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밤이 바뀐 지도 오늘로 일주일째가 되어 간다.


처음에는 적당히 새벽녘에 잠을 청하여 수업이 없는 시험 기간의 아침에 늦게 일어나, 아침 같은 점심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려던 것이 어느새 시험 일정에 맞추어 열두 시간 정도씩 어긋나 버린 것은 내게 예삿일이 아니었다. 

대학 진학 이후에도 절대 낮 시간에 퍼질러 자지는 않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없어진 지 오래였다.


변명하자면 해가 지고, 새까만 밤을 꼬박 희게 새울 때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물성은 여간 매혹적인 것이 아니다. 하긴 이러니저러니 둘러대어도 결국 남들과는 시차가 있는 하루를 보낸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다 부질없는 말이다.


이런 시간이면 습관적으로 현을 생각하게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품 안에 넣고 싶었던 그녀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내 일상에 자리한다. 허나 그녀에게 내 몸이 가 닿을 수 없으니 매일 잘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보내 놓는 수밖에 없다. 

그렇노라면 현은 자신의 숨 고를 틈 없이 빽빽한 일상 속에서 이따금 생기는 찰나를 이용해 내게 답장한다. 그녀와 가까워질 때 즈음부터 줄곧 이렇게 소통했으니 대략 일 년은 되었던가.


돌이켜 생각하면 현과 나 사이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거리였다. 멀다기엔 기차를 타고 고작해야 한 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으므로 소위 장거리 연애라고 불리는 다른 연인들에 비해 한참 넉넉한 형편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도 아니요 내가 서울에 있을 때에도 지하철을 통해 그녀를 만나러 가기에는 족히 오십 분은 소요되니 내 입장에서는 결코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는 물리적 거리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누가 사랑은 나와 너 사이의 운동량을 보존하면서도 결국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도록 만드는 완전 비탄성 충돌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나와 현 사이의 관계는 그보다는, 하나의 질량 중심을 두고 일정한 타원 궤도를 그리며 공전하는 쌍성과 더 비슷해 보인다.


때로는 각자의 궤도에 따라 서로에게서 멀어졌다가도, 결국 서로를 향한 중력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랑. 

아직 미숙하여 이따금 외부로부터의 공간 왜곡이 발생하면 금세 평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어린 천체 한 쌍이 그리는 사랑. 

어쩌면 사랑이라기보다는 아직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수식어가 적합할지도 모를 너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명한 갈구.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너는 종종 물었다. 나 좋아해? 하고, 일렁거리는 눈동자를 한 채 나를 올려다보면서. 정해진 배식 시간에 모이가 나올 것을 확신하면서도 이를 못내 걱정하고 고대하는 어린 새처럼 나를 바라면서 나를 보면서 나를 바라보면서.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 슬픈 기분이 되어 응,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라든가, 그런 질문 하지 마. 항상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같은 말을 하며 네 머리카락으로부터 얼굴에 이르는 부드러운 곡면을 조심히 쓰다듬었다. 종종 입을 맞추는 일도 있었다.


그때 네 표정이 어땠던가. 착각이면 좋겠으나 그럴 때마다 너는 그제야 안도했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벅찬 눈이 되어 나에게 안겨 왔다. 내 입술에서부터 염증이 돋아 벌겋게 벗겨진 목과 그 아래에 이르기까지 입을 맞추고 가쁜 마음을 추슬렀다. 나도 덩달아 숨이 가빠졌다. 양 팔 사이에 가둔 네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이런 밤이면 그런 질문을 받을 때는 속으로만 삼켰던 문장을 스스로 되뇌이게 된다. 너는? 너는 어때. 너는 나에게서 안심을 얻니? 너는 내가 네 곁에 계속 있어 주었으면 해?


너도 나를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나고 그러니?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할 때 밉진 않니? 왜 가끔씩 내가 하는 얘기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구는 거야? 나랑 대화하는 게 정말 즐거워?


왜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 아니면 내가 널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왜 이야기하다가 한 번씩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어색해하는 거야? 어쩌면 너는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를,


또는, 정말 혹시 어쩌면, 나도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너를 웃게 하는 걸까. 너를 울게 하는 것은 또 무얼까. 너를 울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얼까. 네 속에 들어찬 응어리가 덜어내어지면 너는 비로소 아무 걱정 없이 내게 웃어줄까.


어느덧 창밖이 어스름히 밝아 온다. 마냥 검었던 밤이 든 지 오래된 피멍처럼 푸르스름하다. 오늘도 해가 지고, 새까만 밤을 꼬박 희게 새웠으며 그동안 줄곧 네 생각을 했다. 내 하루의 끝은 너로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