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 '헤어져요!' '갈라서요!' '때려쳐요!' 입에 달고 살던 아코...


늘 그렇듯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헤어져요!' 외치고 팔짱 낀 다음


"미안해 아코 사랑해 앞으로 잘할게 화풀어"


이 말 해주길 기다렸는데




선생이 갑자기 이젠 진짜 질렸다는듯이 한숨 내쉬더니


싸늘한 표정 짓고 뒤돌아서버림...




그렇게 헤어진 날 저녁 


방에 돌아와서


분홍잠옷입고 침대에 엎드려서 폰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미안하다고 곧 사과전화를 하겠죠?? 앞으로 1시간 안에 전화하면 봐줄게요'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1시간 지나도 안오고


2시간 지나도 안오고


결국 새벽2시까지 '새벽 3시 30분까지 사과하면 아직 세이프니까.' 하다가 뜬눈으로 지새워버림...




그리고 하필 다음날 당번이라서


샬레 집무실에 찾아가야하는데




어제 싸운거때문에 신경쓰여서 쉽게 집무실에 들어가질 못함...




문 앞에서 한참이나 쭈뼛거리면서


슬쩍 선생 책상 엿보면서 분위기를 살핌...




의외로 별로 화 안난거 같아서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옆에 다리꼬고 탁 앉음...




그런데 평소에는 그렇게 앉으면 아코!! 오늘도 예쁘구나!! 하고 인사를 먼저 해주는게 일상이었는데


아코가 왔는데도 왔어? 한마디만 하고 자기일만함...




일하면서도 평소에는 중간중간에 농담이나 스몰토크를 걸어줬는데


오늘은 딱 선긋고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만 함...




점심도 늘 선생이 주도해서 같이 먹었는데 말도 없이 먼저 재킷 걸치고 나가버림...


사귀는 연인을 대하는게 아니라 딱 일반적인 학생을 대하는 거 같은 태도였음...




그렇게 뭔가 평소와는 다르고 불편하게 하루가 끝나고


선생은 인사도 없이 먼저 퇴근해버림...




늘 그렇듯이 선생이랑 같이 차타고 퇴근할줄알고 화장실 가서 화장 고치고 왔던 아코는




'뭐야, 내가 이 밤중에 혼자 집에 가다가 괴한한테 덮쳐져서 죽어도 괜찮다는 거에요??'




하면서 귀가함...




그리고 텅 빈 버스 맨 뒤에 앉아서 유리창에 어렴풋이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봄...


어쩐지 엄청 울거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음...




원래 당번이 있는 날은 전날밤부터 설레고 하루종일 즐거운 날이었는데


오늘은 너무 최악이었음...




선생이 말도 안 걸어주고 칭찬도 안 해주고 머리도 안 쓰다듬어주고 밥도 같이 안 먹어주고 바래다주지도 않아서...




라고 이유를 되짚던 아코는


지금까지 그 모든걸 선생이 일방적으로 해주기만 했을뿐 자기는 아무것도 해준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됨...


자기는 그 모든 배려를 받으면서 건방진 말을 내뱉을 뿐이었음...


그렇게 반추하다가 자기가 어제 마지막에 '헤어져요' 라고 말했었다는걸 떠올리고




처음으로 '헤어진다'라는 말의 무게를 느끼게 됨...


그건 앞으로 오늘 같은 날이 계속 반복된다는 걸 뜻하는 거였음...




'설마 진짜로 헤어진 건가?? 이렇게?'


'하지만 선생님이 먼저 고백했는데... 이렇게 쉽게? 정말로?'




불현듯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몰려옴...


넋이 나간 얼굴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를 열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킴...




의외로 술찐따라서 금세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취해서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림...




핸드폰 배경화면도 같이 찍은 투샷이었음...


화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선생을 보고 갑자기 코끝이 찡해져서


쿨쩍 쿨쩍 패애앵 하고 코를 풀던 아코는


눈시울이 빨개져서 어깨를 파르르 떨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함...




'미안해요... 앞으로는 다시는 헤어지자는 말 안 할게요...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 나쁜놈아...'




하면서 막 우는데


갑자기 뒤에서 '정말?'이라는 말이 들림...




선생이 뒤에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고있었음...


사실 아코가 두고간 게 있어서 전달해주러 찾아왔는데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안 나와서 문열고 들어온다음


아코가 혼잣말한걸 다 들은거였음...




평소라면 '소녀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다니 최악' 같은 소리를 했겠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코는 그냥 바로 선생 품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면서 잘못했다고 망가진 라디오처럼 말함...




그리고 선생은 그런 아코를 공주님안기로 들어올려서 침대에 내려놓고


화해 야스를 시작함...




아코도 환하게 웃으면서 처음으로 자기 쪽에서 먼저 다리를 벌리면서 애타게 요구함...




그런데 이상함...


쾌감이 하나도 없는거임...




이상하다는걸 깨달은 순간 잠에서 깨고


탁자 위에 널브러진 맥주캔과 엎드려 자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하게됨...


선생이 와서 갑자기 끌어안아준건 다 꿈이었던거임...




그리고 다음달 유우카랑 선생이 사귀기시작한다는 말을 들음...




같이 영화를 보러 갔을때 유우카가




'기싸움을 하려고 헤어진다거나, 갈라서자거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최악이에요'



라고 말해서 반했다고 



선생이 머리 긁적이면서 말하는걸 문뒤에서 엿듣고



죽은 눈이 되어버리는거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