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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마왕을 쓰러트린 지도 2년이 지났다.

 

편의점 카운터에 기대면서 본 휴대폰의 날짜는 11월 11일 정각을 가르키고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새벽의 편의점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날은 어제와 별 다를 것 없었지만, 작년에도 그랬고 이번년도 에도 그랬듯이 무언가 특별한 울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야, 부산 한 곳에서 편의점 알바노릇을 하고 있는 내가, 2년 전만 하더라도 이세계의 용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는 일 아니겠는가.

 

딱 이 편의점으로 오던 길이었다. ●빼로 데이라는 이유에서 몇 개의 ●빼로를 사 들고 와 집으로 가던 도중, 전방주시를 하지 않던 트럭에 치여버린 것이다.

 

죽는다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급작스레 시간이 멈췄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여신이 내게 다가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마왕에 맞서는 용사의 일을 하면, 생명은 물론이요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죽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 제안을 승낙했고, 이세계로 갔다.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남들에게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매도 받을 수많은 사건들 끝에 나는 마왕을 죽였다.

 

“하아.”

 

이제 와서는 남에게 제대로 말하지도 못할 즐거운 추억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때의 일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이, 기분 좋은 고양감이 가슴 속에 감돌아버린다.

 

그래. 2년 전의 그날이었다.

 

“으아아아악!”

 

첨탑이 여러 개 세워져 있던 그 성의 가장 깊은 곳에서, 마왕은 그 시커멓고 커다란 갑주를 입은 채 우리를 맞이했다. 수많은 전투 끝에 끈끈한 결속을 지니게 된 나와 내 동료들은, 우리를 비웃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왕을 향해 돌진했다.

 

전투의 결과는 매우 광대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있던 마왕의 방에는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이 비치고 있었고, 마법과 검격으로 인해 일어난 흔적들은 그 어떤 전투보다 처절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흔의 중앙에, 갑주가 부서진 채 무릎을 꿇고 숨을 거두는 마왕을 보며, 우리는 쾌감에 찬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해냈다! 해냈다!”

 

“드디어, 드디어 우리가 해냈어요! 용사님!”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삶의 의미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얼싸안은 우리들이 서로 떨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우는 소리를 내고, 누군가는 웃는 소리를 내고.

 

그러던 끝에 그 사람들에게서 떨어진 나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하는 나의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다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내 앞에 서 있는 나의 동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나는 표했다.

 

죽지 않게 도와줘서. 나와 같이 싸워줘서, 치료해주고, 함께해줘서.

그것을 하나씩 말하자, 눈 앞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그저, 용사님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 내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왕국 성기사단의 단장 율리아스 크라우스.

 

“아브락사스님께서 용사님을 점지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어요……!”

 

눈물을 훔치녀 말하는 추기경이자, 생전 성인의 지위를 차지한 성직자, 성 실베리아 2세.

 

“나야 말로 고마워, 700년간의 압제가 이제야 끝났다는게, 믿기지 않아.”

 

처음에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관계였지만, 결국에는 공투의 관계가 되었던, 동방의 격투가 소녀 소명.

 

“아까 전의 마법……분명……성공한 거였죠? 전부 다 용사님 덕분이에요, 용사님!”

 

살짝 깨문 자국이 있는 오른손으로, 눈물이 배어나오는 눈가를 계속해서 닦고 있는, 마법사 아르멘.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고마워……!”

 

시끈거리는 듯한 얼굴로 내 손을 잡으며, 흘러넘치는 눈물을 채 닦지 않은 채 기쁨의 미소를 짓는, 나의 가장 소중한 동료.

 

“응, 이제, 다 끝난 것 같아. 루피아.”

 

“응. 우리가……이겼어!”

 

기사공(公) 루피아 폰 베르사무스 2세의 손을 맞잡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3년 동안의 이세계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줬고, 결국은 다같이 마왕을 쓰려트렸던 동료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많은 감정을 함께 했고, 수많은 경험을 내게 주었던 그 사람들.

