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지금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좋아해, 후붕아. 나랑 사귀어줄래?"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3년동안 좋아했던 첫사랑인 후순이에게 고백받았다.

수능이 점점 다가오는 쌀쌀한 가을,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방과후 학교 뒷편에서의,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릴 정도로 정석적인 그녀의 고백.

너무 좋아서 꿈인가 싶어 볼이라도 꼬집어봐야 했던게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 ..."



감정이 보이지 않는 그녀의 표정 때문에?

고백을 하는건지, 평범하게 말을 걸어온 건지 모를 무표정이지만

그녀, 후순이는 늘 그랬기에 넘어갈 수 있다. 나는 후순이의 그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정표현 또한 좋아했으니까.



"...대답해줄래?"



숫기도 없이 3년 내내 고백 한번 못한 겁쟁이인 나에게 누군가가 내린 벌인걸까.


쓸데없이 눈치가 좋지만 않았어도.

작게 한숨을 쉬며 대답을 촉구하는 그녀의 뒷편 건물에

항상 붙어다니는 그녀의 친구들이 키득거리며 몰래 훔쳐보고 있는 모습을

눈치채지만 못했어도.


줄곧 좋아했던 첫사랑에게 고백 받으면서 이런 착잡한 기분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 ..."



하지만 가장 기분이 나빴던건,



"... 응, 고백해줘서 고마워. 사귀자."



대충 어떤 상황인지 눈치 챘으면서,

일단 사귀고 나면 진짜로 좋아해주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취해

이 거미줄보다 얇은 일말의 가능성에 결국 메달려버리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 때문이였다.



"... 응, 번호는 예전에 교환했으니까. 집에 돌아가면 톡 할게."



담백하게 마무리 짓고, 나와 후순이는 떨어졌다.

건물 뒷편으로 사라진 후순이에게 뭐라 재잘거리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까지,

나는 멍하니 노을이 지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래, 아직은 모르는거야. 응원 차 지켜본 걸 수도 있고, 응.'



우린 서로 좋아했던거야.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걸며 나의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 ...'



... 그 때 고백을 거절했어야 했는데.




=== ===




후순이에게 고백받고 사귀게 된 이후로 크게 달라진 일은 없었다.



-까톡!-


- 학교에서는 서로 모른 척 하자.



고백받은 날 저녁,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게 부탁한 내용이었다.

벌칙게임이더라도, 진짜 사귀고 있는 거라도, 어느 상황이든 주변 친구들에게 들키는건 부끄러웠겠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언젠가 생일선물로 받은 대충 그려진 개구리 이모티콘 중 '따봉중인 개구리' 를 보냈다.

... 구려.


비록 학교에서는 서로 모른 체 지내지만

일단 사귀게 됐으니,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교 후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씻기, 그 다음이 후순이에게 톡 보내기 였다.



 잘 들어갔어? -


- 응.


 오늘 점심에 얀붕이랑 밥먹으러 가는데 말이야, 아 얀붕이는 내 친구 이름인데... -


- 알고있어. 같은 반이잖아.


 아, 응. 그래서 걔 여친 얀순이가 따라와서... 근데 얀순이는 다른 학교거든?... 걔네들이... -



어떻게든 후순이와의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 내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에게선 '응.' '그렇구나.' 같은 상투적인 대답만 돌아올 뿐.


...난 그저, 나의 하루를 후순이와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같이 있을 수 있는 학교에선 서로 모른 척 하기로 했기에,

언젠간 나도 후순이의 하루를 공유하고, 서로 같은 추억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대화창 속 '1'이 사라지는데 1분이 걸리지 않는 사실에 만족하며,

사실상 일과 보고나 다를 바 없는 형태로, 일방적인 대화를 계속 해나갔다.


...그러나 이후로도 그녀가 나에게 먼저 톡을 걸어오는 일은 없었다.



=== ===



어쨌든 사귀게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없던 용기를 마른 걸레 쥐어짜내듯 내서 톡으로, 후순이에게 주말에 영화 보러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 응. 알았어.

- (따봉중인 개구리)



...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의외로 시원하게 나의 어설픈 데이트 신청을 받아준 그녀와의 첫 데이트는 평범 그 자체였다.

평범하게 만나서 평범하게 나 혼자 주절거리고 그녀는 평범하게 '응.' '그렇구나.' 같은 대답을.


중간에 평범하게 횡단보도를 걸어가다가 신호도 평범하게 무시해버리는 미친 차가 달려오길래

자칫 위험할 뻔 했던 그녀의 팔을 당긴게 마지막 스킨십. 그 흔한 손도 잡지 못했다.

그 이후로 후순이는 내가 세게 쥔 탓에 구겨진 블라우스 옷자락을 자꾸 매만지곤 했다.

