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째깍...

째깍...

째깍...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단지 거실의 아날로그 시계에서 울리는 초침 소리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이것 또한 꿈이 아닐까


난 소파에 가만히 누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띵동~!


서서히 의식이 잠겨가려는 순간 현관 쪽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띵동~! 띵동~!


무시하려고 했지만 계속되는 무언의 재촉에 결국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향했다.


철컥...


"아...!"

현관문을 열자 보인 사람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옆집 얀순이 누나였다.

얀순이 누나는 갑작스레 열린 문에 살짝 놀란듯한 소리를 내었고 곧 나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얀붕아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누나가 걱정했잖아"

불과 몇십초도 안됬지만 얀순이 누나는 진심으로 걱정되었다는 예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죄송해요...누나..."


"응! 빠른 사과 착해! 착해!"


누나는 기특하다는 듯이 까치발을 들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근에 누나랑 잘 만나주지도 않고 누나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토라졌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며 귀엽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마냥 귀엽게 볼 수 없었다.


누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나를 끌고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야..? 얀붕이 부모님도 얀붕이가 이런 생활 하는 걸 알면 슬퍼하실 거야"


얀순 누나는 내 뺨을 쓰다듬으며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벌써 몇 달 전인가....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것도...


그날 하루 만에 모든 걸 잃어버린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고 집에 틀어박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


"어쩔 수 없네! 오랜만에 누나 솜씨를 보여줄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얀순이 누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거실로 향했다.


"으음~ 어디 재료가~ 어라..?"


잠시 거실을 뒤적여보던 얀순 누나는 아무것도 없는 거실을 보고 당황한 듯 보였다.


"안 되겠다. 얀붕아 누나 집으로 따라와!"


얀순 누나는 그렇게 내 손을 잡고 나를 끌고 가려고 했다.


갑자기 손목이 잡힌 나는 몸이 흠칫 떨렸다.


"아...괜찮아요...누나한테 더 이상 민폐 끼치는 것도 그렇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얀순 누나는 한동안 나를 위로해주고 여러모로 챙겨주었다. 그동안만 해도 나에게는 과분한 호의였고 더 이상 나는 얀순 누나한테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래 어디까지나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야....


째깍...

째깍...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날로그 시계에 초침 소리만이 들려왔다.


얀순 누나는 잠깐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잡고 있던 손목에 더욱 힘을 주며 말했다.


"읏...!"


"누나는 얀붕이가 순수하게 걱정돼서 그러는데 와줄 거지..?"


".....ㄴ...누나..손목 아파요..."


"와줄 거지?"


"으읏....네..."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을듯한 얀순 누나의 태도에 나는 결국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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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얀붕아 맛있게 먹어!"


식탁 위에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얀붕아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해봤어❤"


"어떻게...."


"응? 나는 얀붕이에 관한 건 다 알고 있는걸❤"


나는 꺼림칙했지만  누나와 우리 가족이 같이 밥을 먹은 적도 꽤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넘어갔다.


밥은 맛있었다.  부모님이 해준 것처럼....


"얀붕아 맛있었어? 최대한 얀붕이 입맛에 맞춰서 해봤는데"


"네...맛있었어요."


"그래? 다행이다!"


얀순 누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얀붕아 누나 샤워할 게 훔쳐보면 안 된다?❤"


얀순이 누나는 나를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 훔쳐봐요...."


달칵


얀순 누나가 욕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닫혀있는 방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컥...


남의 집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드리우는 의심들을 해소하고 싶다.


나는 천천히 방 안에 책상으로 향했다.


제발 내가 생각한 게 틀렸기를...그 사고 CCTV 장면을 수없이 돌려보며 아닐 거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현실을 외면해왔다.


그리고 책상에 도착한 내가 본 것은 사고 날 찾지 못했던 가족사진이었다.


스윽...


나는 그 사진을 조용히 주워들었다.


가족사진....


아니 자세히 보면 조금 달랐다.


내 양쪽에 있던 부모님들을 오려내고 대신 자신의 사진을 붙여놓았다. 


"우욱...!"


한순간 구역질이 났다.


외면하던 현실을 직시해서일까, 자신의 망상이라고 취급했던 것이 뚜렷한 증거로 현실에 나타나자 나는 혼란에 빠져 몸이 굳었다.


왜...? 누나가 도대체 왜...?


"아, 봐버렸네"


뒤에서 얀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뒤에는 분명 씻으러 들어갔던 얀순이 누나가 씨익 웃고 있었다.


"그날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 역시..."


"응! 나야!"


누나는 전혀 숨길 기색이 없는 듯 쾌활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지만 오해는 하지 말아 줘 얀붕이의 부모님은 진짜 사고로 돌아가신 거야! 뭐...내가 봤을 때는 아직 살아있으셨던 것 같지만..."


아직 살아있었다는 이야기에 나는 더욱 절망했다.


왜... 살릴 기회가 있었으면서.....


"왜..."


"신고를 안 했냐고?"


어느새 내 코앞까지 와있던 누나는 날 슬며시 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야 부모님이 없으면 얀붕이는 온전히 내꺼잖아?❤"


얀순이 누나는 욕망과 애정, 역겨운 소유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년...."


사무치는 배신감에 역겨움을 느끼며 나는 누나를 밀치고 비틀비틀 현관으로 향했다.


누나는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가만히 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세상이 어지러워... 여기서 쓰러지면 안되ㄴ...


털썩


"얀붕아 잘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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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사료만 주워 먹다가 처음 써봤는데 내 필력이 개구리다는 걸 깨달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