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당신을 호위하게 될 얀붕이라고 합니다.”


흰 눈이 세상을 덮어버릴 만큼 쏟아지던 날, 무릎을 꿇은 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이 돌아오질 않자, 혹여 첫인상부터 그녀의 기분을 헤쳤을까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모습을 보았을 때, 방금까지의 긴장을 잊었을 정도로 역시 얼음공주라는 말처럼 참으로 차가운 여자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은발의 머리는 땅을 쓸었고, 무덤덤한 푸른 눈동자는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소중한 듯이 어떠한 인형을 꼬옥 안고 있었는데, 그 인형은 한눈에 보아도 낡고 때가 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품속에 고이 모셔놓고 있었다.

내 앞에서 대꾸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그녀에게 나는 일어나 말을 걸었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안쪽으로..”


최악이다. 쌓인 눈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차라리 그냥 몸만 넘어졌으면 나의 실수 하나로 끝날 것을, 호위 대상의 몸까지 걸려 넘어져 버렸다.

내게 몸을 겹쳐 넘어질 때조차 미동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그녀는 넘어질 때의 반동으로 고이 모셔둔 인형이 날아감과 동시에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아, 정말 최악의 첫 만남이다.

앞으로 그녀와 지내게 될 미래를 그릴 수도 없는 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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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도 지지리도 없지. 하필이면 겨울의 성으로 파견이라니.”

“쉿, 그가 들을라. 소리 좀 낮춰, 그러게 왜 그렇게 나대? 가만히만 있어도 반은 간다더니만.”


전부 들린다. 

아무리 여기가 시끌벅적한 주점일지라도, 내 얘기를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하는데 안 들릴 리가 있나?


“아마 못 돌아오겠지?”

“응, 한번 그곳으로 간 이상, 시체 아니면 다시 꽃 피는 땅을 밟을 수 없을 테니.”

“가히 세계 최강의 검사님께서 그런 외지로 쫓겨나고 말이야, 세상일 모른단 말이야.~”

“왜 정치에 끼어들어서는? 기사는 검만 휘두르면 되는거 아니야?”


정치에 관심은 1도 없다.

단지, 내 검을 나라의 적이 아닌, 자신의 적에게 향하라는 말에 거절한 것일 뿐.

괜히 찔리니깐 그런 소문이나 내고, 그런 사람을 주군으로 모시고 살았던 나도 참 한심하다.


“그래서 저기서 혼자 착잡하게 술이나 마시고 있는 거구먼?”

“근데 최강의 검이라는 분이 동료도 없나?”

“바보야, 썩은 동아줄을 누가 붙잡고 있냐? 나 같아도 바로 손절했다.”


듣자 듣자 하니깐 저것들이 정말.

몸을 일으켜 다가가려 한 순간,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얀붕아! 얘기는 다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어릴 적 은사였던 스승님이 오고 계셨다.

그녀와는 내가 기사로 진로를 결정했을 때부터 틀어졌었다.

한때 그녀 또한 기사를 꿈꾸었지만, 여성의 몸으로는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 한계가 있었기에 그 꿈을 접었어야했다.

당연히 남성 선민의식이 강한 기사단에 입단하려는 나를 그녀는 반대했었고, 끝까지 내가 의견을 굽히지 않자, 자연스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근데 인제 와서 날 찾아올 줄이야. 

아니다. 그녀의 성격으로는 이런 처지가 된 나를 놀려주려 온 것이 분명하다.

땅딸막하게 생겨서는, 그 작은 체구에서 그리 강한 힘이 나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딸꾹- 그러기에 내가 딸꾹- 거긴 아니라 했잖니?”


내게 말을 거는 그녀의 입에서 알싸한 냄새가 풍겨왔다.

거하게 기쁠때나 마신다는 술을 굳이 왜 오늘...

그렇게 내가 짤린 것이 기뻤던 걸까?


“스승님 취하셨습니다.”

“나, 딸꾹- 안취했다.”


애도 아니고, 양팔을 이리저리 휘졌는걸 보면, 그 체구로 보아 남이 봤을 때에는 영락없이 어린애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나 냄새가 나는걸요”

”더 중요한 얘기가 있었는데“

”그건 깨고 나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나보다 강한 그녀이니만큼, 주정을 다른 방향으로 부렸다가 자칫하면 이 술집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스승님, 갑자기 웬 술입니까. 주량도 약하신 분이..“

”히히.. 내 제자가 직장을 잃었다는데, 어찌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에휴,, 제가 직장을 잃은게 그렇게 좋습니까?“

”그럼, 아무렴! 좋고말고! 그렇게 내 말을 들어서 나랑 모험가나 하자니까!“

흥이 올랐는지 콧노래가 멈추지 않는 그녀의 코를 두 손으로 눌러준다.


