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1인칭 시점으로 감


=============

-얀붕이 시점-


평범한 삶.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왔고 평범한 학창 시절을 거치며 평범하다고 알려진 직장에서 일하는 게 사람이 나였다.


장대한 목표나 꿈도 없이 그저 개미처럼 일해서 번 돈으로 무난하게 살다가 죽는 게 내게 있어서 전부이였으니


아마 앞으로의 인생도 별다른 일없이 흘러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생각지도 못한 특별한 일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오오! 성공했구나!"


야근을 마치고 귀가 중이던 나에게 눈부신 섬광이 덮쳐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나는 이미 본 적 없는 곳에 오게 되었다.


흔한 양판소 소설 속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이세계로 소환당했다는 설정, 이를 직접 겪어보게 되자 짜증이 났다.


그렇지않아도 방금 야근을 마쳐서 피곤해 뒤지겠는데 남의 동의도 없이 무턱대고 끌려온 게 아닌가?


이런 내 심정을 모르는 건지, 주변 사람들과 왕관을 쓰고 있는 자들은 죄다 기뻐하며 부둥켜 앉고 있었다.


"소환되셔서 많이 당황스럽겠지만 이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용사님!"


공주로 보이는 여성이 내게 환영 인사를 해오면서 반겨준다.


"됐고, 날 끌고온 목적과 다시 나를 내 세계로 돌려 보내줄 수 있는지 여부나 말해."


시큰둥한 내 반응을 보고 나서야 그들은 내 심정이 어떤지 깨달은 것일까?


다들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이세계로 온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줄 알았나 본데, 내게 있어서 현 상황은 매우 기분 나쁜 일이었다.


편안하게 해주는 현대의 문명을 냅두고 어째서 내가 시대가 뒤떨어진 타지까지 와서 일을 해야 하는가?


판타지 세계따윈 소설을 읽으며 상상으로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굳이 직접 와서 겪을 이유도 없으며 내 아까운 시간까지 허비할 필요도 없었다.


"크흠! 저희가 용사님을 소환한 이유는 단 한가지 뿐입니다,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최대의 악, 마왕을 없애주십시오!"


"목적은 알았으니, 나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줄 수는 있어?"


"네, 용사님이 마왕을 처치하러 떠나있는 동안 저희는 역소환 마법진을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


솔직히 거절하고 싶었다, 자기네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내 목숨을 걸라니 현대에서도 이런 억지는 없었다.


하지만 거절하면 그들은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기는 커녕 나를 처형하려고 들지도 모르니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제안은 받아들이겠지만 나 혼자 마왕을 상대하라는 건 아니겠지? 너희가 용사라고 떠받들여도 난 저기있는 병사 하나도 못이겨."


평화로운 현대와는 다르게 중세 시대는 무력이 필수일 것이다.


그러니 평범한 직장인이 중세의 병사를 상대로 이기는 건 무리며 마물 하나 못잡을지도 모른다.


"괜찮습니다, 용사님에겐 필시 여신님의 가호가 있을 테니 금방 강해질 겁니다, 또한 용사님의 성장을 도와줄 조력자도 곧바로 붙여드리겠습니다."


짝! 짝!


공주가 몇 번 손바닥을 치자 방 안에 있었던 많은 기사들 중 여기사 한 명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름다운 은발에, 사파이어과 같은 눈동자를 지닌 청초한 외모, 글래머스한 몸매에 덧대어진 백금의 갑옷이 성스러움마저 만들어냈다.


살아오면서 봤던 모든 여성들 중에서 그녀는 최고라고 할 수 있었으며 여신이 존재한다면 저 여성이 아닐까? 라고 할 정도였으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있는 완벽한 외모 때문에, 흥미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마왕을 처치하고 나면 다시 볼 일 없을 사람이자 나와는 평생 친해질 수 없는 타입일 것이다.


"왕국의 제 1기사, 이리나 델 프란츠라고 합니다, 현 시간부로 조력자로서 항상 곁에서 용사님을 적극적으로 보좌하겠습니다."


그녀의 무미건조한 표정이 내 예상을 확신으로 바꿔주고 있었다.


"용사님, 이건 백금화 100개와 용사님의 신분을 증명해줄 증표입니다. 이게 있다면 여행에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동전이 100개 가량 들어있는 주머니와 특수 금속으로 용사라고 조각된 증표를 건네받았다.


"부디 용사님께 무운을.......!"


왕국의 지원과 조력자까지 받으며 완전히 거부할 수 없게된 나는 마왕을 없애야 돌아갈 수 있는 임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달랑 조력자 한 명과 함께 엿 같은 왕궁을 떠났다.


