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 1인칭 관찰자 시점이며, 잔인한 장면이 다수 포함됨. 그리고 존나김.


저는 종자입니다.

평민 출신으로서, 기사가 되려면 차근차근 종자에서 하급 기사로 올라가야 하기에, 종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사가 되어야 돈도 많이 벌고, 마을에서 베를 짜며 기다리고 있는 어여쁜 제 약혼녀에게도 당당히 청혼할 수 있게 되겠지요.


제가 모시게 된 기사님은 귀족 여성 분이셨습니다. 여기사를 남자 종자가 모시는 일은 별로 흔하지 않았지만, 이 분의 경우 가문이 워낙 더러운 일을 많이 했다고 하여, 여성 시녀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평민에게 그... 네, 속된 말로 짬처리가 된 것이지요.


사실, 저도 많이 쫄았습니다. 심문 및 고문으로 정보를 캐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가문이라니. 하지만, 제 주인님은 차가워 보이긴 해도 의외로 불합리한 명령은 내리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기사 학부에서는 수 많은 귀족 남성분과 여성분이 있었고, 다들 자신의 외모와 가문과 검술을 뽐내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사람이 딱 둘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 주인이셨습니다. 가문의 악명이 워낙 커서, 학부 내의 최고의 검술과 외모를 지니고도 외따로 떨어져 계셨죠.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저처럼 평민에서 빠르게 단계를 밟아 올라간 분이셨습니다. 저보다 어리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저보다 높은 지위에 있게 된 분이셨습니다. 가난해서 종자조차 없이, 자기가 직접 갑옷을 닦고 검을 갈아내면서도, 남들만큼의 성취를 보이는 분이셨지요.



제 주인님은 그 분을 짝사랑 하는 듯 했습니다. 둘 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엔 끼지 않았고, 검술이 뛰어났으며, 중성적인 듯 살짝 여성적인 듯 생긴 그 평민기사 분과 제 주인 기사님의 외모 또한 뛰어났거든요.


거기다가, 그 평민기사 분은 기특하게도, 임무 수행비를 아껴서 집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곤 했다고 합니다. 저라면 당장 맥주 한 잔에 소시지 두 개를 먹을 텐데도, 그 돈을 한푼한푼 아껴서 집에 보냈다나요. 그 기사님 얘기를 할 때만이 유일하게 제 주인님의 얼굴에 빛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평민기사 님은 다른 하급 귀족 출신의 기사님과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평민이라서 그런지, 너무 고위 귀족과는 어차피 맺어질 수 없다고 여겨서였을까요, 아니면, 제 주인님의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분이라서 그랬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터질 기미를 보았지요.


저는 주인님의 검을 갈 숫돌이 다 닳아빠져서, 새 숫돌을 사려고 시장에 나가려던 길이었습니다. 그 김에, 우울해하는 주인님의 기분을 살려 보려고 주인님께 제의를 했습니다.


"기사님, 저, 숫돌을 사려고 합니다만..."


"지갑이라면 이미 네게 맡겼지 않느냐."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공허한 눈을 지닌 주인님이 너무 측은해 보여서, 저는 다시 몰아붙였습니다.


"그... 제가 받은 월급으로 제 약혼녀에게 반지도 하나 사 주고 싶어서 그런데, 도통 제 먹통인 눈으로는 어떤 것이 여인에게 어여쁠 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


"실례했습니다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니, 같이 가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는 안 되었던 것이었죠.



마을은 굉장히 활기찼습니다.

누구라도 걸리면 베어버릴 듯 한 표정을 지닌 제 주인님만 없었다면 춤이라도 추면서 돌아다녀도 상관 없을 듯 했습니다.


반지는 좋은 것을 골랐습니다. 보석 대신 흑요석이 박힌 반지로, 대신 반지에 저와 그녀의 이름을 새기기로 했습니다.

주인님의 '둘만의 반지라면, 비싼 것보다 특별한 것으로 하는 게 더 좋지.' 라는 조언이 정말 그럴싸 했습니다.

세공사는 몇 시간만 있다가 와 달라고 해서, 저는 주인님을 모시고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지금은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닌데."


"한 잔 드시면, 기분이 좀 나아지실 겁니다."


"니가 마시고 싶은 게 아니고?"


드물게 농을 치는 기사님을 보며, 저는 뿌듯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네, 그 때까지는요.


저 앞쪽 숲 언저리에, 평민기사의 여자친구분이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추고 있는 그 모습을

제 주인님과 제가 바라보기 전까지는요.




"그래, 이게 학교의 내부도라는 거지?"