”에극“


웃기는 소리를 내며 나를 보는 그녀를 보며 예전 둘이서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아인 나를 주워주어 길러준 그녀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무심코 웃음이 나, 그녀에게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이어 답하였다.


”하하, 저 그래도 이 나라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갔던 몸입니다. 설마 갈 곳이 없을까요?“

”그러니까, 이 기회에 나랑 뜨자는 거지“


어느새 술이 깬 듯, 진지하게 날 보는 그녀... 가 아니라 더욱 취해 마구잡이로 때를 쓴다.


”가자고! 가자고! 가자고!“


어느새 주점 모든 이의 시선이 나에게 옮겨졌고, 나는 지금 어린 아이를 괴롭히는 (전) 기사단장이었다,

이러다가 내일 기사의 헤드라인은 분명 [충격! 전 기사단장 실직의 어려움을 못이겨,,] 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만은 막아야 해!


”스승님! 일단 자리를!!!“

”으아앙아앙!!“

급기야 큰 소리로 우는 스승님을 데리고 여관으로 피신했다.


.......................


”으음.. 여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그 뻔뻔함에 말을 이을 수 없었지만, 꼴에 스승이라고 함부로 대할 수 없어, 그저 말을 이을 뿐인 내가 너무 처량해 보였다.


”어제 일 전혀 기억이 안 나십니까?“

”나는 분명.. 내 제자가 잘렸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숨겨둔 백년주를 한 병..“


백년주는 분명 스승님이 죽는한이 있더라도 마시지 않는다 한 술이었을텐데

애초에 어제 기분이 너무 좋아 보인 게 마치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 같았다.

산 속에서 은거하거나 모험을 떠나는게 일상인 스승님이 내가 잘리자마자 찾아온걸 보면 분명..


”음! 기억이 안 난다!“

”자랑스럽게 얘기하지 마세요!!“

”확실하게 기억나는 한 가지는 얀붕이가 나랑 모험을 떠나기로 약속한 것뿐!“

”그런적 없거든요! 애초에 저는 다음으로 맡은 일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승님은 마치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이러는게냐!“

”제가 뭘 어쨌다고요?!“

어째 날이 갈수록 어려지는것만 같은 스승님의 모습에 할 말을 잊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때만 쓰는 어린애가 된 것인가.


”아무튼. 오늘 떠날 겁니다.“

”어디로 가느냐? 그 정도는 스승님께 얘기해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겨울의 성입니다.“


”겨울의 성이라면 분명.. 그 감정 없는 인형이 사는 곳?“

”나름 이 나라의 왕녀님이십니다. 말을 좀 더 높이..“

”흥, 나도 알아주는 모험가라고!“

”그것도 그렇지만..“


”스승을 생각도 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제자 따위 이제는 모른다! 갈 데로 가버리라지.“

”제가 그런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흥!“


또 단단히 삐졌는지 볼에 바람을 부풀린 채로 아예 돌아누워 버렸다.

처음 만날땐 항상 나이 많고 점잖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그토록 노력하더니만, 이제는 본성을 숨길 채도 안 한다.

애초에 나는 다 컸는데 이제 와서 또 모험을 떠나자고 하면 할 말도 없다.


”종종 연락하겠습니다.“

”말도 마라!“


그래도 이럴 때는 거리를 벌리는게 최상이겠지.

스승님을 무시한 채로 싸던 짐을 마무리한다.


”...왜 자꾸 떠나는 게냐.“


갑자기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달리 생기가 없었다.

그 어투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 나를 보는 스승님이 있었다.

내가 여자의 눈물에 약한 거는 또 어찌 알고.

입꼬리가 약간씩 움직이는 걸 보면 진심은 아닐 것이다.

이럴 때는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게 베스트겠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같이 위대한 모험가 곁에 있기 위한 수행입니다.“


자신을 받들어주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스승님이기에 그녀를 높이는 말을 해준다.

거봐라. 지금도 우쭐해져서는 계속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언젠간, 이 모든 여정이 마무리되면 돌아오겠습니다.“


잔뜩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스승님이 내게 말을 하였다.


”좋다!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었다면 특별히 용서해주마! 단!! 다른 여자를 만나는건 안된다? 여자는 다 늑대야, 늑대. 언제 잡아먹힐지 몰라.“


아직도 내가 앤 줄 아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나에게 여자는 늑대라고 하는걸 보니 속을까 걱정하나본데, 이제는 몸도 마음도 다 컸기에 그런 거에 두렵지 않다.


피식, 그런 스승님꼐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갈 길을 나섰다.

부디, 내 고용인이 소문대로의 감정없는 인형이 아니기를 바라며.

