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사장님도 나를 완전히 신뢰하시는지, 평소엔 가끔 마실이라는 명목 하에 감시하러 나와보시더니 몇 달 전부터는 안 나오신다.

 뭐, 내가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일을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조금만 더 친절하고 조금만 더 잘하자는 마인드로 단골도 많이 확보했고, 사장님께 바꾸자고 한 원두가 호응이 좋았는지 주변에 큰 회사에서 단체주문도 많이 들어온다. 뭐, 덕분에 일은 많이 하게 됐지만...

 사실 취준하면서 짧게만 일하려고 했는데, 취업 빙하기라 취업은 잘 안되고 어영부영 일은 계속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얼마 전에 결국 취직이 돼서 오늘이 마지막 근무지만, 스피노자가 말했듯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은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 한다.

 카페 자체가 접객업이고 2년이나 똑같은 일을 하다보니 일부 진상을 제외하면 별로 어려운 건 없다. 음료같은 건 이젠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다.

 ...아, 사실 하나 있다. 그나마 좀 특이하게 어렵긴 한 거.

 마감 직전. 바깥에서 딱.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강아지 헥헥대는 소리가 들리면 보지 않고도 누가 오는 지 알 수 있다.

 "요. 안녕하세용."

 그건 바로 사장님 딸. 신수림.

 "안녕하세요."

 "오빠 오늘도 잘생겼당. 아니 잘생겼겠당?"

 "놀리지 마세요."

 수림이는 늘 마감 시간대에 어영부영 츄리닝만 걸쳐 입고 가게로 온다. 공부 끝나고 들렸대나.

 저번주까지만 해도 츄리닝이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꽤 잘 차려입고 온 것 같다.

 혹시나 문에 부딪히지 않게 문턱을 넘을 때 쯤에 문을 열어주면, 고마워. 배시시 웃곤 한다.

 그리고 어깨를 잡은 뒤 수림이는 전용석에 앉히고, 안내견인 빙고를 좀 쓰다듬어주면 그때서야 빙긋 웃고 주문을 넣는다.

 주문은 늘 똑같다.

 "라떼 한잔이용."

 "적립 필요하세요?"

 "넹. 오빠 마음 속에 한 장."

 그런 주접이 처음엔 듣는 게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려니.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장 딸이니까 딱히 돈은 받지 않는다.

 돈도 안 받지만 세상에서 제일 심혈을 기울여 커피를 탄다. 라떼아트는 늘 다른 걸 해준다.

 오늘은 뭘 해줄까.

 "오늘은 뭐에요?"

 "청룡의 해니까 청룡입니다."

 "자꾸 그러면 벌 받아 오빠."

 "아니 진짜인데."

 진짠데...

 "응. 그래그래. 아무튼 뭐 오빠가 해준 커피가 제일 맛있으니깐. 청룡이든 성룡이든 뭔 상관이야. 먹기 전에 사진 부탁해요."

 가볍게 내미는 핸드폰엔 이미 카메라 어플이 켜져있다.

 찰칵.

 진짜 청룡이란 걸 언젠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준다.

 "오늘 공부는 잘 됐어요?"

 "아. 공부는 그만 하려고. 이제 됐어."

 수림이는 맹인이다 보니 음성으로 읽어주는 자료나 점자로 된 자료로 공부를 하는데, 아무래도 공부할 자료가 마땅치 않다는 것 같다. 근데 그만한다는 건, 대입 결과가 잘 안나왔다는 건가...

 "참... 고생하셨네요."

 "응. 고생 많이 했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시게요?"

 "계획은 있는데, 궁금해?"

 "조금?"

 "에이. 오빠 곧 나간다면서? 어차피 안 볼 사이인데 궁금할 건 없지 않아?"

 "아. 네. 그렇게 됐네요. 그래도 수림 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 지 궁금하니깐."

 그러자 음. 하고 수림이가 살짝 웃었다.

 "보이는 그대로 생각하면 되잖아 오빠. 이렇게 예쁘니까 누군가가 데려가겠지. 그리고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 지 않을까?"

 쉽게 말하자면 취집하겠다는 거구나.

 "음... 그래요. 수림씨는 예쁘니까. 누구하고 결혼해도 예쁨받으면서 잘 살 거에요."

 "오빠는?"

 "네?"

 "오빠는 나 데려가기 싫어?"

 데려가고 싶냐 아니냐를 따지면 데려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닌데. 아니 난 고작 사회 초년생(진)일 뿐이고... 수림이 너는 이제 막 20살인데...

 "싫...지는 않죠? 근데 수림씨는 굳이 저한테 오고 싶지 않잖아요? 농담도 참."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데려가고는 싶지.

 "응? 아닌데? 난 오빠가 데려가주면 해피."

 히히. 하고 수림씨가 웃었다. 농담이지만 이러면 바로 설레버리잖아.

 그리고 이렇게 해맑게 웃는 수림씨의 웃음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나저나 오빠 가면 이제 나 오면 가게 문 누가 열어주고 빙고 누가 쓰담쓰담 해줘?"

 "안그래도 사장님께 일 잘하는 후배 소개해 준 참이에요."

 "남자야?"

 "여자에요."

 흐응. 하고 수림이의 말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친해?"

 "글쎄요. 친한가? 그냥 서로 안부정도 묻는 사이?"

 "그게 친한 거 아냐? 뭐... 아무튼, 언제부터 안 나올 거야?"

 "아. 오늘이 마지막."

 어? 하고 수림이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진짜...?"

 "네."

 눈이 감겨있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당황한 것 같다.

 "... 아씨. 내 생각이랑은 좀 다른데..."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후... 좋아. 자. 내 핸드폰에 라떼아트 몇 장인지 좀 세줘 오빠."

