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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왜 난 행복할수가 없을까?



분명 얼마전까지만 해도 행복했는데 왜 지금은 이럴까?



후붕이가 곁에 있어서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이제서야 깨달았는데 왜 행복할 수가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 사랑받아왔던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해야해?



당연히 즐겁고 행복하기만 해야 하는 인생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집안 사정도 좀 되고, 직위도 어느정도 갖췄어.



그런 내가 대체 왜 이 꼴이 나야 하는거야?



다른 금수저들은 돈을 좀 써서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빠져나올 수 있던데, 왜 나는 그런 것도 못하는 거지?



분명 판사들이나 검사들에게 돈도 먹였는데 나는 범죄자가 되고 나를 묶어버린 얀순년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는거야?



나는 이렇게나 불행한데 왜 저년은 저렇게까지 행복한거야?



후붕이까지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내 삶마저 나락으로 떨어트려 버리고 후붕이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어.



그 전엔 그래도 만나는 건 가능했지만 이제는 만나는 것 조차 불가능 해.



저년이 나와 후붕이를 완전히 가로막아 버렸어.



도대체 왜 가로막은 거야?



후붕이는 저 년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 없는 사람이잖아?



도대체 왜 얀진 그룹 회장 외동딸 하고 후붕이가 엮이는거야?



정말 보잘것 없는 후붕이가 나처럼 애매한 금수저도 아니고 다이아 수저랑 엮여서 더 이상 만날 수도 없게 된거냐고.



저년이 뭔데 내 후붕이를 빼앗아 가는거야?



후붕인 내꺼야.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싶었던 건 전부 다 가졌어.



그래서 후붕이도 가지고 있었는데 저년이 빼앗아 갔어.



도대체 왜?



후붕이는 정말 보잘 것 없잖아.



집안도 그렇게 금수저가 아니었고, 후붕이네 아버지가 박사학위 따기 전 까진 정말 별볼일 없는 편부가정이었을 뿐이잖아.



그런데 왜 저년이 후붕이를 물고 늘어지는 거야?



그 보잘것 없는 흙수저를 왜 자기가 데리고 가서 귀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먀낭 대접을 해주는거냐고.



정말 별것도 아닌 것 한테 왜 저렇게 잘 대해줘서 쉽게 가지고 놀 수 있었던 후붕이를 강하게 만들어 놓은거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지고 놀면서 재롱을 부리는 애완동물처럼 만들 수 있으면서 왜 그러지 않는거야?



한참이나 모자란 인간이 뭐가 그렇게 좋아서 진심으로 후붕이를 사랑해 주는건데?



얼마든지 푹하고 찍어눌러버릴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후붕이를 일으켜 세워주는건데?



왜?



도대체 왜 후붕이를 일으켜 세워서 내게서 빼앗아 가는거야?



후붕이 주인은 난데 왜 네가 마음대로 데려간거야?



너만, 너만 아니었어도 후붕이가 날 배신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네가 남의 집안을 파탄내놓지만 않았어도 후붕이는 나에게 사랑을 바쳤을 텐데,



네가 갑자기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후붕이는 돌아와서 내 곁에 있었을 텐데!



"왜 너만 행복한거야?"



"...어떻게 왔냐."



"왜 너만 그렇게 행복한거냐고!"



남의 잡안 파탄내놓고, 네가 그렇게나 잘 살라고 축복을 해놓고, 후붕이를 멋대로 빼앗아 가놓고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수가 있는거냐고!



넌 집안을 파탄낸 가장 큰 문제점이야.



그런데, 그런데 넌 어떻게 남의 남자 빼앗아 가 놓고 어떻게 행복해 할 수가 있어?



어떻게 내 껄 빼앗아가는 절도를 저질러 놓고도 그렇게 즐거워 할 수 있는거야?



널 죽이려 했던 것 보다 그게 더 큰 범죄 아니야?



심지어 넌 날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는거야?



"왜, 왜! 난 행복하면 안돼는거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내 욕망이 그렇게나 잘못됐던거야?"



대답해.



대답하란 말이야!



내가 감옥에 끌려가서 10년 넘게 격리될 만큼 나쁜 짓을 저지른 거냐고!



그냥 다른 사람에게, 후붕이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었던게 그렇게나 큰 죄냔 말이야!



"왜 말이 없어? 그렇게나 말 잘했었잖아. 대답을 못하는거야? 너도 대답을 못하는게 있어?"



"할 필요가 없어서 안한거다."