그런 생각을 하며, 봄이 찾아오지 않는 그녀의 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악의 첫 만남 이후, 그녀는 내게 다시는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말라며 성을 내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덕분에 홀로 남은 나는, 멍하니 서서 성안을 둘러볼 따름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영광도 없는 고요한 성안에는 시종 드는 사람 몇뿐만이 있었기에 그저 쓸쓸히 거닐 뿐이었다.


“그냥 스승님 따라 정처 없이 다닐 걸 그랬나”


사람은 후회의 생물인지라, 막상 이렇게 혼자 남게 되니 스승님의 투정이 그리워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무뚝뚝한 갑옷에, 벽돌에…. 대화 상대가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남아도는 나머지 시간을 자기 단련에 쏟게 되었고, 고요했던 성의 밤은 나의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채 지났을까, 무거운 엉덩이를 뗀 공주님이 나를 찾아왔다.


“당신 해고에요.”


라는 재미있는 농담과 함께.

얼음공주라더니, 농담도 할 줄 알잖아?

한 달 동안 이걸 고민한건가?


“하하하, 재밌었습니다. 이거, 공주님을 다시 봤는데요?”

“아뇨아뇨, 당신 해고라고요.”

“.. 진짜로?”

“진짜로.”


말도 안 된다.

검 하나로 두자면 날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세계에 손꼽힌다.

이런 나를 호위로 두었는데, 해고한다고?

이건 성안에 박혀 산 부작용이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네?”


가슴에 품은 인형을 소중히 간직한 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사실 이런 장난을 치면서도 많이 놀랐을 거다.

실제로 내가 떠나버리면 큰 손해일 테니.


“아!”


잊고 있었던게 생각났다.

갑작스레 내뱉은 소리에 화들짝 몸을 움츠러트린 그녀에게 말을 건다.

약간 어이없어 보이는 표정에 처음 보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번에 말했듯이 얀붕이라고 합니다. 얼음공주 말고, 제대로 된 이름은 갖고 계시겠죠? 언제까지 공주님이라고 부를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어....”


감정이 적은 그녀답게 이름 하나 꺼내는 데도 시간이 참 많이 걸린다 싶었다.


“..얀순이”


생각보다 평범한 이름이었다,

얼음공주라길래 차가운 이름을 기대했는데.


“.. 뭐에요? 그 예상을 벗어났다는 표정은?”


설마 이 여자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건가?


“놀랐다는 표정 치워요. 그냥 당신은 표정에 다 드러나는 것뿐이에요.”


봐봐. 생각을 읽고 있잖아.


“에휴, 아무튼. 당신 너무 시끄러워요. 조금만 더 줄이도록 하세요.”

“전 시끄러운 소리를 낸 적이 없습니다만?”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점점 생겨난다.

무표정에서 저런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을 뿐인데도 저리 아름다울 줄이야.

그저 눈망울이 조금 더 커지고, 입이 벌어졌을 뿐인데 세상의 미는 다 모아놓은 듯한 매력이다.

이런 여자가 왜 여기에 갇혀 살다시피 하는걸까?


“뭐, 어차피 곧 사라질 곳. 잠시 머물다 가도 상관없겠죠. 그럼 전 이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 그녀를 보며 내 반응을 즐기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려고 할 때, 이번에도 내 생각을 읽은 그녀가 이어서 말을 하였다.


“세상에 어느 왕이 나라 예산만 나가고 실질적 의미도 없는 금싸라기 땅을 이렇게 내버려 둘 거 같나요? 곧 철거한다고 나라에서 공문이 내려왔네요. 제가 해고를 안 해도 또 잘리겠는데요?”

“저야 잘리면 다른 곳에 가면 되지만.. 공주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말 그대로 나야 잘리면 갈 곳은 있다. 

그런데 그녀는? 필요 없어진 존재라는 것이 낙인이 찍힌다면 아마 그녀는 이 성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여전히 무감각한 표정으로 날 향해 이 곳이 사라질 것이라 얘기하는 그녀가 어쩐지 슬퍼 보였다.

오지랖이 넓은 성격인지라, 이런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반대해야죠.”

“제가 왜요?”

“그럼 가만히 앉아서 쫓겨나실 건가요?”

“제가 뭘 하든 당신이랑은 상관없어요.”

“그래도 저는 하겠습니다.”


보였다. 

이 미적지근한 관계가 해결될 길이.

언제까지 호위 대상과 안면을 안 틀 수 없는 거지,


“재차 말하지만, 당신은 이 일과 관계없어요.”

“공주님께 고용된 입장이니, 그 자리를 지키는 것도 제 일이죠.”

“그니까, 해고라니까요?”

“후훗, 농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은 방법을 고민해야 할 순간!”