이토록 암울해보이는 여성을 조력자로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라........


벌써부터 참담한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


여행 3일 차.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여행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조력자인 이리나의 조언으로 좋은 무장과 마법을 갖추게되며 힘들 거라 생각한 마물들을 손쉽게 격퇴해 갔다.


전투 방식이나 마법 사용 타이밍같은 것도 완벽하게 지도해주는 그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르침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난관이었을지도 모르며 나중에 가서는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왔을지도.......


덕분에 난이도가 쉬움으로 되는 건 내게 있어 좋은 일이긴 하다만 아쉬운 점도 없지않아 있었다.


첫번째는 이리나의 표정이 항상 무표정이라는 것.


항상 언제나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말할 것만 말하는 그녀를 보면 괜스레 나까지 힘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두번째는 조력자의 도움이 조언 뿐이라는 것.


항상 전투가 있으면 멀찍이 떨어져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조언만 하고 직접적인 도움은 1도 없었다.


한번은 크게 다칠 일이 있었는데도 그녀는 미동도 않고 조언만 해줄 뿐이었다.


첫번째 이유야 그렇다쳐도 두번째 이유는 너무한 거 아닌가?


어찌보면 그녀에 대해 이해하고자 시도도 안한 내 잘못도 있을 터.


어쩔 수 없다.


지켜줄 맘이 없는 자에게 등 뒤를 맡길 수 없었으니, 오늘 밤 나는 야영 중에 그녀와 대화 해보고자 했다.


"용사님?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어, 그냥 오늘은 잠이 잘 안와서 말이야."


애당초 야영이라는 것에 익숙치 않은 직장인이니까.


"그렇습니까?"


"응."


"........"


그 후로 우리 사이에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게 되며 분위기가 어색해져 간다.


그녀는 진짜로 감정이 결여되어있는 걸까? 이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있는 거지?


지금도 나는 숨이 텁텁 막혀서 답답해 죽을 것 같은데........


"진짜 못 해 먹겠네! 야!"


"에...예?"


살짝인 것 같지만 그녀는 당황한 것 같다.


"하고 싶은 말 많은데 이 말만 꼭좀 하자, 너 왜 내가 심하게 다쳤을 때 가만히 있었냐?"


"그건 용사님의 상황대처 능력을 늘리기 위한......."


"염병!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는데 상황대처 능력? 까먹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온 거거든? 그런데 내가 여기까지 강제로 끌려와서 죽을 위기까지 넘어가며 너네들을 도와야 하냐? 시발, 때려치우고 말지!"


국방의 의무로 끌려갔을 때도 엿 같았는데 여기는 더하면 더했지 군대보다 덜하지는 않았다.


"저 그러면 저는 대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것까지 내가 말해줘야 아는 거야?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네."


"죄....죄송합니다."


이제서야 확실히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의 침울한 표정이.


그 뜻은 그녀의 감정이 완전 결여된 건 아니라는 것이니, 매도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하아...미안하다, 다짜고짜 여기에 끌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이 민감해져서 욱한 것 같네......."


"괜찮습니다, 용사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야, 아무런 지식도 없는 생초보인 나를 보좌하느라 너도 많이 힘들텐데 나만 생각한 것 같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이래나저래나 그녀의 조언이 하나도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라는 건 사실이었으니,


살포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어 좌우로 쓰다듬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흐아읏?!"


"응?"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손에 딱딱한 것이 닿자마자 이리나의 신음소리가 나온 것 같은데?


"요...용사님, 마음은 감사하나 갑작스럽게 쓰다듬으시면 고...곤란합니다!"


"아...응, 미안."


이리나는 내게서 살짝 거리를 벌리며 고개를 푹 숙였으나 홍당무같이 붉어진 얼굴은 숨길 수 없어 보였다.


어떠한 일에도 감흥없이 쿨하게 넘어가버리던 여성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 이게 말로만 듣던 갭모에라는 것인가?


왠지 모르겠지만 내 얼굴도 뜨거워져 가는 게 덩달아 부끄러워지는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좀 위험해 보인다 싶으면 도와주길 바라."


"네...넷! 알겠습니다!"


더 있다간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으니 황급히 취짐하러 자리를 떠났다.


조금이나마 그녀와의 사이가 가까워졌으려나?


확실치 않은 의문을 남긴 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여행 7일 차.


일주일만에 새로운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며칠이 지나야 마왕성에 도착하며, 며칠이 지나야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알 수 없었지만 매우 피곤하기에 낮인데도 숙소의 방을 빌려 하루종일 쉬기로 했다.


판타지 세계답게 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것들이 널리고 널렸으나 딱히 감상할 생각은 없었다.


