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과즙이 넘쳐흐른다.
그저, 사과를 조각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과 하나에 구멍을 낼때마다,
가슴 한 켠이 불편한 이유는 왜일까.
그저 조각낼 뿐이다.
줄어가는 전우들과 같이,
사과를 자르고, 꿰뚫고 박살내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다.
그렇게 쉬운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내 안에선 못한다는 부정의 소리가 외치고 있는 걸까.
이유는 모른다, 왜 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정녕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 소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 머리와 몸은 그것을 무시하고 할일을 한다.
언젠가는, 끈적한 과즙을 뭍히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사과를 조각내지 않고도, 내일로 나아갈수 있을까.
마음은 꿈을 꾸지만, 체념해버린 나의 머리와 몸은 꿈을 꾸는 법을 잊은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