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끔직한 악취가 코끝을 감쌌다. 머리가 어질할 정도의 지독함에 절로 눈살이 찌부러진다. 


“구역질 나는 냄새네.”

“너무하시네요. 선배. 이래 봬도 여자아이인데, 좀 더 에둘러서 표현할 순 없었나요?”

"발할 걸 바래” 


내 싸늘한 핀잔에 은아가 침음과 함께 쓴웃음을 지었다. 무의미한 대화다. 앞으로 내디뎌야 할 주제에 대한 도망에 불과하다.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데. 너 담배피니?”

“아니요.” 


그런데 저런걸 샀다고. 나는 반개한 눈으로 바닥을 내 뒹구는 검은 물체를 보았다.



“지포 라이터 기름이라.”



내 혼잣말에 은아가 담담히 답했다. 


“미성년자는 주유소에서 못 사니까 그 대신이죠. 굉장히 저렴하더라고요.”

“아, 그래?” 


차차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흠뻑 젖은 교복과 백색의 머리칼에서부터 노르스름한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양손엔 보란듯이 라이터를 꼭 쥐고 있고. 


"분신자살?"

"아직은 말이죠." 


퍽이나 잘말한다. 다리는 시시나무 떨듯 후들거리고 있으면서. 





*****






징조따윈 없었다. 


은아라는 후배를 만난 것은 고작 일주일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에 관해선 거의 초면이라 표현해도 무방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매일같이 이 동아리실에 찾아오긴 했다만, 예의상으로 던진 인사나 농담이 전부. 그 이상의 대화는 전무했다. 


'물론 내 동아리가 [상담부]라는 것에서부터 걸리는 점이 있긴 하다만.' 


정작 들어온 본인이 망부석마냥 입을 꾹 다물고 앉아있기만 하니, 상담은커녕 눈치만 봤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내 안의 김은아란



[순백의 머리색이 특이한 후배]



여기서 끝이었다. 


그러니 갑작스레 분신자살이든 뭐든 나로썬 아는 게 없다. 


“선배?” 


흡연자가 주머니의 담배를 찾듯 내 오른손의 검지가 필사적으로 엄지의 살덩어리를 찾아댔다. 긴장할 때만 튀어나오는 나쁜 습관이었다. 


진정해 병신아. 넌 그저 언제나의 대화를 평소처럼 던지면 되는 거라고. 


"그래, 그래서... 우리 상담부엔 또 무슨 용무? 입부 신청이라면 한정 이벤트로 부회장 자리가 자동으로 따라온다만."

"쿡.. 아뇨. 귀찮은건 질색인지라." 


어디 무슨 말씀을 하실지 매우 기대된다는 무척이나 열받는 뉘앙스다만. 


"그건 안타깝네." 


자극은 금물이겠지. 


상대는 강도나 다름없었다. 라이터라는 흉기를 든 체 자신의 목숨을 협박재료로 쓰는 최악의 강도. 


강도나 분신자살하려는 후배나 패닉상태로는 뭣도 안되니까, 첫단추는 이걸로 맞을 것이다. 


"입부 신청이 아니라면 역시 지루해서?"

"평소였다면, 말이죠." 


은아의 얼굴에 어색한 호선이 그려졌다. 울면서도 웃는 것 같은 것이 억지웃음에 틀림없었다. 


동요를 보여선 안된다. 나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여유를 가장한 채 말을 이었다. 


"온종일 묵언 수행하던 애가 웬일이야. 이 곳에 용무가 다 있고."

"당연히 있고 말고요. 아니면 제가 이런 꼴로 선배를 기다릴 리 없잖아요?" 


굳이 사람도 없는 이 상담실에서 그 지랄을 한 건 내가 원인이라는 건가. 


딱히 원망받을 만 한 짓은 한 적 없다고 생각한다. 나쁜 쪽의 원인은 거의 없다고 치부해도 무방했다.



하면,



"역시-"

"상담신청이죠." 


촌극은 질렸다는 듯이 내 말을 가로챈 은아. 서론은 끝났다. 이제부터가 문제의 본론이었다. 


"상담을 하는데 온몸에 기름을 부을 필요가 어디있지?"

“보험이죠.” 


보험?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집안은 가난한지라. 상담 비용이 없더라고요.”

“우리는 무료 서비스인데.”

“특별 케이스여서요.” 


은아는 손안에 쥔 지포라이터를 꼬옥 끌어안은 채, 누군가를 조소하듯 말했다. 


“저 같은 쓰레기가 이러한 [욕망]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끔찍하게 느낄텐데 당연히 필요하죠. 필요하고 말고요.”

“…”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마저 낮은 최악의 정신상태에서의 자학. 불난 집에 부채질은커녕 기름 붓는것과 다름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격려하기엔 너무나도 그녀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 슬슬 제 상담.. 들어주시겠어요?" 


