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1편

2편

3-1편




2.

'우리, 이혼해요.' 


'이제 끝이네요.' 


'다시는 마주치지 말아요.'


늪처럼 깊고 질척이는 꿈 속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직후, 찾아오는 약간의 멍함.

으레 그렇듯 꿈에서의 경험을 되돌아 짚게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아."


금세 휘발되어 사라질 편린에 불과했지만, 갓 깨어난 직후이기에 더 선명하게 되감긴다.

머릿속을 맴도는 그 남자가 내뱉은 단어들, 오 년간 볼 수 없었던 감정을 담은 또렷한 민낯.

스륵 거리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여자, 정희수는 이내 신경질적으로 이마를 쓸어내렸다.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 제 멋대로 같은 트랙만 반복 재생한다.

듣기 싫은 노래, 제 취향도 아니면서도 좋아하는 가수라 억지로 사놓은 앨범.

정희수의 머릿속이 딱 그 꼴이었다.

눈을 감을때마다 재생되는 정우의 목소리.

정우의 얼굴.

정우의 표정.

하나같이 다 불쾌하게만 다가왔다.


자꾸만 드러나는 감정을 억지로 지워내고, 이불을 갰다.

방을 나서자 거실에는 넓은 차창 너머로 눈부신 햇빛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늘 칙칙하고 풍화된 회색의 광경이다.

무색채.

변화를 거부하는, 그 지루한 단조로움이 익숙하게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드르륵.


늘 그랬듯, 먼저 식탁에 앉아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았다.

절대 바뀌지도 않을거면서, 언제나 똑같으면서, 이 지겨운 것들을 매일같이 바라보는 이유는 뭘까.


정희수 그 자신이 생각해도 이 무의미한 행위는,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약간의 소음과 함께, 이내 '드세요' 라는 말이 들릴때까지 이어져왔었다.


"아."


약간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들려오던 그 목소리의 부재에, 부엌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째서인지 조금은 허전한 공백이 보인다.

삼십 분.

아니 한 시간은 더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던 남자.

아직도 잠에서 덜 깬건지, 고개를 돌려 그 남자의 방문을 바라보는 자신이 있었다.


이제 갔잖아.

이제는 없잖아.


어제밖에 되지 않은 일인데도, 꿈에서도 마주친 얼굴인데도 그를 찾고있는 나 자신이 있다.

그 생각을 부정하듯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너무 많이 남아서 통에 담아놨던 그가 해놓은 반찬.

그 반찬들을 꺼내, 천천히 식기에 옮겨 담았다.


24H


전기밥솥에 써져있는 숫자였다.

보온이 켜져있기는 했지만, 주걱으로 떠내는 밥은 조금 딱딱했다.


달그락, 달그락.


차갑다.

비교적 좋아하던 반찬들이었는데, 정작 식으니 그다지 맛이 없었다.

데워서 먹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딱딱하다.

돌을 씹는 수준은 아니었지만서도, 씹어넘기는 밥은 꺼슬거리는 감촉으로 혀를 긁어냈다.

결국, 입 안으로 제대로 넘기지도 못하겠어서, 반절 넘게 밥을 남겨버렸다.

다시 반찬들을 냉장고에 집어놓고는, 식탁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았다.


툭, 툭.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천천히, 리듬감있게 무언가를 두드리는 행위는, 신경쓰이고 불안한 일이 있을 때 제멋대로 나오는 버릇같은 것이었다.

불안한걸까.

도대체 뭐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들여다 봤다.


툭, 툭.


연락처를 누르자, 수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빽빽하다.

그 가면들을 눈에서 치우기 위해, 연락처의 검색창을 열었다.


'이정우'


'이정'까지만 쳐도 나오는 그 석자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계속 신경쓰이게 하는 남자.

신경쓰여.

그 얼굴이.

그 표정이.

지금도 그러고 있을까?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초록색의 통화 버튼에 손이 간다.

그저 한번의 터치면, 곧장 연결된다.

그 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받지 않겠지."


결국 '뒤로 가기'를 누른다.

받지 않을 테니까.

이정우는 절대로 그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어제 그렇게 끝냈으니까.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그 말이 도돌이표 처럼 돌아온다.

그 때문에 조금 생각하던, 정희수가 연락처에 다른 이름을 검색했다.


'김실장.'


아까와는 달리, 망설임 없이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수신음이 채 세 번도 지나지 않아, 중저음의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알아봐 줄 사람이 있어요. 위치만 알면 되니, 어려울 건 없을거에요."


그 흔한 인사치레도 없는 용건뿐인 말일지언정, 전화를 받은 남자는 즉답하였다.


[이름만 말하시죠.]


"이정우."


[......알겠습니다.]


그 이름을 아는건지, 김실장은 약간의 침묵 이후, 대답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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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늦어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