아끼던 옷이었나보다. 나중에 평범하게 사과했고, 그녀도 평범하게 내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 이후로도 평범하게 B급 영화를 보고, 평범하게 팝콘은 따로 주문하고, 평범하게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토끼처럼 조용히 먹고있는 후순이를 바라보았다.

딱히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던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소설 속 그런 연애는 아니었다.



'... 나, 얘를 진짜 좋아하고 있구나.'



그냥 평범하게 좋았다. 같이 걷기만 해도 좋았고,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후순이와 영화를 같이 보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 말을 후순이가 들어주는게 좋았다. 비록 내가 말을 건 만큼 돌아오지 않아도.


오늘의 데이트로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후순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그저 불씨같은 찰나의 감정이 아닌,

진심으로, 정말.

다른 미사여구로 포장할 필요 없이 평범하고 담백하게 그저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 그래서 더 마음이 편치 않다.

후순이는 도대체 왜 나에게 고백한걸까.

나 혼자 몰래 좋아하고 있었을 뿐, 같은반인걸 제외하고 우리는 어떤 접점조차 없었다.

사는 곳도 다르고, 성적도 다르고, 동아리도 다르고 반장 부반장 같은 관계는 더더욱 아니었다.



"... ..."



조용히 먹고있는 후순이의 모습에 노을진 그날의 고백이 오버랩 된다.

그 날, 후순이의 뒤에서 키득거리며 웃던 그녀의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 데이트도 벌칙게임의 일환이야?'



지금 우리가 같이 있는 장면도 그녀들이 어딘가에서 지켜보며 웃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만큼은, 내가 좋아했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무표정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조금은 힌트를 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노력하면 언젠간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라는 다짐에 무색하게,

그녀는 오늘도 전혀 웃지 않았다.



'...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알고싶다.

알고싶은 마음과 똑같은 무게로

평생 모르고 싶다.


오늘 데이트로 얻은건

그녀를 향한 내 마음에 대한 확신과,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에 대한 의심 뿐이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데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겨우 깨달은건

데이트 중, 아니. 사귀고 나서도 우린 한번도 서로를 마주본 적이 없었다는 것.



'... ...'



그러면서도 횡단보도에서 잡은 그녀의 부드러운 팔의 감각은 생생히 기억에 남아,

더욱 마음이 착잡해지고 부끄러워져서, 이후로는 데이트 신청도 하지 못했다.




=== ===




어쨌든 사귀게 된지 3주가 지났다.

학교에선 모른 척. 꾸준하게 톡으로 일과보고를 하고, 그녀는 대답해주는 성실한 연인생활.

키스는 판타지. 포옹은 커녕 손조차 잡아본 적 없는.

플라토닉을 넘어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연애.


손바닥으로 달을 가리듯이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결국 진실은 우연인듯 필연적으로 내게 다가와 쓰디 쓴 상처를 남겨줬다.





방과후, 교무실에서 선생님의 작업을 돕고 돌아가기 전

깜빡하고 교실에 놓고 온 가방을 가지러 교실 앞에 왔을 때.


교실 안쪽에서 여자애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후순이의 친구들이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창문너머로 확인해보니

가방이 걸려있는 내 자리에 후순이가 앉아있고, 그녀의 친구들이 주변을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복도에서도 그녀들의 대화가 충분히 들렸다.



"후순이 얘도 조용하면서 진짜 독하다니까? 이걸 진짜 해낸다고?"


"한달 사귀기 벌칙게임!"


"... 시끄러워."


"꼬우면 운동좀 열심히 하던가~ 누가 체육시간 달리기 기록 꼴지 하래~?"


"야 그래도 얼마 안 남지 않음? 이제 일주일만 더 버티면 되잖아?"


"그래서 데이트는 했니? 막 잘때까지 통화하거나? 손깍지 잡고 키스도 한거 아니야? 꺄~"


"...시끄럽다고 했어."



... 아.



"그래도 수능 끝나면 등교 안해도 되니까, 이 타이밍에 벌칙하는건 다행일지도?"


"근데 왜 하필 후붕이 걔한테 고백한거임? 딱히 고백상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벌칙인데 같은 반 애한테 고백한건 악질이지 악질!"


"그야, 후붕이 걔 조용하고 순진하고 뒤끝없고. 벌칙게임인거 알아도 용서해줄 것 같은 이미지잖아? 그래서겠지."


"... ..."



내심 후순이가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했지만, 그녀는 무시하기로 결정한 듯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씁쓸했지만, 고백받은 그날부터 예상하고 있었기에 나는 무덤덤함을 연기할 수 있었다.

금방 흐를 것 같은 눈물도 억지로 참을 수 있었다.



"뭐, 벌칙게임 건 우리도 나쁘지만 후순이가 제일 심하지~"


"맞아 맞아 후순아. 아무리 그래도 후붕이는 아니지."


