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장기 입원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의사가 진단서를 슥 확인하더니 이내 한 부녀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

그것을 먼저 집어든 것은 어린 소녀


휙 

허나 아무리 박식해도 어린애가 보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글들에 금방 질려버린다.


"괜찮단다 딸아."

그녀의 아빠는 기분이 좋지않아 보이는 딸을 위로하듯 머리를 지긋이 쓰다듬으며 그녀가 무참히 내던진 진단서를 집어든다.


"그럼 당분간은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그리곤 자기 친딸이 버릇 없이 버린 진단서를 잠시나마 흩어보곤 이내 자신의 서류 가방에 곱게 집어넣는다.


"네, 피를 구하게 된다면 반드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의사는 그런 격식만 갖춘 말만을 건내며 진료를 마무리 하는데.



"......"

마치 시계가 몇 번이고 같은 곳을 도는 것 처럼 몇 번이고 반복되는 상황에 소녀는 답답함과 지루함에 말 없이 질색한다.




◇◇◇



또각

사람이 텅 비어있는 병원의 복도

너무나 고요한 탓에 귀울림이 귓가를 거슬리게 하는 이 무음의 장소엔 규칙척으로 퍼지는 구두 소리가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딸아, 병원 생활은 할 만하니?"

그런 침묵 속에 몰려오는 부담감을 못이겨, 딸의 손을 붙잡고 있는 남자가 먼저 말을 꺼내지만.

"네."

영혼이 없는 빈 껍데기와도 같은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 이었다.


"밥은 잘 먹고 있고?"

"네."


"심심하진 않아?"

"네...."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한 어색함

친부가 무엇을 말하든 그저 실속 없는 답변의 반복이었다.

"그래...."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봤자 의미 없이 기분만 상한다는 걸 깨달은 부모도 어정쩡하게 대화를 마무리한다.


또각 ㅡ

그런 부자연스러운 연극 처럼 속이 불편한 화담 끝에 어느센가 도착한 병실 앞


"....."

406호
환자: 실비 에버디언

실비는 이젠 지긋해서 눈이 담는 것 조차 싫은 병실 번호와 자신의 이름을 천천히 올려다본다.


"아빠는 이만 가볼게, 필요 한거 있으면 연락하거라."

그녀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미소를 생긋 지어주며 정장의 넥타이를 바로고친다.


또각 또각


점점 멀어져만 가는 구두 소리


"으읏..."


그가 떠나간다는 사실을 깨닫게되자 실비는 곧 바로 괴로운 신음을 작게 내지르며 마음 깊이 탄식한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따분한 일생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언제가 되어야 이런 지긋지긋한 장소를 탈출 할 수 있을까.

애초에 퇴원을 하게 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하아..."


그런 걱정과 불안을 마음 속에 한대 뭉쳐, 공장의 굴뚝이 매연을 뿜어내듯 근심들을 전부 뱉어낸다.





◇◇◇



"....."

그녀의 병실은 마냥 깨긋하지만은 않았다.

곱게 정리되지 않아, 책상에 널부러지듯 산 처럼 쌓여있는 책들


나날이 먼지만 쌓여가는 TV

침대이 밑에 나지막하게 굴러다니는 음료수 캔

자기 일이 질리지도 않은지 몇 날 몇 칠이고 같은 소리만 내는 공기 청정기 등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어머니가 본다면 불쾌한 시간을 보낼 것이 뻔한 차림이었다.


"하암..."

하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오늘도 괴로울 것 같은 하루에 하품이나 하며 햇 빛이 미적지근하게 흘러들어오는 창살만 내다본다.



그녀가 여기에 머문지 어언 2달

하루하루를 모험 처럼 지내는 어린 나이에겐 너무나 영겁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


실비가 병원에 이렇게나 입원을 해야되는 이유는 그녀의 종족에서 밝혀지는데.

뱀파이어 ㅡ

흔히 뱀파이어라고 하면은 무차별적인 흡혈귀로서 인간보다 월등하고 공포적인 존재로서 기억하고 있겠지.


산기슭도 맨손으로 조각낸다는 앞도적인 괴력과 인간보다 배에 달하는 지능


필요 할 때면 타인의 피를 흡수하여 언제까지고 젊은과 건강을 유지하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불로불사의 존재!







...... 현실도 그렇게나 낭만적이면 얼마나 좋을까?