그녀는 지끈거리는지 머리를 붙잡고는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점점 감정이 표면에 나오는 것을 보면 내게 감명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가까워지면. 언젠가는 말문도 트지 않을까?


“평생 그렇게 검만 잡으니까,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이 왜 나옵니까? 저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생각합니다만.”


실례다. 

내가 기사단장일때만 해도, 내 말이면 다들 꿈벅 죽어 살지 못했는데

나만큼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도 어디 없을 것이다.


“더이상 얘기하면 저만 짜증 날 거 같아요. 갈래요.”


휙 몸을 돌려 떠나는 그녀에게 소리쳐 말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오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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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일의 방향은 정해졌다.

성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한 해결책과 그녀의 관계 조사.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다.


손에 낀 마도구를 만지작거린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스승님과 헤어질 때 받은 도구이지만, 쓴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쉽게 재회해서, 화해했다. 이제는 연락해도 괜찮지 않을까?

정보수집에는 스승님만큼 능한 사람이 없기에 스승님께 연락할 수 있는 마도구를 발동하였다,


뚜— 뚜— 철컥


[뭐냐? 벌써 내 제안이 그리워진 게냐? 역시 얀붕이는 이 스승님이 없으면 안 되는 거로구나]


연결되자마자 우쭐대는 모습이 보기 꼴사나웠지만,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철저히 무시를 했다.


“스승님, 부탁이 있습니다.”


[에잉, 맨입으로 어찌 나랑 같이 모험을 다닐 생각을 하느냐? 적어도 혼사는 준비해야..]


누굴 닮아서 저리 사람 말을 안 듣고 자기 생각만 말하는지.

저런 사람 밑에서 배운 내가 저렇게 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조사 의뢰입니다.”


[네 오지랖은 정말 아무도 못 말리겠구나. 이미 조사해두었지]


“조사해두었다니요?”


[내 제자가 가는 곳인데 어찌 맨몸으로 보내느냐?]


“스승님 혹시 저 감시하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도구 너머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작은 비명과 함께


“스승님, 스승님!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


[쿨럭! 쿨럭! 갑자기 무슨 말을 그리하느냐!!]


“장난이죠, 장난. 농담도 못해요?”


[그,그치? 내가 최강의 모험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허구한 날 제자나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겠지?]


“그걸 저에게 물으시면..”


[아, 아무튼!! 필요한 자료는 사역마를 시켜 보내놓으마. 오늘은 이만 가야겠다, 나는 바쁜 몸이니까! 제자 따위 볼 시간 전~혀 없으니까!]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괜찮..”


뚜— 뚜--


어느새 통화가 끊어졌다.

곧장 사역마가 얀순이와 관련된 자료를 들고 왔고, 뒤이어 하나하나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처참한데”


비극.

이 한 단어보다 그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참 기구한 인생이다.


왕가의 피라는 로열 혈통을 이었지만, 왕좌의 눈이 먼 동생에게 믿고 따르던 오빠는 살해당하고, 자신은 유배.

말이 유배지 눈이 그치지 않는 이 공간에 갇히게 된 그녀.

역시 날 쫓아낸 전 주인답달까, 나라 외적으로 조금 평화로워지니 그녀가 고까웠나 보다.

아예 이 공간마저 허물어 죽일 생각.


오빠가 죽었을 때 그녀의 마음도 죽었다고 보고서에는 적혀있었다.

자그마하게 그렇다고 홀리면 안 된다는 마크.

그녀가 마녀도 아니고, 참 걱정이 많은 스승님이다.


왕관을 쓰고 소중히 간직하던 인형이 오빠를 상징하는 거였나?

그러니 첫 만남때 인형이 날아가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겠지.


역시, 그녀가 현 상황을 타파하려면 스스로가 나서야 하는데, 그 의지가 없어 보인다.

[첫 번째 과정으로 좀 더 그녀의 진중을 파악할 필요가 보인다] 라고 보고서에 작성 후,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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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입니다!”

“히익!”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움츠러든 그녀에게 웃는 얼굴로 뛰어간다.

갑자기 방향을 돌려 달아나는 그녀,


“어딜 가십니까!”

“그렇게 변태 같은 얼굴로 뛰어오는데 누가 도망을 안 가요!!”


몇 번을 성을 돌았을까 슬슬 그녀가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만.. 헥헥.. 좀.. 쫓아...오라고!!”


음, 말이 줄었다.

이것은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방증이겠지?

슬슬 목적을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녀를 멈출만한 주제가 뭐가 있지?


“금태양!”


그녀의 오빠의 이름을 외친다.

아, 뛰는 걸 멈췄다.

멈춘것까진 괜찮은데, 왜 이쪽을 보고 마력을 가다듬는거지?



아, 세상이 하얘진다.

