얀덕선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난 얀덕선배의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 저같은 미숙한 남자를.. 당신의 남자친구로 삼아주시겠어요..?"















마지막은..의식의 흐름대로 썼습니다.


쓰면서 조금 울었습니다.


나에게도 저런말을 해주는 여자가 있을까 하면서.


읽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