은아는 담담하게 책상위를 가리켰다. 본적도 없는 새하얀 봉투가 눈에 띄었다. 


어딘가 불온한 낌새가 느껴진다만 여기서의 주도권은 엄연히 그녀쪽. 그러니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수 밖에. 


살점이 파여 핏물마저 맺은 오른손을 감춘 체, 난 왼손으로 책상 위 봉투를 집었다. 


안에 든 것은 한 장의 편지지



지우개로 뭉개져 흑연 자국이 잔뜩 남아있는 종이



그 내용은ㅡ




[초코 케이크] 




"...먹고 싶다고?"

"네." 


아, 그래. 그러니까...뭐라고? 


"쿠쿡..선배, 그런 표정도 짓는군요?" 


은아의 창백한 얼굴에 새초롬 듯한 미소가 피었다. 필시 저 눈동자 너머엔 얼간이같은 표정에 키작은 꼬마가 서 있을 게 뻔했다. 


...이건 허를 찔렸나. 


실은 집에 큰 빚이 있었다던지 가까운 친구가 죽었다라는 암울한 과거 이야기를 가늠했었다만.. 


"노력한 보람이 있네요."

"나를 한 방 먹이는게 목적이었다면, 축하해. 제기랄, 된통 당했어." 


더이상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릴순 없으니,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눌러가며 난 정신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여태까지의 키워드를 정리하자면

[분신자살]

[상담]

[어떠한 욕망] 

마지막으로 [초코 케이크]. 


즉 김은아는 분신자살을 계획했으며 


나에게 반협박의 상담을 신청했다. 


그것은 그녀의 어떠한 욕망과 관련돼있고 


아마도 초코케이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뜻은ㅡㅡㅡ 


"다음이 있다- 이거네."

"네?"

"너가 말했잖아, 따로 목적이 있어서 그런 꼴로 나를 기다렸다고." 


그깟 케이크 따위에 목숨을 걸 리가 없잖아. 


"..그렇죠."

"그럼 말해줘. 내게 무엇을 상담하고 싶은 거지?" 


이번에야말로 문제의 그 본론. 


은아는 잔뜩 긴장한듯 심호흡을 몇번 하고서야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선배, 케이크는 보통 언제 먹을까요?” 


이건 또 뜬금없네. 


“주로 누군가를 축하할 때 먹지. 예를 들어 결혼식이라던가-”

“그리고.”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았다는 듯 날선 반응이 문뜩 튀어나왔다. 


은아 자신조차 자신의 거친 목소리에 조금 놀란듯 보였다만, 그만큼 흥분상태라는 뜻이겠지. 


“..생일 때 먹지.” 


“네, 케이크하면 바로 생일케이크죠. 케이크 없는 생일 따위 있으나 마나니깐요.” 


“……” 


“그리고 또 생일하면 가족이죠. 친구들이랑도 축하한다곤 하지만 저, 친구가 없는지라 그쪽은 딱히 공감되진 않네요.” 


은아가 자신의 머리칼을 배배 꼬며 뱉은 자조적 발언. 


나도 모르게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와 새하얀 머리칼에 시선이 쏠렸다. 


알비노. 

혹은 백색증이라 불리는 색소 부족의, 그녀가 지닌 선천적 질병. 


주변의 수많은 검은 머리 중에서도 단 하나, 툭 튀는 흰색의 머리칼. 왕따의 목표로 삼기에는 적합했을 테지. 


내가 그 흰색에 한눈 판 사이, 은아는 짧게 손뼉을 쳐 내 시선을 끌었다. 


“네, 전부 제 선천적인 질병때문이지만..그건 나중에 거론하고.” 


다름아닌 그녀의 손아귀에 쥔 라이터로. 


“자, 생일 파티엔 가족이 필요하답니다. 하지만 저를 사랑하는 가족이란 어디에도 없네요.” 


깃털과도 같은 가벼움과 이질적이게 한층 무거움이 설려있는 그 말투. 


“혼자서 파티라는 표현은 무리죠. 친구도 가족도 없는 제가 누구와 함께 파티를 열어야 할까요?” 


마치 연극을 펼치는 듯한 어투다. 


“…요점이 뭐야.” 

“그러니깐 말이죠ㅡ”



틱-! 


"잠-!"

"이런 거에요." 


조그만한 마찰음과 함께 피어오른 라이터의 불꽃과



턱밑까지 다가온 죽음의 문턱 앞에 깨져버린 그녀의 포커페이스.



얼굴은 점차 겁에 질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려버릴 것처럼 변해갔고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그녀의 몸은 파르르 떨고 있었지만───




“선배, 제 가족이 되어주세요.” 