 

마왕을 죽이고 난 뒤 본성에서 일어나는 연회는 내가 경험했던 어떤 연회보다 즐거웠고,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와 춤춰보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

 

모든 것이 즐거운 추억이었다.

 

“후…….”

 

그 추억의 즐거움을 생각하면 이세계에 남는 것이 조금은 좋았을까, 싶기도 했지만, 결국에 나는 내가 내린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연회가 끝난 뒤 친히 연회장에 강림한 여신에게, 나는 요청한 것이었다.

 

“저를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음, 원래 세계로 돌아가길 원하나?”

 

의아한 표정을 지은 여신을 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심어린 의문과 함께 이유를 묻는 여신에게 나는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세계로 튀어나가기 전의 나는 같은 학원에 다니던 선배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살짝 뚱뚱한 체형을 지닌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붙임성도 좋아 모두와 친했다.

 

●빼로를 산 것도 그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는 못 하겠지만, ‘친구이자 후배로서’주는 것은 가능했을 거니까.

 

그러던 와중에 트럭에 치여 이세계로 떨어져버린 뒤에도 그 짝사랑은 식지 않았고, 3년 동안의 세월동안 나는 그녀를 계속 그리워하고 있었다.

 

물론 이세계도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귀중하고, 행복한 곳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역시나 나는 선배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뜻을 전하자 여신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그것 참 대단한 이유구나’라며 깔깔 웃은 뒤 나를 원래 세계로 전달시켜 주었다.

 

이세계에서는 3년을 지냈는데, 어찌 된 건지 내가 돌아온 세계는 단 5초 가량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이것 또한 나름대로의 여신의 배려 아니었을까.

 

어찌되었건 나는 현실로 돌아왔고, 그 현실에 돌아왔단 사실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느끼지 않았다.

 

[내 사랑♥ : ●빼로 사놨어♥ 우리 집에서 먹고 갈 거지?]

 

“흐흐흐.”

 

내 원래 세계로 돌아왔을 때 소망했던 것이, 내가 원했던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3년 동안 나는 이세계에서 수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것들 중에는 처세술이나 화법 같은, 우리의 세계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종류의 지식도 있었다.

 

게다가 3년 동안 수없이 굴러댄 탓인지, 이세계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뒤룩뒤룩 쪄 있었던 살이 죄다 빠져 있던 것이었다.

 

사람과의 대화에도 한층 익숙해지고, 외모에도 살짝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 말을 걸 수 있게 되었고, 순식간에 친밀감을 쌓을 수도 있었다.

 

물론 고백은 이세계에서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힘들었지만, 그런 수줍음과 어설픔이 오히려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응, 나도 좋아.”

 

동경하던 사람이 나를 보고 그런 말을 해 준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김민우: 곧 갈께용 누나♥]

 

급작스레 고양감이 들어 답장을 하면, 하트 모양 이모티콘이 답장으로 올라온다. 그 펄떡거리는 하트 모양을 보기만 해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흐흐흐흐…….”

 

그렇게 동경했던 누나의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갈 수 있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이 계속해서 넘쳐흐르고 있어.

그렇게 동경했던 누나와 이런 관계가 될 수 있다니.

 

“갔다 와서 다행이야.”

 

이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한 이세계, 그 곳에서 해왔던 모든 일들.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율리아스. 실베리아. 소명. 아르멘. 루피아. 여자를 무서워했던 나에게 너무나도 친절히 대해줬던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누나에게 말도 걸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어.

 

그 다섯 명과 함께 있었던 모든 시간이 나에겐 가치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처음 만날때는 약간 불편하기도 했고, 여러 번 싸우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와서는 모두 웃는 얼굴로 서로를 볼…….

 

“어…….”

 

웃는 얼굴로 서로를 볼 수 있었나?

 

급작스레 의문이 든다.

 

이세계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즐거운 것 밖에 없었으나, 유일하게 뭔가, 매우 이상한 기분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딱, 마왕을 죽이고 내 원래 세계로 돌아오던, 마지막 그 날이었다.