엄청난 강풍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헉!”

“정신이 좀 들어요?”

“이 무슨 실책을...!”


먼저 기절해버리다니. 호위 실격이다.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머리를 굴리던 중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디까지 조사했어요?”

“말이 다시 존칭으로 올라갔네요.”

“내 말에 대답이나 해.”

“전부 다 조사했습니다.”

“진짜로 해고야. 나가.”


아무래도 정말로 화난 것 같다. 

필요하면 무력 행사도 거부하지 않을 듯한 모습.


“해결할 수 있습니다.”

“뭘?”

“오빠의 억울한 죽음. 당신의 처지 전부 다”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약점을 정곡으로 찌른 듯 엄청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쁜 얼굴 구겨집니다. 표정 푸세요.”

“너 누구야?”

“누구라니, 얀붕이? 전 기사단장? 현 얼음공주의 호위? 뭐가 좋을까요?”

“왜 나를 침범하려 그러는거야?”


분기점이다.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질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선이라도 그녀의 마음에 들게 말할까? 

아니야. 눈앞에 있는 저 여자는 그저 상처받았을 뿐인 여자일 뿐이다.


“제가 오지랖이 아무래도 넓어서요.”

“계속”

“인형이나 끌어안고 세상에서 제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요~ 하고 지내는 것도 꼴 보기 싫어서요.”

“너--”

“아무래도 직설적인 성격이라, 두 눈 뜨고 못 봐주겠네요. 위협도 되지 않을 여자가 무서워 움직임을 보이는 전 주인을 섬긴 저도 마음에 안 들어서, 이제라도 바꾸고 싶네요.”


“짜증나”

“네?”

“너, 짜증 난다고. 이래라저래라 알지도 못하면서. 뭐 그러면 네가 동화 속이나 나오는 왕자님이라도 돼 보여? 아니, 내게 있어서 너는 아픈 공간을, 나만 있는 공간을 침범하는 침략자일 뿐이야. 

뭐? 해결할 수 있어? 너가 어떻게? 왕궁에서 쫓겨난 기사단장, 호위 대상에게 기절이나 당하는 호위. 참 우습다.”

“아니, 기절건은 할 말이...”


진짜 억울하다. 누가 호위 대상한테 공격받을걸 상상이라도 한단 말인가?


“1년”

“네?”

“1년 줄게. 네가 정말로 오지랖을 부리고 싶다면 그 안에 나를 설득시켜봐”


설득이라니 어떤 방식을 말하는걸까.

전복이라면 지금 당장 일으킬 수 있는데


“난 왕위 찬탈 같은건 바라지 않아. 그저 조용히 여기서 살다 죽고 싶어”

“진짜로 생각 읽을 수 있는거 아닙니까?”

“흥.”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가는 그녀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는 찾아가도 도망가지 않으실거죠?”

“... 하는거 봐서”


첫 번째 챕터 종료다.

언젠간 그녀도 마음을 열기를 바라며 남은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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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직도 육지에 올라온 잉어처럼 바둥거릴 셈이냐?]


“제자한테 잉어라뇨, 참 속상합니다. 예전처럼 다시는 연락 안 할 겁니다.”


[잠깐,잠깐,잠깐! 거짓말이지. 어찌 스승이 자신의 제자를 욕보이겠느냐?]


당황해 양손을 마구잡이로 흔드는 스승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 연락한 스승님은 왠지 또 부루퉁해 보였다.


[애초에 그녀가 바라는 대로 이뤄지려면 왕의 포기가 필요한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텐데?]


“그건 방법이 있어요. 왕족임을 포기하면 되는데”


[그러면 성에서 나가야 하지 않느냐?]


“그걸 사수해야죠!”


[참 생각이 이분법적이구나. 내가 검이 아니라 철학을 가르쳐야 했어]


“헤헤 스승님 사랑합니다.”


[()$&#^%*(&@)*@($#^*(^@*))@#$!]


또 말이 끝나자마자 마도구 너머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번에도 작은 비명과 함께


[그런말 하지 말거라! 자꾸 그러니까 착각하지 않느냐?]


착각이라니. 뭘 착각한다는 거지?


“아무튼, 그럼 그대로 말합니다? 왕위는 포기. 조건으로 고유 영지?”


[또 그렇게 방방거리다 그녀에게 기절이나 하겠지]


“에, 스승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흑역사라 꽁꽁 감추었는데!!”


[모, 모른다!]


또 갑작스레 끊어버렸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참 성격도 지랄맞다.

어찌 되었든, 원하는 대답은 얻었으니 실행만이 남았다.


[두 번째 챕터 :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녀의 결심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보고서에 작성 후, 얀순이의 방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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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제 계획이!”