"그럼, 우리 자기, 나 못 믿어? 고작 이딴 방 위치나, 순찰 위치 같은 걸 어디다 쓰려고?"


"말 조심해, 이년아. 기사단장의 방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도 암살은 식은 죽 먹기라고!"


낄낄거리며, 그 쥐새끼 같은 남자는 여자에게 입을 맞췄습니다.

제 주인님의 표정은 점점 얼어붙어갔고, 저는 주인님의 표정을 보면서 오줌을 지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낼 순 없었습니다.

주인님이 왼 손으로는 제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오른손은 검 손잡이를 잡고 있었거든요.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주인님은 일단 절 베어버린 후, 저 기사들을 베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는 어떻게 구했어?"


"어떻게겠어~ 그 천한 피에게 다알콤한 말 한 두마디 남기면서, 학교에 모올래 데이트 할 곳을 찾아보자고 했을 뿐인데..."


"그래서, 그 멍청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 지도를 그렸다는 거지?"


"그럼! 그 머저리는 이게 사형죄라는 사실조차 모를걸?"



그렇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저 하급 귀족 여기사님은 정말 요사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쥐새끼 같은 남자는 낄낄거리며 여기사의 몸을 여기저기 주물럭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더 못 보겠어서 눈을 꾸욱 감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 주인님은, 미동도 하지 않고 똑바로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둘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나는 잠깐 어디를 다녀오겠다. 너는 세공사에게 가서, 반지를 찾고 숙소로 들어가 있어라. 오늘 본 일은 비밀로 하고."


누구 안전이라고 말을 어기겠습니까. 저는 당장 예예 하고 발에 불나게 튀었지요.



다음 날, 제 주인님은 그 평민기사님을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몰랐지만, '거짓말 하지 마라!'라고 외치는 평민기사님의 목소리로 미루어 보건대, 서로 다투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밤, 기사단장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자객 열 명이 뛰어들어 왔다고 했지만, '마침 깨어있던' 기사단장님과 '마침 그 자리를 지나가던' 제 주인님이 함께 자객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황금으로 치장된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에 입혀진 금박만으로도 충분히 제 월급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대의 공훈을 치하한다. 그대의 정보와 혁혁한 전공이 없었더라면, 우리 국가의 기둥인 기사단장을 잃었을 것이다. 허나, 이 일의 배후를 캐기 전까지는 감추어야 하는 일이라, 그대의 공을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대신, 그대가 원하는 것 한 가지는,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주겠다. 이 편지는 읽는 즉시 태워버려라."


화롯불에 던져진 편지를 보며, 저는 발을 동동 구를 뻔 했습니다. 아이고, 저 금이 다 얼마입니까. 지금 준비한 이 반지에 저 금을 입히면 번쩍번쩍 할텐데 말입니다...


"따라와라. 옷을 다 챙기고."


아이고, 금에 눈이 멀어 주인님을 기다리게 해 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주인님의 눈빛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불길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주인님의 요청은 받아들여졌다고 했습니다.


1. 기사 학부 졸업과, 정식 기사 서임.

2. 일부 주동자 처분의 권리


그리고 그 주동자에는, 그 평민기사분과, 그 하급귀족 여기사분이 있었지요.




주인님의 가문이 머무는 저택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날씨는 눈송이가 칼바람과 함께 뺨을 저며내는 것 같았고

낮은 낮답지 않게 우중충하고 어두컴컴했는데, 밤은 칠흑처럼 어두우며 달빛조차 어둠에 갉아먹히는 듯 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우리 주인님처럼 목소리와 표정과 분위기에 다 차가운 얼음이 낄 겁니다.


"이제껏 날 섬겨주어 고맙다. 너와의 계약은 끝났다. 하지만, 딱 3개월만 더 일해줄 수 있나? 돈은 두 배로 주지."


저택에서, 부모님을 뵈고 온 주인님이 그리 말했습니다.

사실, 여기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기사가 되고 싶은 꿈이고 뭐고, 그 학부에서의 모습을 보면 다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던 양초장이 일이 냄새도 심하고 남들도 동정어린 눈으로 봅니다만, 적어도 그 살얼음판 같던 정치판보단 나았습니다.


하지만, 달빛이 어둠에 갉아먹히는 밤보다, 어둠 속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황금빛이 제 마음을 더 흔들었습니다.


"예, 예에, 그러겠습니다."



첫 1개월은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임무는 지하감옥 청소와, 지하감옥 중 한 방을 꾸미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지하 감옥에 저런 크고 푹신한 침대가 왜 필요한 걸까 의문스러웠지만, 3개월 뒤면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생각보다 당장 황금빛과 약혼녀에 대한 생각만이 더 커서 그저 버텼습니다.