 다시금 핸드폰을 내밀고, 수림이가 부탁한다.

 갤러리에, '라떼아트'라는 폴더가 있다.

 하나, 둘...

 "99장."

 "아니지 오빠. 아직 오늘 찍은 거 하나 안 옮겼으니까 100장이잖아."

 "아 그래요."

 "그럼 적립도 100장이지?"

 "아. 그렇게 되네요."

 수림이는 뭔가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손을 더듬어 빙고를 찾았다.

 "빙고야~ 오늘이 딱 100장 째래."

 빙고는 헥헥대면서 수림이의 손길을 즐긴다.

 잠깐동안의 침묵.

 "오빠. 우리 카페 적립은 몇 장당 한 잔 서비스야?"

 "음. 10잔 드시면 한 잔 무료로 드리고 있죠?"

 그렇게 대답하자 수림이가 10번... 하고 중얼거리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오빠 이제 못 보니까, 적립한 마일리지 쓸 때가 된 것 같아."

 "아, 그래요."

 뭐, 확실히 내 마음속에 저장한 쿠폰이면 내가 가버리면 다 못쓰니까. 근데 애매하네. 카페 규정대로 음료 10잔 무료로 줘야하나. 그러면 10잔 다 다른 라떼아트를 해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던차에,

 "그럼 우선 첫 번째 쿠폰. 오빠. 잠깐 일로 와봐."

 갑자기 양팔을 쫙 뻗더니, 수림이는 허공을 더듬었다.

 "얼른. 나 팔 아파."

 그리고 내가 다가가자. 손을 더듬어 내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다. 생각보다 손아귀 힘이 쌘건지, 손가락 끝이 꽤나 단단했다.

 "응. 이렇게 생겼었구나."

 그러고보니 2년간 그녀는 내 얼굴을 만져본 적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를 것이다. 단순히 그게 궁금했을지도. 보통 첫인상은 얼굴로 결정되곤 하니까.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네."

 히히. 하고 수림이는 웃었다. 내려다보니 빙고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만 보고 있다.

 "그럼 이제 두 번째. 오빠 핸드폰 들어봐."

 "응? 네."

 폰을 들고,

 "자. 공일공,"

 어라. 번호?

 생각해보니 사장님이면 모를까 사장님 딸과 번호를 교환할 필요는 없었으니, 나나 수림이나 번호가 없는게 당연하다.

 사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보다보니 연락할 필요가 없었던 걸지도.

 그래서 그냥 입력했다. 뭐라고 저장할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에,

 "잠깐만. 저장은 조금만 이따가 해줘. 일단은 오빠 번호도 나한테 줘야지."

 맞다. 내 번호도 없구나. 수림이 내밀고 있는 수림의 핸드폰에 내 번호를 적어주었다. 다됐다고 하자마자 수림이는 냉큼 번호가 입력된 핸드폰을 뺏어 탁자 위에 두고, 매고 온 가방을 꺼내더니,

 "좋아. 그리고 이건 4번째. 사실 선물에 가까운데 특별히 쿠폰 쓴 걸로 해줄게."

 뭔가 종이를 건네줬다.

 거기엔...

 "어. 이거 우리학교...?"

 우리학교 입학 허가증이 있었다.

 "맞게 뽑아온 것 같네? 응 맞아. 나 오빠 후배야. 이제. 오늘 붙었어."

 와. 정말 어려웠을 텐데. 우리학교 들어오는 거.

 "진짜 축하해요."

 "아직 축하하긴 일러 오빠. 오늘 다 쓸 거야. 적립된 거."

 "네?"

 "오빠. 만나는 사람 있어?"

 "아뇨."

 "오빠. 비혼주의자야?"

 "아뇨."

 "자녀 계획은?"

 "그건 수입따라 다르긴 한데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뭔지 모를 질문의 연속.

 "스킨십 진도는?"

 "글쎄요.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좋아. 그러면 이리 와봐."

 다시 허공을 잠시 휘젓는 팔쪽으로 다가갔다.

 "오빠. 얼굴이... 여기지?"

 그리고 뒤통수 쪽으로 부드럽지만, 조금 단단한 손길 하나가 느껴지고,

 한 쪽은 내 얼굴쪽을 조금 헤매더니, 이내 어딘가에서 멈춰버렸다.

 "이게 입술이지?"

 그리고는 손가락을 입술에서 살짝 떼고, 그대로 내 등을 감싸안고는,

 가볍게 고개를 들고,

 내 입술에,

 수림의 입술이 다가와 맞닿았다.

 어.

 나.

 지금 뭐.

 가볍게 맞닿은 입술은 살짝 벌어져 타액을 교환하고.

 작은 혀가 어느새 풀어진 내 입술과 입 안을 오갔다.

 어라.

 지금 얘가...

 ...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입술은 떨어져 있었고, 수림이 얼굴이 새빨개진 게 보였다.

 "음. 첫 키슨데 잘 했는지 모르겠당. 헤헤."

 물론 내 얼굴도 갑자기 새빨개졌을 것이다...
 갑작스럽지만, 싫다는 생각은 커녕 오히려 부끄러움도 있고, 당황함도 있고, 약간은 그래도 일하는 시간인데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과.

 "어. 음. 네. 음. 어."

 "아 뭐야. 그러지 마 오빠. 아무튼. 이건 실수 아니니까. 쿠폰 사용한 거야. 유상이야."

 수림이는 가볍게 고개를 털고는, 배시시 웃었다.

 "자. 이제 마지막 쿠폰. 아까 말했던 대로 내 이름. 저장해줘."

 어.

 잠시 뇌가 정지해서, 뭐라고 말할지 모르는 사이에, 수림이는 가볍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취업 축하해. 그리고 잘 부탁해. 오빠. 선배. 그리고,"

 내민 핸드폰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