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내 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이야기를 한번 풀어볼까 해.


난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가끔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기도 했고, 정말 소름돋게 무서워서 도망친 때도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이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나에게는 사촌동생들이 있어. 아버지 형제들의 자녀인데, 명절이 아니라면 서로 볼 일이 없는 사이지. 서로 거주지도 멀리 떨어져 있고, 내가 어렸을 때는 미성년자들에게 휴대폰이 널리 보급된 시절도 아니라서 서로 연락도 잘 안 했음.


작은아버지에게는 자녀가 3명이 있었어. 딸 2명, 아들 하나였는데, 그냥 평범한 남매들이었음. 서로 놀다가도 싸우고,  사이가 좋지는 않은데 가족애로 끈끈한 그런 사이.


내가 십대 중반에 접어들기 까지는 문제가 있다고 눈치를 못 챘었지. 동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보게 된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고.


작은아버지의 부인, 그러니까 작은어머니는 키는 작지만 덩치는 좀 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니 힘도 좀 샜던 것 같음.


유년기 시절의 작은어머니는 그냥 평범한 아줌마였어. 내가 어려서 눈치를 못 챘을 수도 있겠지만, 동생들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냥 일년에 한두번, 많으면 대여섯번 만나며 한해 한해 흘러갔다.


어렸을 때는 서로 얼굴만 봐도 웃고, 같이 마당에서 놀던 동생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소극적이게 되고 조금씩 어두워져 가는건 느꼈다.


나는 그냥 서로 나이를 먹으면서 자아도 생기고, 각자의 학업에 신경쓰고 사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같이 목욕탕에 가서 남동생의 몸에 멍자국과 피부병이 퍼진걸 확인하기 전 까지는. 몸 상태도 같은 또래에 비하면 너무 말랐었음.


나랑 한살 차이의 다른 남동생도 이걸 봤는데,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서 다시 옷 입히고  목욕탕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나랑 한살 터울의 남동생은 대충 샤워만 끝내고 목욕탕을 나왔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몸이 그지경이 될 때까지 병원에 왜 안갔냐고 물어봤는데 얘가 대답을 안 하는거야.


내가 계속 타이르듯이 묻는데도 묵묵부답이고, 옆에서 같이 보던 남동생이 답답했는지 욕하고 소리치면서 막 따져 물었는데... 얘가 화를 확 내면서 '형들이 뭘 알아 XX!!'하고 소리를 팍 지르는거야.


너무 순하고 장난기 많았던 동생이었는지라 너무 놀랐었다. 아무튼 다른 남동생이 빡쳐서 달려드려는거 말리고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 날은 끝이 났어.


학교폭력을 의심했지만 그러기에는 기아에 가까운 상태와 피부병이 설명이 안됐음. 설령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해도 그지경이 될 때까지 보살핌 없이 방치되었다고 밖에는 추측이 불가능했다. 


아무튼 다음날 제사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싸고 있는데, 작은어머니가 내 옆에 앉는거야.


어제 목욕탕에 잘 다녀왔냐고 묻더라. 겉으로는 웃고 있는데 불안해하고 있는건 중학생의 나도 알아챌 수 있었다.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이 때였다. '아, 이년이 가해자다.'라고 확신을 했음.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명절에 어른들 뵙고 하면 보통은 용돈을 받잖아? 그 용돈으로 가지고 싶은거 사본 경험은 다들 한번씩 있었을 거임.


그런데 작은아버지의 아이들은 그 돈을 가져본 적이 없었을 거야. 왜냐하면 아이들이 돈을 받고나면, 작은어머니가 빼앗아 가듯이 가져가거나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줬음.


심지어 나를 포함한 다른 조카들에게도 용돈을 좋은 곳에 써보는게 어떻겠냐며 돈을 요구했음. 물론 주지는 않았지만.


여동생들은 화장품도 제대로 바르지 않았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피부가 희게 번져있고, 또래에 비해서 외모를 너무 안가꾼다는 느낌이 들었음.


설날, 그러니까 1~2월인데 동생들이 여름 옷을 입고 온 적도 한두번 있었다. 엄마가 말 없이 옷 사준거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왜 그때 작은어머니가 화를 냈는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했는데.


아무튼 별일 없었다고 대충 둘러대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아빠에게 동생들 이상하다고 물어봤는데, 한숨만 한번 푹 쉬고 아무 말도 안 해줬음.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의 기억과 확신도 어느새 희미하게 잊은 채 일상을 계속 이어나갔어.


