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소꿉친구였던 얀붕이와 얀순이.



얀붕이를 좋아하던 얀순이와는 달리, 얀붕이는 어릴 적부터 얀순이가 마음에 안 들었음.



여자애랑 같이 다니면 어른들도 은근히 놀리고, 주변 애들도 많이 놀렸으니까.



그런 얀붕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 집에 살았던 둘의 부모님은 서로 친했던 거임.



둘의 부모님은 서로 얀붕이와 얀순이를 데리고 함께 합동 가족 여행을 가게 됨.



그런데 하필 같이 차를 타고 여행을 가던 와중에
터널에서 붕괴 사고가 난 거임.



양 측 부모님은 터널이 무너지면서 낙석에서 자식을 지키고 돌아가셨음.



얀순이네 어머니는 낙석은 피했지만, 자동차 부품에 복부가 뚫려 시름시름 앓다가 그 자리에 고정되신 채 돌아가셨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괜찮은 척을 하셨던 터라, 얀순이는 어머니가 살 수 있을 줄로만 안 거임.



얀순이가 잠깐 잔해를 뚫고 화장실에 갔을 때, 얀순이 어머니가 얀붕이를 불러서 이야기 하심.



"얀붕아... 아줌마는 이제 길게 못 버틸 것 같아... 얀순이가 얀붕이 많이 좋아하니까... 얀붕이가 얀순이 지켜줄 수 있겠니?"



얀붕이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음.

남자애다 보니까 인터넷으로 폭력적인 것들을 여자애보다 빨리 접했고, 배가 뚫리면 빼박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얀순이 어머니가 자기들을 안심시키려고 괜찮은 척을 하셨다는 걸.



얀붕이는 눈물을 참고 미친듯이 고개를 끄떡였음.





얀순이는 이제 부끄럽게 계속 엉겨붙는 소꿉친구가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줘야 할 사람이 된거야.




얀순이가 볼일을 보고 돌아오자, 얀순이네 어머니는



"얀순이, 우리 딸...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지...? 엄마가 미안해... 흑!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해...!"



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얀순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결국 돌아가셨음.



부모님들 덕에 얀붕이와 얀순이는 생존했는데,

얀순이는 아직 어리다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제정신이 아니게 됐음.



얀순이는 한참을 울다가 점차 말도 없어지고 초점도 없어졌음.



얀붕이는 얀붕이대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슬프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둘이 같이 못 살 것 같으면 얀순이라도 살려야 한다.

라고 생각하게 됐음.



그래서 얀순이한테



"야. 얀순아. 저기 잔해들 사이에서 음식 같은 거 구할 수 있나 보러 갔다 오자."

라며 먼저 말을 걸게 되었음.



처음에는 얀순이도 얀붕이의 말을 듣고 함께 먹을 것이나 탈출구를 찾으러 가곤 했지만, 사방이 막혀서 별로 소득은 없었음.



거기에 더해서 얀순이가 점점 말도 없어지고 지쳐가는 게 눈에 보이는 거임.



부모님을 잃은 슬픔에 자기들도 곧 죽을 거라는 비관적인 말을 꺼내기 시작하더니, 말도 없어졌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둘은 더 이상 호흡도 어려워진 상황이었음.



얀붕이가 손가락이 다 까져가면서 무너진 트렁크를 열어서 챙긴 여분의 물은 거의 남지 않았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망자들의 차를 뒤져서 나온 보존식도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음.



얀붕이는 몰래 식량과 물을 자기가 먹는 양보다

얀순이가 먹는 양을 더 많게 분배해서 얀순이가 버틸 수 있게 하고, 주기적으로 하러 가는 구조 요청도 자기가 도맡았음.


그럼에도 얀순이는 마음이 닳아서 움직이지 않게 됐음.

간간이 얀붕이가 주는 음식이나 받아먹는 처지가 된 거임.


게다가 호흡도 못 하고 종종 헛소리를 하기도 했음.



"엄마... 아빠가 안 움직여..."



라며 죽은 엄마와 아빠를 찾아댔고,

화장실도 얀붕이가 몇 시간에 한 번씩 억지로 데리고 갔다와야 할 정도였음.






얀붕이는 터널에 비상용으로 구비되어 있던 산소호흡기를 찾아서 보관중이었는데,
정말로 호흡이 어려워졌을 때 쓰기 위해서였음.



원래대로면 일정 거리에 여러개씩 구비되어 있어야 할 텐데
얀붕이와 얀순이가 갇힌 지역에 있는 호흡기들은 하나 빼고는 낙석에 깔려서 쓸 수가 없었고,



그나마도 해당 구역을 벗어나는 건 낙석의 잔해물들 때문에 더욱 불가능했음.




얀순이가 헛소리를 하는 상황이 오자, 얀붕이는 얀순이의 입에 산소 마스크를 씌웠다가 빼주기를 반복했음.



그러면서도


"얀순아, 우리 나가면 꼭 같이 다니자. 부모님들은 안 계셔도 같이 나가서 우리끼리 캠핑도 가고... 학교도 같이 다니고...