그녀의 눈동자 하나 만큼은 작은 불씨처럼 붉은 색으로 일렁거렸다. 


“저, 정말로 케이크가 먹고 싶어요. 입에 넣기만 해도 사르르 녹는 초콜릿 맛의 달콤한 케이크.“


"너..대체 무슨 소리를..." 


“하지만 생일 케익은 어디까지나 축하할 때나 먹는 거죠. 


그러니 선배가 제 가족이 되어서 저를 축하해주세요.” 


눈동자에 도드라진 시뻘건 핏줄과 퍼렇게 물들여진 그녀의 안색. 김은아는 진심이었다.


더러운 걸레짝에도 못 미칠 질 나쁜 농담이 아닌, 순수하고도 정신나간 진담.


"물론 선배는 제 가족이 아니죠. 핏줄도 이어지지 않은 선배를 가족이라 우겨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깐요.


그러면 어떡하면 좋지? 하고 생각해보니 의외로 답은 간단하더라고요.“


은아는 담담하게나마 말했다.


“선배가 저와 가족 이상의 관계를 맺으면 되는 거에요." 


압도당했다.


당해버리고 말았다.


거대한 프레스기에 깔려 전신의 뼈가 아스라져가는 듯한 중량감이 그녀에게서부터 느껴졌다.


그래, 그녀의 욕망은 겨우 한 명의 인간이 지탱하기엔 너무나 무거웠던거다. 


그녀의 소원은 자신의 목숨과 동가치였으니까.


사지에 몰린 것은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뒷걸음질을 칠 정도로 거역할수 없는 압박감이 나를 덥쳤다.


"매 아침마다 같이 등교를 하고 점심때는 단 둘이서 밥을 먹고 방과후엔 상담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둘이서 집으로 가는 그 일상. 오직 저만을 신경쓰며 매 시간을 보내는 거죠. 어때요, 완벽하지 않나요?" 


“……”


"하긴..저같이 귀찮고 더럽고 눈치 없고 주위에서부터 쓰레기취급 당하는 저 따위랑..가족이 되고 싶지 않은 것도 알아요... 싫으시겠죠. 어차피 선배도..이런 제가 불쌍하니까 도와주신거잖아요..? 그쵸?" 


그건───


“..아니야.”


"그럼 책임지시라고요!! 버려진 고양이라도 한 번 주우면 끝까지 책임져서 길러야하는 거 아닌가요? 


죽고 싶어하는 저를 자기 멋대로 멈추고 있는 주제에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는 거에요?!"


“──────”


“선배에게 제 자살을 막을 권리따위 어디에도 없는 거 아닌가요?!”


쉰소리가 새어나오는 젖은 목으로 은아는 처절하게 외쳤다. 


듣고 있는 이가 절로 ‘뻔뻔하고 이기적이다.’라 생각할 정도로 엉망진창의 이유를 덧붙여서.


그녀는 분명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라이터 오일을 자신의 몸에 뿌렸을 것이다. 그리곤 이 상담실이라는 트랩에 내가 걸리기를 기다렸고.


‘단단히 착각을 하고 말았나.’


김은아는 애초에 내 상담따위 받을 생각조차 없던 것이다.


“케이크따윈 어찌됐든 좋으니까..부탁이니까…"


일주일 내내 상담실에 얼굴을 내비친 것또한 결코 상담을 받고 싶다는 사인같은 게 아니었던 거다. 


그것은────




"선배를 저에게 달라고요..!”




‘확인’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했다. 김은아는 일주일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


분명 다른 누군가에게서부터

또는 내가 도와준 사람들 중에서부터


내가 절대로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그렇기에 ‘확인’이었을 테다.


정말로 도움을 거절하지 못하는 지.


자신의 이 방대하고도 더럽혀져있는 욕망에 가까운 꿈마저도 거절하지 못하는지.


이 일주일또한 테스트 하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계획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하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 테스트또한 본 것을 제외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내세운 보험.


[자신의 목숨]


이마저도 거절당하면 죽는 편이 낫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눈 앞의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한 명의 소녀.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



[나를 김은아에게 준다.]

[김은아가 죽는다.]



그녀는 아직 답을 모르겠지.


이 세상중에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모르겠지.



“그래.”

“네..?”



내게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언제나 타인을 위해 존재하니까.


그러니까-




“줄게.”



프롤로그 - 병든 자들-

*************


이거 버릴지 말지 너무 고민되서 여기에 올려 봄.


며칠동안 이것만 엄청나게 뜯어고치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마지막 부분이 급발진인것 같기도 해서 평가 부탁드림.


대강 다음화가 궁금한지만 말해주면 됨.


참고로 만약 괜찮다 싶으면 좀더 수정해서 조아라나 노벨피아 동시에 연재할 계획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