 

그러니까, 마왕을 죽인 뒤 본성으로 돌아가 연회를 펼치고, 여신이 나타나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요청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는데.

 

“예?”

 

“네?”

 

“뭐?”

 

“……네?”

 

원래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급작스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내 주위를 감싸던 것이었다.

 

“……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루피아는 그렇게 물었다. 무언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여신이 날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서 대답은 못 했지만.

 

그 눈빛. 뭔가 이상했단 말이다.

 

내가 보아왔던 루피아의 눈빛이 아니었는데.

 

“에휴.”

 

생각해보니, 너무 급작스레 현대 세계로 돌아왔구나.

적어도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있었다면, 이런 이상함도 아마 느끼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율리아스씨와 실베리아씨는 자기가 원했던 것을 이뤘을 거고, 소명도 마왕을 죽였으니 안심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을 거다. 마법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낸 아르멘은 마법사 길드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을 거고.

 

아빠와 사이가 안 좋았던 루피아도, 이제는 괜찮아졌을 거다. 딸이 마왕을 척살한 영웅이 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자랑스럽겠지.

 

마왕이 죽었으니 이제 그 세계도 평화로울 거다. 나도 이제 평화롭다.

 

아름다운 추억이었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창문 밖으로 불빛이 번졌다, 한 순간에 사라졌다.

 

편의점 앞에 경찰차라도 지나갔나 보다, 하고 넘기려고 하던 찰나, 다시 한번 불빛이 번졌다 사라졌다.

 

“어?”

 

그 불빛이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간 순간, 의문이 든다.

뭐지? 이 익숙함은.

 

카운터에서 빠져나온 뒤 유리문을 바라봤다. 한 순간 스친 것 같았던 불빛이 그 자리에 영원히 남아, 유리문의 반대편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래. 샛노랗다. 그 어떤 자연물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겸허함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부드러운 황색의 빛이, 유리문의 밖에서 은은하게 비치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등골에 무언가 익숙한 감각이 일어난다. 멍하니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

 

언제나 똑같은 부산의 야경이, 익숙하기 그지없는 형태에 의해 밝게 물들여져 있었다.

 

건물들이 이루는 외곽선의 너머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나온 뒤, 원만한 곡선을 그리며 그 스스로의 형태를 완성시키고 있다. 찬란하게 빛나는 노란색 원무리의 중앙엔, 아래에서 위로 부드럽게 흐르다, 꼭대기에 떨어지곤 찬란하게 부서지는 성스러운 빛이, 형태를 이룬 흐름을 지니고 고고하게 그곳에 서 있었다.

 

“저건.”

 

나는 저것을 본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매일같이 봐 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시야를 잠식하는 그 형태를 보자마자, 습관처럼 들어버리는 감각이 있었다.

 

저 익숙한 형태. 익숙한 빛. 익숙하게 흔들리고 있는 저 활기찬 마력의 기운.

 

“신성검이잖아, 저건.”

 

신성검.

 

루피아가 쓰던 검 ‘세이크리드’의, 가장 진실된 모습이었다.

 

마왕을 쓰러트렸을 때의 루피아는, 저 찬란하게 뿜어져나오는 빛의 검으로 마왕의 갑옷을 두 동강 냈다. 기억이 안 날 수가 없는 기술이다.

 

근데 왜 저게, 부산에.

 

현대에.

 

“어.”

 

건물의 너머에서 뿜어져나오던 신성검이 기울어졌다. 무슨 상황인지 판단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조금의 시간 뒤에야, 저 신성검이 휘둘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휘둘러졌다.

 

이 주변의 모든 땅을 향해.

 

“어?”

 

익숙한 굉음이 들림과 동시에, 빛이 눈 앞을 갈랐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상황 또한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내 눈 앞에 있던 건물, 높은 아파트부터 작은 벽돌집까지, 내 시야 오른쪽에 있던 커다란 산과 그 중간에 놓여 있던 송전탑 까지.