그리고 1개월이 지나자

죄인이 압송되어 왔습니다.



하급 귀족 여기사, 아니 이제는 그저 여자 범죄자는 손짓 하나로 지하 2층에 쳐넣어졌습니다.

평민기사 분은 지하 3층에 쳐넣어졌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 제가 초를 들고 주인님을 지하 3층으로 안내했습니다.



"1개월 만이네요."


"그러게."


평민기사, 아니 이젠 그저 평민 남자의 표정은 꽤나 침착해 보였습니다. 수없이 많이 고생해왔음이 분명했는데도,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얼굴은 더욱 가녀리게 변했습니다. 심지어, 눈조차 반쯤 죽어 있었습니다.


"있잖아요. 제게 했던 말들, 다 기억해요. 그런데, 어떤 쪽에서는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했어요. 지금 벌어진 일들을 보면 당신의 말이 맞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제 여자친구를 믿어요. 믿고 싶어요. 혼란스러워요. 솔직히 말해 주세요. 그때 했던 말들, 다 사실 맞죠?"


애처롭게, 마지막까지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지, 그 남자는 울먹이며 물었습니다.

그리고, 제 주인님은 답했습니다.


"아니, 거짓말이야. 널 얻고 싶어서 사건을 조작했어. 저 년이 방해가 되었거든."


"......네?"


"... 네가 먼저 속았으면 저 여자는 이런 꼴 안 당해도 되었을 텐데. 참 안타깝네. 할 얘기는 그것 뿐이지? 그럼 나중에 봐."




"주인님, 왜 그러셨습니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사실을 밝히면, 저 남자분도 주인님께 마음을 줄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표정..."


"...네?"


"그렇게 뜨거운 감정을 지닌 표정을, 내게 처음 보여줬어."


옛날에도 가끔 이런 사랑에 빠진 소녀의 표정을 하셨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농담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그렇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줄 줄이야..."


주인님은 그 말 이후로, 한참동안, 넋을 잃고 황홀한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다음날부터, 주인님은 그 범죄자에게 찾아갔습니다.


"너,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


짜악 소리와 함께, 범죄자의 얼굴에 뺨자국이 생겼습니다.


"너에게 허용되는 인사는, '내 남자친구는 괜찮아?' 야. 알았지?"


"무슨 개소..."


짜악, 짜악


"오늘은 경고야. 내일부터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하나씩 사라질 거야. 알았지?"


그러고는, 가져온 도구로 여자의 눈을 뽑아버렸습니다.




"대체 왜! 나 하나 때문에 내 여자친구까지! 왜!"


남자는 안대를 찬 채로 어제 못 터트린 감정을 마구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그 날 내게 속아줬어야지. 자기의 여자친구도 고문 때문에 우리 자기의 이름을 댄 거 아냐. 응?"


"쓰레기 같은... 난 당신을 가문을 보고 판단하지 않았었어! 난 당신이 존경할 만한 기사라고 생각했다고! 이 쓰레기 같은 년!"


그런 매도를 듣는 주인님의 표정은

너무나도 황홀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쾌락을 얻는 듯 한 표정에

저는 섬뜩한 기분이 들어 초를 떨어트릴 뻔 했습니다.



"아으...아..."


범죄자의 왼쪽 엄지손가락이 잘렸습니다.

오른쪽 새끼발가락도 잘렸습니다.


"내가 말 했지. 네가 날 보고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인사는 '내 남자친구는 괜찮아?'라고."


"이런 미ㅊ..."


짜악 소리와 함께

어제 손질해둔 구교묘가 휘둘러졌습니다.


"종자야, 이 채찍에다가 칼날을 박아놔라. 아무래도 이 기사님은 심지가 매우 굳으신 분 같으니까."


채찍 자국에 식초와 소금을 부으며, 제 주인님은 섬뜩하게 웃으며 명령하셨습니다.




"내 남자친구는 괜찮아?"


짜악 소리와 함께, 구교묘가 휘둘러졌습니다.

등은 이미 채찍 자국과 검날에 베인 자국으로 너덜너덜해졌고

식초 냄새와 소금 덩어리가 뒹굴거리는 곳에, 또 소금이 부어졌습니다.


"아니, 남자친구가 오늘은 몸 상태가 안 좋아. 그러니까, 좀 맞자."


"...인사... 는... 똑바로... 했..."


"첫째. 목소리에 진정성이 없어. 둘째. 약속대로, 인사를 똑바로 했으니까 손가락과 발가락은 오늘은 안 자를거야."