"... ..."



... 그 말만 아니었어도.





"후붕이가 너 좋아하는거 알고있었잖아?"





... 그 말만 아니었어도.



"...어? ... 무슨... 말..."


"걔 너 좋아하는거..."


"반... 유명한..."



그 뒤로 들려오는 말들은 내 귀에 닿지 않았다.


방금까지 무덤덤함을 연기하며 쿵쾅대던 심장이 급속도로 차분해졌다.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던 눈물이 순식간에 메말라버렸다.

꽉 물고 있던 어금니에도 힘이 빠지며

누가 게임처럼 리셋버튼이라도 누른 것 마냥 순식간에 평정심을 되찾았다.



"... 하."



실소가 새어나왔다.

3년동안 좋아했던 그녀를 향한 연심도, 유사 연인 행세를 하면 설레었던 마음도

헛웃음과 함께 내 몸에서 빠져나간 것 같다.


... 그 때 고백을 거절했어야 했는데.



"... 팍 식네."



가방은 내일 챙기지 뭐. 까짓거 가방없이 등교하고 한번 혼나면 그만이다.

스스로를 조소하며 조용히 교문을 나왔다.


노을이 지고, 집앞에 도착했을 땐 달도 안뜬 어둡고 쌀쌀한 밤이었다.




=== ===




그 이후로 나는 후순이에게 한번도 톡을 보내지 않았다.

교실에서 가끔씩은 바라봤던 그녀의 뒷모습을, 이젠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되었다.

3년동안 쭉 지켜봤었는데, 신기한 기분이다.

학교에서는 서로 무시하고, 데이트도 하지 않고, 일방적이었지만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던 톡조차 안하니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남남이었다.

처음부터 연인사이가 아니었던 것 처럼.


후순이와 친구들의 대화를 들은 다음날 바로 관계를 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전 체육시간에 필사적으로 달렸던,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들어온 후순이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벌칙조건이었던 30일 까지만 다물고 있기로 결정했다.

깔끔하게, 그녀가 내게 원했듯이 조용히, 뒤끝없이 끝낼 수 있도록.



"야 김후붕, 뭔일 있냐?"


"별거없어. 신경 꺼 징그러우니까."


"이새끼가 기껏 걱정해줘도 지랄..."


"너 어제 카페 알바 누나랑 얘기한거 니 여친한테 알려준다? 그런거 알려달라고 번호 받았거든?"


"아니 그거 그냥 주문한거잖아! ... 한 번만 봐줘..."



친구 얀붕이와 실없는 이야길 계속하며 하루를 떼운다.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비어지니 하루가 괜히 더 길게 느껴졌다.



'... ...'



그렇게 아무일도 없이.


어쨌든 사귀게 된지 30일째가 되었다.





"후붕아."



방과후 다들 하교를 준비하고 있을 때, 왠일로 모두가 보고있을 때 후순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에게로 순간 집중되는 친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굳이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채, 가방에 교과서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무슨일이야."


"시간 좀 내줘. 할 말이 있으니까."



... 빨리 끝내고 싶었나 보네. 그렇게 신경쓰던 주변 눈치도 보지않는걸 보니.



"잘 됐네."



나로서도 잘 된 일이다. 

나도 이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아픈 관계는 빠르게 청산하고 싶으니.



"나도 할 말이 있거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지나쳐 교실 밖으로 나갔다.

가방은 확실히 챙겼다. 이전처럼 깜빡하고 다시 돌아올 일이 없도록.



"따라와."




=== ===



그렇게 둘이 걸어서 도착한 곳은 그 날 그녀에게 고백받고 사귀기로 했던 학교 뒷편.

그때의 나름 따뜻했던 공간이 쌀쌀하게 바뀌며, 한 달의 시간이 새삼스레 체감이 되었다.



"... 요즘 왜 톡이 없어?"


"갑자기 연락이 없으면 좀, 무슨일인가 싶고..."


"말해줄 수 없는 일이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우리, 그, 사귀는 사이니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줬으면 하는데."



이제까지 후순이가 이렇게 길게 얘기했던 적이 있었나?



"별일 없었어."


"응, 그럼 다행이고... 아, 혹시 다음엔 영화 안 보러가? 그때 데이ㅌ... 아니, 영화가 재밌어서..."


"나, 영화 좋아하니까. 응, 영화. 혹시 다음 일정... 있어?"



처음으로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알았지만, 이제와선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불러낸 용건은 그게 끝이야?"


"응? 아, 아니. 할 말은 따로 있긴 한데..."


"그래, 나도 할 말 있으니까 빠르게 결론짓고 끝내자. 밖에 추우니까."


"아, 응. 그... 할말이... 그..."


"... ..."


"그... 미... 미안ㅎ..."