얀순년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면서 다가왔다.



그 살벌한 시선이 또 다시 나를 향했다.



"당연한걸 이해하지 못하는 빡대가리 년에게 말해봤자 알아 쳐먹기나 하겠냐?"



"그게 왜 당연한거야? 다른 사람에게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건 인간의 본성 아니야?"



"그럴거면 결혼은 왜한거야? 니 맘대로 자유롭게 살지."



그야 후붕이가 받아줬으니까 했지.



거추장스러운 아이를 받아줬으니까 했지.



얼마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후붕이가 족쇄를 제거해줬으니까 후붕이랑 결혼했지!



"우린 안돼는거야? 당장 SNS에만 들어가도 네토플 즐기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왜 나만 안돼는거냐고!"



"이해는 안가지만 걔네들은 서로 합의가 있었으니까 가능한거다. 너처럼 강요를 한게 아니라."



"우리도 합의 했어. 후붕이도 다 받아들였다고! 그걸 알고서도 결혼했는데 왜 이제와서 나랑 관계를 끊으려고 그러는거야?"



"그게 합의냐? 니 남편 트라우마를 건드려가면서 사람 정신적으로 몰아놓고 네 취향 강요하는게 합의라고?"



"난 수단을 선택했을 뿐이야.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하늘이 빙빙 돌았다.



얀순년과 비슷한 높이에 있던 시야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오냐, 그럼 나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위해 내 맘대로 해보자."



얀순년이 구두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뺨이 화끈거리는걸 보니 저년이 지난번과 비슷한 수준으로 세게 때렸던 모양이다.



"또 때려? 넌 이렇게 밖에 해결을 못해?"



"많이 참았어. 지금까지 정말 많이 참았다고."



얀순년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었다.



"니가 아무리 나한테 지랄을 해도 후붕이가 죽이지는 말래서 정말 많이 참았어."



푼 시계를 너클마냥 손에 쥔 얀순년은 쓰러진 내게 다가왔다.



"근데 말이야, 니가 그딴식으로 쳐 나오면 도저히 용서를 해줄수가 없어요."



"내가 아무리 범죄자라 하더라도 네가 처리해 버리면 너도..."



"넌 지금 그딴거 신경쓰고 왔냐?"



얀순년은 이번엔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이번엔 정말 사람을 죽여버릴 속셈인 모양이었다.



서둘러 핸드백에 숨겨온 식칼을 꺼냈다.



"이번엔 나도 쉽게 당해주지 않을거야. 네가 후붕이를 빼앗아 간 만큼..."



"지랄."



다시 한 번 몸이 한 바퀴 돌았다.



정신이 멍 해졌다.



들고 있던 식칼도 손을 떠나 바닥에 떨어졌다.



식칼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얀순년이 더 빨리 다가왔다.



얀순년은 내 손을 짓밟아 버렸다.



"이거 치워! 치우라고!"



하지만, 얀순년은 대답 대신 엎어진 나를 뒤집어 멱살을 잡아 끌어 올렸다.



"잘 들어. 너한테 후붕이는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일지 몰라도 난 아니야."



"개소리 하고 있네, 별 배경도 없고 모든 면에서 후달리는 인간이 뭐가 좋아서..."



다시 한 번 주먹에 얻어 맏고 날아갔다.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차피 평생을 노력해도 얀순년 같이 다이아 수저를 만난게 아닌 이상 인생 역전이 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일확천금은 물론이요, 개천에서 용이 되기도 어려운 배경의 사람이었다.



그럼 당연히 같은 금수저로 만들어준 물주에게 모든 걸 바치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



평생을 흙수저로 살다가 흙수저로 죽을 인생이었는데 도금수저라도 될 수 있게 만들어놨으면 지금 삶에 만족하면서 감사히 살아야 하는게 정상이잖아?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후붕인 내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날 여기서 죽이면 네 평판이 전부 깎일거야. 교도소에 들어가서 얀진 그룹 후계자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거라고."



"그게 뭐 어때서?"



다가오는 그 눈빛에서 번들거리는 광기가 느껴졌다.



그 날, 후붕이의 자비로 목숨은 건졌던 그 날, 이 년의 얼굴에서 발견했던 살의가 또 다시 나타났다.



"상관없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중한 내 남편 조져놓은 인간 죽이는데 그깟 지위가 무슨 상관이야?"