양 쪽에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그리고 양 발에 새끼발가락과 약지발가락이 베인 상태로, 눈이 뽑힌 채로, 온 몸이 너덜거리게 되어버린 그 여자는, 신음만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몸을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중년 여인 하나와, 그나마 좀 깨끗한 옷을 입은 소녀 하나가 저택을 방문했습니다.


"어머, 반가워요. 어머님, 시누이분."


"...네?"


"아, 얘기 못 들으셨구나... 사실 저랑 아드님은 미래를 약속했었거든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얼떨떨해 하는 평민 여인 하나와 소녀 하나 앞에서

역시 무슨 상황인지 얼떨떨해 하는 제 앞에서


주인님은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은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지만, 저를 통해서 은신처를 여기저기 바꿔가며 생활하고 있어요. 나중에, 모든 게 진정되면 그 때, 꼭 혼인식을 올리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러니, 저를 믿고 마음을 놓으셔도 돼요, 어머님."


"아... 하지만... 집안이..."


"아드님은, 신분을 뛰어넘을 정도로 괜찮은 남자잖아요. 제가 알아요. 어머님도, 알고 계시죠?"


소녀는 너무나도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자신의 오빠와는 꽤나 친했는지, 곧바로 긴장을 풀고 재잘재잘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오빠가 진짜 좋은 사람이긴 해요. 알아주는 분이 계셔서 영광이에요. 정말 저는..."


"얘, 귀족 분 앞에서 무슨 짓이니.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아직 교육이 덜 되어서..."


소녀를 말리는 여인에게, 주인님은 정말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보여주었습니다.


"아니에요, 곧 가족이 될 사이인데, 이 정도야 뭐."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


여인과 소녀에게 별채를 안내해 준 후, 주인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


"넌 믿을만 하니까, 특별히 말해줄게. 저 남자는, 날 단 한 번도 여자로 봐주지 않았어. 단 한 번도. 이렇게 뜨거운 감정을 내보이는 건 처음이었어. 더 보고 싶어. 더 뜨겁게 날 바라봤으면 좋겠어. 사랑이 아니라 증오로 불타더라도, 이렇게 불타는 감정을 내게 표현해줬으면 좋겠어."


저는, 주인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 뜨거운 감정을 원해. 더..."


단지, 춥고 어두운 곳에 살면 사람이 미쳐버린다는 속설을 믿게 되었습니다.




"내 남자친구는 괜찮아?"


"응, 오늘은 상태가 좋네."


"하아... 다행이다..."


이제 저 여자는 진심으로, 남자의 안부를 묻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상태가 괜찮다면, 채찍질을 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너, 이러고도 하늘이 두렵지 않아?"


"어머, 자기. 그런 건 죽은 후에나 두려워 하는 거야."


"내가, 여기에서 풀려나면, 널, 기필코..."


"어머, 자기. 자기 여자친구도 자기를 배신하고 도망가버렸고, 여기엔 자기 혼자뿐이야. 그런데도 끝까지 복수를 하겠다고?"


"나는, 내 연인을 믿어. 그 사람은, 너랑 다르게 지고지순하게 나만을 바라봐줄 사람이라고!"


"나도 자기만을 바라보는데?"


남자는 끝까지 주인님에 대한 적대감을 품었습니다.





"내 남자친구는 괜찮아?"


짜악, 짜악...


"오늘은 밥을 잘 안 먹으려 하더라고. 그러니까 두 대로 끝낼게."


이제, 찢어질 살갗은 모조리 찢어진 채로, 바닥에 핏물과 식초와 소금 결정이 머무는 채로, 여자는 신음만을 내뱉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음, 있잖아, 자기를 지하 1층으로 옮기려고 해."


평소처럼 매도만을 듣고 다시 돌아가던 평소와 다르게, 주인님은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 갑자기 왜?"


"아니 뭐, 3층까지 왔다갔다 하는게 귀찮아서."


주인님은 그리 말하며, 구속구를 남자에게 채우고, 남자를 끌고 올라갔습니다.


구속구 소리와, 촛불 빛이 지하 3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 그 여자의 옥실이 있었습니다.


"내 남자친구는 괜찮아?"


".... 응. 당연히 괜찮지."


"하아, 다행이다..."


철컹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구속구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뒤돌아보면

거기엔 눈을 시뻘겋게 뜨고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듯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 도망갔다며."


"어머, 실수. 아직 여기 있었네?"


천연덕스럽게 얘기하는 주인님 앞에서, 남자는 다시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뭐야! 또 거짓말이었어!? 저 꼴은 뭐야! 온 몸이 걸레짝이 되어버렸잖아! 너, 무슨 짓 했어! 내 여자친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 밖에 누구...?"