친구들이 놀리면 우리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나왔다고 자랑도 하는 거야."



라며 기운을 북돋아주었음.






주기적인 산소의 공급과 얀붕이의 따뜻한 위로 덕에
얀순이는 곧 의식을 되찾았고, 다시금 삶의 의지를 보이게 됐음.








그러다 올 것이 왔음.



얀붕이가 기력이 다한거임.








얀붕이는 어느샌가 물로 혀를 적시는 정도를 제외하면 보존식도 하나도 먹고 있지 않았고,


물도 음식도 전부 얀순이에게 먹이고 있었음.



그나마도 산소 호흡기도 얀순이한테만 쓴 터라

결국에는 얀붕이도 종종 의식이 끊겼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음.



그래도 자기까지 이러는 걸
다시금 기운을 되찾은 얀순이가 모르게 하려고

의식이 끊길 것 같을 때에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멀리서 기절했다가 깨서 움직이지 않는 몸을 끌고 오게 됐음.



그러기를 얼마간,



얀순이가

"얀붕아...! 오늘은 너한테 배운 것처럼 내가 구조 요청 하고 올게!"

라고 얀붕이에게 말했음.



얀붕이는 이제 자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음.

그래서


"발 조심 해야 한다?"


라고 얀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보내줬음.






얀순이를 보내고, 간이 산소 호흡기를 만져보니 산소도 얼마 남지 않았음.



이걸 사용해서 잠깐 더 연명해도
어차피 남은 음식이 초코바 하나였기에 더 살 수가 없었음.





얀붕이는

차라리 얀순이가 남은 음식과 산소를 전부 써서 살게 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내렸음.




"얀순이 어머니... 저도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죄송해요..."




얀붕이는 조용히 차에 기대어서 눈을 감았음.



참아왔던 감정이 북받쳐오른 듯 히끅댔지만 더이상 빠질 수분도 남아있지를 않았던 걸까?

한 방울의 눈물만이 먼지투성이인 얀붕이의 뺨을 타고 흘렀음.











그리고 몇 분이 지나서 얀순이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잔해들 사이를 기어서 돌아왔음.



"얀붕아! 네가 해준 대로 했는데! 위에서 무슨 소리가 났어! 우리 구해줄 건가 봐!! 얼른 가보자!!"


라고 호들갑을 떨며 얀붕이를 부르는 얀순이.




헌데 얀붕이가 눈을 감고 기대서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임.



"아, 얀순이 어머니, 죄송해요. 얀순이, 살려서, 밖에.... 야 되는데! 없어... 물, 초코바 반 개, 물티슈 하나... 죄,송..."




얀붕이가 지껄이는 헛소리는 남은 물자의 양이었음.


얀순이를 살려서 밖에 내보내기 위해서는 남은 물자의 양을 머리에 각인시켜 놓아야 했다 보니

헛소리조차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것들을 뱉어대는 수준이 된 거임.



더군다나 몸은 불덩이같았음.



얀순이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음.



"얀붕아! 정신 차려! 나 얀순이야!! 저기 구조대 아저씨들 왔어!! 우리 나갈 수 있어!!"



얀순이가 얀붕이의 두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그나마 얀붕이가 하던 헛소리는 점점 말이 맞지 않게 되고, 이윽고는 조용해졌음.




얀붕이가 움직이지 않게 되자, 얀순이는 얀붕이를 잡고 펑펑 울었음.




얀순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구조대가 길을 뚫어 둘을 구출하러 왔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얀붕아!!!!!!!!!!!!!!!!!!!!!!!"




얀순이는 구출되어서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에도, 얀붕이의 이름만 부르며 울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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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 내가 그만큼 얀붕이를 사랑한다구... 어떤 여자가 이런 남자를 안 좋아할 수 있겠어..."



얀순이가 손가락을 꼼지락댔음.




"길기도 하네, 그게 오늘 동아리 후배 뺨을 다짜고짜 때린 이유야?"



"...!! 그, 그년이 얀붕이 너한테 자꾸 달라붙으니까... 빼... 뺏어갈까봐... 으히히..."



얀순이가 멋쩍게 웃으며 얀붕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얀붕이의 정색을 보고 다시금 반성한다는 듯 고개를 떨궜음.



"하아..."



얀붕이가 한숨을 쉬며 왼손 약지에서 반지를 빼려는 시늉을 하자, 얀순이가 기겁하며 얀붕이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음.




"왜왜왜, 왜그래 얀붕아...! 미안해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 진짜지?"




얀붕이는 다시금 반지를 끼고, 얀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음.




'얀순이 어머니, 죄송해요. 애가... 좀 많이 이상해졌는데... 솔직히 예쁘게 자라긴 했구요... 진짜로 어지간하면 제가 계속 데리고 갈테니까 봐주세요...'




이런 얀붕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얀순이는 얀붕이의 가슴팍에 볼을 부비며 기분이 좋은 듯 머리를 쓰다듬어지고 있을 뿐이었음.









*




핸드폰으로 검수 하나도 안 하고 한 큐에 끄적인 거라
좆같을 수 있으니

양해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