놀라울 일들이 많다고 해도 현대의 기술이 나에게 있어서 쾌적하고 편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에게 있어서 편한 게 장땡이다.


"용사님? 이 마을에서 며칠동안 체류할 생각입니까?"


"글쎄? 그리 오래는 안있을 거야."


빨리 마왕을 무찌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편히 쉬는 걸로 하겠습니다."


"응, 참 그리고 이따가 모험가 길드에 가볼 거야."


"길드입니까? 실례가 안된다면 그곳엔 무슨 용무로 가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마을까지 오면서 생각한 건데, 역시 동료가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도움이 있다고 해도 나 혼자보다는 여럿이 좋잖아."


동료의 유무는 마왕 토벌에 있어서 좋을 것이다, 성격 차이로 인한 말다툼이 있을 순 있겠지만 토벌 가능성을 높여두는 게 낫다.


"혹시 구체적인 동료는 어떤 분을 원하시고 계십니까?"


"음~원래라면 듬직한 남자 동료를 원하겠지만 이 세상은 남여 구분없이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니까 성별은 상관없으려나?"


"크흠."


응? 잠깐이나마 이리나의 몸이 움찔한 것 같았는데......착각인가?


"아무튼 등을 맞대며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관없어."


"그렇다면 외람되지만 용사님, 동료를 구하시는 건 그리 추천드릴 수 없겠습니다."


"응? 어째서?"


"길드에 있는 모험가들은 용병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익만을 추구하며 사는 기회주의자들 뿐이니 언제 등에 칼을 꼽을 지 모릅니다."


"그런가?"


"예, 그리고 용사님의 능력이라면 언젠가 분명 혼자서도 마왕을 처치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것 입니다."


"그 정도야?"


"예, 용사님의 재능은 제가 보증합니다, 그러니 용사님에게 있어 동료는 미래의 짐이나 다름 없을 겁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에 설득 당하는 기분이다.


"내게 동료가 필요없다라......."


4일 전의 나라면 개소리 집어 치우라며 그녀의 말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날 밤 이후로 이리나의 도움이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달라졌기 때문.


이제는 내가 감당하기 버거울 것 같을 때마다 그녀가 직접 나서서 도와줬다.


대표적인 예시로 수많은 마물들이 덮쳐왔을 때, 그녀는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마물의 수를 줄여주었으며,


그 밖에도 크게 다쳤을 땐 응급처치를 해주었고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땐 친히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 전까지는 직접 다 겪어보라며 방치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지금은 어느정도 돌봐주는 보모 정도로 발전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이리나가 곁에 있으면 동료의 필요성이 옅어져 간다.


"그래,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네 말대로 필요없을지도 모르겠네."


동료가 생겨 감정 싸움까지 가게되면 또 골치 아플 것 같으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용사님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물러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수고했어."


이리나가 나가자마자 나는 편히 쉬고자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 동안 침낭도 없어 딱딱한 바닥에서 자야만 했는데 간만에 침대에 눕다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현대 시대에 비하면 부드러움이 많이 부족한 침대였지만 이런 생각은 역시 사치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이 푹신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잠을 청하고자 했다.


그러나.......


"으음......."


왠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잠에 들고자하면 누군가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못해 민감해진 걸까?


하루 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

-이리나 시점-


"안...들켰겠지?"


그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내 입이 자동적으로 양 옆으로 찢어지게 웃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최근 따라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와 곤란하다.


그의 조력자로서 상시 그를 지켜보는 것 당연했지만 왠지 조력자의 입장으로 볼 수 없게 되는 것만 같다.


게다가 그가 동료를 구하고자 하며 여성도 상관없다고 할 땐 마음 속에서 부글부글 무언가 끓어오를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되버린 원인은 필시 4일 전 밤에 있었던 그의 언행 때문, 허나 그를 탓하려는 생각은 1도 없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긴 하지만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였으니.


"용사님...슬슬 주무시고 있겠지?"


그가 바로 근처에 있는 옆 방, 조심히 벽면에 구멍을 뚫어 눈을 갖다 대자 그곳엔 곤히 잠들어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이렇게 무방비가 되어있는 그의 모습을 보는게 일상이 되어갔다.


하루라도 그의 자고있는 모습을 보지 못하면 왠지 마음이 답답하다랄까.......


"아아.......용사님♡"


이게 사랑인 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앞으로의 여행동안 나는 곁에서 그를 도와줄 것이며 그의 모든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조금이라도 여행이 길어졌으면 좋겠다.


"후훗♡"


===========================================


오늘의 빌드업은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얀데레화가 되어갈 거임.

다음 이야기는 나중에 써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