이제 움직이지 않는 저 표정이라도 조금은 읽을 수 있다.

저 표정은 분명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진심으로 이걸 계획이랍시고 가져온거야?”

“안될게 있습니까?”

“너 정말로 생각이란게 없는거니?”

“분명 완벽한 계획이였는데..”

“나가!!”


실패다.

아니지. 성안에 박혀 살다 보니 시야가 좁아진게 분명하다.


“잠깐만요!”

“또 뭐!!”

“저랑 내일 시내로 나가죠!”


아무리 눈이 그치지 않는 황폐한 토지지만, 시내는 존재한다.

얼음 속에서도 살아가는 종족은 물론, 인간도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마침 내일은 축제가 예정되어있다.

눈꽃축제는 일 년중 이 기간을 위해 여기까지 오는 사람도 있으니만큼 괜찮을 것이다.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흐르는 건데!”

“역시, 제가 좀 더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너처럼 멍청해지느리 죽는게 훨씬 나아!”


원래 히키코모리라는 족속들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나가기 싫어 발악을 한다고 한다.

똑똑한 나이기에 그녀의 심중을 읽었지, 스승님같이 막무가내인 사람은 그대로 받아들여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진짜 어디서 저런 미친놈이 들어온거야!!”


음. 감정의 고조.

그녀도 점점 바뀌고 있구나. 물론 좋은쪽으로.


...........


“좋은 아침입니다!”

“히익!”


또 내가 있는 방향에서 돌아 달아나는 그녀,

아, 데자뷰다.


“약속의 날입니다!”

“누가 너같은거랑 데,데,데이트를 하고 싶어해!”

“데이트가 아니라 눈꽃축제입니다!”

“너 남녀가 눈꽃축제에 간다는 의미를..”


허공답보.

숙련된 강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급이다.

하늘을 날아 그녀를 안는다.



“꺄악-! 미쳤어 진짜! 어딜 처녀의 몸을 함부로!”

“그럼 가겠습니다.”

“누가 이 기술을 이런데 사용하냐고!!”


그렇게 영역 밖으로 나가기 싫은가.

아마 시내로 가면 좋아질 것이다.


..........


눈이다. 눈.

지겹도록 봐왔던 눈이다.

생각해보니 눈꽃축제라는 것도 가끔 눈을 보는 사람들이나 태어나서 눈이란걸 본적 없는 사람들이나 즐겨하는거지, 우리처럼 이 눈밖에 없는 곳에서 지낸 사람들에게는 별게 아니였다.

그 증거로 지금도 옆에서 짜증을 감추지 못하는 공주님이 계신다.


식은땀이 흐르는거는 그녀의 기분이 내려가서가 아니다. 내가 더워서인거지, 절대로 그녀의 기분이 내려가서가 아니다.


"와 저기 늑대 동상이에요. 이쁘지 않나요?"

"..."

"앗, 저기 왕국 제일의 솜사탕 체인점이!!"

"..."


글렸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점점 주변 온도가 내려간다.


"그래서, 만족했어?"

"와- 그 유명한 눈꽃축제가 결국 애들 눈장난일줄이야"

"너도 참 뻔뻔하구나"

"뻔뻔해야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인지라"

"말만 번지르해서는, 시간 낭비야."

"가끔은 이런 시간 낭비도 필요한 법입니다. 너무 여유가 없게 생겼어요, 공주님은."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자, 얼굴에 뭐가 뭍었나 하고 얼굴을 만져봤다.

문제없다. 완벽한 내 얼굴일텐데


"내가 여유없게 생겼어?"


외모비하라 생각한건가? 

이상한데서 핀트를 잡는다.


"전혀요, 우리 공주님은 아름다을 뿐이죠."

"내가 여유없게 생겼냐고"

"딱딱하고 웃음짓지 않고 항상 딴 생각에, 뭐 여유 없죠?"

"더 이상 선을 넘지마"


분명 그녀의 말은 자신과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선이 호위와 호위 대상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그려놓은 자신의 영역..


"알았냐고!"

"아 진짜 소리는 왜 질러요, 왜"

"돌아갈거야."

"맨날 돌아간다, 안한다, 싫다. 헹, 절대 못 가요"


"이렇게 거절하는데 왜 자꾸 오는거야?"

"일하는데 심심하잖아요. 가장 큰 이유는 겉과 속이 따로 노는 공주님 때문이기도 하지만"

".. 자꾸.. 자꾸!! 오빠랑 같은 말 하지마!! 너는 내 오빠가 아니야!"


이게 포인트였나.

그녀에게 가장 깊숙히 박힌 트라우마.

그녀를 지키다 죽어버린 오빠.


"전 공주님의 오빠가 아닙니다. 오히려 동일시하면 기분 나쁜걸요?

