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1.

불쾌하다.

숨을 들이내쉴때마다 느껴지는 역한 알코올의 냄새에 당장이라도 속에 잔류한 모든 것을 게워내고 싶을 정도였다.

앉아있음에도 자꾸만 기우뚱거리는 몸.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정신은 멀쩡하다.


또렷하게 떠오른다.

아니 오히려 술 때문인가, 전부 지워낼 것이라 생각했더니 머릿속에서 하나의 생각만이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뭇내 괴로워, 정우는 다시금 빈 잔에 소주를 채워넣었다.


꿀꺽.


그것을 지워버리려고, 신경질적으로 계속 들이켰다.


"씨이발...진짜..."


저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온다.

왜.

왜 자꾸 생각나는거야.


정우의 머릿속 한켠에 아침의 일이 스쳐지나갔다.

내뱉은 말, 몇번의 터치, 한번의 알람.

그 관계를 정리하면서. 끝까지 입을 연 것은 자신 뿐이었다.

이혼얘기를 꺼낸 직후를 제외하면 나가는 순간까지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는 일은 없었다.

정희수는 그런 여자다.

그렇기에 더이상의 미련도, 생각할 가치도 없다.


그런데, 거기서 난 무슨 기대를 한거야.

그 여자에게 뭘 바랬기에 아직도 생각나는 거냐고.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듯한, 자신의 모습에 몸서리 처질정도로 불쾌함이 솟구쳤다.


"좆같네...씨..."


다시금 복잡해진 마음을 억지로 헝클어뜨리며, 마른 세수를 하던 정우가 멍하니 밖을 쳐다보았다.


투둑, 투둑.


땅에 있는 것은 전부 쓸어내릴 기세로 쏟아지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아, 고작 이정도였나.

거창했던 시작치고는 너무나 싱겁고 초라하게 끝나는 결말이다.

혀 뒤를 타고 씁쓸함이 밀려올라온다.

어쩌면 자신도 이리 싱겁고 초라한 결말에 도달했는지도 모르지.


까득!


그런 회한에 섞인 푸념으로 마저 새 소주병을 까던 참이었다.


"저기, 아저씨."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예의 그 무성의한 얼굴이 보인다.

자신한테 우산을 팔며, 입으로만 감사합니다를 말하던 편의점 아르바이트.

교대 시간이 됬는지, 유니폼을 벗은 이제 갓 스무살 넘어 보이는 얼굴의 여자가 들고있던 과자를 정우의 앞으로 던졌다.

새우 그림이 그려져있는 아주 오래된 국민 과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쳐다보자, 괜히 틱틱거리는 말이 귀를 때렸다.


"아저씨, 뭐 여자친구랑 헤어졌어요?"


당돌한 질문.

초면에 물어보기에는 제법 실례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왠지 의표를 찌르는듯한 질문에, 그저 숨만 헛 들이키던 정우는 한참을 생각하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지긴 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대낮에 깡소주가 뭐에요? 그거라도 좀 먹어요. 보는 사람도 속 아프니까."


"...감사합니다."


"네, 네. 그럼 이만."


감사를 받는것 또한, 건성스럽던 여자가 곧장 우산을 펼치고는 떠나버렸다.


"......."


그야말로, 제멋대로 와서는, 제멋대로 굴고, 제멋대로 사라져버렸다.

황당하기도 하고, 짐짓 어이가 없기도 해서, 한참을 그 여자가 걸어간 거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여자가 준 과자의 봉지를 뜯었다.

코에서 느껴지는 인공적인 새우냄새.

사실 그다지 새우맛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사람은 물론 갈매기들도 참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바삭, 바삭.

천천히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오랜만에 먹어보는데도, 어제 먹은 것처럼 익숙한 맛이 느껴진다.


하나, 둘.

술도 없이 과자만 입에 집어넣었다.

봉지의 과자가 빠르게 사라져갔지만, 멈출줄 모르고 그렇게 씹어넘겼다.


하나, 둘.

조금씩 과자를 씹어 넘길때마다 어지럽고, 불쾌하기만 하던 머리가 점차 개운해진다.


하나...아.

부스럭거리며, 갈 길을 잃은 손을 봉지에서 빼냈다.

어느새 텅 비어버린 안.

과자가 동 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일어나자.

어느새 말끔해진 정신으로 돌아온 정우가 이내 술병을 치웠다.

물론 취기라는게, 그리 빠르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은 분명히 또렷했다.


"그쳤네."


우산을 피려다 멈추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제 모습을 비추는 해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방이라도 구해볼까.

인근의 모텔은 많으니,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계속 걷느라 피곤하기도 하니, 간만에 잠이나 한 번 늘어지게 자볼 심산이었다.


편의점 테라스에서 나오며, 정우는 괜히 한번 그 당돌했던 아르바이트가 걸어간 길을 쳐다보았다.

그다지 긴 대화, 아니 대화라고 성립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막무가내에 제멋대로였지만, 이상하게도 금세 그 시간이 아쉽게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대화를 들어줄 사람.

정우는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갈피를 찾은 느낌이었다.











-----------------------------------------------







아 야근 진짜...

미안, 내일 3-2써올게.

진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