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죽여."


"그럴 순 없지!"


나는 패배했다.


'세상의 악을 무찌르고, 빛을 가져오는' 전설의 검 '라이트 브링어' 는 빛을 잃은지 오래다.


허나, 고작 검 한자루가 꺾였다고 포기 하지 않았다.


죽은 채로, 형체 조차 알아 볼 수 없는 동료들의 무기를 집어서라도 나는 악에게 맞서고 또 맞섰다.



하지만...


내가 맞선 악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였다.


눈으로 바라봤을 때에는 얕은 줄 알았으나, 직접 들어가면 발이 닿이지 않는


깊고 깊은 호수와 같은 존재였으니까.



"저기? 이제 포기하면 안될까?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악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미소를 지은 채로.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닥쳐."


나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피가 섞인 침을 내 뱉었다.


"헤헤..."


피가 섞인 침을 맞았음에도, 그녀는 그것을 굴욕이라 느끼지 않은 것 같다.


최소한 저 황홀함에 가득찬 표정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으니까.


"츄릅...맛있어..."


새 하얀 손가락으로 한 방울이라도 흘릴새라, 나의 침을 훔쳐낸 그녀.


이윽고,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손가락을 핥아댔다.


"흐으음~"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너무 맛있어. 당신의 채액. 그리고 당신의 피. 그 어떠한 진수성찬보다 난 이게 더 맛있어."


"미친년..."


숨을 내쉬고 자리에 일어났다.


더 이상 내 육체는 힘을 낼 수 없지만


내 정신


내 영혼


내면의 모든 것들이 나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최소한 저 가증스러운 년을 죽이지 못하더라도, 생체기 정도는 내줘야한다.


...나의 뒤편에서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고깃덩이가 된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일어나지마! 당신 그러다가 죽을 수 있다니까?"


"죽음을 두려워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저 악마의 얼굴을 보라.


한껏 나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내면에는 역겨운 미소가 보인다.


'어디 하고 싶은대로 해봐.'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으니까.'


'마음껏...당신 마음껏...'


그녀는 그 어떠한 입벙긋도 내지 않았지만, 내 가슴에 확실히 들렸다.


"후우...! 하아아아앗!"


있는 힘 껏 고함을 지른다.


있는 힘 껏 검을 치켜든다.


그리고, 모든 힘을 다 짜내어 저 년의 심장을 향해 검을 향한다.


"하아아~"


피가 흐른다.


저 년의 심장에서 피가 흐른다.


나의 검이 박힌 저 가증스러운 년의 심장에서 폭포같은 피가 흐른다.


"흐아아~ 아파~"


...그런데


저 년은 왜 이렇게 여유로울까?


자신의 심장에서 미칠듯이 피가 튀어나오는데도


왜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을까?


왜 나를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할까?


"하지만~ 육체가 아픈 건...아니야."


콱ㅡ!


그녀는 검신을 붙잡았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흐으음~ 더 깊이 찔러도 되는데...혹시 힘이 다 떨어졌어?"


그리고는 천천히 검을 빼어냈다.


날카로운 검날에 배어 손에 피가 철철흐름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빼내었다.


"끄으으윽!"


미약한 힘을 다 짜내어, 빼내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무의미했다.


아무리 개미가 온 몸의 힘을 다 짜내어낸다 할지라도


세 살배기 어린 소년의 손가락에 찌부가 되듯


나의 검은 무기력하게 뽑혀져 나갔다.


"후우우~ 그래도 당신 뜻대로 생채기는 냈네? 이제 만족해?"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전혀 상처를 수복 할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수복 할 필요도 없겠지.


고작, 저 정도 피를 흐른다고 죽을 존재가 아니니까.


"자기야. 나 당신이 너무나도 좋아. 너무나도 좋아서 매일 꼭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어."


"...넌 내 아내가 아냐."


"그렇지 않은걸? 난 당신의 아내가 맞아. 당신과 함께 한 기억을 가지고, 당신과 함께 한 추억을 가지고있으니까."


"닥쳐! 내 아내의 육신을 가지고 행세따위 집어치워!!!"


"행세가...아니야."


순간 적막이 흐른다.


방금까지 웃음을 잃지않던 그녀가


한 순간에 웃음을 잃었다.



존재 부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존재를 부정당했으니까.


그녀는 더 이상 웃을 수 없겠지.


"...4월 12일. 우리가 처음 카페에서 만난 날. 그 때 나는 콜드브루를, 당신은 아메리카노를 먹었어. 그런데, 당신이 똑같이 생겨 햇갈린 바람에 내가 아메리카노를, 당신이 콜드브루를 마셨지."


"그리고, 그 날 저녁으로 우린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어. 크림 리조또와 로제 파스타를 주문했어. 당신이 지나가는 커플을 보고 부러워하는 시선을 느꼈어."


"5월 16일. 당신이 나에게 고백한 날. 당신은 마족어로 나에게 '평생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했어. 사실, 그때 일부로 못 알아 들은 척, 당신에게 몇번씩이고 반복하게 했어. 너무 좋았거든. 수 십번을 들어도 지겹지 않았거든."


"5월 23일. 우리의 첫날 밤. 그 때 당신은 너무 긴장해버린 나머지 벌벌 떨었어. 하지만, 너무 기분 좋았어. 당신의 사랑을 흠뻑 느꼈으니까. 그리고, 당신도 나의 사랑을 흠뻑 느꼈지."


"10월 21일. 우리가 결혼한 날.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결코 잊지 못할 날."


나는 몸을 떨었다.


하나도 틀린게 없었으니까.


"이제 충분해? 아니면..."


"흐읍!!!"


그녀는 나의 얼굴을 붙잡고 강제로 키스를 했다.


나의 혀를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또 유린했다.


떨려오는 그녀의 몸.


불규칙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호흡.


그녀의 모든 것이 그녀의 혀를 통해 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후아! 기분 좋아?"


"으으...으..."


"말도 안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아? 저번 첫 키스 때 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않아?"


그녀는 홍조를 띄며, 서서히 손을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을 더듬던 그녀의 손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 배를 더듬더니 그리고 더 아래로...


"흐으읏!"


"하아~ 딱딱해졌어~"


혹시라도 자신의 손길을 거부할 까봐, 그녀는 나의 몸을 꽉 붙잡았다.


난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뿌옇게 되고, 온 몸에 힘이 완전히 풀렸다.


더 이상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역시 날 사랑하는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딱딱해 질리가 없잖아~"


"그...그만..."


"그만 두지않아. 아! 그래..."


그녀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나를 부러지라 꼭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나와 당신을 싸우게 만든 왕국의 모든 것들을 죽여버리자."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싹 다 죽여버리자."


"그리고 우린 새로운 시대의 아담과 이브가 되는거야."


"사랑해. 자기야."


나는 서서히 눈이 감겼다.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의 숨결에 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