"오라버니는 너처럼 경박하지 않았어!"


감정이 격해질 수록 그녀에게서 나오는 마력의 파동이 강해진다.

서리가 주위에 가라앉고, 주위에서는 이미 우리의 분위기를 감지해 서서히 거리를 벌려갔다.


"언제까지 늪에서 나오지 못할것입니까! 가져갈건 가져가더라도, 그건 질척거릴 뿐입니다!"

"입 닥쳐!"

"꼴보기 싫다고! 니 오빠가 정말 너가 그따위로 박혀서, 아무것도 없는 인형으로 살길 원할거 같아!!"


그래, 이건 그녀를 위해서도 아닌 내 자기만족.

보기 싫다. 

자기만의 틀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는 인형.


스승님과 만나기 전, 고아였던 나와 비슷해 보여서.

나의 추악한 과거가 그녀에게 투영돼 보여서.

보기 싫다.


강한 마력이 그녀에게서 나에게로 분출된다.

저번처럼 당할수 없지!

끊임없이 피하면서 그녀를 도발한다.

중요한건, 그녀가 상처받지 않는 것.


"계속 그렇게 도망쳐 봐!! 죽을때까지!"

"닥쳐!! 닥쳐!! 닥치라고!!!"


아, 얼음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창이 내게 격돌한다.

검 한자루로 모든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지만, 피할건 피하고 스칠건 스친다.

이토록 강한 힘을 가지고 그렇게 살 줄이야.


"오빠도 잃고, 왕궁에서 쫓겨나고! 부모님이 이걸 바라셨을거 같아?"

"&)&:)/&!!!"

"그렇게 삭히지 말고, 지금처럼 분출하라고!!!"


..........


얼마나 지났을까, 눈보라가 그쳤다.

여기와서 눈이 그친건 처음보는 광경이다.


뚝- 뚝-

내 어깨를 타고 뜨거운 액체가 흘러, 바닥을 조금씩 녹였다.


내가 수비를 일관으로 하였듯이, 그녀 또한 공격을 하되, 급소는 피해 공격햤다.


그리고 그녀는.... 가만히 서서 울고 있었다.


저벅. 저벅. 


한 걸음 내딜때마다 파이는 눈.


울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한 손을 잡고 무릎을 꿇는다.


"지금부터 바꾸면 돼. 아무것도 늦지 않았어. 전부 바꿀 수 있어."



깜짝 놀란 그녀의 동공이 커지는 걸 보며 웃음을 짓는다.


"가자, 왕궁으로. 내가 언제나 함께해줄게."


내가 해피엔딩을 맞이했듯, 그녀 또한 내가 구해주리라.


"그러니, 나와 함께 가줄래?"


"..."


적막이 너무나도 길다.

두근 - 두근 -


내 심장 소리만이 우리를 감쌀때,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빠는, 복수를 바라고 있을까?"

"몰라."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네."

"그런것치곤 처음보는 웃음인데 말이야."


그래,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스승님과 보았던 해바라기 밭이 생각난다.

그때처럼 화사한 햇빛이 내리쬐고, 활짝 웃은 그녀의 모습.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

"크큭... 푸하하하!!"


눈이 내리지 않는 영원히 봄이 오지 않는 도시에서,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그래, 두번째 챕터 종료다.

방으로 돌아와서, [세 번째 챕터 :  왕국 전복]이라고 보고서에 작성 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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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변명은 그게 다냐?]


"아니, 변명이랄것도 아니고.."


[닥지거라! 배신자는 발언권이 없다!]


"이미 기사의 길로 갈때부터 배신..."


[으갸갸갹!!!]


스승님께 호출이 온 것은 처음이었다.

응답을 하자마자 정좌를 취하라더니 장황한 설교를 한다.

자신을 배신했다나 뭐라나.

애초에 기사를 한다 했을때도 이랬으면서 유난히 난리다.


"아무튼, 잠깐 왕국 밖으로 피신해 계세요."


[캬하핫! 나를 걱정하는게냐? 이 몸을?]


"에효.. 실언입니다. 실언~"


[좋구나! 걱정! 음! 제자는 스승을 생각해야지!]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멋대로 화내고, 멋대로 기분 좋아하고.


[조만간 한 번 찾아가마. 내 제자의 고용인이라는 사람도 한 번 어떻게 생겼는지 봐야겠다.]


"오지마세요!" 


진짜로. 방해다. 계획이 일그러진다.

조그마한 체구가 이리와서 난리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곧 보자구나!]


"싫어요!!"


데쟈뷰..? 내가 얀순이에게 이러지 않았었나?

진짜로 그녀가 싫어했을까?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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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와 한바탕 다툰 후, 그녀는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어쩜 말이 많은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싶었다.


