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오늘은 어디까지?"
정적이 흐른다
"저어.. 손님 목적지가 어디세요?"
손님은 입을 열었다
"봉하마을."
그는 그 한 마디만을 던졌고 이내 택시 안은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고요한 엔진음만이 남을 뿐이었다
어두운 밤, 실내등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의 이 남자는 분명...
남자의 얼굴을 볼 순 없었다
그러나 카린은 그의 정체를 직감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출발하고 얼마나 흘렀을까, 목소리에서 연륜이 느껴지는 이 남자는 정적을 견딜 수 없었는지 그 나이대의 다른 어른들처럼 시덥잖은 혼잣말을 시작했다
"하아... 발바닥에 불이 날만큼, 발바닥에 땀이 날 만큼 죽을똥 살똥 했는데ㅡ"
"오늘 힘든 일이 있으셨나봐요 손님..."
"..."
그러나 대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약간 초록빛의 정장을 입은 그 남자는 와이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딸깍"
"스읍... 후우ㅡ"
택시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
다음 손님이 알아차리고 신고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벌금을 물고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뼘도 그를 제지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열린 창문으로 계속해서 빗방울이 몰아쳤지만
지금 이 남자에게 그것이 중요하랴...
(이 남자... 도착하면 분명...)
카린은 딜레마에 빠졌다
자신은 택시 기사로서 손님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목적지라는 곳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면?
가는 길이 안전하다고 할지라도 목적지가 안전한 곳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지?
그렇게 되면 난... 안전하게 손님을 모셔다 드린게 되는걸까?
잠시 생각에 잠긴 카린은 확신했다
이 남자를 절대 목적지에 데려다줘선 안된다는것을
그 순간, 네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이 정적을 깼다
"가야 역사가 살아 숨쉬는, 김해시 입니다."
남자는 골아떨어졌지만 소리를 듣고 깨어나 푹 한숨을 쉬었다
카린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저기, 손님. 죄송하지만 기름이 떨어져서 시내에 들러 주유를 해야할 것 같아요.. 괜찮으신가요?"
그는 어벙벙한 표정으로 잠에 취해 말하고는
"안될거 뭐있노."
이내 다시 골아 떨어졌다
대답을 듣자마자 카린은 택시를 돌렸다
기름이 떨어졌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 곳을 지나면 주유소는 커녕 편의점도 없는 시골길이라
달리 핑계를 댈 만한 건덕지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이 남자의 운명이 다 하는걸 멈추지 못 할 테니까
카린은 남자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히 운전해 어느 한적하고 어두운 공원에 차를 세웠다
남자는 시동이 꺼지는 것 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곤히 잠들어있었다
"그래... 사람 하나 살리는거라 치자."
그녀는 안전벨트를 풀고 내려서 조수석으로 향했다
차 문이 닫히는 소리에 남자는 깜짝 놀라며 깼다
그리고 그의 옆자리에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는 어여쁜 운전기사, 카린이 있었다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헤친채 그 속의 빨간 브라 끈을 보이며 매혹적인, 그러나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은 그녀를 보며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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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카린은 근무지 이탈로 다음날 출근하지 못한 점이 회사에 타격을 입혀 기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평온했고, 옳은 일을 했다는 믿음이 그녀의 마음 전체에 서려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 날 이후부터 그녀는
사람들에게 '길치' 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