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조준기 하나 없는 레이저 라이플로 점처럼 작게 보이는 적을 쏴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든,

지축을 울리며 다가오는 적의 기갑을 상대로 도망치지 않고 용맹하게 달려들어 역장 폭탄으로 부숴버릴 정도의 용기가 있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더운 정글 숲에서 정글도 하나로 적 대대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의 인내심과 치밀함이 있든,

필요한 장소에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법이다.

명령받은 자리에서 죽는 것. 그게 우리의 유일한 역할이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저 지휘관이 우리에게 바라는 유일한 것이다.


"제군은 걷는 것도 똑바로 못하나! 열에서 삐져 나와 있잖아!"


네모나고 각진 지휘차량에서 상반신을 위로 빼낸 대대장이 주먹으로 철판을 탕탕 두드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저 애미 뒤진 새끼는 진급에 목숨이라도 걸었는지 항상 가장 위험한 전장에 자기 차량을 타고 가서는 지랄을 해댄다.


저 씨발새끼는 그냥 저기에 앉아서 소리만 질러대면 끝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저 좆같은 개새끼의 아가리에서 나온 말을 위해 죽어 나간다.


하긴, 언제는 높으신 분들이 우리를 신경이나 쓰긴 했나.

우리가 귀가 떨어져 나갈듯한 총성과 포성들 사이에서 옆에 있는 전우의 귀가 물리적으로 날아가는 걸 보고 있을 때, 우리보다 몇 배는 용감하고 몇 배는 똑똑하다는 간부님들은 안전한 벙커나 우주함에 처박혀서 지도를 펼쳐놓고 깃발이나 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대대장은 최소한 전장에 얼굴이라도 비추니 다른 놈들보단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시가지에서는 기갑차량이 있는게 든든하기도 하고.

물론 제대로 된 장갑차나 전차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엄폐물로 쓸 수 있는 강철판이 항상 옆에 있다는 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앞에 있는 놈의 상태가 아까부터 영 이상하다.

군장을 계속 고쳐 매면서 좌우로 비틀거리는데, 신병인가?

한참 전부터 힘든 티를 팍팍 내고 있었으니 지금은 아마 반쯤 정신을 놓고 발을 움직이고 있을 거다.

이런 기본적인 행군도 제대로 못 해서야 얼마 안 가서 뒤지겠구만.


"끄아아아악!"


그때 앞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이 들리기가 무섭게 나를 비롯한 병사들은 거의 구르듯이 근처 엄폐물을 끼고 엎드렸다.

내 앞에 있던 병신 새끼만 빼고.

그놈은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듯 제자리에 서서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병사들을 보고서야 부랴부랴 금이 간 건물 벽을 끼고 엎드렸다.


저렇게 어리버리한 놈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걸 보니 최소한 적습은 아니네.


"무슨 일인가!"


엎드린 병사들을 지나쳐 지휘차량이 엔진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리가 멀어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대대장이 다른 병사에게 무언가 보고 받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보고를 받은 대대장은 곧바로 차량에서 뛰어 내리며 자신의 권총을 꺼내들었다.

잠시 후, 다시 지휘차량에 탑승한 대대장은 여느 때처럼 차량을 탕탕 두들기며 뭐라 소리쳤다.


"전원 원래 대형으로! 다시 나아간다!"


대대장의 명령을 대열 중간중간 섞여있던 간부들이 반복해 외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일렬로 서서 다시 지겨운 행군을 시작했다.

내 옆에 있던 지휘차량이 저 앞으로 가버리면서 든든한 엄폐물이 사라졌지만, 동시에 속을 은근히 흔드는 차량의 엔진 진동도 사라졌다는 건 좋은 점이었다.


오십 걸음 정도 걸었을까. 지휘차량이 멈춰섰던 장소가 눈에 보이자 앞서가던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오른쪽으로 획 돌렸다.


아마도 저것 때문이겠지.

녀석이 고개를 돌린 반대쪽에는 피웅덩이 위에 죽어있는 병사가 있었다.

한 쪽 다리가 끊어지기 직전까지 잘려있었던 걸로 봐선 아마 부비트랩에 당한 거 같았고, 관자놀이에 아직 피가 흐르는 구멍이 뚫린 걸로 봐선 지휘관이 행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즉결 처형을 한 것 같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행히 내가 아는 녀석은 아니었다.

저 사람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신께서 인도해주시겠지.

속으로 운없이 가버린 그의 명복을 빌어주며 불쌍한 병사의 다리를 절단내버린 부비트랩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았다.

곧 나는 죽은 병사 주변에서 탄성 있는 막대기에 날카로운 철판을 묶은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치명적이지.

