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러면 오늘치 진도는 다 나갔고. 시간이 좀 남았네."

선생님이 시간이 남았다고 얘기할 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가장 활발해진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줄까? 한번 말해봐라."

"사랑이요!"
"신화 얘기 해줘요!"
"재밌는거 아무거나요!"

국어교사 정청휘.
취미는 독서, 특기는 언변.
선생님은 시간이 남으면 항상 학생들과 잡담을 나눈다.
어떨 때는 설명하고 듣고, 어떨때는 갑자기 토의도 하고.

"오, 사랑이라. 좋아, 오늘 이야기는 사랑.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근본을 얘기해주마."

오늘의 주제는 사랑.
선생님은 칠판에 3개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3개를 직선으로 이었다.

"자, 내 기준에서, 사랑에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얘기해볼 사람?"

선생님의 질문에, 누군가가 살짝 손을 들고 얘기했다.

"열정, 헌신, 친밀감이요."

모두가 흔히들 아는 사랑의 삼각형.
하지만 선생님은 오답을 외쳤다.

"땡, 어떻게 보면 그것도 맞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니야."

선생님은 3개의 동그라미에 각각 글자를 적어나갔다.


        육체

정신         시간


"자,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3가지 요소다. 왜 저건지 이해가 안되겠지?"

선생님은 다시 각 글자들 아래에 새로운 글자를 써내렸다.


        육체
        본능

정신         시간
교류       동질감


"그럼 지금부터 설명을 시작하며, 예시로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를 들도록 하겠다."


대부분의 사랑은 본능에서 시작한다.
나 또한 그녀를 마주쳤고, 그녀 또한 나를 마주쳤다. 서로가 본능에 의해 이끌렸다. 본능을 자극하는 이성의 매력에 의해서.

우리는 교류를 시작했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 하는 것, 못 하는 것.
서로를 배려해줄 수 있는 온갖 정보들을 서로의 옆에서 모아갔다.

그런 생활이 계속해서 반복되며, 나와 그녀는 서로가 같아짐을 느꼈다.
그저 취미가 같다, 생각이 비슷하다,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서로가 지내온 시간이 같았기에 우리는 서로 같다고 느꼈다.
근 몇년간, 나의 사진에는 그녀가, 그녀의 사진에는 내가 있었다.


"이것이, 내가 한 사랑을 분석한 결과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의 3가지 요소가 저것이라고 생각했지."

모두가 납득한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선생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그럼 저것 중에 하나가 빠지면 어떻게 되나요?"

"오, 좋은 질문. 그걸 또 설명해주지."

선생님은 칠판에 분필을 그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본능을 빼면. 그러면 이건 우정과 신뢰가 된다. 서로를 원하지 않아. 하지만 서로를 알고 같은 시간을 지냈으니 서로를 믿을만 하지."

정신+시간=우정


"다음, 정신을 빼면, 짝사랑이 나온다. 같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냈으며, 그에 대한 결과로서 본능은 상대를 원한다. 하지만 서로의 교류가 없었기에 서로를 모르지. 그 결과 짝사랑이 된다. 여기서 교류를 시도하면 커플이 될지도 모르는거지."

육체+시간=짝사랑


"마지막으로, 시간을 빼면 연애 초기 커플이 나온다.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의 정보를 교류해 서로를 알았다. 그 결과로서 연애를 시작하지만, 아직 쌓은 시간이 부족해서 서로가 같음을 느끼지는 못하는거지."

육체+정신=연애초기


선생님의 설명을 듣던 와중, 한 친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올리고 질문을 시작했다.

"선생님, 다른 질문 있어요."

"어어, 이번엔 뭔데?"

"하나만 만족하면 어떻게 되나요?"

"하나만이라, 그건 오직 육체만이 가능한 일이지. 시간만 만족하면 서로를 잘 모르고, 정신만 만족하면 사업 파트너 정도로 남으니까."

선생님은 말하면서 함께 칠판에 글을 써내렸다.

육체만을 만족했을 때의 형태
금사빠, 섹파

"솔직히 이 두개 뿐이야. 나머지는 바로 정신을 충족하려 시도하거든. 금사빠는 이미 사랑에 빠졌으니 상대를 몰라도 되고, 섹파는 애초에 몸만 보는 관계니까 알 필요가 없지."

이어서, 선생님이 그 위에 시간을 덧쓰려고 하던 때, 종이 치기 시작했다.

"어이쿠, 시간 다 됐네. 하지만 저런 경우도 시간이 계속 쌓이면 언젠가는 3가지를 다 채우게 되겠지. 시간은 그래서 3요소가 되는거야. 자, 이제 질문 더 없지?"

선생님은 교과서와 학습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저기,"

"응? 질문? 빨리 해줬으면 좋겠네. 다음 수업 준비해야 해서 말이지."

"츤데레나 얀데레 같은... 어딘가 이상한 것들도 그 3가지로 분석이 되나요?"

선생님은 질문을 듣고,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정신의 결핍. 서로에게 자신을 알리려고 하지 않기에 한쪽은 튕기고 한쪽은 들이대고. 다른 경우에선 한쪽은 받아내려고만 하고 한쪽은 그걸 이해 못하지. 어딘가가 이상해보이는데 막상 따지면 사랑처럼 보인다? 그럼 그건 십중팔구 정신의 결핍, 짝사랑의 확장이야. 끝났지?"

"아, 네..."

선생님은 순식간에 교실을 나섰다. 다음 교시가 수업이란 게 사실이었는지, 다른 교실 반장에게 준비할 걸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진짜 사랑은, 몸과 마음과 시간을 함께 지닌다..."

선생님의 말을 곱씹을수록, 3가지가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언젠가 남자친구가 생기게 된다면, 그게 아니라 좋아하는 남자아이라도 생기면, 우선은 말을 걸어보자. 정신을 나눠보는거야. 서로를 잘 알 수 있도록. 그게 힘들다면, 같은 시간을 보내자. 서로에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서로의 몸과 마음을 다해 함께하는거야.
그렇게 한다면, 그 순간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