실상은 피 하나 못 구해서 빌빌거리는 눈물겨운 종족들이었다.


인간을 포함한 타종족들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영리하고 근력도 남다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장점들을 상쇄시킬만큼 단점도 뚜렷한 것이 현실의 벽이었다.


야행성

그들은 주로 밤에 활동해야 하는 종족이나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태양이 하늘에 걸려있는 낮에 활동한다.

그렇기에 그런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선 불리한 조건이라도 살아가야만 했다.


또한 영화나 애니메이션 속 처럼 그냥 피만있다면 누구든 흡혈 가능 한 것이 아닌

평범한 타종족들 처럼 혈액형이 들어맞아야지만 수혈이 가능한 결함 가득한 종족들이였다.

특히나 뱀파이어들의 혈액은 그들 사이에선 흔할지라도 타종족들의 삶 속엔 너무나 희귀한데.


"으으...."

그녀도 지루한 일상을 감당해내며 여기에 머물고 있는 이유가 바로 방금 말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Rh-A

그녀가 가진 혈액형

그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탓에 일상생활은 사실상 불가능, 이를 치료하기 위해선 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같은 혈액이 필요한데...

Rh-의 유형을 가진 사람이 세계적으로 워낙 소수이다보니, 피를 구하는 것이 여간 쉬운게 아니었다.

전체 중 단 0.5%만이 가진다는 동양권에선 더더욱.

또 그 망할 종족적인 특성 탓에 꼭 다른 종의 피로 수술을 해야만 했다.


"지루해..."

그래서 언제까지 머물러야하는지 모르는 이 곳에 입실해, 의미 없이 날만을 세고 있는 것이다.


"......"

혼잣말을 툭 내뱉으며 손으로 턱을 받쳐 밀어 올린다.


"으...."

그녀에게 있어서 이 곳은 마치 하나의 감옥

생긴 것만 그럴싸한 쇠창살이었다.

병약 탓에 외출은 불가능하며

사방엔 온통 자신을 억압하듯 숨 막히는 벽들로 가득하고

그렇다고 그 미칠듯한 불안과 자루함을 더러낼만한 것도 없었다.


TV는 맨날 같은 프로그램들만 돌려대서 한계가 명확했고

부모님은 일이 바쁘다며 사실상 방치에 가까워, 최소한만 모습을 드러내며

딱히 지낼 수 있는 다른 입실 환자도 없어 외톨이였다.


부모님의 정을 받고 한참을 밖에서 뛰어놀며 또래 아이들과 교감하고 때론 웃고 때론 울며 추억으로 산을 쌓아야 하는 그녀의 나잇대에 비하면 이보다 가혹한 처벌도 없을터였다.


"...."


하지만 막상 나간다하더라도 현실을 더욱 더 비참하고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ㅡ

"그냥 모든게 싫어...."

그녀의 바깥 생활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퇴원만을 애타게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아까 말한 것 처럼 친구들과 만나고 함께 놀며 여러 추억 쌓으면 되는데 뭐가 문제인거냐?

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 그렇다.

실비는 이 병동을 빠져나갈 날만을 고대하고 있지만.

하자만 나간다 하더라도 사회에 섞일려고 하는 순간, 그 방식만 다를 뿐... 그녀가 질색하는건 아마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야... 그녀는 이렇다 할 만한 친구가 없으니까.



그녀는 줄곧 쭉 혼자였다.

물론 사교성이 없어서 무리와 어울리지 못 한다든가 집안의 형편이 어려워, 못난 아이들의 따돌림을 당한다 같은 불운한 이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남에게 관용적이고 부잣집 집안이라 모습을 드러낸다면 주변에서 벌떼 처럼 몰려들었다.

특히 그녀의 집안의 이유가 돋보였는데.

실비의 집안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나가는 대기업

세계적으로도 나름 지분이 있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유명 인사였는데.


그러다보니 반 아이들의 접근 방식은 순수함보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있었다.

붙어다니면 콩곡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지나칠 정도로 그녀에게 친근덕거린다.


사실은 뒤에서 여러 헌담을 주고 받으면서도....


실비는 그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고독을 자처했던 것 이다.

