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딱 이렇게 생겼었다. 울산 북구의 D학원에서)


선생님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음


지문을 읽다가도 대사만 나오면 큰 목소리로 연기를 하면서 학생들 호응을 끌어내고 유머감각도 대단했다


그 날은 지리산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었을거임. 마이산인가? 아무튼 이름 대면 아는 유명한 산.


자기 친구 중에 등산을 엄청 좋아하는 애가 있는데 자기랑 맨날 가는 팀이 지리산을 가자고 해놓곤 약속을 파토냈다고


그 사람은 그 때가 절경이고, 이번에 자랑하려고 등산복, 장비들도 다 맞췄는데 화가 난거지


그래서 혼자 가기로 했다는거야 또 그 사람이 등산할 땐 술을 꼭 챙겨간다고 하더라고


'음주등산 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왜 있겠어? 그게 그렇게 즐겁단 말이지 술안주는 자연경관이 다 해주는데 말야ㅋㅋ'


그러면서 가방에 팩소주를 한 가득 챙겨놓고 홀로 산에 올랐지


자칭 프로 산악인이라고 자부하던 만큼 어렵지 않게 목표하던 곳에 오르고 소주팩 하나 빨대로 쪽쪽 빨다가 날씨도 좋아서 잠깐 기대어 앉았던 것이 잠들어버렸음


깨보니 주황빛 노을이 지고 있어 급하게 내려갔지만 금세 어둠이 찾아왔고 맘이 급하다 보니 경사로에서 미끄러져 굴러 떨어졌다더라


등산복, 등산화는 비싼값을 한대. 좀 찢기긴 했지만 큰 부상은 없었지만 도저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거지


폰 전등으로 길을 찾아보려고 한 시간 가까이 돌아다녔는데도 등산로가 아닌 산은 방향 잡기부터가 안 된데


전파는 안터지고 배터리 수명도 얼마없어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노숙이었음


산이라고 전부 경사로만 있는 건 아니라 적당한 평지를 찾아서 자리를 잡았고


어쨌든 조난 당한거고, 생명이랑 연관된 일인만큼 미친 척하고 모닥불도 피웠음 성경이 그리 잘 탄대. 등산로에서 받은 수첩같은 성경을 불쏘시개로 쓰고


낙엽은 다 치우고, 구덩이를 파서 만든 불.


그리고 팩소주랑, 아직 배터리가 충분한 MP3.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이 정도면 해도 감지덕지라면서 밤을 보내고 있는데


몇 시간 뒤에 인기척이 느껴진거지


보니까 노란 아디다스 패딩을 입고 있는 30대 남자였단거야. 불 피운거보고 찾아온 감시원인가 싶어서 허둥대는데


자기도 조난 당했고 불빛보고 찾아왔다는거지


어이가 없어서 서로 ㅋㅋ거리면서 웃었고


팩소주를 건내주고, 그 남자는 배낭에서 새우깡과 초코파이를 꺼내 나눠먹으면서 조난 당한 두 남자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썰을 풀기 시작했어


이번에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 약속이 파기되서 혼자왔어요.


 ㅋㅋ 그렇다고 혼자 오세요? 대단하시네.


그러게요. 그래도 쪽팔리게 굴렀다는 건 모를텐데 그게 다행이죠ㅋㅋ 그쪽은 혼자 왔어요?


아. 여자친구랑 같이 왔었어요. 등산복도 엄청 섹시한거 알아요?


ㅋㅋ 전 와이프 있어서 안 부럽습니다ㅋㅋ 근데 여자친구분은요?


그게... 계곡에 빠졌었어요. 그래서 구해주려고 들어가 내려오다 이렇게 됐네요.


허. 위험했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어떻긴요? ㅋㅋ 죽었죠.


그 땐 모닥불만 보고 있어서 그 청년의 얼굴을 안보고 있었는데


분명 멀쩡하던 옷들이 흥건하게 젖어있었고 고개를 들어서 쳐다보니


창백해진 얼굴에 몸엔 나뭇가지들이 엄청나게 박혀있었다고


아저씨도 조심히 내려가세요. 그 한 마디를 듣고 기절했다더라


새벽에 눈 뜨고 허겁지겁 내려가는데 성공했고 산 입구 경비실에 사람이 계곡 어디서 죽은 것 같다고 하니까 알아보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남녀 시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등산로에서 벗어나 조난당한 시체는 찾기도 힘들다던데.



괴담챈에 올리는 이야기라 다 알겠지만. 우린 처음엔 진짜로 그저 웃긴 이야기로만 들었다가 갑자기 톤을 깔고 '죽었죠.' 라고 할땐 존나 소름 돋았었다. 진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