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런 결말일 줄 알고 있었어”


무수한 별들이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이를 넘어 아름다울 정도로 밝게 타오르며 내리는 별들은 현재 상황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별의 빛을 반사하며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투명한 액체들은 그녀를 더욱 가련하게 보이게 했다.

내 옷깃을 붙잡으며 흐느끼듯, 마지막임을 알기에 더욱 슬퍼하며 그녀는 미안하다고만 반복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얀붕아”


악에 사무쳐 더 이상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꺽꺽대며 이런 결말은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일하게 진행하게 할 수 있는 그녀이기에, 더더욱 간절히 결말이 지연되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


“이제는 가야해”

“하지만, 하지만!!”


어느 날 세상이 멸망했다.

말 그대로 ‘이계’라는 곳에서 ‘마왕군’이 쳐들어오는 삼류소설에나 나올 그런 상황이 지구에 벌어졌고, 나와 얀순이는 그 전쟁의 최전방에서 싸우던 둘이었다.

이대로 지구가 발악하기를 바랐는지, 지구인들은 하나둘씩 침략자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고,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하지만 양패구상의 상황이 반복되자, 인류는 마왕의 봉인만이 최후의 방책임을 인정, 봉인의 재료로 마왕을 억제할 수 있는 나나 얀순이를 재료로 선택하였다.


영원히 봉인 속에서 지치지도, 다치지도 않는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지옥.

그렇기에 가장 강한 억제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같이 봉인돼야했다.

나는 그런 제안에 수긍했고 얀순이는 반대했다.

최전선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연인이 되었지만,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인류를 위해’

‘세상의 평화를 위해’

‘희망찬 미래를 위해’


얀순이는 선택해야 했고, 그 결과가 현재다.

여전히 떨리는 얀순이의 손을 잡아주고 미소를 지어준다.

두렵다. 너무나 두렵다.

나도 사실은 봉인되기 싫다. 나도 사실은 여기에 남아, 얀순이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구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얀순이가 희생양이 되기에. 

이런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끊임없는 폭음이 계속해서 사방으로 울리고 있었고, 여전히 별들은 떨어지고 있다.

얀순이의 손을 잡은 그 상태에서 봉인을 발동시킨다.


“사랑해”

“흐윽... 흑...”


환한 빛이 나를 감싸며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보인 광경은 마찬가지로 기가 빨려 기절한 얀순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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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다.

얀붕이가 세계를 위해 희생한지 겨우 1년이 지났단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너희들은 벌써 잊어버린거야?

왜 소강상태인 지금, 공세를 이어가지 않는 거냐고!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숭고한 정신을 잊지 마라?’

개소리 집어치워.

너희는 그저 안주할 뿐인 거야.

이럴 거면 왜 내가 그랑 헤어져야 하는 건데?


견딜 수 없다.

무서워 도망친 결과가 이런거라니.


얀붕이가 사라진 세상은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이었어.

이상하다.

같이 지냈던 그 순간보다 네가 사라진 세상 속에서 나는 너를 더욱 생각하고 있어.

너와 함께 걸었던 거리, 공유했던 추억, 들었던 노래.

하나하나가 나를 미치게 만들어


중압감과 압박에 쫓겨 너를 배신한 내게 이런걸 느낄 자격이 있는걸까?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을 텐데.

거짓으로 만들어진 이 평화가 의미가 있는 걸까?

보고 싶어. 만나고 싶어. 다시 한번 너를 느끼고 싶어.


홀린 듯 너를 봉인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는게 몇 번이 지난지 모르겠어.

하루에도 몇 번씩 너를 그냥 풀어주고 싶어.

너는 그럼 나를 원망하겠지?

선택을 한 이유가 뭐였냐며 나를 저주할 수도 있을거야.


그런데도 난 너가 없으면 안될거같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이름이 들려.

‘잘잤어?’, ‘오늘은 뭐할거야?’, ‘너는 내가 왜 좋아?’

사소하게 나눴던 대화가 이제야 더욱 소중히 다가오는거 같아.


무너지고 있어,

우리의 인연이. 추억이. 미래가 전부 전부 무너지고 있어.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세계따위는 아무런 중요도가 없었다는 것을.

오로지 얀붕이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무언가에 씐 듯 얀붕이를 해방해주기 위해 움직였다.

방해하던 경비원들과 일반인들은 죽였다.

네가 끔찍이도 아끼던 그 모두를 부수면서까지.

네가 지키려고 했던 것을 내가 무너트린다.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거울이 깨질 때 나는 소리와 함께 봉인이 사르르 풀린다.


얀붕아 미안해.

이제는 다시 배신하지 않을게.

죽더라도, 함께. 살더라도 함께.

다신 너와 떨어지지 않아.


하지만 내 눈앞에 보인 광경은 처참했다.


“용사여, 아- 해보라니까?”

“저리 가라고, 좀!”

“히히히! 어차피 영원히 함께할 반려에게... 음?”


뭐야? 왜 둘이 저렇게 시시덕거리고 있는거야...


“흐음... 이게 누구야? 반려를 배신한 파렴치한 여자 인간 아닌가?”

“야, 얀순아? 왜 여기에..”


이게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네가 버린 중고상품, 내가 높은 가격에 입찰했도다! 나는 너와는 달리 내 반려를 배신하진 않을 것이니”


서둘러 고개를 돌려 얀붕이를 보자, 내 눈길을 피한다.

왜? 왜? 왜? 왜? 왜?


이런 광경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얀순아! 얀순아!”


나를 걱정해주는 너의 목소리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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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여긴..?”

“오! 일어났느냐?”


하늘색과 하얀색이 섞인 양갈래 머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하는 소녀.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과 엉덩이 뒤로 살랑거리는 꼬리만 아니었으면 인간으로 착각할 정도의 천진난만함을 지닌 소녀


“마왕-!”


서둘러 그녀를 공격해보려고 하니, 나를 막는 존재가 있었다.

“야..ㄴ붕이..?”


왜 너가 공격을 막는거야?


“얀순아, 전쟁은 끝날거야. 아니, 끝낼 수 있어!”

“하지만, 그녀는!!”

“나 그녀와 결혼하기로 했어”


갑자기 나온 그의 말에 더 이상 다음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인류와 마족의 화합이 될 거야. 어차피 열려버린 차원문에서는 꾸준히 마족이 들어올거고, 그걸 막기 위해..”


들리지 않아.

이건 꿈이야. 나쁜 악몽. 


“그 이상으로 나는 얀진이가 좋아졌어.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니야. 아니야.

나는 이걸 위해 그런게 아니야


“너라면 이해해줄 거라 믿어. 꼭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다시 한번 찾아올게.”


어딜 가는거야? 가지마. 나를 두고 가는거야?


"그러니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