거짓들로만, 물질들로만 이루어진 없느니보다도 못한 관계로 얽힌 바엔 차라리 족쇄를 끊듯 모두를 뿌리치고 멀리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외톨이 신세

더군다나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모님도 사실상 정을 때버린 상태여서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안락해야 할 그녀의 집은 쓸쓸한 찬 공기만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는지 안 흐르는지, 벽에 걸인 시곗 바늘이 돌아가는지 조차 의문인 지루함의 공간

그것이 아니라면 마주보기도 역한 욕심들이 주위에 꿈틀리거리는 환경 속에 무관심으로 방치되는 불쾌한 일상


뭐... 어느것이든 실비에겐 그리 달가운 삶은 아니겠지만은....

"언제쯤 집에가려나..."

그래도 그나마의 자유도와 희망이 보장되는 사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보였다.

"...."


하지만 그런 어둑한 일상에 지치던 시기에


드르륵 ㅡ

"응...?"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어어?"

"내 방이 아니었네?"

실비는 처음 보는 한 남자 아이와 만나게 되었다.




◇◇◇




드르륵 ㅡ

"응...?"

처음 병실의 문이 열렸을 때 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그야 아버지는 방금 회사로 돌아가셨고 


바늘 끝에 달린 영양제를 갈아야 할 때라 하기엔 아직 반 이상이 남아, 간호사는 아닐테고.


딱히 자신을 위해 병문안이나 찾아올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럼 누구일까?


그런 예상치 못한 의문에 실비는 왠지모르게 튀는 심장을 뒤로하며 서서히 열리는 병실 문에 시선을 집중한다.

그녀가 지금까지 이 곳에 있으며 이렇게나 무언가에 열중한 적이 있었는가?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어어?"

하지만...

그런 기대에 보기 좋게 배반당하듯

'누구..?'

긴장감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인물의 등장에 어떤 의미로든 어안이 벙벙해 진다.


살아생전 만나본적 없는 남자 아이

그녀 처럼 작은 사이즈의 환자복들 입고 링거대를 질질끌고 있는 소년


"내 방이 아니었네?"


그리고 마치 헥헥거리는 강아지 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말투로 뒷 목을 긁적이고 있었다.


"....?"

실비는 소년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지만


"뭐?"

이내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 어렴풋이 눈치채게 되어 당황은 커녕 어이를 상실 해 버리고 만다.

보나마나 병실을 헷갈려서 잘 못 찾아온 흔하디 흔한 케이스

이런 애가 병동에 언제부터 있었는진 모르겠으나 대강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 물 보듯 뻔 했다.


"너 누구야?"

"왜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와?"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실비는 목소리에 불쾌함을 실어 말하기 시작한다.



"아.. 그... 미안해!"



파도 처럼 몰아붙이는 그녀의 날선 말투에 남자 아이는 무게추가 달린 것 마녕 급하게 고개를 푹 떨구며 사과한다.


"내 방인 줄 알고... 몰랐어!!"

그나마 진심으로 사죄하는건지 그의 순진한 목소리엔 다급함과 초조함이 서려있었다.


"하아..."



실비는 그런 그의 간절함을 받고 마치 목이 꺾인 인형 처럼 한줌의 숨결과 함께 고개를 떨구더니

"알았어."


어쩔 수 없다는 것 마냥 마지 못해 용서한 기색을 보인다.


애초에 자기 멋대로 기대하여 크게 실망한 것도 있겠지만...

굳이 남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이유도 없었기에 금방 흥분을 가라 앉힌다.



"그래?! 고마워!!"


그러자 소년은 지나칠 정도로 환하게 반응을 하는데...

"읏..."

정적을 깨는 산만함에 실비는 정색한다.

이미 고요함에 익숙해진 자신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성격

"알았으니까, 빨리 돌아가버려."


그런 실비는 필요 이상의 열정에 남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돌려보내려는데.


"그런데, 이름이 뭐야?!"

"뭐?"

그는 다짜고짜 실비에게 물음을 던져왔다.

"나는 한울! 박한울이야!"


"어제 입원했는데 또래가 없어 보여서 많이 심심하더라고."

"그런데 잘 됐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세상에 이보다 환한 꽃이 있을까, 의문이 들정도로 밝게 웃는 미소와

호감의 표시이자 우정의 시작점을 찍듯 자신에게 손을 내뻗어 오는 한울이



"허헛...?!"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한울의 행동에 기겁하더니 ㅡ


착 ㅡ!

그의 손을 매정하게 쳐내버린다.

"윽..! 아앗..!"

