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남을 위해 베풀 작은 마음 마저 없을까?


그 날 밤은 유독하게 더 추웠다. 거기다 더해

눈까지 왔는데, 그것이 센 바람에 휘날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코트를 바짝 붙잡고

남는 손으로 눈에 들어오려는 눈바람을 막았다.

만약에, 이런 날씨에 집 없이 버텨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고 불쌍할까?

얀붕이의 누추하고 낡은 집으로 우풍이 새어 들어오지만,

그나마 이런 집이라도 있어 어찌나 다행인지 그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벽에 간 균열에 신문지를 

물과 기름에 섞어 반죽한 것을 바르던 참이었다.


그때 창문 밖에 한 노파가 변변한 옷도 없이

추위에 떨며 슬슬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길을

걷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얀붕이는

마음이 짠하여 그 노파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 노인이 자신의 시선을 완전히 벗어나야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그러나

그 노파는 오래 걷지 못했다. 반대편 건물 한 켠에

지친 몸을 기대어 쭈그려 앉았고, 추위 때문에

몸을 몹시 움크렸다. 그가 내다보는 창문 바로

맞은 편에서 말이다.

얀붕은 고민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빠듯한 와중에

저런 가난뱅이 노인을 집에 들여 자신의 것을 나눠줄 

수 있을런지 하는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도 그러 했을 듯, 그도

엄동설한에 떠는 노파가 길 한복판에서 얼어 죽는

꼴을 볼 용기는 차마 없었다.  

그가 창문을 두들겨 노파를 불렀다.


"여봐요! 할머니!"


그가 손가락을 구부려 창문을 탕탕 쳐보았지만,

그녀는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그저

지치고 추위에 떠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얀붕이가 얼른 벽에 걸린 코트를 걸쳤다.


"이런 날씨엔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은데..."


문을 열려던 찰나, 그에게

인간적인 마음이 순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양심이 그를 재촉했다.


"어쩔 수 없지, 옘병."


얀붕이 그 낡은 나무 문의 쇠 손잡이를 잡고 열자

매서운 겨울 바람이 집 안으로 숭숭 대며 들어왔다.

얀붕은 얼른 문을 닫고, 그 노파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그의 말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노파에게 외치듯 말했다.


"어르신! 일어나 봐요! 잠깐 들어와서 몸 좀 녹이라구요!"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듯

노파의 눈꺼풀은 매우 지친 듯 자꾸 꿈뻑 꿈뻑 거렸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얀붕이는 그녀를 억지로 부축해 일으켰다.

다행히 노파는 설 수는 있을 정도의 힘은 남은 듯 했다.

그러자 얀붕이 그녀의 귀에 대고 크게 말했다.


"우선 제 집에 가셔서 몸 좀 녹이고 댁에 가셔요!"  


그러곤 그녀의 대답이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팔을 부축한 채로 그녀를 자기 집에 데려갔다.


......,


남은 장작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방을 덥히기 위해

그는 남은 장작을 모두 난로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장작이 타면서 겨울 바람에 서늘해지던

방을 다시 훈훈하게 덥혔다.

그가 노파를 식탁에 앉혀 놓고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듯 달그락 거리더니, 잠시 후 뭉갠 옥수수를

끓인 수프를 그녀 앞에 가져다 주었다.


"어르신, 저는 가난해서 이 정도가 최선입니다.

하지만 좀 드시고 기운 차리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여지껏 한 마디 말이 없던 노파가 

힘겹게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


"내가 이걸 먹으면... 그럼, 자네는?"


그녀의 말에 얀붕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는 이미 먹었는 걸요? 그러니, 어르신. 부담 말고 잡수십쇼." 


노파는 그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 수프를 먹었다.

그녀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얀붕은 

마음이 한 결 놓였으나, 그래도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은 그의 허기는 달래지지 않았다.

하루 치 봉급을 몽땅 그녀를 위해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얀붕은 고개를 휘저으며 자기가 한 행동이

옳았음을 상기 시키면서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때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 가려 던 찰나,

다시 몸을 돌려 노파에게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식탁 옆 소파에 누워 

오늘 밤은 묵고 가셔도 좋습니다." 


