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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소위 사이다 장르는 예전부터 꾸준히 만들어져 왔습니다. 불리는 이름은 좀 달랐지만요. 


  불후의 명작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대표적입니다. 자신을 파멸시킨 악당들에게 속 시원하게 복수하고, 아름다운 미녀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 딱 속시원한 복수의 전형이죠.


  사람은 당연히 속 시원한 쾌감을 추구하기에 사이다물의 유행 그 자체가 질적 하락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이다물은 문제가 아닙니다. 


  사이다물밖에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심각한 문화적 편식이 문제지요.


  이 점에서 소위 사이다패스들은 사이다 이외의 장르에 심각한 적개심을 보입니다. 주인공이 조금이라도 위기에 처하거나 고난을 겪으면 '이런 서사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부정합니다. 작가를 비방하고 공격하는 댓글도 자주 보이죠.


  그리고 이런 독자들은 특히나 목소리가 큽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게 소설이 흘러가면 자극적인 어휘를 쓰면서 작가를 비방하죠. (그 유명한 '작가님은 상하차나 하세요' 라는 투의 댓글이 대표적입니다. 보통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지능이 부족한 사람들이 저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런 과도한 공격성과 편식이  보니 웹소설은 자기복제에 가까울 정도로 이야기 구성이 단조롭습니다. 회빙환에 무협 옷 입히면 무협 웹소설, 회빙환에 아카데미 옷을 입히면 아카데미 웹소설이죠. 


  물론 경쟁력이 있는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경쟁력 있는 작품이 많아지고, 빛나는 문학적 서사를 가진 작품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웹소설 시장이 사이다에 기초한 회빙환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당장 상위 100위 안의 소설 중 회빙환이 없는 소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러한 과도한 공격성을 보면 사이다패스들은 소설을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치 성인용품처럼 소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쥐고 흔드는 대로 내 욕망을 빨리 해소시켜줘야 한다 이거죠.


  제가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사이다물은 저질이 아닙니다. 근대 이전부터 소비되어 온 유서 깊은 장르입니다. (전 장르에는 고급 저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먼 옛날 희극 작가와 비극 작가들은 네 장르가 저질이니 내 장르가 고급이니 싸웠지만요.)


  하지만 사이다물 외의 장르에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이는 문화 편식은 저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다보니 사이다물의 질도 점점 낮아집니다. 제가 아까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를 했었죠? 이 작품은 그야말로 사이다물의 정석입니다. 어떤 작품인지 모르는 분이 있을테니 잠시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에드몽 당테스라는 장래가 유망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악당들이 당테스를 질투해서 그에게 누명을 씌우죠. 그래서 당테스는 기약 없이 외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그곳에서 당테스는 은둔한 신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 신부에게서 보물지도를 받게 되지요. 이후 탈옥한 당테스는 보물을 얻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새 신분으로 살아갑니다.


  이후 당테스, 그러니까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자신을 몰락시킨 악당들에게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합니다. 그리고 예쁜 공주와 함께 여행을 떠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죠.


  보다시피 아주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사이다물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면 좋아요. 하지만 소위 사이다패스들은 이 소설을 견디지 못할 겁니다. 왜냐구요?


  우리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속 시원한 복수를 하려면 악당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악당이요.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거나, 어깨를 치고 지나간 정도의 사람을 잡아다 참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그건 복수가 아니라 사이코패스지요. 그래서 복수가 속 시원하려면 악당들이 나쁜짓을 지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이다패스들은 이것조차 참지 못합니다. 그들은 때려부수고 자기 마음대로 갑질하는 장면 외에는 모두 불만스럽거든요. 그런데다 아주 성급하기 까지 합니다. 아마 그들이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본다면 '누명 쓰는데 당테스 뭐함?' '페르낭(악당 이름) 안 찢어죽이는 거 보고 하차합니다'라고 하겠죠.


  이러다보니 사이다물의 깊이가 얄팍해집니다. 악행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으니, 그 악행에 뒤따르는 복수의 시원함도 덜합니다.


  이렇게 사이다패스의 영향을 깊게 받은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얄팍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쉬는 캐릭터가 아니라, 역할을 부여받은 종이인형에 불과하죠. 얘는 주인공에게 까불다 당하는 역할, 얘는 주인공에게 일방적으로 호의를 표해 독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 이렇게요. 감정에 입체성이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죠. 애증, 질투와 동경 그 사이의 마음, 사랑하지만 통제하려는 욕심 등의 복잡한 감정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시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이야기 해볼까요? 작중 등장하는 악당 중 '빌포르'라는 검사가 나옵니다.(칼싸움하는 그 검사가 아니라 법조인) 처음에 빌포르는 당테스가 누명을 썼다고 알아차리고 법대로 누명을 벗겨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당테스의 누명을 벗겨주면 자기의 비리가 들통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래서 사건을 묻어버리고 당테스를 감옥으로 보내버리죠.


  웹소설에는 이런 입체성이 드뭅니다. 누명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그럴듯한 악당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주인공에게 누명을 씌우는 사명을 부여받고 누명을 씌우죠. 이러다보니 '왜 굳이 가만 있는 사람을 건드리지? 바보인가?'하는 의문이 자주 듭니다. 특히 소위 파티추방물에서 자주 보이죠. (말 좀 곱게 하면 덧나나?)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러한 자기복제, 사이다패스, 질적 저하에 대해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는 있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요. 웹소설이라는 시장이 미래가 창창한 만큼 여러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어 다양한 장르가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야릇한 성인소설도, 어두운 느와르도, 통쾌한 사이다도, 가끔 보이는 회빙환도, 가슴 아픈 비극도 말이죠.


  지금처럼 회빙환 옷입히기가 아니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