순간적인 돌발 행동에 한울이는 당황하면서도 인간보다 월등한 완력에 괴로워하은데.

"당장 나가!"

하지만 그런 불쌍한 모습에 미안해하긴 커녕 되리어 화를 내며 그를 부추긴다.

"아니.. 왜 그래....?"


저릿한 손을 부여잡으면서도 실비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만.


"나가라고했지?!!"

그녀는 매섭고 차가운 눈보라 처럼 그에게 고함치며 결국 억지로 등을 떠밀어 병실을 내보낸다.

"잠깐 ㅡ!"

자신의 아픔은 둘 째 치고 너무나 매정한 문적박대에 한울이는 다급하게 이유라도 듣고 싶었지만


쿵!

실비는 상종조차 싫었는지 있는 힘껏 문을 닫아버리며 강제로 인연을 끊어버린다.




"...."

실비는 다시금 조용해진 자신의 자리를 멍 하니 봐라보더니

"으읏!"

이내 분에 차올라 못 살겠는지 이를 아득가득 갈며 주먹을 꽉 쥐어버린다.

손톱이 맨살을 뚫고 피가 흘러나올 기세로 힘을 주는데.

"기분 나빠..."

그럼에도 좋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 자국이 남을 때 까지 진정하지 못한다.


실비에게 있어 트라우마와도 같은 장면 ㅡ





친하게 지내자!




너네 집 잘 산다며? 부럽다!






우와... 정말 돈 많나보네...






혹시 나도 하나만 선물 해 줄 수 있어?!




그렇다면 나도!









왜 나는 안 해줘?











나도 안 사주면 안 놀아 줄 거야!














우리랑 더 놀고 싶으면 더 큰걸 가져와야 될걸?










......










"우웩 ㅡ!"

단편적이어도 너무나도 끔찍한 회상에 헛 구역질을 하며 바닥에 주저 앉는다.



"으으..."

미적지근한 실온임에도 마치 얼음굴에 고립된 것 마냥 몸을 떨고 양팔로 자신을 감싼안는다.


"똑같아..."

"그 녀석들과 다를거 없이 ㅡ"



동공이 흔들리고 작게 축소된다.

이내 머리를 움켜잡으며 제발 떨쳐내고 싶은 기억들에 이리저리 흔들게 된다.



"아앗..!"


그녀에게 있어 이젠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들

그 누구도 어루만져 줄 수 없는 고통이 내면 깊히 뿌리 잡혀 있었다.






◇◇◇






하지만 그런 실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ㅡ


"안녕! 어제는 미안했어!!"

그 다음날, 그녀의 병실에 또 찾아온 한울이는 마치 껌딱지가 된 것 처럼 그녀에게 달라 붙었다.


"나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그런건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헤실헤실 웃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아, 그리고 이거! 내가 매점에서 산 과자인데. 괜찮다면 너 먹어!"

꼬깃꼬깃한 지폐로 바꿔온 과자를 그녀에게 선물하는 등 자신의 행동에 사과도 하며

"혹시 좋아하는게 뭐야?! 라면 좋아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등, 따분한 시간을 함께 이겨내고자 실비에게 웃음기를 지었지만



"나한테서 신경 꺼."


"아...?"

그녀는 그를 매몰차게 대한다.


마치 같은 하늘 아래에 둘 수 없는 원수 마냥

"난 혼자가 좋아."

한울이를 노골적으로 피하고

"흥.. 이런 조공 바치듯 주는 오물 따위 ㅡ"

그에게 받은 음식을 쓰리기통에 던지며


한울이의 호의를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틀어져버린 사회성

그녀에게 친구가 생기기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먼 곳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안녕!"

"읏.. 왜 또 온거야!"


무슨 근성인지 아무리 털어내도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실비에게 미소 짓는다.



"저리가!"

"우... 왜~ 같이 놀자...!"

오늘은 다른 과자 사왔어!"


"싫다니까!"


하지만 실비도 질리지 않고 매번 그를 매정하게 걷어차며 짜증 섞인 하루에 매번 탄식한다.


하지만...

"오늘도 안녕!!"


"...."

열 번 찍어 안 넘아가는 나무 없다던가?


"하아... 그래....."

언제까지고 한결 같을 시끌함은

"안녕이다....."

점점 애증으로 이루어진 화목함이 서려가기 시작했다.


"흥..."