"네 재산이랑 지위랑 권력이 전부 날아갈거야. 그런데 후붕이가 네 곁에 붙어있을까? 지금까지 금수저들에게 빌붙어 살았던 후붕이가 네 곁에 붙어있으려 하겠어?"



얀순년은 미친 사람 처럼 웃기 시작했다.



후붕이의 삶을 추적해보면 당연한 얘긴데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후붕이는 지금까지 금수저들에게 빌붙어서 자기가 살아야 할 삶 이상으로 혜택을 누려온 인생이었다.



얀순년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후붕이도 떠나는게 당연한 순리였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저러는 걸까?



"진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넌 내가 후붕이랑 왜 거리를 뒀었는지조차 모르는구나."



"과거를 꼬치꼬치 캐물으면 그것대로 안좋지 않겠어?"



"그런 년이 후붕이 트라우마는 기를 쓰고 알아내서 사람을 깔아 뭉개놔?"



"그건 목줄이야.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목줄은 구해놔야 어디로 튀질 않잖아."



얀순년이 내 옆구리를 걷어 찼다.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뼈가 부러지기라도 한 것 처럼 지속적인 통증이 찾아왔다.



"후붕이는 말이야, 너같이 돈 많은 년한테 하도 당해서 너무 상처를 많이 받은 상태였어. 그래서 후붕이가 고백을 했을때도 일부러 거절했어. 후붕이가 또 상처를 받을까봐, 힘들어 할까봐 그랬어."



"그럴리가 없어. 그랬다면 내 재산을 알았을 때 진작 도망쳤겠지. 그정도로 심하게 데였다면 왜 내게 들러 붙은거야?"



"그만큼 널 좋아했다는 거겠지. 네 배경이나 니 취향도 견뎌내 볼 만큼 널 사랑했다는 거겠지! 그런데 넌 어쨌어?"



그랬었나?



아냐, 그럴리가 없어.



그랬다면 날 쉽게 떠날리가 없어.



재산 때문에 들러 붙은게 아니라면 왜 돈이 많은 얀순년에게 붙겠어.



정말로 날 사랑했다면, 그걸 전부 받아줄 정도로 사랑했다면 날 떠날리가 없어.



그렇게나 날 사랑했던 사람이 어떻게 날 떠나?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떠날 수 있을리가 없어.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을 사랑해 줬는데 어떻게 네토플에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떠난단 말이야?



"아냐, 그럴리가 없어. 정말로 모든 걸 사랑했다면 그럴수가 없어. 그랬다면 언제까지고 날 받아주고 사랑해 줬겠지."



"그래?"



얀순년은 그 말과 함께 이곳저곳을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못하게 위에 올라타서는 여기 저기를 시계로 때리기 시작했다.



팔을 움직여서 반항해보려 했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아파? 니 말 대로면 아무리 쳐 맞아도 견딜 수 있잖아? 날 죽이기 위해서 마음을 먹었으면 내가 빈틈을 노출할 때까지 쳐 맞으면서 버틸 수 있잖아?"



"실제로 패는거랑 말로 때리는게 어떻게 같..."



"그래, 어떻게 같겠어. 질이 훨씬 나쁜데."



말을 끝낸 얀순년은 사람이 입에서 한움큼 피를 쏟아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어디 한번 일어나서 찔러봐. 이제 빈틈이 생겼잖아."



내 눈 앞에서 양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얀순.



당장에 일어나서 찌르고 싶었지만, 너무 두들겨 맞은 탓에 몸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팔, 다리가 부러진 것은 아니었지만, 피를 쏟아낼 정도로 두들겨 맞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때의 공포가 몸에 각인되어버린 듯 했다.



"니 말대로 그렇게나 죽이고 싶으면 당장 일어나서 쳐 죽여보란 말이야, 응?"



"...사람 반 병신 만들어 놓고 그딴 말이 성립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넌 사람 반 병신 만들어 놓고 끝까지 널 사랑해주길 바란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얀순년은 내 앞에 쭈그려 앉아 빙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되물었다.



상황이 다르다 라고 우기고 싶었지만,



그래도 물리적으로 후붕이를 두들겨 패고 때린 적은 없었다고 우기고 싶었지만,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양심이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알고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 후붕이가 얀순년에게 빼앗기는걸 지켜본 지난 시간 동안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이었는데 왜 모를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후붕이에게 함부로 대했던게 생각나서 도저히 견딜수가 없는데 어떻게 할까.