요즘의 일과는 호위는 커녕 그녀의 말동무나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오늘은 주변 한 꽃밭에 가자고 하였고, 거절할 이유가 없던 나는 그대로 따랐다.


"성에 박혀서 어떻게 살았냐?"


그 사건 이후로 말까지 놓게 되어 이제는 호위 대상이 아닌 친구처럼 대하고 있다.

그녀도 이걸 원하고 있고.


"몰라!"

"갭이 너무 큰데.."


빙그르르 도는 그녀에게 꽃이 흝날린다.

이걸 노리고 여기로 놀러 오자고 한거였나?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그래?"

"응, 오빠가 많이 좋아했거든."

"...."


유난히 그녀가 품고 있는 인형이 눈에 들어온다.

저번에 넘어졌을때 잔뜩 더러워졌는데, 아직도 그걸 소중히 바라보고 있다.


"그보다, 나 정했어!"

"뭐를?"

"복수"


너무나 쌩뚱맞은 이야기에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어째 요즘은 나만 놀라는 느낌이다.

지금 소풍와서 그렇게 해맑게 할 주제인가?


"역시, 안할래."

"응?"


확실히 꽃밭에서 할 이야기다.

복수를 안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이야기는.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이쪽에서 나가지 않으면 그 쪽에서 나간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감당은 무슨 감당?"

"그쪽에서 치고 올라오면 결국은 사단이 날텐데?"

"나를?"


진지하게 묻는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애초에, 그거 거짓말이잖아."

"에?"

"가만히 냅둘 수 없는건 사실. 고깝지 않아하고 경계하는것도 사실. 그런데 그쪽에서 선제공격을 가할거라는건 거짓."


언제부터 눈치챈거지?


"왕도 내가 이 이상을 바라고 있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을뿐더러 마법사인 나, 검사인 너가 있는데 이리로 오기는 꺼려진다는건 애도 알고 있을껄?"


계획했던데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얀붕아, 보고서를 쓰려면 좀 더 잘 써야지. 그렇게 애매하게 악인으로 있으면 가만히 볼 수가 없어."


"..."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나를 이용하려는건 좋았어. 아니, 좋아. 나와 함께해준다는 얀붕이를 위해서는 그 정도 쯤이야 할 수 있지. 그런데 가장 중요시되는게 함께한다는 내가 아니라 왕국이면 곤란해"


"..."


"왕국 전복의 명분은 나라는 존재 하나로 완성되지. 무력이야 혼자서도 가능하니까 문제없고. 내 말 중에 틀린게 있어?"


".. 없어"


굳이 실직 후 이 곳으로 온 것도. 

그녀에게 기절하여 약한 인상을 품어누는 것도.

해고라는 말을 끝까지 무시했던 것도.


그녀의 마음을 돌리게 된건 계획에 없던 일이긴 하지만, 결국 왕국 전복을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그녀를 무시하고 실행했어야했나?


아니다, 어차피 나는 그녀를 내버려둘 수 없었을것이다.

내 과거와 비슷한건 사실이니까.

결국 언젠가는 들키게 됐을거다.


"솔직히, 없어져도 될 성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취소.  내 이해자가 새로 생겼는데 여기서 지내면 될거같아."


"원망스럽지는 않아?"


"원망? 내가 왜? 얀붕이는 내게 있어서 아~주 큰! 행운인걸? 날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 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유일한 남자."


생각했던 분위기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가 예상했던건 속았다는 분노를 못참고 달려드는 그녀였는데..


"이 꽃밭은 오빠가 참 좋아했어. 참! 그거 알아? 이 꽃은 특이해서 내성이 없는 사람이 오래 있으면 정신을 잃는다?"


갑자기 무슨..


"내게는 얀붕이의 복수처럼 더욱 중요한게 있어. 얀붕이가 갇혀있던 내 마음을 열어주었듯, 나도 얀붕이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노력해볼게. 그럼, 일어나서 보자?"


한쪽 다리가 저절로 꿇어진다.

몸에서 힘이 빠지는걸 느낀다.


계획이 다 들통났을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농락당했다.

시야가 깜깜해지는걸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잘자요, 나만의 작은 악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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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가 위험하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얀붕이가 있는 위치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이 모습이 되는건 오랫만이군"


머리 위에 쏟아난 두개의 뿔.

모두가 도깨비라 흉보고 두려워하는 존재.


"곧 가마"


얀붕이의 사진과 현재 영상이 잔뜩 투영된 공간을 벅차고, 얀붕이를 구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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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종합 : https://arca.live/b/yandere/20758783

전글 삭제 후 제목 수정 -> 상,하로 나눔

중간에 노선을 바꿔서 수정했습니다.

중복된 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