그렇다고 마냥 좋은 분위기만은 아니었는데.


실비가 한울의 말을 받아준 것은 어디까지나 귀찮음에서 비롯된 단념


그를 눈엣 가시 처럼 생각하는건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밖에서 뛰어놀고 싶다~"

"그러시든가."


싱거운 대화라도 주고 받다보면 멈춰 있는 시계가 그나마 흐르는 것이 눈에 보여, 마냥 최악으로 여기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ㅡ



"하아.. 하아...."



'그 일'을 기점으로

"으..아.. 으으.."

그녀의 관념을 손 바닥 뒤집듯 반전되고 만다.


"으읏..."

때는 노을 진 저녁

허나 하늘의 아름다움에 반해, 입원실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실비 괜찮니?!"


병의 영향일까? 실지는 원인 불명의 고열이 올라, 눈을 질끈 감 사경을 헤매었다.

"엄마가 왔잖니..!! 이제 괜찮아!"


너무나 다급한 상황에 두 부모 모두가 그녀의 병실에 찾아왔지만


"아아....."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의사의 말이 달라 질 일은 없었다.



"선생님?! 피가 아직도 없나요?! 애가 이런데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녀의 부모들은 딸의 위기에 이성을 잃기 직전 까지 흥분하게 되었지만.


"죄송합니다, 하지만 워낙 희귀한 혈액이다보니까..!"


실랑이를 부린다고 없던 피가 갑자기 생기진 않았다.


"으.. 아..."

안 그래도 생사를 넘나드는 고열에 실비는 가파른 숨을 계속해서 내뱉는데



"이러다 우리 딸이 큰 일이라도 난다면..!"

"그렇게 두진 않겠습니다!"


그런와중에도 부모와 병원측은 계속해서 정신 사나운 대화를 주고 받아 그녀에게 있어선 생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시끄.. 러.. 워..."


"...?!"



그녀의 쥐어짜낸 듯한 한 마디에 순식간에 침묵으로 뒤덮어진 입원실 안



"괴로워... 시끄러워...."

실비가 같은 말만을 번복하자


"....."

"........"


두 부모와 의사는 마치 홀린 것 마냥 방 밖으로 나가주게 된다.

드르륵....

조심스럽게 닫히는 병실에 문

타다다닥 ㅡ

그리곤 여러 발걸음 소리가 겹쳐 멀어지는 것이 문 넘어로 희미하게 들려왔다.


"......"


혼자 남겨지게 되자 곧 바로 정적이 찾아왔다.



허나 그것도 잠시


드륵 ㅡ!


아까와 비교하면 병실문이 꽤나 거칠게 열려버리는데.


"으.. 응...?"

의사가 돌아온 것 일까?


아니었다.


"실비...?"

매일매일 ㅡ

부모보다도 얼굴을 자주 비춘 또래 소년

"괜찮아?!"


박한울


"상태가 안 좋아보여...!!"

아무이 순진하고 눈치가 없는 그여도 지금의 실비를 보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되었다.

"괜찮아?!"

꼬옥....

걱정된 나머지 그녀의 손을 부여잡아주는데.

'아아...?'

피가 이어진 부모조차도 잡아주진 못한 손길에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껴본다.


'시원해...'

식은 땀 마저 삐질 흐르는 상태에 손 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당장이라도 실신 할 것 같은 그녀의 고통에 그나마의 위안이 되어주었다.


"한울..이... 손... 시원해...."


"무슨 일이야?! 많이 아파?!!"

오늘따라 달갑게 느껴지는 그의 말

말투 자체는 다급했지만 실비에게는 그 어느때보다도 상냥하게 느껴졌었다.

"나... 병..."

"피... 피가 필요.. 해..."


말 할 힘마저 미약해, 최소한의 단어들만 내뱉어버린다.

"...!!"

그러자 한울이는 생각이 번뜩인 것 처럼 눈을 크게 뜨더니.

"실비, 잠시만...!!"

"어.. 어..?"

갑자기 그녀의 손을 놓아버리곤 어디론가 급히 달려나가버린다.



"잠깐 ㅡ"

그녀는 아쉬움에 손을 다시 내뻗었지만

"금방 올게!! 조금만 참아!!"

한울이는 무언가에 쫒기듯 방 밖으로 뛰쳐나가버린다.

"아...."

그것이 실비의 마지막 기억 ㅡ


"......."