주인님은 남자의 입에 우악스럽게 입마개를 채우고, 1층으로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읍! 으으으읍! 으읍!"


남자는 애처로이 저항하며 여자 쪽으로 다가가려 했습니다만, 주인님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 누구야? 무슨 일이야? 뭐야?"


2층 감옥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의 애처로운 목소리만이 울릴 뿐이었습니다.




그날 밤

주인님은 그 여자를 죽였습니다.


"1차 목적이 달성되었으니까, 이제 이 년은 필요가 없거든."


이라는 말과 함께요.



남자는 더욱 맹렬히 주인님을 적대했습니다.

이제, 사람의 것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울부짖음과 증오만이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은, 이제 저를 물리고 그 앞에서 혼자서 맞이하는 듯 했습니다.


뭘 했는지 보진 못 했지만, 속옷이 젖어서 나오는 것을 보면...


... 아직, 제 일이 끝나려면 한 달 남았습니다.



"어머, 그 드레스, 오빠가 사준 건가요?"


남자의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주인님이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네. 제가 오빠를 졸라서 샀어요. 마을에 파티를 하는데, 저 혼자 드레스 없이 나가는게 부끄러워서, 오빠에게 사달라고 졸랐죠. 철없이..."


"그 드레스, 버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순간, 주인님의 말에 모두가 얼어붙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저으며, 주인님이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아니, 어머, 실례. 결론만 말했네요. 제 가족 될 사람이, 그런 유행 지난 낡은 드레스를 입는 꼴은 볼 수 없거든요. 제가 새 드레스를 사드릴게요. 그 드레스는 그냥 버리시면, 어머님과 시누이분께 예쁜 새 드레스를 맞춰드릴게요. 저희 가문의 재봉사는 솜씨가 좋답니다?"


"어머, 정말 감사..."


"얘, 얘. 정신 차리렴. 어머, 너무 감사합니다만, 저희에게 너무 과분하게 대해주시는 것 같아서..."


소녀를 말리며 여인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또 다시,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 제 낭군님도 그걸 바랄 거에요. 부탁이에요. 제 가족 될 사람에게 허투루 대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 소녀의 드레스는

주인님이 직접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드레스를 찢고

닭의 피를 뿌린 뒤


자신이 입었습니다.


"오늘이 네가 일하는 마지막 날이네."


"주인님, 그 드레스는 왜..."


"마지막이니까, 좋은 구경을 시켜줄게. 돈 자루는 네 방에 뒀어. 종자야. 이제까지 있던 일을 모조리 잊겠다고 약속해. 남에게 발설하지 않겠다고. 알겠니?"


"...네"



지하감옥 1층에서

남자는 주인님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려다가 멈췄습니다.


"... 뭐야 그 옷은?"


"저... 누구세요?"


주인님은 섬뜩하게 웃으며 의미 모를 말을 했습니다.


"드디어 미쳤구나. 진작 미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오빠요? 네. 알고 있어요. 아뇨, 지금 어디 갔는지는 몰라요."


순간, 적막이 지나갔습니다.


"...... 잠깐, 그거, 내 동생의 드레스..."


"몰라요. 진짜 몰라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만해주세요. 그만, 그만! 싫어! 오빠, 도와줘! 오빠! 제발!"


끔찍한 풍경이었습니다.

주인님은 소녀의 피 묻은 드레스를 입고 섬뜩히 웃으며 연기를 하고 있었고

남자는 이제서야 이해가 가는 듯, 아니면 정신을 놓아버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압도당했습니다.


"오빠! 싫어! 무엇이든 할게요! 있는 돈 다 드릴게요! 그러니까 그건 제발, 제발....."


"... 이게 뭐..."


"자기야. 이 드레스 주인이 어떻게 되었을까?"


주인님은 드레스를 벗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엔, 그 소녀의 낡은 속옷이 닭 피에 젖어 있었습니다.


"종자야. 넌 이제 나가 있어도 좋아. 나는, 드레스 주인이 당한 걸, 이 '오빠'에게 직접 체험시켜주려고 하거든..."


"... 씨발년.... 씨발년! 이 사지를 찢어 죽일 년! 이 쓰레기년! 어떻게,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이 쓰레기 같은 년!"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뒤의 일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방에 있는 돈주머니를 들고 고향으로 뛰듯이 달아났습니다.


그 뒤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보고 행복한 일은 많이 겪었지만


아직, 그 날 밤, 주인님의 그 광기어린 웃음소리는 가끔 악몽에서 나와 아직도 절 괴롭힙니다...





p.s. 시발 쓰다보니까 1만자 넘기네.. 너무 길어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