......,


간만에 맞는 휴일이 밝았다.

주 6일 동안 중노동에 시달렸기에

이 휴일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러나 어제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얀붕은 허기 때문에 걱정이었다.

돈이 있어야 무얼 먹든지 할 텐데 어제 그 노파에게

돈을 다 써서 결국 자신은 쫄쫄 굶어야 했다.


"에이... 마음 약한 것도 죄라니까..."


하면서 그는 푸념을 했다. 그러면서

밤새 장작이 모두 타 집 안이 벌써 식었는지

차가워진 나무 바닥에 발을 대고 침대에서 일어난

얀붕이가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 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그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려고 여인을 보냈으면 저런 모습일까?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외모란 저런 모습일까?

순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외모와 몸매가 

완벽한 여인이 그의 식탁에 아침 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가 얼떨떨 하여 말했다.


"그대는 누구시오?"


그러자 그 젊은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녀가 미소 짓자, 순간 겨울이 그치고 봄이 온 듯

모든 공간에 따듯한 공기가 돌았다.


"저 모르시겠어요, 서방님?"


서방님? 그 말에 얀붕이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어제 노파를 들인 일 말고 난 이 집에 여자를 들인 일이

없는데, 무슨 서방이란 말이오?"


그러자 그녀가 그에게 조르르 달려들어 품에 쏘옥

안기며 말했다. 그녀의 작은 몸이 그에게 안기자

그녀의 얼굴이 그의 가슴 정도에 닿았다.


"그 노파가 저예요, 여보."


"...뭐?"


당췌 알아들을 수 없던 얀붕이에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는 사실 질투와 애욕의 여신의 딸 얀순이에요.

제 얼굴과 몸만 바라보고 망나니 같은 신들이

저에게 청혼하여 억지로 시집 보내려는 바람에

변장을 하고 이렇게 도망 나왔어요.

그들은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권능을 자랑하면서

저의 관심을 끌려고 했지만, 저의 마음이 오직 끌리는 것은

따듯한 마음인 걸요?... 그러던 차에 당신이

나에게 그 친절하고 거룩한 마음씨를 베푼 거예요.

어제 그 엄동설한을 따듯하게 녹여준 당신에게

내 마음도 모두 빼앗겨 버렸어요.

그러니 제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해 당신을 섬길 테니,

당신의 아내로 나를 허락해 줄 수 있나요?

아니요, 그렇게 해주셔야만 해요. 당신이 만약

다른 선택을 한다면 내가 어떤 짓을 할 지 모르고,

무조건 내가 원하는 결과로 만들 거예요.

내가 여신의 딸 임을 잊지 말아줘요."


얀붕은 그저 눈만 꿈뻑거리며 그녀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정말 여신의 딸이 맞는지,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그녀의 입에선 신들이 마시는 불사의 포도주, 향기로운 넥타르의

향기가 뿜어 나와 마치 향수처럼 공간을 채웠다.

그런 그의 반응에 과연 그 아름다운 눈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여보, 배고프죠? 우선 내가 차린 상 좀 들어요."  


도대체 어디서 그 재료를 난 지 알 수 없는

만찬이 그의 앞에 놓였다. 술과 만찬이 올라

그의 낡은 탁자 다리가 흔들거릴 정도였다.

얀붕은 너무 배가 고팠기에 대답이고, 판단이고 할 겨를 없이

우선 탁자에 달려들듯 앉아 허겁지겁 그 만찬에 손을 대었다.

하나같이 천상의 맛이었다. 그녀가 준비한 그 술까지.

그런 그를 애정 가득하게 바라보면서 그녀가 혼잣말 하듯

읊조렸다.


"당신은 신들의 음식과 음료를 먹었으니, 이제

인간과의 관계는 모두 청산하고, 저와 영구히 지속될

나날들을 준비해야 할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황홀한 표정으로 홍조를 띄우며

만찬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