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컴퓨터를 켠다. 지난 7년 동안 늘 해오던 일이었다.

 

바탕화면이 열린다. 그 왼쪽에 떠 있는 바로가기 아이콘. 《프라토리움 온라인》. 더블클릭 하면 나오는 런처. 실행 버튼을 누르고, 실행한다.

 

툰 쉐이딩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눈 앞에 떠오른다. 그래픽 업데이트를 수 차례 한 탓인지 메인 배경을 이루고 있는 텍스쳐는 유채화처럼 아름답다. 아이디를 누르고, 로그인을 클릭하고, 들어가면, 그 아름다운 배경의 중앙으로 걸어들어오는 캐릭터.

 

“크, 여신님.”

 

설정상으로는 플레이어의 세계와 게임 내 세계의 연결을 도와준다고 하는 이 캐릭터를 나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을까. 그 여신이 손을 벌리자 튀어나오는 저 아래의 캐릭터는 또 어떻고.

 

마법사. 100레벨. 들인 돈만 해도 2000만원이 넘은 나의 캐릭터. 클릭하자마자 방긋방긋 웃고있는 저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잠시 망설임이 들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미래를 위해.

 

“삭제한다.”

 

버튼을 누르자, 화면의 중앙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세지.

 

[삭제하시겠습니까? 동의하신다면, 아래에 뜬 빈칸에 본인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입력해주세요.]

 

지난 7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 행위를, 나는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고등학교 중간에 시작해 대학 내내, 군대에 들어가서도 출타 나올 때마다 계속 머리를 처박고 하고 있던 프라토리움 온라인을, 나는 삭제하려고 하고 있다.

 

이유야 뭐, 드디어 취업을 성공했기 때문이다. 앱과 이력서와 경력에 파묻히며 발악을 하던 백수생활은 어제 합격 통지서를 받은 순간 끝나버렸다.

 

대학 시절에 사귄 여자친구가 축하해 주고,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온 문자에 둘이서 술파티를 하다가, 여자친구가 말한 것이 이상하게 비수처럼 내 마음에 꽃히는 것이다.

 

“돈 벌어서 뭐하게?”

 

“그, 타온(약칭)에 질러야지. 이제 수익도…….”

 

“엥, 미쳤어?”

 

“뭐?”

 

“돈 모아서 차 사던가, 집 사던가 해야지. 결혼은 그……아직 이른 맘이지만, 자기랑은 결혼할 의향도 있는데, 열심히 일 하고, 다른 스펙도 쌓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미래를 위해서.

 

맞는 말이었다.

 

7년 동안 수도 없이 질러온 프라토리움 온라인. 엄마가 주는 용돈. 가끔 했던 알바. 쥐꼬리만한 군대 월급. 거의 먹고 사는 거 빼곤 다 이 게임에 쳐발랐다.

 

이 게임이 아니었으면 변변찮을 수도 있지만 굴러가긴 할 차를 사고, 원룸 보증금도 내 돈으로 내고, 여자친구에게 맛있는 밥을 먹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졸업해야지.

 

“안녕히, 그, 내 좆같은 게임아.”

 

매세지창 아래에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7년과, 어림잡아 2~3천만원. 이렇게 사라지는 구나. 깔끔하게.

 

즐거웠다.

 

“어?”

 

라고 하며 끝나야 했는데.

 

[삭제하십니까? 아래에 뜬 빈칸에 본인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이상하게, 누르니, 새로운 상태메세지 창이 뜬다. 살짝 다르게 생긴 것이 입력 자체가 끊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대체 왜지?

 

어, 일단, 다시 빈칸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쳤다. 화면 중앙에 있는 내 캐릭터와 웃고 있는 여신의 모습은 미묘하게 정적이었다.