 

두부 썰리듯이 두 동강 난 뒤, 공중에 솟구쳤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폭음과 함께.

 

폭음이 들림과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쳤던 파편들이 땅바닥으로 내려온다. 내 앞에 있던 건물들이 잘개잘개 쪼개져, 검격으로 일어난 폭풍에 휘말린 채 나를 덮치는 것을.

 

보고 난 뒤에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

 

 

 

“오랜만이에요, 용사님.”

 

살짝,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려 눈을 뜨면, 머리에 무언가 격통이 달린다.

 

흐릿한 시야 속에 있는 저 격자무늬 패턴. 타일이라도 깔려있는 듯이 익숙한 모양의.

 

화장실 안에라도 누워있는 건가, 싶어 주변을 만져봤지만, 무언가 매끈거리는 마룻바닥의 감촉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용사님.”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지나치게 익숙하나, 무언가 먼지가 쌓여 있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써 왔던 물건을 서랍 안에 처박아 놨다가, 몇 달이 지난 뒤에 꺼내어 보았을때의 그 감상.

 

그런 감상이 느껴지는 동안 몸을 움직일 수 있단 사실을 발견했고, 움직여야겠다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일어났다.

 

서 있는 것까진 되지 않아 앉아있는 내 시야는, 점점 더 선명함을 되찾고 있었다. 약간이나마 볼 수 있게 되었단 사실이 수많은 사실을 불러일으킨다.

 

눈 앞에 있던 격자무늬 패턴은, 목욕탕에 있는 타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창살 비슷한 것이, 그 너머의 공간과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손을 창살에 뻗어버린다.

 

“윽.”

 

그리고 그 손 끝에 찌릿거리는 감상이 느껴지자 마자 깨닫는다. 이건 마법이다.

 

사람을 충분히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전류가 창살 위에 흐르고 있었다. 살결이 닿자마자 파란 스파크가 일어난 것을 보면 확실하다.

 

이세계의 전기 속성 마법은 항상 파란색이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전기가 보통 노란색인 것과는 대비된다. 그러니까, 이건 마법이다.

 

마법.

 

“아앗, 닿으면 안 돼요! 용사님.”

 

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시야가 완전히 되돌아온 것을 느낀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전기가 흐르는 창살이 설치되어 있단 것 빼고는.

 

내 집이다. 내 집이 확실하다.

 

내 집에서도 내 방, 내 침대 앞에 나는 누워있었다. 침대와 책상 같은 가구들도 멀쩡하다.

문이 있던 벽이 완전히 없어지고, 그 빈 공간을 창살이 차지하고 있다는 게 유일한 차이였다.

 

그 너머로 보이는 거실의 모습 또한 그달리, 다른 것은 없어 보였다. 벽지가 조금 달라져있다던가, 어디선가 가져온 티 테이블이 거실 중앙에 놓여 있다던가 하는, 작은 변화 뿐.

 

“용사님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는단 말이에요, 저는.”

 

그리고 그 속에 선명히 떠올라 있는 그리움까지 느껴질 정도의 모습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르멘……?”

 

아르멘.

 

이세계에서 함께 했던 동료이자, 마법사가 내 앞에 있다.

 

“네, 아르멘……이에요.”

 

대답을 하자마자 살짝 기쁜 듯이 웃고는, 눈물을 훔치는 아르멘. 살짝 일어난 눈물을 왼손으로 훔치는 것까지 이세계에서 봤던 것과 똑같다.

 

“이렇게 살아계신 모습을, 계속해서 뵙고 싶었어요…….”

 

“아르멘……진짜, 아르멘?”

 

“네, 아르멘이에요, 용사님의 곁에 항상 있어왔던 아르멘!”

 

그래. 이세계에서 항상 같이 있어왔던 마법사. 밤톨이처럼 귀엽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기분좋아하고, 눈물을 자주 지어서 달래주어야 했고.

달달한 것을 좋아하고, 홍차도 좋아해서, 초콜릿과 홍차를 한 주전자에 끓인 뒤, 그 괴상한 액체를 맛있다고 먹어대던 그 마법사.