나도 여러번 만들어 봤고, 재미도 여러번 봤다.


희생자가 나온 이후 행군하는 병사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생겨났다.

이 도시에 안전한 구역은 없다.

최소한 나같은 일개 병사에게 안전한 구역은 없다.

당장 이 거리도 우리보다 앞서 들어온 부대가 사흘 전에 확보한 구역인데 저런 부비트랩이 새로 생겨났다.

군대가 반란군을 밀어냈다고 해도 시가전에서는 감시할 수 없는 빈 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틈으로 적들이 침투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침투한 적들이 장난질만 치고 다시 빠져나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그 새끼들이 빠져나가는 대신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노린다면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고서야 기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군대가 점령한 구역에 숨어들어온 쥐새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몇 개 없지만, 그 몇 개 없는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나같은 평범한 병사의 모가지를 따버리는 거란게 문제다.


그나마 여기는 포탄으로 건물을 전부 아작내 버려서 숨을만한 장소가 한정되어 있긴 하네.

기껏해야 저기 그나마 멀쩡한 3층짜리 건물에 숨을만 하겠다.

근데 병신도 아니고 저렇게 뻔한 곳에 누가 숨겠... 어?


"전방 건물에 적이다!"


내가 소리쳐 경고하자마자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대장이 재빨리 해치를 닫고 지휘차량에 몸을 숨기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 건물에서 화염이 번쩍였다.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한 몇몇 병사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동안 은엄폐를 마친 인원들이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공기를 찢는 것 같은 레이저 라이플의 소리와 화약에 의해 추진되어 날아가는 기관포의 둔중한 사격음이 온 몸을 때렸다.

운 좋게 적당히 부서진 담벼락을 찾아 몸을 숨긴 나도 라이플을 꺼내 대응사격을 하려 했다.

내 앞에서 비틀거리며 걷던 병신새끼가 이제는 내 눈 앞에서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기 전까진.


총탄이 날아드는 길가에서 내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녀석을 본 나는 기가 찼다.

당장 일어나서 뛰어 들어와도 부족한 판국에 뭐하는 짓이야?

울상이 된 얼굴로 눈물 콧물 다 질질 짜면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꼴을 보니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뛰어 새끼야!"


내가 소리쳤지만 녀석은 들리지않는지 계속해서 굼뱅이처럼 느린 속도로 땅을 기었다.

다행히 건물에 숨어있던 적들은 녀석이 살아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다른 곳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아오, 씨발."


나는 답답함과 초조함에 내 혀를 껌처럼 씹었다.

지금 어설프게 내가 도와주러 갔다간 놈도 나도 벌집이 될 뿐이었다.

그렇다고 저놈을 무시하고 총을 쏜다면 적들이 날 쏘다가 저 병신새끼가 기어다니는 걸 보고 저놈을 쏴버릴 수 있었다.

결국 저 녀석을 살리기 위해선 저 굼뱅이 새끼가 내 옆으로 올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최대한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빨리 와, 이 새끼야!"


내가 소리치며 손짓을 하자 놈이 조금 더 속도를 냈다.

그래봤자 여전히 느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적이 숨어 총을 쏴대는 건물과 기어오는 병사를 번갈아 바라보길 수 차례, 마침내 녀석이 내 손이 닿을 정도까지 기어왔다.

나는 곧바로 놈의 뒷목 옷깃을 잡고 최대한 잡아 당겼다.

녀석을 끌어 안고 벽 뒤로 완전하게 몸을 숨긴 나는, 자기 라이플을 옆에 내던지고는 내 몸에 대가리를 처박고 질질 짜고 있는 녀석의 방탄모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정신 차려, 병신 새끼야!"


얻어 맞은 충격에 놀랐는지 질질 짜던 녀석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 올려다 봤다.

신병이라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진짜 애새끼같은 얼굴이었다.

열다섯? 열여섯?

아마도 여기서 현지 징집당한 고아 출신 소년병이겠지.

전쟁 중인 행성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나는 벽을 주먹으로 치면서 아직도 반쯤 정신을 놓은 애새끼에게 소리쳤다.


"잘 봐! 이 벽은 존나 튼튼하다! 니새끼 빵탄도 존나 튼튼해! 니가 병신같이 나 죽여줍쇼 하고 대가리만 쑥 내밀지 않으면 이제 안 뒤진다고! 그러니 이제 그만 질질 짜고 총이나 잡아!"


땅에 떨어진 녀석의 라이플을 잡아 놈의 몸통에 거칠게 밀어붙이자 녀석이 총을 껴안았다.