체력의 한계에 달한 그녀는 심해로 끌려내려가듯 의식이 멀어지고 만다.








◇◇◇





"......"

그녀가 다시 눈을 떳을 땐 다행히도 저승은 아니었다.


"으으..."


여러 침대가 눈에 들어오고, 시야 가장자리에는 있는 링거대엔 가득 차 있는 약물 주머니가 걸려있었다.


"일어나셨나요?"

그리고 그녀의 의식을 확인한 간호사가 조심스레 말을 건내온다.

"여긴..."


"응급실이에요, 응급 수술 후에 여기로 옮겨진게 되었습니다."


"네...?"

그녀의 머릿 속에 멤도는 한 단어 ㅡ

수술

지금껏 혈액을 구할 수 없어서 지금까지 몰렸었는데.

눈을 감았다 뜨자 필름이 끊긴 것 처럼 너무나 다른 상황에 당황하게 된다.

"정말인가요?! 하지만 피가 없다고..."

도저히 가늠 할 수 없는 과정에 실비는 덮고 있는 이불을 꼭 쥐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 그건 말이죠."


"입실 중인 다른 환자 중에 기적적이게도 같은 혈액형인 분이 계셨는데 자진으로 헌혈을 희망해서 말이죠."

"아마 당신과 또래 정도의 어린 남자 아이였어요."


"...!!"


그 순간 지금까지 멈춰있었던 실비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듣기론 어찌나 달라붙었다던지.... 친구가 위험하다며 얼마를 사용해도 괜찮으니 자기 피를 뽑아달라고 때를 썻다더래요?"


휙 ㅡ

간호사의 말에 마침표가 찍히자 실비는 석궁에서 화살이 발사되는 것 처럼 뛰쳐나간다.


"잠깐 환자분?!"

다급한 마음에 링거를 억지로 뿌리치고 그것에서 느껴져오는 고통과 쓰라림을 무시한체 전력으로 뛰어나간다.


실비가 향한 곳은 오직 한 장소

그녀가 머물었던 병실과 그리 멀지 않는 곳


몇 날 몇 칠이고 자신에게 찾아와준 소년을 향하여 아낌 없이 힘을 들이 붓는다.


드륵 ㅡ

탁!!


난폭하게 열어 젖히자, 큰 소음과 함께 덜컥거리는 병실 문


"어어... 실비?"


문을 열리자 보고 싶었던 얼굴이 익숙한 순수함을 비추며 자신에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한울아... 너 팔..."

팔뚝 아랫 부위에 붙혀진 작은 솜

전에는 없었던 채혈의 흔적


"한울.. 한울아...!"

퍼즐이 맞춰지듯 짜릿한 신호가 뇌리를 스치자 실비는 눈가에 물방울을 글썽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실비, 몸은 괜찮아? 많이 아프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타인을 걱정하고 위로하려는 그의 태도를 보고 


"한울... ㅡ"

너무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의 진심을 느낀 실비는 결국 뺨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왜 갑자기 울어?! 혹시 아파?!!"


그녀의 본심을 알일은 없는 한울이는 그저 평소 처럼 천진난만함이 곁들여진 모습을 보이지만


"미안해...!!"

그런 감미로운 모습에 빠져들 여유도 없이 곧 바로 지금까지의 매정함에 땅이 꺼지랴, 깊게 고개 숙여 사죄한다.


"무슨 소리야? 너가 갑자기 왜 미안해?"

"그야...!"

넘쳐나오는 슬픔과 후회에 말문이 막혀들지만


"히끗... 나는 너를..."

어떻게든 단어를 내뱉으며 그에게 진심을 전하려 한다.

"너를 진심으로 미워했고... 또 매섭게 굴었는데...."


"하지만 한울이는 되리어 나를 위해 매일 웃어주고 피를... 히끗...!"


도저리 가당 할 수 없는 서글픔이 그녀를 무릎 꿇게 한다.

마치 광신도가 십자가 앞에 죄에 대한 기도를 하듯 필사적이고 간절하게 용서를 빌었다.


"미안.. 정말 미안해...!"

"이런 너를 몰라줘서...!!"

절이라도 할 기세로 자신의 잘 못을 뉘우쳤지만.


"에이 뭐야~"

"괜찮아!"


순수함과 배려심

그리고 애정

실비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구원 처럼 내려온다.