 

무엇보다 소중한 이세계의 동료가, 익숙하기 그지없는 미소와 함께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여기에?”

 

이곳은 현대인데.

 

그래. 이곳은 현대다. 내가 살고 있던 세계다. 일어선 다음에 주저앉은 침대는 내 방의 침대고, 책상 위에는 현대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가 놓여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은, 내가 살고 있던 세계다. 아르멘과 함께 모험을 했던 그 세계가 아니라.

 

“그야, 기절하신 용사님을 옮길 곳이 여기밖에 없기도 하고…….”

 

그 말에 기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아르멘은, 한 손에 들고 있던 스태프로, 바닥을 톡톡 두들기고는 말했다.

 

“그 암캐년이 용사님을 찾으러 온다면, 이곳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 말에 내용에 잠시, 두뇌의 어딘가가 정지한 듯한 느낌이 일어난다.

 

“암캐……?”

 

아르멘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아르멘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는 단어였다.

 

“네, 암캐요.”

 

하지만 아르멘은 굳이, 다시 말함으로써 그것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 특유의, 살짝 소심하면서도 부드럽게 미소짓는 표정으로.

 

“암캐라니……그게 뭔?”

 

내 방 속에 ‘갇혀있는’이 상황보다 그 단어가 내겐, 더 이상 없을 충격으로 느껴졌나 보다. 멍하니 묻자마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저희 세계에 계속해서, 행복을 나눠주었어야 했을 용사님을…….”

 

그 가늘게 뜬 눈빛에 빛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악마도 모를 요령으로 홀려, 꽤어찬 그 년 말이에요.”

 

그 빛이 들지 않는 눈동자를 일전에 보았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을 때, 루피아가 짓던 그 표정과 완전히 똑같았다. 반쯤 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르멘.

 

“용사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며 원래 세계로 돌아가셨을 때, 남은 저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껴야만 했어요.”

 

그 눈빛을 가리듯이 왼손을 들어, 입술에 가까이 가져간 아르멘은 말을 이었다.

 

“왜 절망해야 할까. 마왕도 죽었고, 세상은 평화로워졌는데, 죽을 것같은 고통이 가슴을 스쳐지나갈까. 생각하다, 깨달은 거예요.”

 

회상하듯이 비틀어지는 아르멘은, 잠시 뒤돌았다.

 

“우리 모두가 용사님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다는 것 말이죠.”

 

“뭐……?”

사랑이라고? ‘모두’가?

 

“저만이 용사님을 사랑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용사님과 함께한 모두가. 용사님과 미래를 이어나가고 싶었던 거였죠.

그 다음은 조금, 사태가 복잡해졌어요. 서로를 죽이려고도 하고, 너 따위가 어떻게 용사님과 어울릴거냐 헐뜯기도 하고. 물론 저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다시금 뒤돈 아르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던 와중에, 루피아씨가 묘안을 내더라고요.”

 

“루피아가……?”

 

“네, 루피아씨가 말하셨어요.”

 

티테이블에 앉은 아르멘은, 이쪽을 바라보고 수줍게 미소지었다. 그렇게 뜬 눈 속에는 아까와 똑같은 생기가 가득 차 있었다.

 

“‘우리끼리 아무리 싸우더라도, 용사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죠. 우리가 전부 다 시체가 된다 하더라도, 용사님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그 말이 옳다고 여긴 다섯명은, 용사님과 함께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하나로 뭉쳤고, 그 다음…….”

 

“그 다음?”

 

“……용사님이 있는 세계를 침략하기로 했어요.”

 

그제야, 베란다 너머가 보였다.

 

집 안의 풍경의 내가 익히 보아왔던 것이지만, 베란다 너머는 달랐다. 창문이 깨져 있는 베란다 바깥의 풍경.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던 커다란 건물은, 반쯤 잘려 버린 채 불규칙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너머로 보이던 산 또한 무언가에 깎여나간 듯이, 절반쯤 되는 부피로 가라앉은 채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침략의 목적은 단 두 가지. 첫 번째, 용사님을 이 세계에서 구출하는 것.”