하지만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나만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녀석의 방탄모를 내려찍고 어깨를 잡아 몸을 강제로 돌렸다.


"총 들어! 적을 봐! 어딨는지 보라고! 니가 덜덜 떤다고 적이 알아서 뒤지진 않아! 니가 저 씹새끼들을 쏴야 죽는다! 적을 봐!"


내가 소리치자 녀석이 떨리는 손으로 라이플을 앞으로 내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놈이 쏜 총에서 나간 레이저는 허공을 향해 날아가거나 전혀 엉뚱한 곳만을 맞출 뿐이었다.

눈을 감고 쏘는 것 같은 사격에 애새끼의 면상을 봤더니 진짜로 얼굴이 구겨질 정도로 눈을 질끈 감고 쏘고 있었다.


순간 열이 확 뻗친 나는 한 손으로는 놈의 눈을 강제로 뜨게 하고 다른 손으로 턱 아래를 받쳐 들어올렸다.


"씨! 발! 놈! 아! 똑바로 쏘라고! 그러다가 우리 애들 뒷통수라도 맞추면 어쩔 껀데! 두 눈 똑바로 떠! 아무 데나 갈기지 말고! 저 건물에! 저 창문에! 번쩍이는 저걸 향해 쏴! 총은 어깨에 딱 붙이고!


내가 윽박지르자 녀석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총을 자기 어깨에 바짝 붙였다.

그래도 말을 하면 들어 처먹긴 하네.


"어딜 쏠 거야! 어딜 쏠 거냐고!"

"저, 저, 저..."

"말 더듬지 말고! 위에서 두 번째 층, 오른쪽에서 세 번째 창문! 저길 쏜다! 조준해! 고개 숙이지 마! 안 죽어! 니새끼 몸은 벽이 막아주고, 대가리는 빵탄이 막아주고, 얼굴은 총이 막아주잖아! 니가 쫄면 그때 뒤진다고! 니가 총을 치우면 그때 뒤진단 말이다! 정신 차려! 조준해! 손가락 끼워! 어깨에 붙여! 당겨!"


녀석의 총에서 나온 빛이 허무하게 공기를 가르며 사라졌다.


"어딜 쏘냐! 조준 하라고 했잖아! 위에서 두 번째, 오른쪽에서 세 번째! 니가 쏘는 레이저가 어디 맞는지 봐! 다시 조준해! 고개 숙이지 말라고 씨발놈아! 개새끼야 정신 안 차려! 진짜 뒤지고 싶어! 모가지에 힘 빡 줘! 눈깔에 힘 딱 주고! 배에 힘 꽉 주고! 어깨에 총 박아 넣고! 숨 멈추고! 당겨!"


다시 한 번 라이플이 빛을 내뿜었다.

여전히 목표로 한 창문에선 멀었지만 이번엔 허공이 아니라 건물을 맞췄다.


"좋아! 훨씬 나아졌다! 눈 깜빡이고! 숨 고르고! 다시 조준해! 가늠쇠를 봐! 창문에 가늠쇠를 맞추지 말고, 가늠쇠에 창문을 맞춰! 네가 바라보는 것보다 살짝 아래에 맞았었다! 방금 쏜 곳보다 살짝 위를 맞춘다는 느낌으로 쏴!"


세 번째로 발사된 빛줄기가 목표로 했던 창문으로 빨려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 창문에서 총염이 번뜩였다.


"조금만 더 아래로!"


내가 더 말하기도 전에 녀석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엔 빛이 적을 꿰뚫었고, 창문 안쪽에서 검은 형태가 쓰러졌다.


"마, 맞췄다..."


녀석이 놀랐는지 라이플에서 얼굴을 때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새끼. 쓸만하네.

나는 당장이라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녀석의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줘서 다시 고개를 총에 붙이게 만들었다.


"긴장 풀지 마! 널 노리는 놈이 없는지 확인해! 쓰러진 놈이 확실히 쓰러졌나 확인해! 널 노리는 놈이 있냐!"

"어, 없는 것 같습니다..."

"똑바로 말해! 있냐! 없냐!"

"없습니다!"

"좋아! 다음엔 어딜 쏠 거야!"

"왼쪽 아래를 쏘겠습니다!"

"아주 좋아! 조준해! 알아서 당겨!"


어쩌다보니 녀석의 부사수가 된 나는 놈이 총을 쏠 때마다 탄착점을 관측해서 자세를 고쳐줬다.