내가 살려면 이렇게라도 했어야 했는데,



잘못은 내 재산을 노리고 들러붙은 후붕이가 잘못한거라고 했어야 했는데 어쩌겠는가.



"죄책감이 니 숨통을 조여온다고 해도 그렇게나 잘못한 후붕이한테 죄다 뒤집어 씌우는건 너무 추하지 않냐?"



당연히 대답은 못했다.



입에 고인 피만 쿨럭거리며 뱉어낼 뿐이었다.



"그렇게나 심한 짓을 후붕이에게 저질러 놓고 죄다 후붕이 잘못으로 돌리고 날 죽이려 찾아 온다는 게 말이나 돼?"



"그래도 난 행복하고 싶었어. 행복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럼 결혼을 하질 말았어야지, 미친년아. 니 뱃속에 애 지우는 건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후붕이가 지쳐서 떠날건 생각도 안하고 있었냐?"



"그땐 그랬어. 내가 뭔 짓을 저질러도 떠날 생각을 안했다고. 어떻게든 내 곁에 있으려고 발버둥 쳤었는데, 네년이 오는 바람에..."



얀순년은 내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았다.



"끝까지 반성을 안하네? 그때 내가 후붕이 안붙잡았으면 당장 자살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어, 이 년아. 아무데도 설 자리가 없어가지고 집을 나와서 그대로 어디 투신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그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지레 겁을 먹고 후붕이를 밀어내버린 네가 어떻게 아는거야?"



"후붕이랑 얘길 해봤으니까 알지. 넌 신경도 안썼던 후붕이랑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해봤으니까,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까 맘 놓고 얘기해줘서 알지. 넌 배우자 씩이나 됐으면서 후붕이랑 얘기도 안해봤니?"



지난 시간을 떠올려봤다.



후붕이랑 말을 제대로 해봤던가?



후붕이 속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나?



얀순년이 후붕이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줬던 거나,



발신인조차 제대로 적히지 않은 후붕이네 어머니 편지를 받아본 것 말고는 후붕이의 과거나 상처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해봤던가?



"당연히 안했겠지. 다른 남자들한테 가랑이 벌리다 돌아와서는 지 얘기만 쳐 떠벌렸으니 후붕이 얘기를 들었을리가 있겠어?"



"아, 아냐. 그래도 얘기 많이 했어!"



"그래, 니 취향에 훈수두지 말라는 둥, 이렇게 나오면 헤어지거나 이혼할 수 밖에 없다는 둥 일방적인 통보도 대화라면 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얀순년은 내 머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밀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게 사랑이냐?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하나도 없으면서 일방적으로 이해해주기만 바라는데 그게 어떻게 사랑이냐? 넌 그냥 후붕이의 호의와 사랑을 약탈한 것 뿐이야, 이 도둑년아."



"도둑? 내가 왜 도둑이야? 후붕이가 자발적으로 바친건데 왜 도둑이냐고!"



"니 입장따윈 상관 없어. 내 입장에서는 도둑일 뿐이니까."



"니년이 겁쟁이였던게 왜 내 탓이야? 니가 놓친걸 주워먹은 게 뭐가 그렇게 잘못 됐다고 도둑년 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그래서야 나랑 니가 다를게 뭐야?"



"다를 건 없지. 나도 죄인이고, 너도 죄인인데 뭐가 다르겠냐. 근데 말이야."



얀순년은 이제 내 눈앞까지 다가와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들이밀었다.



지난 번엔 날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는 날 씹어 삼키는 것 처럼 보였다.



"난 후붕이만 좋아했고, 후붕이만 사랑했어. 너처럼 창놈들 좆맛에 빠져서 밖을 쳐 싸돌아다니지도 않았고, 후붕이를 밀어냈다는 죄책감에 짓눌리면서도 언제든 사과할 수 있도록 내가 했던 일을 곱씹으면서 살았지. 근데 넌 어때?"



대답할 말이 없었다.



후붕이에겐 후희를 던져두고 족쇄에서 해방되었다며 온갖데를 돌아다녔다.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항상 관계를 가졌고, 그게 유부남이건 연인이 있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로부터도 사랑받을 수 있는 매력을 가졌다는게 좋았다.



그게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욕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이제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훨씬 좋았다.



단순한 회사원인 줄 알았던 후붕이네 아버님보다 훨씬 배경이 좋았던 나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좋아해주는 후붕이에겐 내 자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후희를 던져두고 마음껏 돌아다녔다.