 

[베로니카 여신의 창조물인 프라토리움 세계를 떠나시겠습니까, 영웅이시여? 아래에 뜬 빈칸의 ‘당신의’ 성명과 생년월일 입력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금 뜬 그 상태창에 무심코 벌려진 입. 그 상태로, 다시금, 빈칸에 똑같은 글을 적었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무언가 이상하단 확신은 들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느정도까지인진 눈치채지 못했다. 캐릭터 삭제에 대한 확인 매세지를 세 번씩이나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왜요?]

 

그리고 이런 창이 뜬다는 것은 그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빈칸이 없이 확인버튼만 뜬 그 창의, 확인 버튼을 눌렀다. 무심코 숨을 삼키면서.

 

[왜, 이곳을, 떠나려 하는 거죠? 영웅님?]

 

“아니, 뭐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말해버리자, 화면 중앙에 떠 있는 상태메세지 창은 자기 알아서 갈아치워졌다.

 

[왜, 떠나려 하는 거죠?]

 

“아니, 취업했으니까!”

 

[당신은, 저의 세계를 수십번이나 구해주었어요.]

 

스토리를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세계를 몇 번 구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대규모 업데이트마다 나타나는 최종보스가 세계멸망급의 위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잡아도 뜨는 템에나 관심이 있지, 세계를 구했단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다.

 

그야, 게임이니까.

 

[당신은, 저의 세계를 수십 번이나 구하고, 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주었고, 저를 위한 공물을 여러 번 바치기도 했으며, 이 세상 전체에 있는 악들에게 저의 이름을 드높였어요.]

 

“아니, 그냥, 삭제 해달라고.”

 

게임에게 저런 소리를 듣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말 자체의 내용도 어폐가 있는 게, 그 정도 해줬으면 이제 날 슬슬 놔줘도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영웅님을, 사랑해요.]

 

그러는 동안 자기 할 말을 써내고 있는 게임의 상태메세지창.

이 버러지 같은 돈슨(회사이름이다)은 게임을 뭔 정신으로 만들었길래 이런 상태메세지를 클라이언트 안에 집어넣냐.

 

[신으로서, 이 세계에 남아있는 지성체로서. 사람으로서. 기계로서. 언어의 총집체로서. 영웅님을 사랑해요. 저에게 가장 희열 찬 경험으로 남은 당신을 사랑해요.]

 

그 희열 찬 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게임에 돌아올 일을 없애려고 삭제하려던 캐릭터였는데, 이런 꼬라지를 보여주는 걸 보니 다시는 돌아올 일이 없을 게 확실했다.

 

그냥 작업관리자를 열어서 꺼야겠다. 그리고 게임 자체를 삭제하는 거지.

 

그 말을 실현하기 위해 키보드 위의 버튼을 몇 번 누른 순간.

 

[삭제하려 했어요?]

 

섬뜩한 감정이 일었다. 화면의 상태 메시지가 바뀌어 있었다.

 

[삭제하려]

 

[했어요?]

 

무심코 입을 벌리고선 화면을 계속 바라보았다. 키보드에서 손을 땠다.

 

[그럴 리가 없는데.]

 

화면이 한번 지지직 대다가 돌아온 순간, 나는 무심코 컴퓨터의 전원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

 

[럴]

 

[리]

 

[가]

 

[?]

 

하지만 아무리 전원버튼을 눌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이거,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겠다. 프로그램이 미쳐있던가, 내가 미쳐있던가, 둘 중 하나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이렇게 단시간에 미칠 것 같진 않다. 원룸에서 나가서 돈슨으로 가든 게등위로 가든, 이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하지만 일어나서 문으로 걸어가, 도어락을 누르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앉아요.”

 

모니터에서 들리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게임 화면의 위에서 베시시 웃고 있기만 하던 여신의 형상이, 급작스레 입을 벌리고 말하고 있었다.

 

“앉아요.”

 

그 말에 덜덜덜 떨리는 발을 이끌고서 모니터 앞에 앉으니, 화면의 위에 있던 여신이, 살짝 얼굴을 비틀면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접속하세요. 당신은 못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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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노벨피아에 쓰면 어떨거같노



+썼읍니다 제목 그대로 치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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