"안 맞는다고 초조해 하지 마! 안 맞는 게 당연하다! 백발백중은 꿈도 꾸지 마! 너만 쏘는 게 아니야! 네가 못 맞춰도 다른 병사가 맞춰준다! 방향을 유지해! 적이 너를 못 쏘게 하는 게 우선이야! 견제해! 계속 당겨! 고개를 움직이지 말고 손을 움직여! 팔꿈치를 고정하고 손목으로 조준해!"


녀석의 탄창이 거의 다 비어갈때 쯤, 적들의 총성이 멈췄다.

아마 안쪽에 몇 명이 남아있긴 하겠지만, 경험상 전투의지를 잃었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일 터였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경계 태세를 유지해라!"


어느새 다시 해치를 열고 나온 대대장이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면서 몇몇 병사들에게 손짓했다.

대대장의 명령을 받은 분대가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건물 안쪽에서 몇 번의 번쩍임과 총성이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에 들어갔던 병사들이 다시 나와 적이 모두 제거되었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전원! 신속히 이동한다!"


대대장의 말에 여기저기 숨어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몸을 일으켰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을 일으켜 세워줬다.

첫 전투의 흥분과 공포가 아직도 놈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지 녀석은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래도 똥오줌은 아직 안 지렸네.

먹은 게 없는 건지, 기묘하게 담이 센 건지 모르겠다.


나는 녀석의 방탄모를 툭툭 두들겼다.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가, 감사합니다."


"이름이 뭐야?"


"저는..."

"그래, 신삥. 탄창 교체하고 빨리 대열에 합류해."


자기 이름을 말하려는 녀석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 나는 바로 행렬 사이로 섞여들어갔다.

이번이야 운이 좋아서 살아 남았지만 내 분대원도 아닌 놈을 챙기면서 내 목숨까지 챙길 능력은 없으니까.




"저녀석 딱 봐도 신병이네."


분대원들과 판때기인지 뭔지 구분도 되지 않는 레이션을 씹어먹고 있자니, 내 맞은편에 있던 병사가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리켰다.

뒤를 돌아보자 방금 전투에서 어리버리하던 그 신삥이 또다시 어리버리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뭐야 저새끼 왜 저러고 있어?"


"아는 놈입니까?"


"어. 아까 전에 뒤질 것 같은데 계집년처럼 질질 짜고 있길래 존나 갈궜다."


근데 저새끼는 방금 전부터 왜케 얼타고 있냐?


"야! 신삥!"


내가 소리쳐 녀석을 부르자 놈은 화들짝 놀라더니 날 보고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아는 얼굴이다 이거지.


"니 분대는 어따 팔아먹고 혼자 어기적어기적 돌아다녀?"


"어, 그... 그게..."


"얌마! 말 더듬지 말랬잖아!"

"죄, 죄송합니다!"


신삥이 크게 소리치자 주변 병사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놀림거리가 된 놈이 온 몸으로 땀을 줄줄 뱉어내는 걸 본 나는 녀석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너 분대장 누구야?"


쭈뼛쭈볏 다가온 녀석에게 묻자 신삥이 한층 더 땀을 많이 흘리기 시작했다.


"어, 없습니다."


"엉? 뭔 개소리야 그게? 너 어디 분대인데?"


"저, 그... 분대가 없습니다..."


"분대가 없어? 너 찍새냐?"


"찍새...?"


신삥이 멍청하게 되묻자 내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끼어들었다.


"빵탄 줘봐."


"아, 네!"


바짝 긴장하고 있던 신삥은 곧바로 자기 방탄모를 벗어서 내 분대원에게 내밀었다.


"찍새 맞네. 여기 대충 찍 그어놓은 거 봐라."


분대원은 방탄 앞부분에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자국을 보고 말했다.

원래 훈련병에게는 하얀색 막대기 하나가 그려진 계급장을 주지만, 현지에서 긴급 징병을 실시할 땐 지휘관이 대충 방탄모에 선을 하나 긋는 걸로 대체한다.

당연히 그런 놈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았을리 없으니 일반적인 훈련병보다도 몇 배는 애자같은 짓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따로 병사들이 정식 입대한 훈련병과 현지 징병당한 훈련병을 구분해서 부르는 명칭이 찍새다.


"자."


신삥이 찍새인걸 확인한 분대원이 방탄모를 신삥에게 던졌다.


"어, 앗!"


텅, 퉁, 퉁!

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던 신삥은 허둥거리다가 방탄모를 받지 못하고 떨어트렸다.


"하여간 찍새 아니랄까봐 하는 짓도 존나게 찍새같네."


분대원 중 누군가가 히죽거리면서 말하자 다른 분대원들도 다같이 웃었다.


"죄송합니다!"


