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이게 첫작? 혹은 2~3질 내놓을 즈음엔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사실 이 일 오래 하다보면 "창작력이란 고갈이 되는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됨.

글이 안나오는 걸 떠나서, 뭘 써도 진부해지고 실제로 성적도 추락하는 순간이 옴.

가장 심각한 건 정기 연재가 강요되다시피 하는 웹소설 시장에서 글이 안나오기 시작하면 생계가 위험해진다는 거.


내 경우엔 좀 뼈저린 이야기인데

2016~2018년 이때가 진짜 제일 심했음 (데뷔 8년차)


문피아 독점 계약으로만 글을 쓰다가 이때 처음으로 카카오 매니지랑 계약해서 카카오 쪽 타깃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글이 안나오는 거임. 딱 1권 쓰고 찍쌈. 계약은 2016년 1월인데 약정했던 4권까지의 연재본을 넘긴 게 2018년 6월임 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거지 진짜.


이땐 스크리브너 말고 한글을 사용했는데, 문서 이력 보면 버전이 163임.

즉 163번 글을 고친 거. 스스로 글에 확신이 없고 뭘 써도 노잼이니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이전 내용 버리고, 다시 바꾸고, 그러다가 롤백하고 이걸 반복한 거임.


근데 문제는 4권까지 글을 넘겨서 프로모션 받고 연재를 시작했는데

여전히 글이 안나오는 상태였다는 거임. 만 2년을 넘게 해서 4권을 썼는데 주7일 연재가 될리가 없지.


일단은 주 5일로 적었지만 실제론 주 3회 연재였음.

나중엔 아예 부정기 연재로 바꿨음.


근데 놀라운 건 당시 해당 카테고리 1위 글이었다는 거임.

MG 계약이라는 걸 했는데, 글이 얼마가 팔리든 카카오가 내게 3000을 박고 시작하는 계약이었음.

근데 이 MG를 한달에 3번 뺐다.

쉽게 말해 내 통장에 꽂힌 것만 한달에 6300만원이었음. 한마디로 대박이었지.

문제는 내 슬럼프는 현금으로도 고쳐지지 않았다는 거.


처음엔 비축된 것들이 팔려나가서 매출이 좋았지만, 기다무 들어간 글이 매일 연재도 아니고 주 5일 연재도 아니고 하다못해 주 3회조차 지키지 못하고 주 1~2회 부정기 연재하는데 버틸 리가 없지.

딱 한달 천하로 끝나고 매출이 추락했다.


이때의 뼈저린 경험 덕분에 배운 것이 하나 있다.

글쓰기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글을 쌀 수 없을 땐 연재를 하면 안 된다.


연재를 안하면 연금 말곤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연재는 계속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글쓰기 습관이 완비되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인데.


이제부터 내가 실제로 효과를 본 것들로만 팁을 쓸게.



1. 생활의 루틴을 만들 것.


은근히 투잡 하는 작가들 많다. 그리고 그 투잡하는 작가들, 글 대박나서 본업 접고 전업 뛰는 작가도 많은데, 걔네들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있음. 


"전업하면 더 많이, 재미있게 쓸 줄 알았는데 더 못쓰겠어요."


이유는 간단하다. 생활의 루틴이 파괴되어서 그럼.

일은 접었으니 간절함은 있는데, 그 간절함을 지탱해줄 성실함을 잃어서 조바심만 남은 상태가 되어서 그렇다.


솔직히 진짜 까놓고 말해서.

하루에 5000자 연재 한 편 쓰는데 몇 분 걸림?

난 농담 안하고 이미 플롯 다 나온 상황이면 40분이면 끝남. 퇴고 20분 포함 1시간 컷임.

그럼 과연 하루종일 노트북 켜놓고 대체 뭘 하는 걸까? 직장인들처럼 8시간 일을 하면 8편 뚝딱일 텐데.

실제로 난 8편까진 아니어도 하루 6~7편까지도 써본 적이 있음. 물론 그지랄 하다가 위의 사태가 생긴 거라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니, 그냥 물리적으로 가능만 하다는 거고.


그럼 투잡이 아니라 쓰리잡을 해도 글을 쓸 수 있겠네?

실제로 글 잘 씀. 나도 초기엔 투잡 했었고.


중요한 건 생활에 루틴이 잡혀 있어야 한다는 거임.

일어나는 거, 밥먹는 거, 어딘가로 이동하는 거 그 모든 게 자동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 인간의 뇌엔 주의 자원이라는 게 있음 (Attention Resource)

그리고 이 주의 자원은 우리가 무언가 유의미한 선택을 할때, 쉽게 말해 '주의를 기울이면' 소모됨.

한번 소모된 주의 자원은 완전한 휴식-잠-을 취하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음.

주의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는 통상적으로 절대 하지 않을 실수들을 연발하게 됨.

즉, 인간의 주의력 혹은 집중력은 절대로 무한한 존재가 아님. 커피 마시고 레드불 마신다고 회복되는 게 아니라는 것.


흥미로운 점은 주의 자원은 카테고리 화가 되어 있다는 거임.

따라서 서로 다른 카테고리에선 각각의 주의 자원만 사용함.