"응. 헤어지자."



평소 무표정한 그녀가 당황하며 우물쭈물거리는게 답답해서,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 끝내기로 했다.

연기도 그쯤하면 됐지, 어디까지 날 비참하게 만드려고 해.



"...어?"


"헤어지자고. 이쯤하면 됐잖아?"


"저, 그게, 후붕아, 그게 무슨..."


"지금까지 고생했어. 이제 그만하고 서로 편하게 졸업준비 하자."



그 말을 뒤로 집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후순이가 가로막았다.



"비켜."


"잠깐만, 헤어지자니 후붕아."


"말 그대로야. 헤어지자고."


"아니, 어, 왜... 왜 헤어지자는..."



그냥 무덤덤하게 끝내고 싶었는데. 왜 나를 막는거야.

도대체 네 진심이 뭔데.


자꾸만 막아서는 후순이를 보니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려서.

차갑게 식었던 무언가가 달궈지며, 막아뒀던 감정이 흘러나와 버렸다.



"왜, 네가 차버리면서 끝내는게 벌칙미션이었어?"


"...어?"


"지금 어딘가에서 니 친구들이 지켜보고있는거야?"


"아, 아니, 후붕아! 그게 아니라...!"


"이쯤하면 됐잖아. 한달동안 버텨줬으면."


"어...? 그, 그럼 갑자기 톡을 안하게 된 이유가..."


"어. 그때 다 들었어. 가방 걸려있었잖아?"


"아, 아아..."



사색이 되어 바닥만 쳐다보고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쌓아둔 감정을 쏟아내듯 그녀에게 주절대기 시작했다.



"오늘 불러낸것도 벌칙고백 미안하다 사과할 생각이었던거 같은데."


"그래. 받아줄게 그 사과. 질나쁜 장난 정도로 생각하고 용서할게."


"근데... 그 벌칙, 꼭 나한테 했어야 했냐...?"


"3년 내내, 1학년도, 2학년도, 3학년도 같은 반이었잖아..."


"아무리 졸업하면 볼일 없는 사이지만... 너한테 난 그냥 같은 반 친구 미만이었던 거야?"


"나, 진짜 너 좋아했어... 1학년때 우연히 인사한 뒤로 계속... 좋아했다고."


"3년 내내 좋아한 짝사랑이자 첫사랑한테 고백 받았는데, 그 뒤에서 네 친구들이 웃고있는걸 봤을 때 내 기분. 알 것 같아?"



"미안... 미안해... 미안..."



고개를 푹 숙인 채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이는 그녀에게 나는 한번 열린 입을 닫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런 것 까지 다 포함해서 용서하는거야."


"사실 어느정도 눈치 채고서 네 고백을 받은거고,"


"벌칙인 걸 알면서도 너무 좋아서, 어쩔 수가 없었어."


"그날 벌칙인걸 알아버린 날에도, 미리 예상을 하고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버틸 수 있었어."



"미안... 후붕아... 미안..."



"그런데... 정말 용서하기 힘든건."


"적어도... 널 좋아하고 있는 사람한테... 알면서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야...?"



"아.. 아니! 아니야 후붕아! 그건! ... ...아?"



갑작스레 고개를 든 후순이와 시선이 맞았다. 사귀는 사이에 처음, 아니.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그녀의 모습은 놀란 듯 당혹한 모습.

아마 그녀에게 보인 내 모습은 잔뜩 찡그린 채 눈물이나 질질 짜고 있는 한심한 모습이겠지.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장난 치지마."


"진짜... 진짜 아프거든? 당한 사람은 정말 찢어질 듯이 아파."


"너무 아파서 오히려 차분해지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라."



심호흡 후, 너저분한 감정을 어느정도 갈무리 한다.

더이상 말을 잇지 않는 후순이와 마무리를 지은 후, 조용히, 뒤끝없이 관계를 끝내면 그만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후순이의 전화번호와 카톡내역을 차단했다. 사진은 서로 찍은 적이 없으니 지울 것도 없다.

1분도 안되서 사라지는 추억이다. 참 얇고 얕다.



"연락처랑 카톡은 차단했어. 더이상 할 이야기도 없으니 상관없지?"


"수능도 얼마 안남았고, 곧있음 졸업이니까."


"졸업까지 오늘처럼 말 걸지 마. 늘 그랬듯이 서로 모른 척 지내는 걸로."


"같은 반이라 거북하겠지만, 서로 조금만 버티면 볼일 없으니까. 힘내보자."


"그럼."



그렇게 아무말도 못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교문을 빠져나왔다.

내 첫사랑이자 첫 연애는 그렇게 파란만장한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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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순이 시점 및 용서엔딩으로 생각하고 있음

근데 용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비용서로 끝내도 될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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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https://arca.live/b/regrets/59344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