 

아르멘은 미소를 지었다.

 

“이 세계 어딘가에 있는 용사님을 찾아, 우리의 세계로 돌아오게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두 번째.”

 

“용사님을 홀려버린 그 암캐년을. 배제한다.”

 

그리고 그 지어버린 미소를 풀지 않은 채 일어선 뒤, 소파가 있던 곳을 향해 걸어갔다.

 

“저희가 받은 고통에 비례할 만큼, 수많은 고통을 준 뒤. 용사님의 삶에서 배제시켜 버린다.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볼 수 없도록.”

 

분명히 소파가 있었을 그 자리에는 무언가, 하얀색 천으로 덮힌 물건 하나만이 고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간 아르멘은.

 

“그러니까, 잠시 도와주시겠어요, 용사님?”

 

그렇게 말하며 천을 들췄고, 그와 동시에 나는 멍하니 한숨을 쉬었다.

 

“용사님이 기절하신 동안, 잠시 용사님의 생각을 탐구해봤어요.”

 

우물우물거리는 천 밑에 깔려있던 것은, 온 몸이 밧줄에 묶이고 입 조차 테이프로 틀어막혀진, 여섯명에서 일곱명 쯤 되는 여자들이었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있고, 키에서 가슴 크기 또한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그 여자들에게서 확연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생긴 사람에게. 그 말은…….”

 

“잠시만, 아르멘. 잠시만……”

 

“이 중에 그 암캐 년이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

 

이 여자들은 모두, 누나를 닮았다. 조금씩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를 한 순간 바라보고, 흥미에 찬 눈빛을 반짝이는 아르멘은, 스태프를 들어 바닥에 무릎꿇려진 여자들 중 한 명의 테이프에 갖다대었다. 푸른색 전기 같은 것이 일어나더니 쫘악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아, 아악! 아…….”

 

테이프가 스파크와 함께 찢어져버리고, 비명이 따라왔다.

 

“아, 아, 살려……주세요!”

 

“이 주변에 살아있던 여인분들 중에, 그 암캐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들을 추려보았어요.”

 

그리고 그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머리를 조심스레 잡아, 이쪽을 향해 돌린다.

 

확실히 누나와 조금, 닮긴 했다. 테이프를 전기로 태워버린 탓인지 입 주변에 화상이 일어나있지만, 누나와 똑같이 아름다운 여자였다.

 

“이 여자인가요? 용사님을 홀린 암캐가?”

 

하지만.

 

“아니야…….”

 

누나가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

애초에 누나가 이 근처에 돌아다닐 리가 없다. 편의점과 내 집이 있는 곳은 연산동이었고 누나의 해운대구다. 멀리 떨어져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세계가, 이세계의 사람들에게 침략당했어도, 누나가 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아니야……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면, 절대로 아니야…….”

 

“아, 그런가요. 아쉽다.”

 

진심으로 실망한 듯이 볼을 부풀리는 아르멘의 모습은, 모처럼 개발한 마법이 실패했을 때 울먹이며 지었던 그때의 모습과 똑같았다.

 

“사, 살려 주, 사, 살!”

 

“음, 그렇다면…….”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아르멘이 사용한 마법은, 아마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한 듯이 보였다.

 

스태프에서 푸른색의 전기가 지지직 거렸을 때,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렇지도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살――”

 

그리고 그 예상대로, 살려달라는 신음만 내뱉고 있던 여자의 머리는, 깔끔하기 그지 없는 소리와 함께 폭발해버린 것이다.

 

안에서부터 터져버린 여자의, 뇌 조각과, 치아 같은 것들이 솟구쳐, 거실의 마룻바닥 위로 튀어내린다. 방 안에 퍼져버리는 진한 혈향. 마룻바닥을 적시기 시작하는 액체.

 

“으음. 이 여자는요?”