"그야 나는 너를 친구라 생각했으니까! 친구끼리 이정도가지고 뭘!"

"헤헷!"

평소처럼 환하게 미소짓는 그의 얼굴이

실비에겐 밤 하늘의 별 보다도 밝게 빛나였다.

"아아..."

신성함에 경외하듯 넋 놓은 표정으로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본다.


"그럼 말 나온김에!"

제일 처음... 그녀에게 있어선 최악이었던 만남이었을 그 때의 한 장면

"지금까진 애매했으니까 다시 말할게 ㅡ"

"우리 친하게 지내자!"

자신의 손을 내밀며 웃어주는 그 얼굴

"응...!"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의 손을 꼭 붙잡는다.


두근 두근 두근 ㅡ


귓가를 울릴정도로 튀어버리는 실비의 심장

멈출 수 없는 고양감이 그녀를 처음으로 웃게 만든다.

"지금이라도.. 한울이만 괜찮다면....!"

터질 것만 같은 두근거림을 억누르고 온 몸으로 느끼며 그에게 외친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우연과 우연이 엮이고 이어져, 이루어진 기적적인 인연


그것이 박한울과 실비 에버디언의 첫 만남이었다.






◇◇◇





드륵 ㅡ


그와의 만남이 끝나고 자신의 병실로 돌아온 실비는

덜컥!

방에 도착하자마자 대뜸 구석으로 뛰어든다.


그녀의 목표는 바로 쓰레기통 ㅡ


"어딨지..?"

마치 배고픈 거지가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는 것 처럼

있는 힘껏 팔을 내뻗어 쓰레기 뭉치를 뒤적거린다.


"헛..!"

"찾았다!"

쓰레기통을 엎다싶이 휘적거린 끝에 그녀는 무언가를 집어 꺼내드는데.

"한울이가 준 과자!"


바로... 과거, 자신이 무참히 내던졌던 그의 선물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뒤처리도 귀찮아 그 때 그 상태 그대로 버려서 그런지 겉에 먼지가 뭍어있는 것만 빼면 멀쩡 해 보였다.

뜨득!

힘차게 봉지를 뜯은 실비는

"으음... 한울이가 나를 위해 준 선물...♡"

그 음식을 음미하며 하나하나 정성스레 혀를 굴려 먹기 시작한다.


"한울아.. 한울이..."

"한울이가 준 애정...♡ 사랑...♡"

"좋아해... 미안해... 너무너무 사랑해♡"
자신이 그에게서 느낀 모든 감정들이 혼합되며 본능으로 일그러진 말들이 흘러나온다.


"이제부터라도 잘 할게, 나를 봐줘, 나를 계속 좋아해줘...♡"

결핍과 고독으로 뒤틀린 애정에 섬뜩함 마저 감돌게 된다.


"으음.. 헤헤..."

먹는 내내 그와 잡았던 손을 꼼지락거리고 그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망상으로 거듭된 열기가 그녀의 뺨을 붉게 물들이게 한다.

"...."

부스러기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탈탈 털어먹은 실비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한울아."

침대 한 곳을 집요하기 노려본다.


"으음..."

바로 전에 딱 한번, 한울이가 앉았던 자리.

"한울이가 있었던 자리..."

그곳을 머리맡에 두고 누워, 그대로 침대에 코를 박고 호흡한다.

"스읍..."

마치 개가 냄새를 추척하는 것 마냥 크게 숨을 들여마시며 아직까지도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구석구석 수색한다.

"옅어..."

이내 나오는건 아쉬운 한 마디.

"너무 옅어..."

"한울이의 냄새...."

"아쉬워....."


사라질듯 말듯한 그의 채취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 마냥 침울해지고

"이럴 줄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머물게 할걸..."

매정했던 과거에 다시 한번 후회하고 자신을 혐오한다.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이내 연기 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이제부터라도 잔뜩 남기면 되니까 ㅡ"


사랑스러운 그의 얼굴을 몇 번고이고 떠올리며


"헤헷...♡"


서럽게 대했던 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온갖 생각과 망상으로 머릿 속에 꽃밭을 만든다.








연재 중인 소설이 있어서 그거를 우선적으로 쓸 생각이라

다음편을 구상을 좀 하긴 했지만 쓸지는 몰?루
일단 단편으로 올리고 쓰게 된다면 연재탭으로 바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