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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다음 날 이른 아침.

아직 일어나지 못한 두 명의 수감자를 빼고 나머지 수감자들이 휴가 1일차 아침을 맞이했다.

동시에 뭔가 분노를 참고 오는 듯한 눈빛으로 사무실을 나온 베르길리우스.


그래, 분명 제가 술 처먹고 사고치면 친히 1대 1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었죠...


어...그, 그랬지?


라고 하오...


다행이 일단 요주의 인물이었던 돈키호테씨는 알고보니 무알콜 맥주라 술주정은 안부렸었고...


엣헴! 붉은 시선 나으리께서 말씀하신대로, 사고하나 안치고 오히려 관리자나리와 함께 뒷수습을 도왔소!


참 잘하셨습니다...


내...내가 특색 나으리께 칭찬받다니!


단테는 혼절한 돈키호테를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파우스트? 돈키호테 기절했으니까 이제 네가 전달좀 해.


말씀하신대로, 관리자님의 말을 길잡이에게 전달하겠습-


아뇨 파우스트씨...


뎅?


파우스트씨를 포함한 몇 명의 수감자에게 할 말이 좀 많으니, 다른 사람이 관리자님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 좀 맡아주시길.


뫼르소, 네가 좀 해줘.


명령 받았습니다.


우욱...뱃 속에서 마치 대호수의 파도가 치는 것 같소.


하나같이 움직이는 송장들이군...


대체 어제 뭔 일이 있었길래 제 머리에 붕대가 감겨있는거죠?


설마 이 오티스가 관리자님을 두고 술기운에 먼저 뻗어버리다니...


끄응...나 어제 맥주만 마시지 않았나?


저 불곰 아가씨는 술 먹고 입만 열면 구라야?


그래, 너희들 중에 어제 일이 기억나는 사람들도 있고, 안나는 사람들도 있겠지?


라고 관리자님께서 말한다.


혹시 여기서 난 어제일이 기억이 안난다 손.


수치스럽게도, 본인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오.


저도 창피하지만, 기억이 안나요...


저기, 나도 기억 안나는데 그렉? 너도 기억 안나지?


걱정마. 내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

파우스트씨가 만드는 그 어떤 녹음기보다 더 정확하게

그 귀에 한 글자도 안 틀리고 똑같이 들려줄께...


저...저기 그렉? 혹시 화났어? 나 어제 너한테 뭔 짓 했어?


인간으로써도 부정당한 사건이었지...


오 Blyat...


저...관리자님? 부끄럽게도 저도 기억이 안납니다만, 혹시 제가 무슨 민폐라도 끼쳤습니까?


저도 뭘 먹은 시간이 짧게만 기억나가지고요.


다들 아주 가관이군...


어제 술주정을 추억하는 건 일단 보류해주십시오 관리자님...


원래라면 진짜 1대 1 면담을 해야하겠지만,


뭐, 휴일이기도 하니 좀 풀어주는 것도 좋겠지요.


어차피 어제 일 다 말해주면 알아서 휴일이라도 조용히 지낼텐데 뭐ㅋㅋ


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제가 왜 나와있는 이 인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냐면...


이 버스의 용도를 잘못알고 있는 소수의 인원 때문에 그랬습니다.


용도를 잘못알고 있다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회사는...


망할...


창관이...


아닙니다.


베르길리우스의 말을 듣자마자, 어젯밤 야외에 이스마엘과 히스클리프를 만난 벤치를 치우다 묻은 액체를 기억한 단테.


...이런 씨발 설마 어제 내 장갑에 묻은 액체가 설마.


이야...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수치스러운 경험을 한 동지가 곁에 있다니 참 든든하군요.


오늘 새벽에 비가 와서 잠깐 밖에 나와봤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저한테 이러더군요.


"새벽에 산에 올라가는 길에 신기하게 생긴 빈티지버스를 봐서 구경하러 다가갔더니 신음소리랑 질척한 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었다."라고.


메피스토펠레스는 빈티지 버스가 아닙ㄴ-


...


거기다 자기가 산에서 내려왔는데도 끝나질 않았다고 말이죠.


그 소음의 당사자가 누군지는 말 안해도 어차피 그 당사자가 기억하거나 관리자님 아니면 술 안마신 사람들이 알아서 말해줄테니...


그러고보니 베르길리우스의 술주정은 어떨까?


참고로 전 술을 잘 안마셔서 제 술주정은 저도 잘 모릅니다.


어우 씨, 뫼르소? 언제 전달했어?


아직 안했습니다.


방금 들린 째깍소리가 뭔가 질문거리 같아서 그냥 때려맞춘 거니 신경쓰진 마십시오.


그리고 에밀 싱클레어...


ㄴ...네!


아무리 휴가 기간이지만...상명하복의 원칙까지 벗어날 수는 없지요.


그...그렇죠?


헌데, 술에 취해서 버스 안에서 무기 휘두른 수감자가 몇 있더군요...


그...그중 하나가 저란 건가요?!


심지어 그중 유일하게 넌 관리자님에게 직접 무기를 휘두른 수감자다.

이에 대해 설명하길 바란다...


그...그게 그러니까...정말로 기억이-


베르길리우스.


관리자님께서 길잡이를 부르셨다.


말씀하십시오.


애가 뭔 불만사항이라던가 내부분열을 일으키려고 무기를 휘두른 건 절대 아니야.


오히려 술에 취한 채로 이미 죽고 사라진 N사 광신도로부터 나 지키려고 무기 휘두르다가 그런거지...