 

그리고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충격에 빠진 듯이 동공이 수축한 여자의 테이프를 태우는 아르멘.

 

“네, 네, 맞아요! 제가 맞아요! 제가 저 사람 여자친구에요! 여자친구! 네!”

 

테이프가 태워지자 마자 여자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낼 새도 없이 애원하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절박하기 그지없는 소리에 잠시 스태프를 거두던 아르멘은.

 

“……진짜인가요?”

 

진심어린 의문에 찬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고, 그 눈빛을 보고서는 몸이 얼어붙고야 말았다.

 

“네, 맞다니까요, 제가 저 남자랑……저 남자랑 사귀고 있었어요! 어제까지도……맞잖아, 자기야? 응? 우리 어제까지만 해도…….”

 

절박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여자는, 확실히 누나가 아니다. 하지만 그 절박함이 무엇에 근거해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눈을 살짝 찌푸린 채 나와,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는 아르멘의 시선을 느낀다. 그 의문에 찬 시선이 무언가 결론을 내릴 때 쯤에.

 

“응, 맞아, 응, 누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살짝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가요?”

 

그리고 그 옆에서 잠시 턱에 손을 괴고 있던 아르멘 또한, 안심에 찬 미소를 지었다.

 

“네, 네, 맞아요! 사귀고 있어요, 저희! 그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요! 제발…….”

 

그 안심에 찬 미소를 지은 채 스태프를 휘두른 아르멘.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광경은,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옆에서 미친 듯이 몸을 꿈틀대며, 살려달라는 말을 외치고 있는 듯한 나머지 여자들의 머리가 한꺼번에 터졌다면, 나라도 저런 비명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어있는 내 몸은 비명을 지르기에도 벅찬 상태였고, 그렇기 때문에 아르멘이 망토에 묻은 피를 닦으며.

 

“용사님이 선물해 주신건데…….”

 

입술을 비죽거리며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고마워요, 용사님. 혹시, 배는 안 고프세요?”

 

“……뭐?”

 

하지만 그런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신체도, 아르멘에게서 나오는 뜬금없는 질문에는 자연스레 의문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이 암캐년을 철저히 소멸시킬 생각인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릴 것 같거든요. 배가 고프시다면 조금 오래 버티셔야 할 것 같아서…….”

 

“네?”

 

아르멘의 스태프가 다시 여자에게 닿았다. 전기가 일어남과 동시에 온 몸에 묶여있던 밧줄이 풀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제발 좀 닥쳐줬으면 좋을 텐데. 어쩔 수 없나.”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자가 급작스레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염동마법이 온 몸에 적용된 것이었다.

그렇게 지르고 있던 비명소리가 급작스레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아르멘은 여자 주위의 공기 또한 염동력으로 제어하고 있는 듯 했다.

 

즉, 비명을 지르던 여자는 이제 숨을 쉴 수 없다. 고통에 찬 표정을 지은 채 공중으로 떠올려진 여자는, 거실을 가로질러 시야의 한쪽으로 사라졌다.

 

“너, 대체 저 여자에게 무얼 하려고…….”

 

“말했잖아요, 용사님.”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멘.

 

“저희가 받은 고통에 비례할 만큼, 수많은 고통을 준 뒤. 용사님의 삶에서 배제시켜 버린다.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볼 수 없도록.”

 

“아까, 죽인 여자들은, 그러면…….”

 

“억울하게 휘말린 사람들이니 고통 없이 보내드려야 했으니까요. 저지른 죄악에 비해서는.”

 

“저지른 죄악……?”

 

“그 암캐년과 비슷하게 생겼단 것.”

 

“뭐……?”

 

“용사님을 홀릴 가능성이, 만에하나라도 있다면.”

 

그 미소를 지은 채 거실을 가로질러 건너간 아르멘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크디큰 죄악이라고, 아르멘은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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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노벨피아에 쓰고 싶은데 어떰?


그리고 제목이 이게 맞나 싶은데 제목 추천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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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ovelpia.com/novel/64038


썼읍니다


한번씩 보고 가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