한참 모자란 후붕이였으니, 고작 회사원 아들인줄 알았던 후붕이였으니 함부로 대해도 찍소리 못 할줄 알았다.



"힘들다고 징징대다 못해 후붕이를 죽여버릴뻔 했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날 죽이려고 했어. 그런다고 과연 후붕이가 행복해질까?"



"난 행복하고 싶어.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기는 싫었단 말이야."



"그래, 차라리 솔직하니까 좋다."



앞에 그림자가 졌다.



얀순씨가 주저앉은 내 앞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와는 달리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답이 없는 년이란걸 알고 나니까 죽이기도 싫어진다. 꺼져, 더 이상 꼴도보기 싫으니까."



얀순씨는 내 앞에서 물러났다.



손에 쥐었던 시계도 풀어서 주머니에 집어 넣고는 집의 현관문쪽으로 걸어갔다.



떨어트렸던 식칼을 집어들었다.



몸에는 힘이 없었지만, 이대로 얌전히 꺼져주기도 싫었다.



얀순씨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잘못은 내가 했다.



후붕이를 불행하게 만든 것도, 그렇게나 좋아해주던 후붕이를 밀어내버린 것도 나였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기 싫었다.



지금까지는 행복했다.



아무리 비틀린 삶이었어도 후붕이의 애정이 있었으니까 행복했었다.



눈 앞에서 후붕이가 얀순씨에게 빼앗기는 장면을 봤어도, 그게 전부 내 탓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도, 



같은 사회에서 후붕이와 조금이라도 접점이 생길 수 있었으니까 괜찮았었다.



하지만, 감옥에 들어가면 이제 10년동안 후붕이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



집행유예를 받긴 했으나, 결국엔 후붕이와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얀순씨를 죽인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으나,



후붕이가 기댈 곳이 없어진다면 아무리 내가 감옥에 들어가도 찾아와주지 않을까 싶었다.



후붕이가 마음을 줄 곳이 없어진다면 내게 와주지 않을까 싶었다.



앗아간 년이 사라지면 내게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사랑을 부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의미가 없다는 건 안다.



나에게로 향하던 후붕이의 사랑은 싸늘하게 식었고,



얀순씨를 죽인다고 해서 후붕이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나 불행해졌는데, 가정을 파탄내놓은 얀순씨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위장이 꼬일만큼 아니꼬웠다.



천천히 칼을 들고 다가갔다.



얀순씨가 이쪽은 신경도 안쓰고 문을 열려고 할 때, 칼을 들어올렸다.



"...발 아파서 신발은 못벗었나봐?"



휘두른 칼은 정말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혔다.



얀순씨는 칼을 쥔 내 손목을 으스러질정도로 세게 쥐었다.



난 또 다시 칼을 놓치고 말았다.



잡히지 않았던 팔로 칼을 쥐고 달려들었지만, 이번에도 쉽게 잡히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말이야, 난 적에게 절대로 약점을 내 보이지 않아."



"얀순아!"



후붕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골목 쪽에서 후붕이가 경호팀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의 사람들과 달려오는게 보였다.



"잘 가, 이젠 정말 다시는 보지 말자."



얀순씨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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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그래도 후순이를 보여드리는게 좋을 것 같아서 지난 회차에서 그렇게 끊었습니다.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이었네요. 처음 시도해보는게 너무 많았습니다. 얀데레와 멘헤라를 처음으로 묘사해봤고, 성애묘사도 처음 해봤던 것 같습니다. 첫 시도가 많아서 그런지 필력이 정말 들쭉날쭉 했었고요. 그 바람에 좀 뇌절을 많이 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님들이 이 작품을 좋아해주셔서 베라도 몇 번 구경했다는게 참 놀라웠습니다. 정말 과분한 사랑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소설의 소재는 짹짹이에서 가져왔습니다. 네토플이란것 자체를 그 쪽에서 처음봤어요. 그 사람들은 합의하에 하는 것이겠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아주고 있는 거라면 정말로 불행하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적고 나니까 남성향 신데렐라물에 처음써보는 얀데레, 멘헤라를 집어넣고 적어 내리다보니 이게 4드론 소설이랑 다를게 뭔가 싶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현타가 정말 많이 와서 접고 싹 지워버리고 싶었는데, 독자님들이 베라까지 보내주시니 이걸 배신하는건 독자님들을 후회시키는 것 같아 끝까지 붙잡고 완결까지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족한 작품이라도 즐겁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중간고사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시험 끝나고 또 좋은 소재가 떠오르면 가져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