그러다가 자기 혼자 넘어져서 의자에 머리박고 그래서 붕대까지 감았고.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긴 한데...네가 말한대로 오늘 휴일이기도 하고, 나도 안다쳤잖아?


술이 문제면 싱클레어가 술 안마시면 되고,

애초에 어제 보니까 도수 높은 술은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마셔보라고 해서 마셨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먼산)


얘도 이렇게 필름 끊긴 일은 처음일테니까 너무 뭐라 안해도 돼.


...


죄송해요...관리자님...베르길리우스님.


...하


분명 처음엔 못미더운 관리자였는데...


이젠 그래도 수감자 보호해주는 모습까지 보이다니...꽤 믿음직스러워졌군요 관리자님.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으니 뭐...여기서 얻은 경험의 가치가 얼마나 큰데.


여기서 제가 안된다고 하면 저만 악당인 것이겠지요?


(째깍피식) 과연 어떨까?


에밀 싱클레어.


네...넵!


술은 마시라고 있는거지 먹히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네...명심할께요.


그러니 두 번은 없습니다.


네...


싱클레어공 이외에 어제 관리자님한테 폭언을 한 이도 있었지만 일단 조용히 있어야겠소...


제 이명이 붉은 시선임을 알고서도 그렇게 뭔갈 숨기고 있다는 얼굴을 대놓고 보이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거지요 돈키호테씨?


수...숨기다니! 절대 12번 수감자께서 술에 취한 채로 본인을 관리자님으로 착각하고 진짜 관리자 나리를 머리에 고물괘종시계나 박아넣은 기괴한 환상체라고 욕한 걸 숨긴 적 없소!


아...


...더 들었다간 길잡이인 내가 길을 잃을 거 같군.


아 맞다, 어제 돈키호테 붙잡고 색깔만 노랗게 칠했다고 못알아볼줄 알았냐고 그랬지 참ㅋㅋㅋ


그래놓고 나한테 괴상한 괘종시계 환상체라곸ㅋㅋㅋ


...그...진짭니까 관리자님?


내 의체에 녹음기능이나 촬영기능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어.


자결하겠습니다. 칼 주십시오.


괜찮아 오티스! 이 기괘종시계는 언제나 수감자를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되살려 줄테니깤ㅋㅋ


으아악! 이 오티스가 감히 관리자님께 이런 큰 무례를!!


근데 기괴하다고 한 적은 없-


쉿.


어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안 취하면 죽느니 할때부터 알아봤어~


이봐 로쟈? 저기서 오티스를 너로 바꿔넣고 관리자양반을 나로 바꿔 넣으면 똑같은 상황이거든?


그렉...너 내가 기억이 없다고 막 이상한 말 만들어 내는 거 아니지?


당장 내 도끼에 목을 내놔라 이 징그러운 환상체야!


라고 그레고르한테 말했지.


...


나 부관언니따라 한 3시간만 죽어있어도 돼 단테?


괜찮아. 그 다음에 그레고르 어깨에 지네 붙어있었는데 그거보고 충격지네가 그레고르 잡아먹고 있는 걸로 잘못봤다고 했어.


그래...다행이 너한테 벌레보다 더 징그러운 환상체 취급은 당하지 않았지 뭐.


휴...놀랬잖아 그렉!


그 이후에 네가 술 그만 먹으라고 하는 나한테 보드카 한 병을 냅다 들이부어서 기절시킨것도 잊어먹었겠지!


...


저...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안해줬소.


넌 그 어떤 평행세계의 도시에서도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이상.


그...그게 무슨 말이오 단테?


어...그러니까, 어제 네가 홍루랑 대화하면서 동백이랑 동랑에 대한 그리움을 좀 많이 표현했는데,


그거 때문에 파우스트가 빡쳐서 홍루 기절시키고 너 데려갔어.


아! 그래서 제 기억이 얼마 안됐군요.


정말이오 파우스트양?


파우스트는 기억이 안-


에이..설마 도시제일의 천재 파우스트가 잊.어.먹.었.다.고?


...


잘 먹었습니다.


단테...당분간 파우스트양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주길 바라오.


관리자에게 그런 권한은 없습니다.


있습니다, 파우스트양.

예전에 히스클리프와 이스마엘이 싸웠을 때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 아시잖습니까.


...


그때 방에서 나온 카론.


메피 시끄럽대.


잘 잤니 카론?


잘 잤어?


아니, 카론 메피따라 시끄러워서 못잤어.


지금도 시끄럽대.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나보네...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 여기말고 복도.


그게 무슨 말이니?


난.알.ㅋ(난 알거같군 ㅋㅋ)


어...설마.


복도에서 신음소리가 크다고 메피가 비명질러.


카론도 시끄러워서 비명 지를뻔.


그러고보니 아직 두 명이 없군.


어...오늘 휴일인데 좀 봐줘.


애한테 저 소릴 들었는데 봐주란 말입니까?


...


살살해.


그렇게 모두가 혼나는 순간까지 일방적인 관계를 가지던 히스클리프와 이스마엘은 머리 끝까지 차오른 분노를 담은 베르길리우스에게 응징당했다.

물론 히스클리프는 피해자라는 이유로 덜 응징당했지만, 이후 간식사러 버스 밖에 발을 내딛는 순간 벼락 맞고 감전사하여 단테다 시계를 돌렸어야 했다.

번개에 맞는 히스클리프를 본 오티스는 "자연적인 벼락이 아니라 무언가 감정을 가지고 내리친 번개, 그것도 원망서린 벼락같다" 고 표현했다.


비오는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