모든걸 알게 된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12월 말,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다가오는 때였어. 문제의 동생들은 인천에 살고 있었는데, 아빠가 인천공항에 갈 일이 생겨서 따라간 김에 동생들 보러 집에 갔었음.


그때 동생들이 평수 작은 낡은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은색 곰팡이와 무엇인지 모를 누런 얼룩이 벽과 천장을 뒤덮고 있었고, 뭔지 모를 악취가 나고 있었고.


실내에는 물건이 어지러져 있었고, 심지어 깨진 물건이 방치된 것도 있었다. 주방에는 당분간 요리를 했던 흔적 없이 설거지 거리만 있었음.


무엇보다 믿을 수 없는건 난방도 안 되고 있는 차가운 방에 여름옷 차림으로 있는 동생들.


아빠도 나도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서 집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음. 낡은 청소기는 작동도 안되고, 화장실은 청소를 안 했는지 썩은내가 진동했고, 찬장을 뒤져보니 햇반이랑 통조림 몇개만 나뒹굴고 있음. 5인 가족이 사는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일단 내가 뭐 줄 수 있는게 없어서 외투 벗어서 남동생 입혀줬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빠랑 멘붕에 빠져있던 때, 작은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음.


우리 얼굴을 보고는 표정이 험악해 지더니, 왜 연락도 없이 집으로 쳐들어 오냐고 소리를 막 질러댄다.


작은어머니 얼굴 보자마자 화가 치밀었던 아빠는 집이랑 네 자식들이 왜 이꼴이냐며 따져 묻기 시작했는데, 대답하는게 정말 무서웠음.


이 집은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집이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대답. 설마 했는데 종교에 빠진 거였다. 그것도 사이비 종교.


옆에 있던 나도 극대노해서 'xx 하느님이 보호를 해서 애들이 이렇게 지내요?' 라며 따졌는데, 작은어머니가 나를 벽으로 밀쳤음.


그거 보고 더 화난 아빠가 작은어머니 끌고 동생들 집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는 뭐... 정말 혼돈의 카오스였지. 난 충격받아서 그냥 멍때리고 있었고, 동생들은 울기 시작함.


뭘 해야하나 싶은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단 하나였어. 지갑에 있던 부모님 몰래 알바해서 번 돈을 손에 쥐여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더라.


결국 그 집에 한시간 정도 있다가 경찰 부르고 나서 집으로 왔다. 혼자 집에 가라는 말에 나 혼자서 지하철 타고 집으로 왔음.


나중에서야 이 참상의 진상을 알게 되었는데, 작은어머니는 어느 순간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돈, 시간을 모두 사이비 교회에 할애하고 있었음.


그때 사업 중이던 작은아버지는 바빠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고, 가정을 돌보는건 돈으로 대신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그 미친년은 생활비는 물론이고 동생들이 받는 용돈까지 빼앗아서 교단에 헌납하고 있었던 거임.


나중에서야 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일주일에 한두번 밖에 집에 오지 않았다고 해. 동생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올라갈 때까지 자기 자식들을 방치하면서 키운거임.


그나마 일주일에 한두번 집에 오는 날은 동생들이 더 싫어했다. 동생들이 교회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구타와 폭언을 일삼고, 이상한 종교 의식까지 강제로 했다고 한다.


작은어머니 따라서 교회에 가보기도 했는데, 그곳의 어른들은 이상했다고 한다. 목사한테 절하고, 설교 들으면서 막 울기도 하고 서로 때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이런거 보면서 얼마나 충격 받았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무엇보다 TV에서나 나오는 일로만 여기던 이런 사건이 내 가족에게 일어났다는게 정말 충격이었음.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나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변하는건 없었다.


다행히도 이혼 소송이 거의 끝나갈 때였고, 법적으로 이혼이 완료된 뒤에는 그 미친년하고 떨어져서 살게 되었음. 지금은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다.


물론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했어야 할 유년기 시절을 학대받으며 자랐으니, 그 상처는 평생 치유되지 않을거다.


귀신이라는게 진짜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밖의 초자연적 현상이라는건 한두번 겪어본게 전부라 그 실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가족이,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 파괴되는걸 목격한게 나는 훨씬 더 무서워.


지금도 각종 매체에서 사이비 관련 사건 터지는거 보면 남일 같이 느껴지지가 않음. 정말 피부로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