전장에서 오래 구른 병사들의 흔한 신병 놀리기였지만, 신삥은 다른 신병들이 그렇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소리쳤다.

적당히 놀렸다고 생각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야, 그래도 너무 뭐라하지 마라. 이새끼 방금 전에 씹새끼 하나 맞췄다."


"진짜입니까?"


신삥을 놀리던 분대원이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내가 너한테 이빨까겠냐?"


"하루에도 수십 번은 까시지 않습니까."


"좆까는 소리 하네. 쪼인트 까이고 싶냐?"


"흐흐흐, 아닙니다."


"그래서 어떡하실 겁니까?"


조용히 있던 부분대장이 나에게 물었다.


"어쩌긴 뭘 어째. 일단 밥은 먹여야지."


"계속 데리고 다니실 겁니까?"


"음... 뭐, 집까지는 데려가야 하지 않겠냐?"


"집?"


집이라는 소리를 들은 신병이 눈을 반짝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직 애새끼구만.

그 지랄을 겪어놓고선 아직도 자기 집에 돌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보나마나 이 신삥은 앞으로 자기 집에 돌아갈 수 없을 거다.

한 번 징집 당하면 집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어느 행성에 묘지라도 생기면 운이 좆되게 좋은 새끼고, 대다수는 어딘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비참하게 썩어 문드러지는 걸로 생을 끝내게 된다.

병사의 운명이란건 그런 거니까.


나는 괜히 속이 쓰리는 걸 욕으로 풀었다.


"느그 집 말고, 우리 집 새끼야."


"...?"


"막사 새끼야, 막사. 군바리 자는 곳."


"아..."


명백하게 실망한 신삥을 본 다른 병사들이 아주 잠깐이지만 침울한 침묵을 공유했다.


"아무튼, 밥이나 먹자. 너 레이션은 가지고 있냐?"


"아, 네."


신삥이 주머니에서 아직 포장도 안 뜯은 레이션을 꺼냈다.


"새끼, 정신은 놓고 다니면서 밥은 잘 챙기고 다니네. 여기 앉아."


분대원들이 다같이 엉덩이를 꿈틀거리며 만들어준 자리에 손바닥을 탁탁 두드리자 신삥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감사합니다...어라?"


자리에 앉은 녀석은 감사인사를 하다가 의아하다는 듯 우리를 둘러보았다.


"왜 임마."


"아니, 그... 레이션을 그냥 먹는 겁니까?"


"그럼 그냥 먹지 튀겨먹냐?"


"그게 아니라... 그, 물에 불려서 먹어야 한다고..."


"그럴 여유가 어딨냐? 그냥 침으로 불려 먹어."


신삥의 옆에 앉은 분대원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훈련소에서나 느긋하게 그릇 하나 가져와서 물에 불려먹지, 여기선 그런 거 없다.

전장에선 시간도, 물도 지랄맞게 귀중하니까.

너도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다른 병사들도 말은 안 했지만 그 분대원의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 네."


신병은 분위기에 눌렸는지 조용히 자기 레이션을 입 안에 집어넣고 이빨로 씹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녀석이 아무리 용을 써도 수분 하나 없는 레이션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애쓴다, 애써."


어떻게든 부숴먹으려고 용을 쓰는 신삥을 보며 분대원들이 키득거렸다.


"으으으..."


결국 포기한 신병이 턱이 지끈거리는지 손으로 어루만지며 다른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분대원들은 녀석과 달리 요령있게 레이션을 조금씩 부숴서 입 안에서 녹여 먹었다.


"저기, 그, 어떻게 먹는 겁니까?"

"잘. 요령껏. 최선을 다해서."


기다렸다는 듯 다른 병사가 대답했지만, 신삥에게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저게 정답이긴 하지.

이 좆같은 레이션을 먹는 방식은 병사마다 다 조금씩 다르니까.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신삥은 신병들이 으래 그런 것처럼 레이션의 한 쪽 귀퉁이를 입에 물고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물론, 잠시 후,


"야! 그래서 엄마 젖은 어떻게 먹고 자랐냐?"

"나중에 니 애인 그렇게 빨아주면 싸대기 맞는다?"


다른 병사들보다 한참 느린 식사 방식에 또다시 놀림거리가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충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고 한참이 지난 세계관.


넓은 우주에 온갖 좆같은 외계인들이 설쳐대고, 같은 인간조차 갖가지 이유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


그런 상황에서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늙은 병사가


어쩌다 징집당해서 어리버리 타던 신병을 주워다가


그 병사가 막사를 '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익숙해질때까지 이끌어주는 전쟁 소설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