특히 이미 익숙해진 일엔 주의 자원은 사용하지 않음.


자, 종합하면 이렇다.


우리가 아침에 몇시에 일어날지, 일어나서 뭘 먹을지, 유투브를 켤지, 켜면 누구를 볼지 이런 거 하나하나 정할 때마다 너의 주의 자원은 무의미하게 뚝뚝 사라진다.


그냥 매일 아침 기계적으로 8시에 일어나고, 일어나면 호랑이 기운 한 사발 하고, 동네 산책 1회 후 커피 내리고, 커피 내린 후 노트북을 켜고, 노트북을 켜자마자 플롯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 이걸 기계적으로 반복하기만 하면 주의 자원 고갈은 일어나지 않음.

남은 주의 자원을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데에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임.


따라서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어머 게임 스테 녹여야 하는데, 어머 전초기지 자원 받아야 하는데 <<- 주의 자원 소모함. 물론 루틴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거의 소모가 없을 순 있지만, 일단 게임을 켜면 픽업이 새로 나오고 공지가 뜨고 아레나 랭킹이 바뀌고, 어쨌든 주의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김.


그러니, 게임을 켜서 스테/일퀘만 끝내고 글 써야지 이런 식으로 변형 루틴을 줄 순 있지만 추천할 순 없다는 거.


이 루틴을 따르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임.

은근 다작에, 작가 경력이 그렇게 긴데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거지.




2. 글이 안나올 땐, 글을 쓸 것.


뭔 개소리냐 싶지만. 설령 다 지우는 한이 있고, 단 500자만 쓰는 한이 있어도 글을 써야함.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써야함. 너무 바빠서 미쳐버릴 것 같을 때에도, 폰이라도 켜서 플롯 적어두고 생각을 해야함.


인간의 뇌는 절대 순종적이지 않음. 그리고 자기 암시에 약함.

그런 식으로 모든 일에서 글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뇌에게 주입 시키는 거.


많은 인지과학자들이 하는 말이 있음. 사람이 게으름을 느낄 때, 귀찮음을 느낄 때 그 귀찮음 한번을 참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 대체로 몇 시간이고 무리없이 한다고.


도저히 글을 못쓸 것 같을 때에 명심하자. 500자만 써보자고.

500자 쓰면 어느새 5000자 써 있음. 그날 해야 할 일 한 거.



3. 비축은 나의 영혼, 나의 불꽃, 나의 신.


조바심이 날수록 글은 무너진다. 여유가 없으면 나올 글도 안나온다. 따라서 글이 잘 나올 때 50분 뚝딱 하고 롤하러 가지 말고, 그런 날은 하느님이 점지하신 날이므로 적어도 3편은 쓴다는 마음 가짐을 갖는 게 중요함. 그렇게 벌어둔 비축, 반드시 내 목숨을 살린다.

그러다보면 나중엔 아예 기본이 하루 두 편 씩 쓰게 될 정도로 업그레이드 되는데, 월억 벌고 싶으면 이렇게 해야함.




4. 진짜, 도저히 정말로 글이 안나온다.


이땐 답이 없다. 나 같은 경우 위의, 2018년의 쓰디쓴 교훈 이후, 2019년에 해당 글이 완결된 다음 2020년 후반기까지 통으로 쉬었다.

그리고 신작을 썼는데 조바심에 쓴 거라 이런 졸작이 없더라. 그 다음으로 쓴 글은 내 작가 인생에서 가장 최악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글 접음.


걍 편집자한테도 "저 안할랍니다" 메시지 보냄.

기존작 판매 안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종종 이벤트도 넣어주고 잘 팔아는 주대. 뭐 그건 고마운데.


그렇게 글을 접고, 여행 다녔다.

내가 일본어, 중국어는 잘하는데 영어를 진짜 못해서 6개월 단기 유학도 다녀옴.

말이 유학이지 그냥 장기로 놀러간거야. 그렇게 애기들이랑 친해져서 같이 놀기도 하고, 뭔가 다시 대학 다니는 기분이라 좋더라.



그런데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 다시 글 쓰고 있다.

최근엔 하루에 꾸준히 12000자에서 15000자 가량을 쓴다.

놀라운 건 고작 4시간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이 4시간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완전히 습관화가 이뤄진 거 같아서 좋고, 담당도 반응이 긍정적임.

글은 아직 론칭 전이긴 한데, 내부 분위기도 좋기도 하고, 스스로도 느낌적인 느낌이 좋음.

대박은 하늘이 점지해줄지라도 그냥저냥 중박은 칠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보통 이런 느낌은 잘 맞더라.


원인은 아마도 여러가지일 텐데


1. 쉬면서 창작력이 충전됨

2. 그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깊이 향상

3. 외국 애기들이랑 놀면서 리프레시

4. 단순히 돈 떨어져서 조바심이 생김


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결국 최후의 수단은 글을 떠나는 것이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근데 이왕이면 최후의 수단을 발동하기 전에 글쓰기 습관을 정착하고, 열심히 쓰도록 하자.

그 습관은 우리가 바라는 대박이 터졌을 때 큰 상으로 돌아온다.

나처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터지는 대박은 대박을 가장한 쪽박이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