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남녀역전?)








"ㅡㅡㅡㅡ그래서, 음. 듣고 계십니까?"

"듣고 있다."

"공작님. 그러니까, 안타깝지만 도련님께서"






자살하셨습니다.



***



리즈벳 공작가라 하면, 라스틱 제국 내외에서 손에 꼽는 명문가로 알려져 있다. 건국부터 현 시대까지, 리즈벳의 성을 갖고 태어난 인간은 그 우수함을 언제나 증명해 왔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또한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어머니. 그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잘못들은 거 맞죠?"

"진정해, 언니. 그 무능한 놈이 또 사고친 거겠지. 하, 자살이라니 무슨, 아무리 멍청해도 그럴 리가........."




첫째, 둘째 딸.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고, 부정했다. 그럼에도 죽은 이가 돌아올 수는 없다.


공작, 메릴로 리즈벳이 두 딸에게 각자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론이 쓴 유서다. 너희 몫이니, 일단은 읽


[공작님. 아니, 어머니.]




쾅. 책상이 거칠게 두들긴 장녀, 라우라의 눈에는 분명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정작 살기를 마주하는 공작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언, 언니. 일단 진정해......"

[시끄러워. 이따위 촌극을 듣고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 론이 죽었다고? 자살? 웃기지 마세요, 공작님. 아무리 론이 눈엣가시였다고 해도 이런 짓은........]




"죽었다. 론은."




명백하게 살의를 보내는 상대를 향해 무표정으로 대응하던 공작은, 고작 한마디를 뱉었다. 공작은 지쳐 보였다. 장녀의 감정을 꾸짖을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기운이 없어 보였던 적이 있던가.




"그럼, 뭐야. 여기 이게 진짜 유서라고. 그 아이가, 정말 죽었단 말이야?"

"그래, 그보다 '그 아이'라. 론을 그렇게 부른 적이 있던가? 항상 하던 대로 하지 그러냐. 너는 불량품이라고 불렀었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항상 그 아이를 없는 취급 하고 미워했던건 당신이었어!"

"이제와 부정하진 않겠다만, 자격이라니. 그런 건 우리 중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으, 아니, 아니야. 론. 이건, 난 이런 걸 원했던 게."

"레이첼."




차녀가 유서를 쥐고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직 유서를 읽지 않은 두 사람도 종이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유서의 내용은 단순했다. 개인마다 사소한 차이는 있었으나, 3장 모두 한가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공작님께.'

'첫째 아가씨께.'

'둘째 아가씨께.'




'가문의 누가 되지 않을 선택이라 믿습니다.'



원망도 없다.

증오도 없다.

후회도 없다.

지푸라기만한 감정마저 느껴지질 않는다.



오로지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죽음이, 공작가의 이익이 될 것이라는 뒤틀린 믿음.




이건, 기계가 쓴 글씨 같았다.




".........네가 왜 울어."

"어, 언니."

"항상 론을 연무장에 데려가서 목검으로 두들겨 팬건 너잖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나는, 그저, 론이 조금이라도 강해졌으면 해서........"

"그 아이가, 항상 상처투성이였던 원인은 대부분 너였다."




레이첼이 론을 연무장으로 데려가 '훈련' 시키는 모습은 공작가에서 일상이었다. 훈련이 끝난 론은 언제나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언니랑 엄마 때문이었어."

"뭐?"

"항상 론을 무시했었잖아! 언니는 항상 불량품이라고, 엄마는 리즈벳의 이름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약한 놈이라고 했으니까! 그 바보가 조금이라고 강해졌으면 해서 데려간 거였다고!"

"............"

"내가 론을 아프게 했어. 진실이야, 론의 몸에 피멍을 내고 뼈를 저리게 한 건 나야. 나도 인정해. 하지만, 론은 한번도 그만하고 싶다고 말한적은 없었어."

"하, 레이첼?"

"둘은 관심조차 없었잖아. 론이 기사단에 입대하겠다고 할 때, 그걸 허락할 때 무슨 생각이었어? 그때 말렸던 건 나 혼자였는데!"

"레이첼. 훈련이 끝난 후 론의 모습을 본적이 있나?"




메릴로의 질문에 레이첼은 대답하지 못했다. 훈련이 끝난 후의 론이라, 본 적 없다.




"너와 대련이 끝날 때마다, 의사를 보냈었다."

"엄마가, 론을.......?"

"론은, 항상 울었다더군. 그 아이가 입대를 요청할 때 내가 말리지 않았던 이유는 너였다. 레이첼."

"뭐, 내가.........."

"론은 너에게서 도망치려 했던 거였어. 나랑 어머니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니까. 그래서 아무말 없이 기사단에 보냈던 거야. 그 아이를, 치우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 론이 나한테서 도망가려 했다는 게 사실이어도........"

"그때, 너만 말렸으니까."

"그때 론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레이첼.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



도망치려, 했다고. 

기사가 되려던 게 아니라. 나한테서 도망갈 길을 찾았던 거였어.




"나는, 그려려던 게. 나, 나 때문에........"

"아니다. 내 탓이지. 미숙하게 태어난 론을 마주하려 들지 않았던 내가, 모든 원인을 제공했다."

"...........엄마, 아니야. 내가아...."

"알게 뭐야. 그딴거."

"라우라."

"그 아이는, 나조차도 원망하지 않고 떠났어."



라우라는 죽어가는 이처럼 탄식했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 그녀들이 얼마나 후회하든, 론 리즈벳은 이제 없는 사람이다. 며칠 후면 시체 한 구가 공작가에 올 것이고, 타고 남은 재는 어딘가 묻힐 것이다. 그렇게 끝날 이야기였다.








*









"론. 여기 있었구나!"

"..........처, 첫째 아가씨를 뵙습니다!"

"이거 가져!"

"소, 송구합니다. 헌데 이게 무슨.........?"

"별거 아니야, 널리고 널린 공작가 가보."

".........제가, 이번에도 무슨 잘못을 저질렀군요."

"응?"

"죽여주십시오. 첫째 아가씨."

"어, 어? 이게 아닌데."




*



".......흐, 윽. 죄송합니다."

"아픈건 죄송할 일이 아니야. 눈 뜨지마, 누워있어."

"그럴 수는 없어요, 열 때문에 누워있다간 작은 아가씨가 화내실 거예요......."

"그 작은아가씨 결정이야, 이제 훈련 없어. 계속 눈 감고 있으렴."

".........작은 아가씨가요? 정말로, 쉬어도 되나요."

"그래, 앞으론 편하게 쉬어."

"으........."


"잘 자렴, 우리 막내."



*



"공, 공작님. 부르셨다고, 하셔서........."

"공작님이라, 론. 네가 올해로 몇 살이었지?"

"아홉입니다. 공작님."

"마마, 라고 불러보렴."

"...........잘 못들었습니다?"




*




응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