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이제 고등학교 들어간 고1 때였는데, 예전 중학교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였음.
그 중학교로부터 버스타고 30분정도는 타고가야 했었거든.


게다가 중학교 자체도 작은 규모의 중학교여서 그런 것도 있지.

식당도 옆 고등학교 식당 쓰고 그랬음. 운동장도 공용이었고


당연히 고등학교에 올라왔을 때 아는 친구는 한명도 없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자리를 정할 때의 옆자리 짝이었던 여자애가 그때만큼은 정말로 예뻐보였음.

아마 그 애의 친절함에 반했었을거야. 마음이 참 착했어. 외형적으로는 딱히 매력적이라 부를 부분은 없었거든.


얼굴에 여드름도 조금 있고 눈도 살짝 작아서 객관적으론 딱히 예쁘다곤 말 할 수준은 아니었거든.


그럼에도 그때 나한테는 그 애의 목소리도 얼굴도 다 최고처럼 느껴졌어. 그 긴 생머리에 자연갈색인 머리카락, 여린 목소리...

기억나는 점은 그 애의 머릿결이 그리 좋지않았어. 그래도 지나갈 때의 샴푸냄새와 그 포근해보이는 인상은 정말 좋았지.


그냥 옆에서 말만 하고있어서도 행복했어.


근데 옆자리는 매달 바뀌었거든 항상 옆자리에 앉아있고싶은데.

그래도 쉬는시간마다 근처에는 앉을 수 있어서 마냥 학교가는데 유일한 낙이었어.


장래희망은 없고 그냥 마냥 졸업하면 군대나 가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거든. 

근데 그 애가 내 마음에 들어오고나선 학교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지. 오히려 주말이 싫어졌어.


내가 그땐 용기가 없어서 좋아한다는 고백은 못했지, 친분도 그리 두텁지 않은데 

애니처럼 고백부터 하면 까이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었어.


그런데 어느날 또 다시 옆자리로 배정이 된거야. 말을 더 붙일 기회인거지.


너무 행복했어. 가끔 필기구 빌릴 때나, 수업시간에 졸아서 그 애가 깨워줄 때, 필기노트 빌릴 때, 그 애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겐 즐거운 시간이었어. 가끔 그 애가 골아떨어져서 잠들 때 깨우려 흔드는 그 순간조차도.


어느 여름날 점심시간에 노트필기를 하고있는데 옆자리에서 그 애가 자는거야.

그런데 그 애의 머리카락이 내 팔에 올라갔는데 그 느낌이 참 간지러우면서 치워야하나 알려줘야하나,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감촉을 그만두고싶지 않았어. 그 은밀한 감정에 노트필기는 안중에도 없었지.

그 폭신폭신한 긴 생머리가 반팔차림인 내 왼쪽 팔에 올라가선

간지럽히는 그 느낌에 난생처음 그렇게까지 행복해진 적이 없었어.


그 기분좋은 느낌에 그 애가 점심시간이 끝나서 친 종소리에 일어날 때까지 말없이 그 머리카락의 느낌을 즐겼지.


정말 그 강렬했던 기억은 지금까지 내 뇌리에 박혀있어. 좀 변태같은 짓이었지만.


그런데 이 행복이란게 항상 지속되지는 않더라고


그 애가 남자친구가 생긴거지. 난 그냥 그 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잘 생각이 안 나.


슬펐는지, 아니면 질투했는지, 아마 공부에 집중하기 좋은 기회라며 자기합리화를 했었을거야. 바보같게도.


그래도 1학년이 지나고 그 애의 소식은 간간히 들으면서도 고교생활 전체에 걸쳐서는 항상 생각했던게 그거였어.




아. 나에게도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그 애와의 기억이 너무나도 깊게 내 가슴에 박혔는지 아직까지도 내 이상형은 그 애를 닮은 애야.

이전까지는 단발머리나 머리가 어깨까진 닿는 걸 선호했는데, 이제는 긴 생머리가 더 끌리더라고.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새벽에 원래 이런거 하면 안되는데.